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 측 증인 -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
고아에 스트립댄서 출신인 나미코는 재벌가의 방탕한 외아들 야시마 스기히코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녀의 시아버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사형 선고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남편 스기히코에게 아내 나미코는 사건의 진상을 깨우쳤다고 공언한 뒤 옛 동료가 소개한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 이 작품이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잠깐 조사해봤더니 첫 남편이 "이쿠시마 지로" 였다는 것, 만취하여 사고사로 죽었다는 것 등 작가의 일대기도 흥미롭더군요.
250여페이지라는 짤막한 길이도 적당하고 읽는 맛도 잘 살아있는 소품으로 특징이라면 스타일이 "고전적"이라는 것이겠죠. 발표가 1960년대이기는 하나 작품의 스타일은 그보다 더 이전의, 고전 본격물 황금기 시대를 연상케 하거든요.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괴퍅한 노인의 죽음과 난봉꾼 아들의 환영받지 못한 결혼의 조합이라는 전통적인 설정부터가 수많은 작품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이죠. 거기에 더해 감옥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은 <처형 6일전>이나 <환상의 여인>이 떠오르며 나미코의 시점과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한 전개는 코넬 울리치의 향기가 짙게 묻어납니다.
묘사의 디테일 역시 만만치가 않아요. 벽난로, 바 스툴, 프랑스식 창문, 테라스옆 골담초 덤불... 묘사만으로도 영국 시골마을 별장이 떠오를 정도거든요. 한마디로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꾸면 고전 황금기 시대 작품이라고 해도 속아넘어갈 정도로 완벽한 고전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전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 아니라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반전을 그린 서술 트릭의 원조격 작품이라는 것도 좋았어요. "반드시 속는다!"라는 말 하나만큼은 적절하다 생각될만큼 트릭의 완성도도 높고요.
그러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둘러싼 수많은 절찬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걸작이라는 평가인 듯 싶고 저 역시 동의하는 바이지만 현재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거든요.
반전만 해도 뭔가 한방 모아서 터트리기는 하는데 그 폭발력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는 편이에요. 충격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심심한 면이 없잖아 있을 뿐더러 기대했던 법정 장면에서의 드라마가 약했기 때문이에요. 완성도는 높지만 지금 읽기에는 딱히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것도 아닌데다가 작중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혀지듯이 경찰의 부실한 수사도 사건을 키우는데 한몫 했다는 점에서는 딱히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그래도 후대에 평가받을 만한 점은 분명 있다고 생각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꼭 시대를 초월할 필요는 없죠. 그 나름대로 즐길거리만 있으면 되니까요. 책도 이쁘게 잘 나온 편이라 마음에 드네요. 추리소설 입문자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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