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
3 톱니바퀴
토모히로의 집 앞에 고급 택시가 멈춰 섰다. 토모히로가 자신의 집에 들어선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대문 차임벨을 누르자 바로 토모히로가 나타났다. 그는 남색 바지와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큰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토모히로의 뒤를 이어 마사오의 모습이 보였다. 트위드 소재의 하얀색 코트에 크림색 가방을 들고 있다. 마사오는 머리를 다시 묶고 있었다. 익숙한 은색 머리 장식이 보였다.
잘 단장한 마사오의 얼굴 윤곽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화장을 한 모양이었다. 운전기사가 토모히로의 가방과 마사오의 여행 가방을 뒤쪽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어떻게 봐도 여행 가는 모습이군. 그것도 꽤 긴 여행같은데........"
마이코가 혼잣말을 했다.
토모히로의 집에서 두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안은 노인이 나왔다. 얼굴이 마사오를 닮았다. 마사오는 노인에게서 옆으로 긴 검은색 가방을 받아든 뒤 아이의 뺨을 살짝 찔렀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충치가 보였다.
토모히로와 마사오는 차에 올라탔다. 노인과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차는 마이코의 에그를 지나갔다. 잠시 후, 토시오는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미행하고 있는걸 알아채도 상관없어. 어차피 의뢰인의 차니까."
토시오는 마이코의 에그로 어떻게 택시를 놓치지 않고 미행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지만, 마이코의 말 한마디에 택시 뒤에 꼭 붙어 가기로 결심했다.
도로의 혼란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고, 택시의 운전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사이에 두세 대의 차량이 끼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토시오는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것일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그랬다. 토모히로의 가방은 국내 여행치고는 너무 과했다. 마사오가 아침부터 소우지를 만난 것은 당분간 두 사람의 밀회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고속도로에 들어가면 계속 쫓아갈 자신이 없어요."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걱정할 것 없어. 공항까지는 외길이니까. 그런데 만약 해외로 출국하는 거라면, 그 전에 내가 토모히로를 붙잡고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어."
고속도로 앞에서 큰 탱크로리 차량이 끼어들면서 마이코의 에그를 억지로 밀어붙였다. 정지 신호에서 마이코의 차는 유조차의 배기가스를 정통으로 맞았다. 오른쪽 도로변에는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다. 마이코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정말 개 같은 일이네."
이것으로 이 일도 끝이겠구나, 라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토시오는 하늘에서 기괴한 물체를 목격했다. 색깔도 모양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차 전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유리창이 날아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토시오는 직감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의 탱크로리 차량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타원형 탱크가 눈에 띄게 커 보였다. 토시오는 뒤따라오는 차를 신경 쓰며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다.
에그가 멈추자 토시오는 반사적으로 차도로 뛰쳐나왔다. 서너 대 앞의 차가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토모히로와 마사오가 타고 있던 택시였다. 택시 뒤에는 또 다른 차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탱크로리 차의 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튀어나왔다.
"도망쳐!"
누군가가 소리쳤다.
차도 위에서 하얀 코트가 날아갈 것 처럼 흩날렸다. 토시오는 코트로 뛰어들었다. 일어나보니 마사오는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토시오는 정신없이 마사오를 끌어안았다.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옆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아도 그때의 행동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토시오는 한 손으로 그 신발을 집어 들었다. 곧이어 신발 옆까지 불길이 다가왔다.
"엎드려!"
미친 듯이 외쳤다.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두 번째 차에 불이 붙은 것이다.
토시오는 에그에 마사오의 몸을 밀어 넣었다. 마이코의 모습은 차 안에 없었다. 마사오의 옆에 긴 가방 끈이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토시오는 가방을 풀어 놓으려고 했다. 그때 마사오의 가슴에 손이 닿았다. 가슴의 부드러움에 토시오는 깜짝 놀랐다. 토시오는 가방을 뒷좌석에 던져 넣고 문을 닫자마자 U턴을 했다. 차체가 탱크로리 차량에 부딪힌 것 같았다.
반대편 차선의 차량이 멈춰 섰다. 뒤돌아보니 두 대의 차량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사오의 이마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눈과 입을 굳게 다물고, 피부에 피가 묻어 투명할 정도로 하얗게 변했다.
병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몇 분 전에 보았던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토시오는 동물 병원 앞에 차를 세웠다. 보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를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토시오는 차도로 내려와 차를 돌려 반대편 문을 열었다. 마사오는 반 쯤 쓰러진 채였다. 토시오는 조용히 마사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사오는 곧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사고를 당했어요. 곧바로 피신을 한게 다행입니다. 어디 아프신데는 없나요?"
마사오는 놀란 듯 온몸을 훑어보았다.
"병원 앞입니다. 상처를 확인하면 좋겠어요."
