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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로이스 그레시 외 / 유나영 : 별점 2점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4점
로이스 그레시,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유나영 옮김/한승

이전에 읽었던 "셜록 홈스의 과학"이 아주 좋았기에 읽게 된 시리즈 책입니다. 

"셜록 홈스의 과학"이 셜록 홈스를 등장시켜 과학 수사를 설명했듯이, 이 책도 '007 - 제임스 본드'와 그 작품을 통해 첩보·스파이의 역사와 발전사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시리즈로 묶였을 뿐, 책의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아차 싶었습니다. 본드카, 총기와 폭발물, 핵전쟁, 첩보 장비 등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구들과 악당들, 그리고 악당들의 음모를 약간의 과학적 상식을 섞어 분석하는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나 밀도 높은 분석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007 -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충실한 해설서에 가깝습니다.

물론 덕분에 "007"이라는 시리즈, 특히 영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본드 소설과 영화에 등장했던 화려한 장비나 다양한 본드카에 대한 설명은 읽는 재미가 넘쳤고요. 과학적 분석도 몇몇 이야기는 꽤 흥미로왔어요. 세균전과 화학전에 대한 짤막한 설명, 실제로 제작되었던 007용 도구(특히 '자이로콥터'!)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마지막 부록으로 포함된 '마티니의 과학 -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부분도 인상적이었고요.(관련 기사: 여기)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007 - 제임스 본드"라는 하나의 장르물에 대한 팬 사이트 해설 모음집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007"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거에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도판 하나 제대로 실려 있지 않은 것도 불만스럽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0/12/02

007 Dr.No (1962) - 테렌스 영 : 별점 3점

자메이카 어딘가에서 방해 전파를 쏴 미국의 미사일 및 로켓 발사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조사하던 스트렝웨이 대령이 실종되자, 영국 정보부는 007 제임스 본드를 급파했다. 본드는 미국 요원 펠릭스와 함께 수사를 진행하여 '닥터 노'라는 인물이 크랩 키 섬에서 방해 전파를 쏘았다는 증거를 확보한 뒤, 몰래 섬에 침투하는데...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평가받는 007 신화를 연 작품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이라는 책을 계기로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숀 코너리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 영화는 제대로 본 적이 없기도 했고요.

이 작품은 영화로는 첫 번째지만, 이언 플레밍의 007 원작 소설 중에서는 여섯 번째 장편으로 195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왜 이 작품부터 영화화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차피 이후 원작들도 모두 영화화되었으니 큰 의미는 없겠지요. 그런데 1958년 발표된 소설이고, 1962년 개봉된 영화라 당연히 구소련이 주적으로 등장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건 다소 의외였습니다. 영화 속 악당 닥터 노는 악의 조직 '스펙터' 소속이거든요. 별다른 목적 없이 테러를 저지르는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하여튼, 영화는 초반부 정보부원 스트렝웨이 대령의 죽음과 미국 로켓을 향한 방해 전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007이 출동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본드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추리를 통해 방해 전파가 크랩 키 섬에서 발신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요. 몇몇 증언과 단서를 조합하는데 나름대로 합리적이었고, 악당들의 암살 시도 등 몇몇 격투 장면도 효과적으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드가 닥터 노의 섬으로 향하면서부터는 재미가 크게 떨어집니다. 우슬라 안드레스의 전설적인 비키니 착용 장면을 제외하면 볼거리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드가 직면한 위기는 하나같이 유치하고, 마지막 대결도 결국 악당의 방심 덕분에 승리하는 방식이라 긴장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던 탓입니다.

최근의 007 영화들은 이러한 각본의 부실함을 화려한 액션과 막대한 제작비로 보완했지만, 이 작품은 저예산 영화였으니 액션과 연출이 부실하고 조악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연출보다는, 긴장감 넘치고 탄탄한 구성을 갖추지 못한 각본과 전개의 문제가 훨씬 커 보입니다. 제 기억 속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재미있었거든요. 이렇게 별로인 각본이 나올 작품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숀 코너리의 9등신 폭풍 간지,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추리적 전개, 훌륭한 미술적 요소들 – 특히 자메이카와 닥터 노의 섬에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가구로 꾸민 세트와 의상들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더군요 –,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거대한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별점을 매기자면 점수가 낮을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 당시의 시선으로 본다면 별점은 3점입니다.

PS :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007 리포트(1) : 007 제 1탄 '닥터 노'"를 참고하세요.

2010/12/07

007 Gold Finger (1964) - 가이 해밀턴 : 별점 2점

M의 지시로 본드는 CIA 친구 펠릭스와 함께 오릭 골드핑거를 감시한다. 그러나 본드 때문에 사기 카드게임을 망친 골드핑거는 본드의 유혹으로 자신을 배신한 질 매스터슨을 온몸에 금박을 칠해 살해했다. 골드핑거의 금 밀수 방법을 알아내라는 지시에 더해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무장한 본드는 골드핑거를 쫓아 스위스로 향했다. 
결국 사로잡혔지만 본드는 기지를 발휘하여 골드핑거가 계획하는 "그랜드슬램 작전"의 전모를 파악해 내는데...

역시나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때문에 연달아 달리게 된 숀 코넬리 주연의 007영화입니다. 007 영화 중에서도 흥행이나 재미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원래는 시리즈 두번째 작품 "from with Russia Love"를 볼 까 했는데, "골드핑거"의 평이 워낙 좋아서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007이 너무나 하는게 없거든요. 007은 여자를 사로잡는 마성 이외의 능력은 전무한, 시마 과장 같은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같이 있는 여자들 하나 지키지 못하고 죽게 만들 뿐 아니라, 특수 장비가 부착된 본드카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평범한 차로 쫓아오는 악당들에게 사로잡힐 정도로 무능해요. 마지막 위기도 마성으로 사로잡은 본드걸 푸시의 배신과 더불어 순전히 운으로 극복할 뿐이고요. 이래서야 이게 특수요원인지, 동네 날라리 형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네요. 뭐 이러한 마성이 능력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게다가 그랜드슬램 작전으로 죽은줄 알았던 군인들이 깨어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편의 코미디 그 자체였습니다. 한 마디로 너무 허술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어요.

건질거라고는 황금칠하여 죽은 미녀와 한국인 캐릭터 오드좁의 색다른 매력 밖에는 없습니다. 이 영화 탓에 "피부에 황금칠을 하면 피부 호흡이 중단되어 질식사 한다""비행기 안에서 구멍이 생길경우 압력차로 밖으로 빨려나가게 된다"는 도시전설이 널리 퍼졌다는데, 이것도 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두개의 도시전설에 대해서는 "007의 과학"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높은 평가의 이유는 악당인 오릭 골드핑거의 색다른 매력, 그리고 세계 금 시장을 붕괴시킨다는 남다른 음모 덕이 큰 듯 합니다. 자기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한 악의 음모라는 내용은 지금 보아도 현실적이긴 하니까요. 단 자동차를 이용한 금 밀수로 이미 몇 배 남겨 짭짤하게 벌어먹는 그가 대관절 왜 이러한 큰 범죄를 벌이려는지도 모르겠고, 핵도 있고 비행기로 독약도 살포할 수 있는데 핵폭탄을 투하할 생각은 왜 하지 못했는지는 영원히 의문으로 남지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1점을 주어도 마땅하나 흘러간 시간을 고려하여 별점을 조금 더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습니다.

PS :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007리포트(3) : "골드핑거">를 참고하세요.

2017/06/25

나를 사랑한 스파이 - 이언 플레밍 / 권도희 : 별점 1점

나를 사랑한 스파이 - 2점
이언 플레밍 지음, 권도희 옮김/뿔(웅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007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어린 시절 조악한 번역본으로 읽었던 "닥터 노" 이후 처음 읽는 오리지널 007 시리즈네요. 정식 번역 출간본입니다.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해 실망스럽기 그지 없네요. 아니, 최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유는 이 책은 작중 비브의 말 그대로 용에게 죽기 직전의 공주를 구해주는 기사의 무용담을 현대화하여, 약간의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끼얹어 그려낸 어른들을 위한 할리퀸 로맨스에 불과한 탓입니다.

