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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9

퀴즈 [QUIZ] (2000)

영어강사인 다카노 마이는 어느날 한통의 메일을 받는다.

제목: 퀴즈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
힌트: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쇼가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학교나 친구들에게도 연락해보지만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고 그 후 또 한 통의, 정체불명의 메일이 도착한다.

‘아들을 데리고 있다. 경찰에게는 알려선 안 된다.
퀴즈: 경찰에게 알리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힌트: 도레미파솔라…시(시는 일본어로 죽음) 죽음?!!!


다카노 마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경시청의 유괴 전담반인 SIT의 키리코 카오루가 사건 수사 지휘본부에 투입된다. 수사 지휘자인 오자와 형사과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범인의 감시카메라를 피해 다카노가에 잠입에 성공한 형사 시라스나와의 협력 수사로 범인의 퀴즈를 하나씩 해독해 나가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데...


2000년에 방영되었던 일본 드라마 "퀴즈"입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는데 극의 흡입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요. 이틀만에 다 볼 정도로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유괴범이 "퀴즈"를 보내고 경찰과 두뇌게임을 펼친다는 전개는 비스무레한 작품이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은 소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퀴즈 자체, 즉 일종의 퍼즐 트릭을 시청자가 몰입하면서 볼 수 있는 수준의 문제들로 선별하여 꽤 재미있게, 그리고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다른 복잡한 심리 스릴러 극과 다른 느낌과 함께 상당한 몰입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스토리도 단순한 유괴극으로 끝나지 않고 2중, 3중으로 교묘하게 포장하며 이러한 요소를 디테일하게 설명하기 위한 복선 역시 많이 가져가고 있어서 극의 긴박감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6억엔을 요구하여 도주하는 장면은 정말 머리를 많이 썼구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진 트릭으로 생각하며 이 도주극에서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의 또다른 함정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거기에 결말부분의 반전이 유명하던데 저에게도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물론 이 반전 역시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반전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드라마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 역시 각본진의 노고가 느껴질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고요.

또한 제작진이 "케이조쿠"의 제작진 그대로라고 하는데 케이조쿠에서 인상깊었던 몽환적인 화면이나 순간순간의 교묘한 이미지 편집, 절묘한 음악과 화면의 조화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여러 장면들, 그리고 드라마의 미술적 감각은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하지가 않더군요. 뭐 너무 이미지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비쥬얼 적으로는 만족할 수준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 드라마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인 배우들의 오버가 이 작품에서는 심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습니다. 주인공 키리코 카오루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설정은 분명 만화적인 것이고 심리가 극도로 불안하여 환영을 보는 전개는 불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자이젠 나오미라는 배우는 그 만화적인 설정을 커버해 줄 정도의 연기력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남자 주인공격인 시라스나가 굉장히 현실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드네요. 또한 트릭의 개그형사 야베역의 배우가 맡은 오자와 형사반장의 연기 역시 그간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 주는 멋진 연기와 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감 있는 연기와 더불어 심각한 극의 전개가 설정과 오버가 가득한 그간 일본 드라마의 편견을 많이 불식시켜 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의 조연도 친숙한 얼굴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만화적인 설정, 즉 키리코 카오루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솔직히 너무나 불필요한 설정이었기에 아쉬움이 남으며 다카노가를 비롯한 주변 가족들의 일상 및 심리상태 묘사도 좀 오버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11부작인데 요런 부분을 줄였으면 한 6부작 정도로 충분히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진범을 사주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에, 또 이 인물로 인해 반전의 충격이 많이 희석되는 것, 그리고 좀 억지에 가까운 해피엔등은 각본진이 좀 몸을 사린 것 같았습니다. 또 지나치게 공포-충격요법을 전달하기 위해 군더더기 -클로즈업만 되면 눈알을 굴리는 연기를 하는 등- 가 좀 많았던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아무래도 디테일에서 좀 작위적인 연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괴당한 다카노 쇼 역의 아역배우의 연기는 솔직히 독서낭독회 수준이라서.... (뭐 7살짜리 아역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겠지만요)

뭔가 후속편을 부르는 듯한 여운도 살짝 남기는데 후속편이 없는 것으로 보면 드라마의 인기는 별로였나 보네요. 그래도 몰입력 하나는 대단한, 그리고 여름에 보면 더더욱 좋을 것 같은 서늘한 맛을 잘 전해주는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비록 방영한지는 6년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유치한 느낌을 주지 않는 내용과 비쥬얼로 포장되어 있으니 휴가철에 하루이틀 몰아서 보면 딱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제가인 "Toy Soldier"도 마티카의 원곡을 번안해서 부르는데 극의 내용(?) 이나 이미지와 잘 부합하고 있고 오랫만에 들으니 더욱 반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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