"사고를 당했나요 ......?"
토시오는 처음으로 마사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약간 코를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토시오는 에그에서 사고 현장에서 주운 신발을 꺼내 마사오의 발에 놓았다.
"당신은..."
마사오는 토시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당신 차, 서너 대 뒤에서 달리고 있었어요."
"도와주셨군요."
토시오는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이제 괜찮습니다."
마사오는 신발을 신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팔에 쓰러졌다.
"무리하면 안 돼요."
마사오의 머리카락이 눈앞에 있었다. 향수와는 다른, 기억에 남는 미묘한 향이 느껴졌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팔에 기대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세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마사오는 깜짝 놀라며 쥐고있던 토시오의 팔에 힘을 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엄청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와 불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유조차에 불이 났네요."
마사오는 갑자기 토시오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토시오는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이 있어요.......남편이 ......"
"남편?"
"저, 남편과 함께 그 차에 타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몸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더니 눈 앞에 불이 났어요. 운전자가 밖으로 굴러가는 것이 보였어요. 남편이 문을 열고 저를 밖으로 내쫓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달려갔을 때 좌석에 불이 붙지 않았어요.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마사오의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상처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토시오는 억지로 마사오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대기실에 있던 두세 사람이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한 여자는 가슴에 작은 개를 안고 있었다.
"급한 환자에요. 근처에서 사고가 났어요."
토시오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소방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개가 짖어댔다. 일반 병실과는 다른 소독액 냄새가 났다.
의사는 온화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외투를 벗겨보니 안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의사는 스타킹에 가위를 집어넣고 벗겨내어 상처 부위를 살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는 재빠르게 수액을 놓았다.
"다른 통증은 없습니까?"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맞았나요?"
"글쎄요."
의사는 마사오의 눈과 입안을 살폈다.
"다리의 상처는 출혈에 비하면 얕은 것 같군요. 나중에 반드시 전문의에게 뇌파를 검사받아야 합니다."
또 여러 대의 사이렌 소리가 지나갔다. 마사오의 침착함이 사라졌다.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남편에게 데려다 주세요."
"남편이 함께 있었나요?"
의사는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토시오를 남편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맞습니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어요."
"잠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이제 괜찮아요. 남편이 걱정돼요."
마사오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간호사가 수화기를 들고 응대하다가 곧바로 토시오에게로 향했다.
"카츠 씨, 계십니까?"
"네."
토시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이봐요!"
마이코가 소리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디로 사라져 버리다니. 마사오는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큰 부상이야?"
"아니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걸을 수 있겠지?"
"네."
"토모히로가 더 큰일이야. 빨리 마사오를 데리고 와. 키타노 제일의원 외과. 알았지? 도로는 교통이 통제되어 있어. 멀리 돌아서 와야 해. 바로 와."
"잘도 여기가 어딘지 알았군요."
"방금 전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을 봤었고, 차가 달리는 방향이 그쪽이었으니까. 네가 생각한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마이코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뭐라구요......."
마사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타노 제일의원이라는 곳으로 이송된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마사오는 피 묻은 외투에 손을 넣었다.
"내 차에 타세요."
토시오는 의사에게 키타노 제일의원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밖으로 나오니 구경꾼들이 인도로 가득 차 있었다. 소방차의 사이렌과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 헬리콥터 소리.
연기의 세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가끔씩 주황색 불꽃이 연기 속에서 되살아났다.
멍하니 서 있는 마사오를 바라보며 토시오는 에그에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카츠 씨라고 말씀하셨죠?"
마사오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보면서 말했다.
"네, 카츠 토시오라고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큰 도움을 주셨네요. 저는 마와리라고 합니다."
"마와리……"
토시오는 그 이름을 감탄하듯 반복했다. 하지만 마사오는 다르게 해석한 것 같았다. 토시오의 얼굴을 보니,
"이름은 마사오입니다."
라고 말했다. 마사오는 남자다운 호칭에 대해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카츠 씨의 주소를 알려주시겠습니까?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
"감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런건 싫습니다."
거절하려던 말이 어느새 강한 어조로 변해버렸다. 마사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위안이 될 만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급해지면서 좋은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에그는 그대로 키타노 제일의원 현관에 도착했다.
하얀색 2층짜리 병원이지만 안쪽은 훨씬 더 깊었다. 마사오는 현관 계단을 오를 때 다친 다리를 끌며 올라갔다.
접수처에서 이름을 말하자, 안내를 맡은 간호사가 두 사람을 2층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요?"
토시오가 물었다. 간호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2층 복도 의자에 마이코가 앉아 있었다.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고 일어섰다.
"수혈이 필요하다면 내 피를........"