전체 분량의 거의 절반을 화자인 23살의 캐나다 아가씨 비비안 미셸의 짧지만 고역이었던 인생 역전 - 영국 유학 중 만난 첫사랑 데릭에게 순결을 잃는 과정, 두번째 남자 쿠르트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 종용과 함께 차이는 과정 - 에 할애하는데, 우리나라 60~7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 정도로 전형적이고 식상한 내용입니다. 정말 내가 '007" 시리즈를 읽고 있는게 맞는지도 혼란스러웠고요. 
다행히 우리나라 영화와는 다르게 순정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세상에 대항해보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그래봤자 혼자 여행을 떠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미대륙을 횡단하려는 무모한 계획이고요. 솔직히 비브가 모텔에서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호되게 당했을 겁니다.

하여튼, 이러한 책 분량 절반에 걸친 비브에 대한 장황한 묘사 후  2인조 악당이 모텔에 쳐들어오면서부터 겨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나마도 비브의 짤막한 저항이 한바탕 펼쳐지고 나서야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니, 분량으로 따지면 3/5 정도 지점부터네요. 그 뒤 본드가 악당들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주는건 전체 분량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악당들이 아무리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요원과 상대가 될리가 없으니 긴장감을 느낄 여지는 없습니다. 본드의 활약도 솔직히 가관이에요. 처음부터 총으로 제압하면 되는데, 놈들이 마각을 드러낼 때까지 뜸을 들이는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불을 지르기 전에 놈들을 잡았다면, 모텔 주인 상기네티의 재산을 지켜준 것에 불과해서 끝까지 기다렸다는데 이는 모순입니다. 불을 지르기 전에 놈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내는건 불가능했으니까요. 이 부분을 설득력있게 설명하려면 놈들의 방화에 대한 단서를 어느 정도는 제공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은 전무합니다.
비브에게 악당들 몸을 수색해서 총을 꺼내라고 시킨 후 위기에 빠지는 장면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자아내고, 비브가 본드에게 반하는거야 당연한 수순이라고 쳐도 여기서 비브의 묘사는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여자들은 반쯤 강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빼앗기는 것을 좋아한다"라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울러 모텔 주인 상기네티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모텔을 전소시키려고 한다는 범행 동기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법과학이 테르밋 등 가연성 물질을 동원한 방화와 사고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된 수준이었을지도 의문이며, 사람도 한 명 죽이고 네 명이나 되는 관계자를 만들면서까지 일을 벌일 보험금인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멋드러진 책 표지, 첫 정식 완역본이라는 가치는 있지만 재미와 수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졸작입니다. 읽으실 기회가 있더라도 피해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7/10

킹은 죽었다 - 엘러리 퀸 / 이희재 : 별점 1.5점

킹은 죽었다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퀸 부자는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했다. 그들은 군수 산업계의 거물 킹 케인 벤디고의 부하들이었고, 케인의 동생 아벨이 형의 살해 협박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방법은 마땅치 않았지만 '워싱턴'의 지시도 있어서, 퀸 부자는 아벨과 함께 킹이 지배하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고, 킹은 그 섬의 독재자였다. 

엘러리의 조사로 킹에게 보내진 협박장은 킹의 둘째 동생 유다의 짓이라는게 드러났다. 유다는 발각된 뒤에도 반드시 형을 예정된 시각에 죽이겠다고 말했기에, 퀸 부자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 일하는 킹과 자기 방에 갖혀 있는 유다를 각각 범행 시각까지 직접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자정 12:00, 자기 방에서 유다는 빈 총을 밀실을 겨냥해 쏘았고, 곧이어 킹이 밀실 안에서 총에 맞은채 발견되고 마는데...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 소개되었던 작품이지요. 여름 더위를 잊어볼까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놓아버린 '국명 시리즈'와는 다르게, 그래도 읽을만했던 '라이츠빌 시리즈' 와 이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불가능 범죄 상황이 정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던 탓입니다. 밖에서 빈 총을 쐈는데, 밀실 안의 사람이 총에 맞는다니!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만화라 해도 설득력이 없어보일 설정들입니다. 군수 산업계의 거물로 전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킹 케인 벤디고와 그가 머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 있다는 어마어마한 제국에 대한 묘사는 황당함이 지나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일개 군수업자가 순양함과 잠수함 여러 척을 포함하여 육,해, 공군을 갖추고 있고, 비밀 섬은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최소 몇 천~ 몇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 같다니까요. 후대 007 시리즈의 악당들 비밀 기지 정도는 애저녁에 능가합니다. 킹이 알고보니 남미 혁명과 2차 대전을 일으키게끔 획책했다는 뒷부분 설명도 어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작품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긴 것도 문제에요.

게다가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어쨌건 킹이 밀실에서 살해당할 뻔한 트릭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007의 닥터 노 같은 빌런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썼나 싶어 조사해보니 오히려 "닥터 노" 보다도 빨리 발표되었던데, 영문을 알 수가 없군요.

기대했던 밀실 트릭 역시 별볼일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총은 밀실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상황인데, 정작 트릭은 "총을 잘 숨겨 두었었다!"가 전부거든요. 즉, 엘러리 퀸과 퀸 경감의 수색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다 말고도 충신으로 보였던 아벨, 그리고 킹의 아내 칼라 모두가 공범이었다는 진상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총을 숨겼던 장치가 술병이라는 것도 유다가 섬 곳곳에 술병을 숨겨두었다는걸 사전에 잔뜩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숨기고 있고요. 이 술병이 유일하게 밀실 밖으로 나간 물건이었다는 것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합니다. 즉, '공정함'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탐정의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워낙 커서 좋은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킹과 유다, 아벨 형제의 고향이었던 라이츠빌에서의 여러 증언을 수집하여 알아내는 동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수영을 잘해서 동생 아벨을 구해주었다는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곁다리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앞 부분에서 킹이 수영을 못한다는걸 크게 강조한 탓에 독자들도 뭔가 이상하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술병'처럼 정교하게 존재를 숨기는데 실패한 셈이지요. 그리고 킹이 과거 거짓말을 했다 한들, 그게 아벨의 살의에 불을 붙인 이유가 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유다처럼 킹이 악당이라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게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두 형제와 칼라가 손을 잡은 이유 역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가 킹을 두려워했다는 묘사는 있지만, 살인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아벨과 유다, 칼라가 다시 킹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고(이는 퀸 경감에 의해 바로 들통납니다), 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떠난 뒤 섬을 날려버리는게 결말은 제가 읽어왔던 작품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엉망입니다. 이렇게 쉽게 자살로 위장해 죽일 수 있었는데, 왜 퀸 부자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묘한 밀실극을 펼쳤을까요? 일부러 자기들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결말 탓에 밀실 트릭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유다가 범행 예고 시각에 자기 방에서 빈 총을 쏘고, 그 시간에 킹이 아내 칼라에게 총을 맞는 장면의 묘사만큼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다를 감시하는 엘러리의 시점에서, 유다의 행동이 굉장히 광기어리게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에서 정신분열자인 둘째 형이 벽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워낙 많았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고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대해 봄직했던 트릭마저도 시원치 않았으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2004/11/23

반 헬싱 - 스티브 소머즈 (2004) : 별점 3점



로마 교황청 소속의 특수 요원 "반 헬싱"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여 싸움에 뛰어든 전사로 그의 새로운 임무는 트랜실배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을 해치우고 정통 왕위 계승자들을 보호하는 것.
하지만 이미 왕자는 늑대인간에게 습격당해 늑대인간이 되어 버린 상태이며 안나 공주의 목숨도 계속 위협받고 있었다. 늑대인간이 된 오빠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공주가 위험에 처하게 되고 반 헬싱의 활약으로 겨우겨우 탈출에 겨우 성공하지만 지하에서 우연히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와 만나게 되고 드라큘라가 자신의 새끼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몬스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결국 납치된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를 구하고 드라큘라의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드라큘라 성의 비밀입구를 찾아내어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올 여름을 강타했던 블록버스터 화제작. 드라큘라 소설의 설정만 살짝 가져와서 헐리우드 식으로 각색하여 액션영화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에 보고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의외로 보고나니 흥행에 성공할 만 하더군요. 

