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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1

고양이는 알고 있다 - 니키 에츠코 : 별점 2.5점

고양이는 알고 있다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식물학도인 유타로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그의 여동생 에쓰코는 생활이 어렵던 차에 싼 가격에 입주할 수 있는 병원 2층 입원실의 방 한칸에 이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하자마자 의사의 장모와 입원 환자 한명이 실종되고 곧바로 장모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남다른 추리력을 지닌 남매는 사건에 뛰어들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지만 유력한 단서를 쥐고 있던 병원 간호사마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녀는 죽기전에 "고양이가..."라는 말을 남기는데...

참 간만에 읽은 추리 소설입니다. 이 작가 장편은 국내 초역이죠.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상"의 3번째 수상 작품 (소설로는 첫 수상)으로, 전에 소개한 적이 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이라는 앤솔로지에 실려있던 작가의 단편 2편이 꽤 괜찮았었고 특히나 "빨간 고양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기대가 컸었습니다. 예전부터 계속 읽고 싶던 차에 큰맘먹고 여름 맞이용으로 알라딘에서 지른 책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읽고나니 괜찮지만은 않네요. 두꺼운 편임에도 쉽게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재미는 충분히 전해주고 장점도 많은 책이긴 해서 그냥 평가 절하하기에는 난감하긴 하지만요.

장점부터 나열해 본다면 제일 먼저 들고 싶은 것이, 굉장히 읽기가 편한 책입니다. 추리 소설이고 3명이나 죽어나가는 끔찍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굉장히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거든요. 동화작가이기도 한 작가의 이력 때문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참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리소설 재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컴비가 괜찮습니다. 유타로 - 에쓰코 남매로 이루어진 일종의 커플 탐정으로 유타로에게 탐정역이 집중되어 있지만 특유의 기동력(?)과 관찰력, 그리고 돌발행동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일조하는 에쓰코 역시 귀엽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격묘사나 설정이 치밀해서 충분히 시리즈 캐릭터로 지속될만한 매력은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시리즈 캐릭터로 단편선이 있다는데 이 단편선도 상당히 궁금해지더군요)
추리적 요소도 화려하여 1950년대 발표된 추리소설답게 당시 전성기였던 영국 미스터리,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 여사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한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서 살인사건 3건에 미수 1건, 작은 절도 사건까지 내용에 등장하며 인간 소실 - 밀실 살인 - 알리바이 깨기 - 다이잉 메시지 해독 - 사체 은닉 등 다양한 트릭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제일 큰 단점은 "트릭이 후지다!" 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네요. 위에 나온 인간 소실 트릭은 범행 장소 조사를 통해 곧바로 밝혀지는 허무한 수준이었고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 해독, 사체 은닉은 지나치게 트릭에 의존하여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바이 깨기 트릭은 괜찮긴 한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일 중요한 다이잉 메시지와 그에 따르는 복합적인 트릭은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는, 운에 의지하는 트릭이라 생각되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코브라 독" 이라니....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그리고 구성도 어설퍼요. 아마츄어가 쓴 첫 장편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이런 류의 작품은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범인일게 뻔하므로 교묘한 구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하는 장치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지루한 면이 느껴졌으며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범인을 어떻게 보면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탓에 범인의 정체를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범행 동기도 덧붙인 느낌이 강한,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애매한 이유로 보였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명망있는 추리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작가적 명성이 높은 작가라 기대치가 높았는데 역시 작가의 첫 장편인 티가 확 난다고나 할까요.
전후 일본 추리 소설의 대중화에 공헌하기도 한 히트작이고 여러 일본 추리관련 추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지지만 확실히 시대가 많이 변한 느낌입니다. 고즈넉하고 다정다감한, 왠지 느릿느릿한 정서는 포근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크게 와 닿는 것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역사적 의미가 더 큰 책으로 완독했다는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아울러 책을 읽고나니 감상과는 별개로 우리나라도 이런 추리 문학상이 많아졌으면 하는 부러움이 생깁니다. "김래성 추리 문학상"이 있었지만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고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같은 희대의 쓰레기가 상을 받아서 상의 권위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지만.

PS : 그래도 시공사에서 나온 책으로 책의 장정이나 여러 해설들이 상당히 좋아서 책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일본의 크리스티라 불리운다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분위기는 크리스티가 아닌 크레이그 라이스의 "스위트 홈 살인사건"과 유사한 분위기라 생각되어 아동용 추리 소설이 더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 뒤 해설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많이 썼더라고요. 이런 다양한 책들이 해설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이 출판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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