마사오는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토시오는 못 본 척하며 걸어갔다. 간호사는 마사오의 다리를 보고 시선을 멈췄지만 걸음걸이를 늦추려고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간호사는 2층의 긴 복도 끝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뒤따라오는 것을 본 뒤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고 하얀 마스크를 쓴 의사가 나왔다.
"가족분들입니다."
간호사가 짧게 말했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었다. 토시오는 부상자의 아내라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까부터 아내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제 때에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문을 열고 두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사오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이성이 승리한 것일까.
토모히로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약간 튀어나온 코에 산소 흡입용 마스크를 씌우고 있었다. 수혈병에는 거품이 일고 있었다. 거꾸로 된 A라는 글자가 보였다.
"당신……"
마사오가 얼굴을 가까이 했다. 토모히로는 팔을 뻗으려 했지만 수혈을 위해 팔이 고정되어 있었다.
토모히로는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나는.......괜찮아."
고개를 움직여 입으로 마스크를 밀어내려고 했다.
"당신,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
"나는, 괜찮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사오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뺨을 문지르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 당장 출발해 ...... 지금이라면 아직 ...... 비행기에….. 늦지 않아 ......"
"하지만--"
토모히로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일 ...... 예정대로 호놀룰루에 있는 러더퍼드 데이비스 씨를 만나 ...... 마도죠를 ...... 건네줘."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마세요."
"쓸데없는 일 아니야 ...... 당장 출발해 ...... 마도죠를 ...... 반드시 ...... 내일 ......
"알았어."
마사오는 아이를 달래듯 토모히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말대로 할게요. 안심해라. 그러니 조용히--"
"당장 출발해"
토모히로는 빨리 떠나라는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눈을 감고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마사오는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토모히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의사가 토모히로의 죽음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십오 분이 지난 후였다.
마이코는 2층 복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제까지 멍청한 짓을 할거야?"
토시오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토모히로가 죽었어요."
"알아. 아까 토모히로의 병실에서 산소호흡기가 꺼져 있는 걸 봤어. 내가 어려울 때 죽고 말았지 뭐야."
마이코는 토모히로의 죽음에 대해 매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넌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군."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배웠어요"
"그렇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돼."
토시오는 신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게, 도무지 모르겠어. 사고 직전에 여러 사람이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저도 봤어요."
"불덩어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연기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토시오 군, 토시오 군이 본건 뭐였어?"
"제 생각에는 하얀 연기 같았어요."
"어쨌든, 토모히로의 차에 낙하물이 부딪힌 것만은 확실한 것 같군."
"토모히로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그것이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렇겠지. 택시 운전사도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채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택시와 부딛혔던 차의 사람들도 자기 차에 불이 나기 전에 피난할 수 있었고."
"그럼?"
"차에서 뛰어내린 후, 토모히로가 취한 행동이 문제였지. 그건 자살행위였어."
"우다이 씨는 그걸 보셨나요?"
"응, 똑똑히 봤어. 토모히로가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반쯤 열린 차 트렁크에서 자신의 가방을 꺼내려고 했어."
"가방을?"
"응, 가방도 가죽이 찢어져 안의 물건이 튀어나온 상태였어. 그래도 토모히로는 가방을 꺼내려고 애썼지. 그러던 중 급속도로 택시가 불길에 휩싸여 버렸어. 결국 토모히로는 가방을 꺼내기는 했지만 도로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고. 다리가 엉켜서가 아니면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일거야. 그리고 그 순간, 토모히로는 삽시간에 불덩어리가 되고 말았어."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불덩어리가 될 수 있나요?"
"그냥은 힘들지. 뭔가에 불이 붙었다는 느낌이 들었어. 내 생각에 그 가방 안에는 뭔가 인화성 액체가 담긴 병이 들어있었던 것 같아. 넘어지는 바람에 병이 깨지면서 토모히로는 그 안에 있던 액체를 뒤집어 썼고, 그 액체에 불이 옮겨붙었던게 아닐까."
"그 가방에는 꽤나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 가방도 다 타버렸어."
하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 기름병 등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그래, 아직 마이코에게 해외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다이 씨 말이 맞았어요. 두 사람은 호놀룰루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사오가 말했구나."
"두 사람은 하와이에서 로스엔젤레스, 플로리다를 거쳐 2주 후에 보스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고 했어요."
마이코는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 맞아, 생각났어. 보스턴에서 11월에 '국제 장난감 박람회'가 열릴 예정이야. 각국의 참가업체가 백 수십 개, 전 세계 바이어와 업계 관계자가 1만 명 이상 모일 것이라고 신문에 나와 있었어."
"두 사람은 그 국제 완구 박람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을까요?"
"그래, 아직은 좀 이르지만, 마사오 말대로 세계여행도 겸해서였겠지"
"해바라기 공예에서는 수출도 하고 있나요?"
"일본 장난감 생산액의 3분의 2 이상은 수출하고 있어."