일단 느낌은 그야말로 "블레이드+007"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뱀파이어에서 늑대인간으로 설정이 바뀌었고, 007의 영국 첩보부가 로마 교황청으로 바뀌었을 뿐 두 영화에서 이미 친숙한 모든 요소들을 동원하여 영화를 끌어나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흥행에서 이미 검증된 요소들만 모아 놨달까요? 더군다나 원래 특수효과가 짬뽕된 과장된 액션을 잘 뽑아내는 감독의 영화답게 액션 장면은 과장되었지만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연출되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각종 고딕 호러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초반에 잠깐 등장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를 비롯하여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 드라큘라와 그의 3미녀등의 캐릭터들은 설정도 확실하고 원작을 잘 구현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가 잘 표현되어 있더군요. 반 헬싱역의 휴 잭맨이나 수도사 칼 역의 데이빗 웬험, 공주역의 케이트 베킨세일, 그리고 드라큘라 역의 리처드 록스버그 모두 캐릭터에 딱 맞는 호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의 최강 보스격인 드라큘라 백작과의 사투가 생각보다 무척 시시하다는 점과 몇몇 사소한 점의 의문을 제외한다면 킬링타임용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물로는 합격점을 충분히 줄 만 합니다. 그야말로 단순화끈 액션물로는 더말할나위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의문점이 몇개 생겼습니다. 중요하진 않지만..... 
  1. 늑대인간만이 드라큘라를 처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른 늑대인간들은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드라큘라가 왜 반 헬싱만 조종할 수 없었을까요? 
  2. 마지막 사투에서 드라큘라는 그냥 밖으로 날아서 도망가 버리면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새끼들을 전부 부르던지... 
  3. 그럼 반 헬싱이 원래 대천사 가브리엘이었다는 이야기인가요?
  4. 마지막에 그 드라큘라의 소굴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2005/05/14

르윈터의 망명 - 로버트 리텔 / 강호걸 : 별점 4점

르윈터의 망명 - 8점 로버트 리텔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미국 MIT 대학의 부교수이자 MIRV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 계획의 관계자인 르윈터는 일본에서 소련 대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한다. 그의 전문분야는 미사일의 탄두부분인 노즈콘이라는 그다지 가치없는 일이지만 그는 극비문서의 비밀 열람을 통해 자신의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암기한 MIRV의 미사일 탄도 공식을 가지고 소련과 협상하여 망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CIA출신의 부차관보 대리 리오 다이아몬드는 자료 조사 및 심리 분석을 통해 르윈터가 실제로 가치있는 진짜 탄도 공식을 가지고 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전 동료이자 CIA 담당자 듀크스는 르윈터의 탄도 공식은 가짜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어 서로 대립하게 된다.
다이아몬드와 듀크스, 그리고 소련의 르윈터 담당자이자 유능한 정보국원 포고딘은 체스를 두듯 서로의 계획과 의도를 숨긴채 작전과 계획을 차차 실행해 나가게 되는데....

저는 스파이소설이라는 쟝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슈퍼맨같은 주인공, 미녀-액션이 짬뽕된 007시리즈에 대한 편견 탓에 그동안 선택에 있어서도 항상 뒷전으로 미루어 놓았었죠.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의 저의 선입견을 깨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제목대로 미국 MIT 교수 르윈터의 망명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데 르윈터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KGB와 CIA가 중심이 된 양 진형의 "체스게임"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속에서 르윈터는 단순한 소모품, 이용물로 전락될 뿐입니다. 이러한 게임이 각 진영에서 캐릭터들과 주변인물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특히 정보전의 근본이 되는 여러 조직들과 회의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합니다)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벌어지며, 그야말로 "정보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가 엄청나서 히어로의 큰 액션이나 반전 없이도 커다란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그야말로 "리얼한 재미"를 전해주는 소설이랄까요?
예를 들자면 소설에서 양 진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르윈터는 과연 탄도함수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가지만 답은 결국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양 진영에서 이 정보를 가지고 서로가 게임하듯 진행되는 과정만이 소설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을 뿐이죠. 그 외에도 많은 정보들에 대한 답은 소설속에서 답해주지 않고 오직 서로의 작전의 "과정"과 "결과"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서 리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예외적으로 후반부의 리오 다이아몬드의 작전에 의한 첩보 작전 자체는 꽤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으로 스파이 소설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작전 자체가 워낙 소규모일 뿐더러 사람과 사람을 서로 도구로 여기고 이용하며 필요여부에 따라 가차없이 배신하기 때문에 역시나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되고 있고요.
아울러 여타 소설들에 비해 적수인 소련 정보국원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묘사로 표현하는 것 역시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소련의 체스 마스터 자이체프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더군요.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소설 자체가 리얼하기는 하지만 많이 싱겁다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은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재미와 흥분을 선사해 줍니다. 너무 딱딱하고 약간 덜 다듬어진 듯한 번역 때문에 읽기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03/12/14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

