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퇴의 청동문명 1 -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
삼성퇴의 청동문명 2 -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
고대 유물 발굴에 대한 괜찮은 논픽션을 많이 발표했던 웨난의 저작입니다. 제가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논픽션들 모두 기본 이상은 했기에 이 책도 진작부터 읽고 싶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절판된 탓에 구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서야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드리자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제 기대와 많이 달랐던 탓이에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삼성퇴 문명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이 유물들을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두 권 분량의 책에 가득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했지요. 화려한 도판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정작 책에는 삼성퇴의 문명 발굴에 대한 에피소드만 넘쳐날 뿐입니다. 게다가 그 설명도 무척이나 장황합니다. 처음 삼성퇴에서 의미있는 유물을 발굴했다는 연도성의 일화만 보아도 그러해요. 연도성이 청나라 시기 지방 관직을 맡았지만 이후 민국이 되면서 자리를 잃었다는 설명이 3~4페이지 씩이나 길게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설명보다는 실제 발굴이 진행되었던 삼성퇴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도와 도판이 추가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연도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후 연씨 일가가 보물을 하나씩 풀면서 그 정보가 학계에 알려지는 과정, 2차 대전과 문화혁명을 거친 뒤 삼성퇴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벽돌 공장이 세워져 유적 일대가 훼손되지만, 학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결국 1호갱, 2호갱이라는 두 차례의 큰 발굴 성과를 내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너무 길어요. 저는 삼성퇴 문명의 수수께끼가 궁금했을 뿐, 이런 발굴 이야기가 궁금했던건 아닙니다. 성과 현에서 출토된 유물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는 반복이 지나쳐서 짜증이 날 정도였고요.
물론 이런 발굴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길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에요. 그나마 한가지 웃겼던건 성 고고연구소에서 현과의 협상을 위해 진덕안을 보낼 때 두 청장이 삼국지 고사를 인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진덕안을 파견하여 삼성퇴에 주둔하도록 했고, 현에서 변화가 있을 때 그가 나가서 단기필마로 응대한다, 그 뒤 우리와 같은 대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지원한다고 말하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고고학 연구원들이라 이런 인용이 자연스러운건지, 아니면 중국인 특유의 허풍인지 감이 오지 않네요.
이런 발굴 에피소드들 중심의 1권보다는 2권은 그래도 삼성퇴 문명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많이 있어서 좀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론을 엄선하여, 요약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론을 정제하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어서 다소 복잡했습니다. 대충 제가 판단한 바로는, 고대 사천 지역에 여러 개의 부족 국가(마을)가 있었고, 이 마을의 왕들이 잠총, 백관, 어부, 두우, 개명 등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즉 파국이 고대 기록에서처럼 수도가 사방으로 천도했던게 아니라 애초에 나라가 여러개 있었던 겁니다. 시초라 할 수 있는 잠총 부족은 이유가 무엇이었건 중원에서 남하하여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고요. 이후 두우 시기에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별령이 치수 기술을 활용하여 민심을 장악한 뒤 스스로 왕이 되어 개명 왕조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왕조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진나라에 제압당하고 '촉군'이 되고 말았고요. 이후 청동기 문명이었던 촉도 철기 문명인 진나라에 융합된게 간략한 이 지역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퇴의 1호갱, 2호갱에 보물들이 부장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단순 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근거는 갱내 기물이 모두 불에 탔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화장한 왕의 유골이 없다는 점에서 화장묘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재사갱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토 유물이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이고, 불에 탔다는건 불을 이용한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논리죠. 그런데 출토된 유물의 양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낮아요. 한 나라의 재력을 모두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물들이라서, 제사에 한 번 쓰고 버리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삼성퇴 유적은 어부 왕조 당시 수도로 두우 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 마지막 제사를 벌이고 전멸한 흔적이다, 거대한 홍수 탓이었다는 등의 이론들이 발표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쟁으로 전멸하고 남은 유산이라는 설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승리한 국가가 망한 국가의 신묘에 있는 제사용 보기들을 훼손하여 묻어버리는건 충분히 있음직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이 책에서도 이른바 '망국 보기 매장갱' 과 '상서롭지 못한 보기 매장갱' 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고요.
그리고 주요 출토 유물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설명, 다른 국가 유물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특유의 안구 형태와 대담한 문양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앞서 말씀드렸듯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게 가장 큰 감점 요소입니다. 기이할 정도로 잡다한 주변 이야기가 많은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웨난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요. 2권 내용을 보다 결론 중심적으로 요약 정리하고, 1권 내용은 에피소드 중 중요한 것만 짧게 인용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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