마이코는 장난스럽게 토시오를 바라본다,
"장난감 수출액 1위는 어느 나라라고 생각해?"
토시오는 조금 당황했다.
"일본이야. 이것도 후쿠나가 씨가 가르쳐 준 건데, 수출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어. 메이지 초기에 이미 요코하마에 있는 외국 상관을 통해 장난감 수출이 시작되었어. 세계대전 이전에는 일본 전체 무역액의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수출품이었다고 하더라고. 일본 장난감의 인기 비결은 정교한 기술과 아이디어의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고. 종전 이후에 장난감은 빠르게 부활했어. 인간에게 장난감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것 같아. 주둔군이 버린 빈 깡통을 두드려서 만든 재료로 업체는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냈을 정도였다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몰랐습니다."
"수출 회복도 빨랐어. 마찰 장난감의 개량을 계기로 일본 장난감은 다시 수출의 선두에 서게 되었어."
"마찰 장난감?"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고도 달리는 자동차를 말하지. 봐, 바퀴를 몇 번 돌리고 손을 놓으면 의외로 멀리 가는 자동차가 있을 거야. 이는 자동차 내부에 플라이휠이라는 무거운 톱니바퀴가 들어있기 때문이지. 자동차의 바퀴를 바닥에서 마찰시키면 플라이휠이 빠르게 회전하도록 되어 있어. 이 플라이휠의 관성으로 놀이기구는 꽤 멀리까지 달릴 수 있고. 원형은 메이지 초기에 하숙집 장인이 고안했다고 하더군. 이 마찰물을 시작으로 수출은 순조롭게 성장했어. 1951년에는 수출액이 3백억에 육박하며 세계 1위로 성장했고."
"해바라기 공예에서는 어떤 장난감을 수출하고 있나요?"
"아까 보여주었던 달그락달그락 새가 달러박스인 것 같아. 나머지는 비슷한 소품 장난감. 하지만 더 큰 시장을 노린 해바라기 공예는 스페이스 레이스에서 실패하고 말았지."
토모히로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사오에게 끈질기게 '마도죠'라는 것을 어떤 외국인에게 건네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마도죠라는 것은 장난감의 상품명이 아니었을까.
"국제 박람회에선 여러 가지 신제품이 출품되겠지요?"
"물론이지. 바이어들은 눈을 부릅뜨고 좋은 제품을 찾아낼 거야. 국제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 회사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
토시오는 마이코에게 토모히로의 임종을 이야기했다.
"마도죠란 뭐야?"
"모르겠어요. 가방 안에 들어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마이코는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형사가 너랑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
"형사가?"
"에노키초 경찰서 교통과 형사야. 사고 경위를 듣고 싶다고 했어."
"우다이 씨는?"
"나는 싫어. 그 차에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해 주면 좋겠어. 얼굴만 내밀고 오면 돼. 금방 끝나겠지."
그때 마사오가 복도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이코가 알아차렸다,
"나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마."
라고 말하면서 토시오의 곁을 슬그머니 떠났다.
마사오는 홀을 둘러보다가 토시오의 모습을 보고는 옆으로 다가왔다. 한쪽 다리는 여전히 끌고 다니고 있었다. 마사오는 토시오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하루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평범하게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토시오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서둘러 글씨를 써서 찢어서 마사오에게 건네주었다.
"제 주소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곤란합니다."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싫으시다면........"
마사오는 종이 조각을 소중히 받았다.
"호놀룰루로 떠나실 건가요?"
"아니요."
마사오는 분명하게 말했다. 마이코가 뒤를 돌아보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남편의 부탁이 굉장히 강했는데도요?"
"평소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분명 의식이 정상적이지 않았겠지요. 데이비스 씨에게 회사에서 전화를 걸도록 하겠습니다."
마사오에게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우연히 마사오를 구해서 차에 태워준, 지나가던 사람이 알고 싶어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부인도 ...... 몸조심하세요"
"고마워요."
마사오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가는 마사오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토시오는 허탈한 표정으로 마사오를 배웅했다.
"불행이란 것은 한순간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구나."
어느새 마이코도 마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모히로가 죽으면 마사오는 소우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마이코의 말은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라서 부도덕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소우지를 사랑하지는 않을 거예요."
"호오.......그렇구나."
마이코는 토시오의 눈빛에 놀란 듯했다.
"마와리 가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토시오 군이 마사오와 친분을 쌓은 것은 다행이야. 좀 더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어. ….. 사랑에 빠진 척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토시오는 마지막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토시오의 운전으로 두 사람은 에노키초 경찰서에 도착했다. 토시오만 에그에서 내렸고, 차는 마이코가 운전하며 멀어져 갔다. 토시오는 마이코의 차를 배웅하면서 마사오의 긴 가방이 뒷좌석에 놓여있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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