원 출처는 심농님의 홈페이지였으며 (현제 폐쇄), 내용은 국일미디어 간 "유령신사" 뒷부분에도 실려있습니다. 해설은 원본 작성하신 분과 제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제목만 보는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001 옥문도 1947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창조자입니다. 뛰어난 본격 작가죠.
002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 이번에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3 점과 선 1957 ; 마츠모토 세이초 /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
004 불연속 살인사건 1947 ; 사카구치 안고 /ㅎㅎ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죠. 동서에서 이번에 나왔습니다.
005 흑사관 살인사건 1934 ; 오구리 무시타로 /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6 도구라 마구라(환마술) 1935 ; 유메노 규사쿠 / 역시 이번 동서 리스트에.. (대체 언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만)
007 혼진 살인사건 1945 ;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죠. 트릭은 수긍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듯 싶습니다.
008 검은 트렁크 1956 ; 아유가와 데츠야 / 동서에서 역시 이번에...
009 회귀천 정사 1980 ; 렌죠 미키히코 / 앗 모르는 작품 (*2011년 시공사에서 출간됨. 걸작입니다)
010 문신 살인사건 1948 ; 다카키 아키미츠 / 유명한 작품이죠. 어서 제대로 다시 소개가 됐으면 좋겠네요. (*동서에서 출간)
011 산고양이의 여름 1984 ; 후나토 요이치 / ?
012 대유괴 1997; 텐도 신 /텐도 신의 대유괴도 참 많이 들어본 작품입니다.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013 이전동화 1923 ; 에도가와 람포 / 국내 소개 됐고 단편입니다. 데뷰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 트릭.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14 음수 1928; 에도가와 람포 / 에도가와 람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동서의 "음울한 짐승" 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권에도 수록)
015 제로의 초점 1959 ; 마츠모토 세이초 /0의 초점으로 국내에 출간돼 있죠. 저도 하서판으로 갖고 있는데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입니다.
016 11매의 트럼프 1976 ; 아와사카 츠마오
017 아 아이이치로(악애일랑)의 낭패 1978 ; 아와사 카츠마오 / 이 작품도 많이 상위권에 언급되는 작품입니다만.. (*시공사에서 출간, 좋은 작품입니다)
018 기아해협 1962 ; 미나카미 츠도무
019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1962 ; 유키 쇼지 /역시, 낯이 익습니다. 흠. (*검은숲에서 출간) 
020 위험한 동화 1961 ; 츠치야 다카오 / 작가는 낯이 익은데..
021 점성술 살인사건 1981 ; 시마다 소지 / 나왔군요! 걸작~
022 복잡한 기계 장치 1978 ; 아와사카 츠마오
023 사건 1977 ; 오오카 쇼헤이
024 우리 1983 ; 기타가타 겐조
025 심리시험 1925 ; 에도가와 람포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 조금 낡은 트릭입니다만, 재미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26 상자 속의 실낙 1978 ; 다케모토 겐지
027 굶주린 늑대 1981 ; 시미즈 다츠오
028 대낮의 사각 (백주의 사각) 1959 ; 다카키 아키미츠 / 이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다곤 하는 것 같은데요.. (*검은숲에서 출간)
029 황토의 분류 1965 ; 이쿠지마 지로
030 도망의 거리 1982 ; 기타가타 겐조
031 야수는 죽어야 한다 1958 ; 오야부 하루히코 / 고려원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032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955 ; 다카키 아키미쓰 / 아키미쓰의 작품이 세 개나;; 흠 보고 싶어요. (*검은숲에서 출간됨)
033 나메쿠지 쵸야 체포 소동 1968 ; 츠츠키 미치오.
034 끝없는 추적 1967 ; 이쿠지마 지로
035 고양이는 알고 있다 1957 ; 니키 에츠코 /역시 들어봤던 작품 (*시공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036 묵시록의 여름 (섬머 아포칼립스) 1981 ; 가사이 기요시
037 고도의 마인 1929 ; 에도가와 람포 /국내에 나와 있죠. 하서판으로 읽었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038 검은 백조 1959 ; 아유가와 데츠야
039 타오르는 파도 1982 ; 모리 에이
040 변호 측 증인 1963 ; 고이즈미 기미코 / 검찰측 증인인가...^^ (*검은숲에서 출간, 무난했습니다)
041 그림자의 고발 1963 ; 츠치야 다카오 /오 제목이 정말 멋지군요.
042 악마의 공돌이 노래 1957 - 요코미조 세이시 /흠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
043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1982 ; 시마다 소지 /미타라이 탐정의 두 번째 사건. 너무 보고 싶어요. (*시공사에서 출간)
044 여덟 개의 묘가 있는 마을 1949 ; 요코미조 세이시 / 팔묘촌..
045 신사동맹 1980 ; 고바야시 노부히코
046 징기스칸의 비밀 1958 ; 다카키 아키미츠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역사 미스테리로 알고 있습니다.
047 갈라진 해협 1983 ; 시미즈 다츠오
048 리라 장 사건 1968 ; 아야가와 데츠야
049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1929 : 에도가와 람포
050 마른 풀의 뿌리 1961 ; 친신
051 밤의 오딧세이아 1981 ; 후나토 요이치
052 고층의 사각 196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정말 엄청나게 끈질긴 작품입니다. 하서 수록.
053 모래그릇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역시 하서. 당시로서는 기발한 흉기가 나오는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
054 바이 바이 엔젤 1979 ; 가사이 기요시
055 한시치 체포록 1917 ; 오카모토 기도 / 와 정말 옛날 작품이네요. (*책세상에서 출간)
056 파노라마 섬 기담 1926 ; 에도가와 람포
057 한 개의 납 1959 ; 사노 요 /단편이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058 사루마루 환상 여행 1980 ; 이자와 모토히코
059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1961 ; 츠즈키 미치오
060 초대받지 않은 손님 1980 ; 사사자와 사호 /사사자와 사호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
061 짙은 갈색의 파스텔 1982 ; 오카지마 후다리
062 인생의 바보 1936 ; 기키 다카타로
063 배덕의 메스 1960 ; 구로이와 쥬고 /제목 참;;
064 증발 1972 ; 나츠키 시즈코 / W의 비극이 대표작아닌가요? 이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더 순위가 높네요.
065 나폴레옹 광 1979 ; 아토다 다카시 /단편입니다. 월간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 단편집도 국내에 출시가 됐었는데요. 저는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늘~합니다.
066 부호 형사 1978 ; 츠츠이 야스다카 / SF소설가로 더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이 작품도 보고 싶네요. (*검은숲에서 출간,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067 샤라쿠 살인사건 1983 ; 다카하시 가츠히코
068 잠 없는 밤 1982 ; 기타가타 겐조
069 나비부인 살인사건 1946 ; 요코미조 세이시 / 동서에서 나왔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070 죽음이 있는 풍경 1965 ; 아유가와 데츠야
071 살인귀 1931 ; 하마오 시로
072 불꽃에 그림을 1966 ; 친신
073 검은 화집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074 아쿠쥬로 체포기록 1939 ; 히사오 쥬란
075 W의 비극 1982 ; 나츠키 시즈코 / 좋은 작품입니다.
076 베를린 1888년 1967 ; 가이도 에이오
077 안녕 아프리카의 여왕 1979 ; 모리 에이
078 단쥬로 할복 사건 1959 ; 도이다 야스지
079 거대한 환영 1962 ; 도가와 마사코 / 국내 소개된 작품은 "레이디 킬러"
080 마리오네트의 덫 1977 ; 아카가와 지로 / 유명세에 비하면 작품은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국내 출간, 쓰레기였습니다)
081 완전범죄 1933 – 오구리 무시타로
082 내일 날씨로 해두게 1983 ; 오카지마 후다리
083 삼중노출 1964 - 츠즈키 미치오
084 살아나는 황금늑대 1964 ; 오야부 하루히코
085 어두운 낙조 1965 ; 유키 쇼지
086 인간의 증명 1975 ; 모리무라 세이이치 / 어머니.. 그때 그 밀짚모자...
087 유령 열차 1976 - 아카가와 지로 / 아마 데뷰작이죠? (*국내 출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088 뺑소니 1969 ; 사노 요
089 유괴작전 1962 - 츠즈키 미치오
090 비합법원 1969 ; 후나토 요이치
091 장미여자 1983 : 가사이 기요시
092 스탈린 암살 계획 1978 ; 히야마 요시아키
093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1983 ; 기타가타 겐조
094 돌밑의 기록 1948 - 오시타 우타루
095 추락 1958 ; 다카가와 교
096 우리들의 시대 1978 ; 구리모토 가오루
097 호크씨의 타향의 모험 1983 ; 가노 이치로
098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1984 ; 시마다 소지 /보고 싶어요;; (*국내 출간)
099 50만 년의 사각 1976 ; 도모노 로
100 살인에의 초대 1973 ; 텐도 신

2013/02/25

흥분 - 딕 프랜시스 / 김병걸 : 별점 3점

흥분 - 6점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신의 목장을 운영하는 다니엘 로크는 영국 경마 위원회 3인방의 하나인 옥토버 백작의 의뢰를 받았다. 의뢰 내용은 마부로 위장하여 잠입한 뒤, 부정이 의심되는 경마 사기 사건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경마와 경마장 관련 사건 전문 작가 딕 프란시스의 대표 장편. 주간문춘 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리스트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고, 국내 출간된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왜 빼먹었는지 모르겠군요.

일단 제가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주인공의 활약이 스파이 소설 같다는게 특이했습니다. 책 뒤의 해설에서 언급된 대로 007 스타일이랄까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대적인 세력에 고용되어 비밀을 파헤친다는 기둥 줄거리에 더하여 변장 및 위장, 주인공의 특기(말에 대한 전문 지식 및 던지기(?))가 중요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일종의 경마 사기의 진상을 밝혀내는 내용이라서 국제적인 음모를 다루는 정통 스파이 소설들보다는 스케일이 작은 편이지만, 이는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를 작가의 전문 지식으로 잘 묘사하여 강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이 큽니다. 정말이지 이 책의 마굿간과 마부에 대한 묘사는, 달리 경쟁작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납니다.

또 핵심 트릭인 경마 사기 사건의 트릭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로크의 수사도 아주 그럴싸하게 묘사됩니다. 부정이 의심되는, 그러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던 11마리 말의 공통점을 경기장, 잠시라도 소유했던 소유자 등으로 좁혀 나가고, 약물이 아닌 조건반사를 이용한 트릭이라는 것을 개피리라는 소품으로 알아내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추리적인 만족도도 괜찮은 편이에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주인공 다니엘 로크의 설정이 가장 거슬립니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모두 반한다는 매력적인 외모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어요. 여자들이 반해서 로크의 수사에 방해만 일으킬 뿐이라, 평범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는 작위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탓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격투도 드라마틱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로크가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인데, 헨버 일당이 사건을 키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러한 부분은 좀 B급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결론 내리자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헐리우드 모험 영화 같은 흥미진진함이 읽는 내내 유지되는 흔치 않은 결과물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니엘 로크가 영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정보원 역할을 수락하면서 끝나는데,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는군요.

2005/04/02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존 르 카레 / 강호걸 : 별점 2.5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4점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해 있던 시대, 영국의 베를린 지역 정보원 총 책임자 리머스는 런던으로 귀환했다. 동독 지역의 정보 기관 총 책임자인 문트에 의해 최대의 스파이였던 카를 리메크가 살해당한 후 조직이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리머스는 케임브리지 서커스의 관리관과 문트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뒤, 몰락한 인생의 패배자로 위장하여 폐인같은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 징후를 눈치챈 동독측 요원에 의해 포섭되어 동독으로 향한 리머스는 문트에 이은 제 2인자 피들러와의 회담과 제공한 정보로 문트를 서방세계의 스파이라는 제1급 반역죄로 고발당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리머스가 사랑했던 여인 리즈가 등장하여 모든 계획은 틀어졌고 리머스는 패배를 인정했지만, 그 순간 그 모든 계획의 진상을 깨닫게 되는데...

이른바 냉전 시대에 발표된 스파이물입니다. 존 르 카레의 출세작이기도 하고 영화화도 된 베스트셀러인데 워낙 이쪽 쟝르를 좋아하지 않아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작품의 최대 장점은 현실적인 스파이 세계를 그렸다는 겁니다. '007' 등으로 친숙한 슈퍼 히어로같은 스파이나 미인 여자 정보원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 소설로 정보와 정보의 교환에 따른 댓가와 음모만 있을 뿐입니다. 
특히 어학에 대한 재능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중년 남자 리머스는 육체적인 능력도 별볼일 없으며, 주변 조직에 이용만당하는 존재로만 그려지는데 그간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인물들보다 무척 현실적이고 순진한 캐릭터라 왠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마 이러한 현실적인 면 때문에 발표 당시 크게 어필했으리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마지막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리즈"의 재판정 등장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영국 공산당 당원이라고는 해도 당시 동독에 그렇게 쉽게 갈 수는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무엇보다도 음모 자체가 책 뒷커버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 처럼 "사상 최대..." 어쩌구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현실적이기는 한데,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음모의 근거가 되는 여러 단서들도 별로 치밀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물의 효시로 이 분야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각종 상을 휩쓸고 시대를 대표했던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너무 시대가 지난 탓이겠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05/06

삼국지 사이언스 - 김태호, 이정모 : 별점 2점

삼국지 사이언스 - 4점
김태호.이정모 지음/휘슬러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일화를 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책. 이전에 읽었던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셜록 홈즈의 과학"과 유사합니다. 총 12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황천당립 - 암탉이 수탉으로 바뀌다. - 성의 탄생과 트랜스젠더
2. 도원결의 - 무쇠로 청룡언월도를 만들다. - 우주에서 탄생한 철의 회전관성
3. 비육지탄 - 동탁군이 강한 까닭은. - 등자에 감추어진 무게중심의 비밀
4. 군웅할거 - 정보가 권력이다. - 암호 속의 진실, 미모 속의 맹독
5. 삼고초려 - 칠성단을 쌓고 바람을 부르다. - 적벽대전은 중력과 부력의 전투
6. 삼국정립 - 봉추, 낙봉파에 지다. - 추락하는 것은 별이 아니다.
7. 생사여일 - 이승의 영웅에서 저승의 무신으로. - 아세틸콜린을 차단하며
8. 혼비백산 - 육손은 팔진도에 빠지고. - 배흘림 기둥과 푸조 착시현상
9. 칠종칠금 - 노수 강가의 만두잔치. - 염소 젖꼭지에서 술술 나오는 거미줄
10. 읍참마속 -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 - 육정육갑과 제논의 역설
11. 목우유마 - 이제는 북벌이다. - 마찰력 제로에 도전한다
12. 상전벽해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기다. - 장수 유전자는 북두칠성 아래에

목차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죠?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82근의 청룡언월도를 젓가락처럼 돌렸다는 관우의 힘을 각속도와 회전관성을 이용하고 "한 척" 기준까지 동원하여 계산한 뒤, 언월도의 중심을 잡고 돌릴 경우 3.6마력 정도의 힘일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부분,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등장한 4개의 독샘(아천 / 멸천 / 흑천 / 유천)에 대해 독샘에서 비롯된 괴질들이 어떤 병인지를 유추해서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진법에 대한 해석, 육정육갑에 제논의 역설 및 신기루 현상을 대입하여 설명하는 부분도 꽤나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8편부터 5개의 이야기가 모두 제갈공명 에피소드만 다루고 있는 점, 삼국지 내에서 그닥 비중이 없는 에피소드가 많이 실려 있어서 에피소드별 편차가 크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원래의 삼국지 내용과 별 관련 없는 내용들이 실려 있는 건 좀 너무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정보가 권력이다" 항목에 실린 암호 관련 내용은 실제 삼국지에서는 암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되어버렸거든요. 그나마의 설명 역시도 지극히 초보적인 것들만 실려 있어서 실망스러웠고 말이죠. 그 외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듯한 내용과 문체 역시도 영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책의 내용이나 수준 모두 이전에 읽었던 유사 도서들에 비하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고교생 이하 학생들에게 적합해 보입니다.

2010/05/07

클로버문고의 향수 : 별점 3점

클로버문고의 향수 - 6점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 지음/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저도 가입해있는 카페 "클로버문고의 향수"에서 간행한 클로버문고 만화관련 도록입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발간되었던 클로버문고 429권 중 389 권에 이르는 만화만 추려내어 총 7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죠. 카테고리는 "명랑 / 공상과학 / 스포츠 / 순정 / 고전,명작 / 시대,역사 / 액션,추리,드라마" 로 나뉩니다. 세부 항목으로는 각 만화별 이미지와 작가와 줄거리 소개는 물론 짤막한 감상과 복간여부, 그리고 원작관련 (불법으로 복제된 만화라면 그 일본 원작까지!) 소개까지 무려 7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클로버문고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네요.

클로버문고는 과거 에이브와 함께 제 어린시절을 함께했던 문고라 읽는 내내 굉장히 반갑더군요. 이렇게 과거 명작의 흔적이나마 지금 더듬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 여러분께 감사드려야 할 테고요.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무척 많았어요. 예를 들자면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일본 작품의 카피판들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날개"와 같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카피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아다치 미츠루 작품까지 카피했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했던걸까요?
그리고 이원복의 과거 만화가 가와사키 노보루와 치바 데츠야 화풍을 절반씩 섞은 독특한 화풍이었다는 것도 새로왔어요.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대표적 장면만 나열하니 확 와 닿더라고요)
또한 의외로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의 월간지 연재만화가 많다는 것도 특이하더군요. 이우정의 걸작 "갈기없는 검은사자"라던가 탐정만화 "모돌이 탐정", 김형배의 "20세기 기사단" 등은 제가 당시 월간지를 통해 읽었었는데, 단행본이 클로버문고에서 발간되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거든요.

하여간 읽었었거나 소장했었던 작품들은 물론 읽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무척 읽고 싶은 작품들이 넘쳐나서 도록을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지름과 소장의 욕구를 참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개인적으로는 방학기의 "초립동이"와 "사라진 낡은 집", 이 두권은 어떻게든 다시 나와주면 참 좋겠습니다. "초립동이"야 워낙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기 때문이고, 엘러리 퀸의 "신의 등불"을 조선시대로 각색한 "사라진 낡은 집"은 어린시절 무서워서 못 읽은 작품인데 꼭 읽어보고 싶거든요.
물론 과거의 명작이라 하더라도 지금 읽으면 낡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만해도 어린시절 푹 빠졌었던 "20세기 기사단"의 경우 복간본을 구입한 뒤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죠. 하지만 "철인 캉타우" 등 복간된 뒤에도 아직도 그 생명력과 재미가 유지되는 좋은 작품도 굉장히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니 만큼, 클로버문고의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좋은 작품을 선별하여 복간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고 싶네요.

별점을 매길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구태여 별점으로 평가한다면, 옛 향수와 추억을 되새길 수 있으며 한국 만화계의 한 역사이기도 한 자료적 가치도 충분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양한 저자가 손을 댄 작품별 소개의 편차가 큰 탓에 (굉장히 부실하고 단지 작품 감상에 불과한 짤막한 소개글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감점했는데 사실 만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도록이죠. 저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셨다면 꼭 한번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읽었던 작품 중 클로버문고 베스트 10을 감히(!) 작성해 봅니다. 순서는 무순입니다. 다시 읽게 된다면 많이 바뀌겠지만요...
갈기없는 검은사자 - 날개 - 소년 007 - 암행어사 허풍대 - 요철발명왕 - 변칙복서 - 벤허 - 홍의장군 곽재우 - 땅콩찐콩 - 초립동이

2015/09/28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4) - 매튜 본 : 별점 3점

올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작. 영화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뒤늦게 감상하게 되었네요. 줄거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만화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실히 B급 향취가 가득합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익숙한 무협지의 전형적인 얼개를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의 아들을 제자로 삼은 무림 고수가 죽은 뒤, 제자가 복수에 나선다는 이야기는 정말 전형적인 구성이지요.
나름 심각한 내용임에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B급 정서를 유지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머리가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 핀란드 공주의 "뒤로 해줄게" 발언 같은게 대표적입니다.

동네 찌질이였던 에그시가 첩보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대부분 생략하고 철저히 액션에 집중한 감독의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았다면 뛰어난 실력을 갖췄을 것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야기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오히려 히어로의 성장 서사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발상이라 볼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이 영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콜린 퍼스가 연기한 갤러해드 해리 하트 캐릭터입니다. 젠틀맨이 무엇인지 눈빛만으로도 보여주는 인물이었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액션도 놀라운 수준으로 선보였습니다. 딘 일당을 쓰러뜨리는 펍 액션도 훌륭했지만, 광기에 가득 찬 교회에서의 살육 시퀀스는 그야말로 황홀한 시각적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최후는 다소 허무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인상이었어요. 구태여 비교하자면 "스타워즈"의 오비완급 캐릭터였달까요. "스타워즈" 프리퀄처럼 젊은 시절의 해리가 주인공인 프리퀄이 나온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배우가 워낙 마음에 들기에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작전 중 하나만 다뤄도 괜찮을 것 같고요(* 방법은 알 수 없지만 후속편에 콜린 퍼스의 해리를 계속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케인이 킹스맨의 수장 아서로 등장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뼛속까지 영국인 같은 배우들이 젠틀맨을 연기하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네요. 죽기 직전 쌍욕을 내뱉는 장면도 반전 매력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친숙한 영국 배우들이 등장하니 휴 그랜트도 카메오, 아니면 란슬롯 역으로 출연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또한 첩보영화의 왕도와도 같은 다양한 특수 무기들이 등장한 것도 좋았고, 중간중간 "007" 같은 고전 첩보영화를 언급하는 유머도 고전 팬으로서 반가운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멀린의 해킹으로 대부분의 위기가 너무 쉽게 해결된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해킹에도 대비하지 못한 발렌타인이 무너지는 전개는 너무 허술하게 느껴졌고, 덕분에 해리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의문스러웠습니다.

록시의 비중이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꽤 크다 싶었는데, 결말부에 거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핀란드 공주보다도 비중이 낮아 보였으니, 이 정도면 분량과 캐릭터 모두 낭비된 셈이죠.

허나 장점이 워낙 확실한,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이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이야기는 헛점 투성이에 유머나 잔혹한 표현도 다소 과하지만, 이상하게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제 취향에는 딱 맞았지요. 인생 뭐 있습니까. 보면서 즐기면 그게 최고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니 아주 기대됩니다.

2007/08/15

사라진 남자 (Charlie Muffin)- B 프리맨틀 / 박종원 (일신추리문고31) : 별점 3.5점

찰리 머핀은 영국 정보부의 베테랑 요원이지만 정보부장의 교체 등 인물들이 물갈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소외되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활약으로 붙잡은 소련 KGB의 1급 스파이 베렌코프의 석방을 놓고 궁지에 몰린 KGB 장군 카레닌은 망명의사를 은밀히 피력했고, 그러한 신호를 감지한 CIA와 영국 정보부는 공동 작전을 개시하여 그를 서방세계로 망명시키려 했다. 그러나 담당 정보부원들이 모두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보부는 찰리 머핀을 작전의 중심 인물로 기용하며, 찰리 머핀은 일생일대의 대 작전에 나서는데...

B 프리맨틀은 일본에서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있기도 한 유명작가인데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적은 탓도 크지만요.

줄거리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파이 첩보물입니다. 그러나 이 바닥의 고전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라던가 "르윈터의 망명"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조국에 대한 충섬심은 배재한체 두뇌게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죠. 또한 일반적인 스파이들과는 다른 찰리 머핀이라는 캐릭터도 무척 인상적이에요. 잔머리에 강하면서도 프로로서의 자부심도 높고 약간 비열한 면모도 보이는, 그간 다른 첩보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였거든요. 이러한 그의 모습이 작품의 재미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요.

내용은 베테랑 요원 찰리 머핀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활약과 두뇌싸움이 중심인데 007같은 단순한 히어로물은 아니며 정보부의 비정함, 서로가 속고 속이는 잔인한 게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긴박한 전개가 무척 일품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스파이 첩보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지금 구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구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시리즈물이던데 이후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특히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가 땡기네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리즈물이 계속될 만한 결말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좀 궁금하거든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하한테 잘 해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2011/07/02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독비도) - 장철 (1968) : 별점은 2.5점이지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의로운 무림 고수 제대협은 독으로 습격한 적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죽은 하인의 아들 방강을 제자로 삼아 성심껏 키웠다. 그러나 방강은 출신 때문에 사형제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떠날 결심을 했지만 사부의 딸이기도 한 사매에게 한 팔을 잃고 말았다. (신조협려?) 다행히 그를 구해준 여인에게서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한 비급을 얻고, 외팔에 맞는 새로운 무공을 익혔다.

한편, 제대협을 노리는 장비신마는 제가도법을 제압할 수 있는 기이한 무기와 초식을 창안했다. 제가문중 제자들은 장비신마 일당에게 한 명씩 습격당해 죽어갔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방강은 장비신마를 처치한 뒤 사문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외팔이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1탄입니다. 오랫동안 소문만 들었지 접해 보지는 못했었는데, 우연찮게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개연성, 무술 장면의 합, 촬영, 배우와 연기 뭐 마음에 드는 게 없었거든요.

당대의 인기작답게 건질 게 없는건 아닙니다. 외팔에 맞는 무공을 익히기 위해 반토막이 난 아버지의 유품인 도를 사용한 덕분에, 장비신마의 도를 잡는 기이한 무기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핵심 아이디어 하나만큼은 괜찮았어요. 왕우가 연기한 외팔이 고수 캐릭터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모든 면에서 어설프지만 확실한 캐릭터 하나만으로 당대의 신화가 되고 후대에 지속적으로 인용되었다는 점에서는 "007 닥터 노"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점이 너무나 확연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 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스토리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스토리 전개의 가장 큰 요소인 장비신마의 계획부터 그러해요. 장비신마는 제가도법을 막기 위해 개발했다는 무기와 무공으로 제가문 중 제자들을 하나씩 암습하여 제거하는데, 이유는 이 무기와 무공의 특징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도를 봉쇄하는 기이한 무기와 그 순간 헛점을 노리는 단검이 중심인 유치한 무공인지라 한 번만 본다면 대비하는 게 충분히 가능해 보였어요.

그런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장비신마는 달랑 제자 두 명만 데리고 십여 명이 넘는 제씨 문중 제자들이 결집한 곳으로 직접 쳐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문 중 제자들은 이 무공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같은 수법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버립니다! 무능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제대협의 속이 얼마나 상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지경입니다. 이럴 거면 장비신마가 애써 무공을 숨길 이유는 없었지요.

또 60년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술 장면이 너무 어설픕니다. 합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거든요. 마지막 클라이맥스 대결에서 방강이 장비신마 채찍에 걸려 휘둘리는 장면은 영화 "에드 우드"에서 문어 인형과 싸우는 벨라 루고시이 떠오를만큼 형편없었고요. 거의 대부분 실내 세트로 이루어진 촬영도 몰입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작품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가치를 따져야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따로 부여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준다면 2.5점 정도? 무협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님과의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으로도 제게는 가치 있던 영화였습니다. 추천은 하기 힘들지만...

2014/11/20

맹독 - 도로시 L. 세이어즈 / 박현주 : 별점 2.5점

맹독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추리소설가 해리엇 베인은 전 애인 필립 보이스를 비소로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녀에게 반한 피터 윔지경은 배심원 합의 실패로 생긴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이용해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36위로 선정되어 있지요.

시리즈가 워낙에 유명해서 이전에 두어 권 읽어본 적은 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은 예상 외로 재미있더군요.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를 재미없게 느끼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흉인 피터경이 이번에는 꽤 친근하게 다가온 덕이 큽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유식한 티를 내는 인용 문구, 과시적인 소비 행태,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는 이유 하나로 해리엇 베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사 중의 신사,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여성 판타지를 집대성해 놓은 비현실적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 속성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서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보다는 훨씬 낫더라고요. 공부 잘하고 돈도 많은 엄마 친구 아들이지만, 허술한 데도 있고 유쾌해서 밉지 않은 친구처럼 느껴졌거든요.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유희열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여신님"의 베르단디를 여성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것일까 싶은데, 남성 독자인 제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당대 인기 시리즈 주인공다운 매력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작품 뒤 해설을 보니, 도로시 세이어즈 여사 본인이 작중 해리엇 베인처럼 농락당하고 버려진 경험이 있었고, 이 작품에서 그 반대의 이상향을 심혈을 기울여 투영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수긍이 갑니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인상적입니다. 못하는 게 없는 집사 번터의 활약도 눈에 띄였고, 종교로 개심한 전직 금고털이 빌은 완전 씬 스틸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열쇠장수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물인데, 피터경이 칭찬하자 “이런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정말 유쾌했어요.
이러한 캐릭터 묘사는 번역의 힘도 커 보입니다. 이전에 "동서추리문고"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도 제대로 번역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 외에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마지막에 피터경이 "비소 과자"를 대접하며 벌이는 추리쇼는 꽤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그 외의 추리 전개는 고전 황금기 걸작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작품 초반에 드러나버리고 마니까요. 

경찰 수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피터경 홀로 사적인 네트워크와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한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결정적 역할은 머치슨양이나 클림슨양 같은 피터경의 부하들이 맡고, 단서를 밝혀내는 과정에서도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문제도 큽니다. 머치슨양이 자물쇠 따기를 직접 배우는 디테일은 좋았지만, 클림슨양이 유언장을 발견하고, 머치슨양이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건 거의 우연에 의한 것이었거든요.

트릭은 "어떻게 비소를 먹였는가?"라는 한 가지 뿐인데, 이 역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는건데, 이런 이론이 실제로 가능한지 부터가 의문이에요. 오히려 몸에 독이 축적되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실 해밋의 단편  "파리 종이"와 비교해도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몇몇 작위적인 설정도 눈에 거슬립니다. 몰래 어쿼트의 모발을 입수하여 비소 검사를 한다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미 유언장 위조라는 정황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체포 후 정식으로 모발 검사를 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피터경의 귀족 마인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터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라는 점과, 여성 부하들의 활약을 여성 첩보원처럼 그려낸 부분은 인상적이며 007 시리즈처럼 경쾌한 진행은 시대를 앞서간 듯한 매력이 있지만, 추리적인 완성도 면에서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작품 수준만 놓고 보면 동 시기에 크리스티 여사와 자웅을 겨뤘다는 것이 솔직히 잘 믿기지 않네요. 귀족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인기의 비결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은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피터경 시리즈를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입문작으로 추천드립니다. 특히 여성 독자분들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5/07/24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2003) - 칼 프랭클린 : 별점 3점


플로리다의 한 작은 마을, 베니언 키의 보안관인 매트(덴젤 워싱턴 분)는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온 덕분에 동료들은 물론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는 유부녀인 앤(산나 라단 분)과 오래 전부터 내연의 관계에 있는 사이.
어느날 매트는 앤과 같이 찾아간 의사에게서 앤이 암에 걸려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앤은 매트에게 마지막 이별의 선물로 자신의 생명보험 100만달러의 수취인으로 매트를 지명한 서류를 주며 떠날 결심을 한다. 이에 매트는 앤을 돕고자, 그녀를 스위스의 대체의학 치료 센터에서 치료를 받게끔 하기 위해 자신이 압수한 마약 사건의 증거품인 경찰서의 공금 45만여 달러를 전해 준다.

하지만 은신처에서 연락하기로 한 앤은 연락이 두절되고, 다음날 앤과 그녀의 남편의 사체로 추정되는 살인 방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사건의 모든 증거는 매트가 살인사건의 제 1 용의자로 지목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앤이 사실은 암이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매트는 동료 경찰들이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기 전에 마약 단속국에서 수금을 요청한 45만달러를 회수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초를 다투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 동분서주하며, 그의 전 아내이자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알렉스(에바 멘데스 분)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 가면서 조금씩 매트의 수상쩍은 행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영화 감상은 오랫만이네요. 역시 여름에는 공포물도 좋지만 스릴러물도 좋죠. 2003년도에 개봉했던 덴젤 워싱턴 주연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모종의 음모에 의해 궁지에 빠지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영화나 소설, 만화는 사실 수없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런 작품들이 신선함과 재미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 음모가 얼마나 치밀한지와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죠. 다행히 이 영화는 제법 성공하고 있는 편입니다.
초반 30여분간은 매트와 앤의 불륜에 포커스를 맞춰져 지루하지만 거금을 노리는 범인들이 매트를 범인으로 완전히 옭아매려는 작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정말 숨쉴틈 없이, 재미있게 진행됩니다. 와중에 매트가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자신에게 집중될 수 있는 용의를 살짝살짝 빠져나가는 장면들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고요. 중반에 등장하는 GPS를 이용한 복선과 마지막에 마약 단속국에서 요청한 돈을 타이밍 좋게 넘겨주는 부분 역시 영화에 치밀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잘 이용되고 있습니다.

감독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주연 배우들도 덴젤 워싱턴을 빼면 유명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닥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지는 않지만. 검증된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야자수무늬 셔츠로만 활약하는 시골 경찰 서장역의 연기를 비롯해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개인적으로는 나름의 악역 연기를 소화한 TV시리즈 슈퍼맨의 딘 케인의 모습이 이채로왔습니다) 뭔가 궁지에 몰린 사람의 아찔한 심리가 잘 표현된 연출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범인들의 공범자가 쉽게 잡혀버려 가장 중요한 범죄의 요소인 "돈"을 너무 빨리 매트가 회수하게 되는 바람에 후반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범인이 마지막에 찾아온 매트와의 최후 승부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총질부터 하는 것도 앞부분의 치밀함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고요.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흑인 팜므파탈역으로 영화사에 기록될 수 있었을 앤이 초중반까지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연약한 캐릭터에서 막판에 180도 돌변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바람에 성격이 애매모호해진 것이 가장 아쉬웠어요.

그래도 영화는 내용이 시종일관 깔끔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되서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더운 여름날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느낌이 예전에 봤었던 "블루 데블 (Devil In A Blue Dress, 1995)"과 너무나 분위기가 흡사하다고 느껴져 잠깐 조사해 봤더니 같은 감독이 연출했더군요. 역시나....하여간 이 "블루 데블"도 추천작입니다.

PS2 : 부하가 4명밖에 없는 시골 경찰 서장을 007처럼 표현한 저 포스터의 센스는 그야말로....

2015/12/09

오사카 소년 탐정단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사카 오지 초등학교 교사인 25세의 여자 선생 시노부가 주인공인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오사카라는 지역에서 연상되는 시끌벅적하면서도 요란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몰랐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생지가 오사카더군요. 그래서 현장감이 더 뛰어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명한 캐릭터 역시 볼거리입니다. 초등학교 선생으로 열혈 왈가닥에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시노부 선생이 생동감 있으면서도 싱그럽고, 그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연적 관계인 말단 형사 신도와 엘리트 회사원 혼마, 그리고 시노부 선생의 악동 제자들 모두 아주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묘사된 덕분입니다.

참고로 시노부 선생과 신도 형사, 혼마의 관계는 "명탐정 코난"에서 사토 형사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시라토리와 다카키의 다툼, 그리고 나중에 시라토리와 커플이 되는 고바야시 선생을 합쳐놓은 느낌입니다. 아아... 저같은 사토–다카키 커플 팬에게는 완전 취향 직격이었어요.

이렇게 캐릭터가 돋보이면 추리적으로는 시원찮은 작품들이 많은데, 이 책은 추리소설 애호가를 만족시킬 만큼 적절한 트릭과 논리가 이야기와 잘 맞물려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시노부 선생과 학생들의 활약도 상식 선에서 딱 적당한 수준으로 그려지고요. 다소 작위적인 부분도 없진 않지만 재미 면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사카가 무대인데도 그런 지방색을 번역에서 잘 살리지 못한 점입니다. 내용 중에 혼마가 도쿄 말을 써서 재수 없다는 식의 묘사가 등장하는 등 말투가 꽤 중요한 요소였을 것 같은데, 최소한 사투리로 번역하는 노력 정도는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또한 이야기나 분위기를 볼 때 배경이 90년대 초반 같은데(게임을 CD로 실행하는 등) 지금 시점보다는 60년대, 아니면 최소한 80년대 배경으로 설정하는 편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만큼 아날로그하고 복고풍의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워낙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평소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지만 정말 여러모로 재능이 많은 작가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미도리 선생이 파견 유학을 떠난 뒤 2년 후에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후속편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추리"

시노부 선생의 제자 도모히로의 아버지 후미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시노부 선생이 사건에 얽히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설득력이 높아요. 아버지가 살해당한 제자가 걱정되지 않는 담임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도모히로를 믿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시노부 선생을 그린 결말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잘 어울렸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전개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특히나 제자가 쓴 작문과 우연히 마주친 다코야키 장수의 말 -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 마쇼. 저렇게 좁은 데다 어떻게 차를 넣으라고. 집어 넣을 수야 있겠지만 운전석에서 나올 수가 없을 텐데."- 에서 도모히로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걸 간파한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딱 맞는 추리가 돋보였습니다. 후미오가 경트럭을 빌린 뒤 유키에를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반전 매력이 있었으며 다코야키를 트릭의 주요 요소로 활용하는 것도 오사카스러워서 좋았고요.

허나 죽었다 하더라도 후미오의 빚이 없어지지야 않을 텐데 이 모자의 앞길은 지옥뿐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썩 개운치는 않네요. 딱 맞는 순간에 딱 맞는 재료(작문, 노리오가 들고 있던 후미오의 수첩, 다코야키 행상)가 연결되는 구조는 좀 작위적이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 수작입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과 집 없는 아이"

시노부 선생님의 제자 하라다와 뎃페이가 게임 CD를 도난당한 것과 옛 제자 가지노 마치코의 아버지가 용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건에 자연스럽게 엮이는 과정은 첫 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괜찮았습니다.

허나 기절했다고 자기가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도 모른 채 자백을 할까요? 마치코와 시노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려 하긴 하나 많이 약했어요.

또 아라카와 도시오의 자살 동기가 선명하지 않은 것도 별로이며, 살해로 위장하려 한 치에코의 공작도 딱히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맞선"

시노부가 맞선을 보는 것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신도의 질투가 폭발하고, 신도를 도와주려는(혹은 놀려먹으려는) 하라다와 뎃페이 등 악동들의 활약이 어우러지는데, 이런 부분은 과거 우리네 유머 소설, 그중에서도 오영민의 "007 선생" 같은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는 수록작 중 가장 처지네요. 진상에 다다르게 되는 핵심 단서인 모토야마 사장이 했다는 말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꼭 비가 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특이하다는 오하라 유리코의 담배 "플레이어"를 가지고 한 연극도 지나치게 작위적일 뿐더러, 경찰이 이렇게 수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혼마가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라 하청업자 도무라를 지켜준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살인 사건인데 누구를 지켜준단 말입니까.

이중 횡령이라는 동기 하나만큼은 신선하고 그럴듯했으나,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앞두고 시체로 발견된 다카노 치카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

사건 직후 근처에서 목격된 UFO와 사건을 엮는 발상이 재치 있더군요. 그리고 시노부 선생이 친구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 "치카코가 정말 좋아한 것은 마쓰모토였다!"라는 것을 알아내는 장면도 괜찮았어요.

허나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연적이 되어버린 혼마, 신도의 티격태격과 악동들의 활약입니다. 전편에 이어 깨알 같은 재미를 전해 주거든요.

문제라면 첫 번째는 풍선을 이용한 흉기 은닉이 작품에서처럼 과연 그렇게 잘 되었을지 의문이라는 점입니다. 뭐 이건 운과 우연에 의지하여 어떻게 넘어간다 치더라도 두 번째 문제, 즉 손목에 주저흔이 없는 이유가 결국 설명되지 않는 건 조금 아쉽네요. 작중 경찰이 자살보다 타살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한데 너무 대충 넘긴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은혜"

여공 기요코 살인 사건과 뎃페이 윗층에 사는 나나의 엄마 아사쿠라 마치코가 이불을 털다가 추락한 사건이 엮이는 내용으로, 현실적인 트릭 — 이불을 아래층에서 당겨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트릭 — 이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범인 요코다의 행동은 억지스럽습니다. 자신이 용의자도 아닌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이유는 없죠. 경찰이 기요코의 사진을 가지고 미도리야마 하이츠에서 탐문 수사를 시도했다는 묘사 정도는 등장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습격은 정말이지 무리수였고요. 나름 요코다가 소심하다는 식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와닿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괜찮은 트릭에 더해 악동들과 선생님의 인연이 정리되는 졸업식 이야기는 꽤나 짙은 여운을 남기며, 지극히 경찰스러운 신도의 프로포즈도 인상적이었어요.

해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추리적으로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읽는 재미 하나로 다른 단점들 전부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상화되어도 아주 좋을 것 같네요.

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인문학, 문화사 서적입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소개되는 등,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쌍옥적" 시기에 발표되었던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입니다.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이지만, 소개를 보니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을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 덕분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독서라는 취미 자체가 어느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추리 소설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하니까요.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그로테스크)'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린 탓입니다.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 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 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그런데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건 단점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정도면 모든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권해드릴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