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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죽음의 전주곡 - 나이오 마시 / 원은주 : 별점 2점

죽음의 전주곡 - 4점
나이오 마시 지음, 원은주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펜쿠쿠에서 자선 행사로 교구 교민들이 진행하는 소박한 연극이 진행되던 중,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마을의 부유한 노처녀 이드리스 캠패뉼러로,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피아노 안에 장치된 총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런던 경시청 범죄 수사반 로더릭 앨린 경감이 수사를 맡게 되는데.... 

전성기에는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과 더불어 4대 범죄 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렸다는 -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 나이오 마시의 장편. 국내에는 첫 소개된 작품입니다.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지극히 전형적인 황금기 시절 영국 시골 마을 추리물이더군요. 미스 마플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심도깊은 마을 주민들 묘사가 인상적이에요. 소수의 등장인물들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거기에 더해 앨린 경감의 발로 뛰는 수사 역시 치밀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다고는 이야기 못 하겠네요. 단순 소거법으로만 보아도 범인이 누군지는 상당히 뻔한 탓입니다. 
주요 등장인물 일곱명 중 월터 목사와 그의 딸 다이나, 저닝햄 부자는 일단 제외됩니다. 노처녀들의 목사에 대한 짝사랑은 엄청나지만, 목사가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건 상상하기 힘들고 다이나와 헨리 저닝햄의 사랑을 방해하는건 엘리너 프랜티스이지 이드리스 캠패뉼러는 아닙니다. 조슬린 저닝햄은 아예 동기 자체가 없고요. 의사인 템플렛 박사와 셀리아 로스도 마찬가지, 둘의 불륜을 눈치챈건 엘리너 프랜티스이지 이드리스 캠패뉼러가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드리스가 죽으면 그녀로부터 유산도 받고, 연적까지 없앨 수 있던 엘리너 프랜티스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물론 피아노 연주자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설정 때문에 엘러너에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라는 추리도 가능합니다. 작품도 당연히 그 쪽으로 몰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연주를 포기한건 엘리너 본인이라는 점에서 이건 수수께끼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수사를 통해 엘리너가 이미 피아노에 장치되었던 물총에 맞았었고, 공연 직전 피아노 연주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게 밝혀진 시점에서 범인은 확정입니다. 물총이 장치된걸 알았던 사람이 총을 바꿔치기 했을테니 그건 엘리너입니다! 

자, 이렇게 범인이 드러났으니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치 트릭만 남았습니다. "피아노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총을 장치했는지?" 라는 트릭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추리쇼를 통해 밝혀진 진상은, 피아노 뒤에 쳐진 무대막 사이로 손을 넣어서 안전장치를 풀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독자는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밝혀진 상황만 놓고 보면 무대를 한 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아무도 "무대막 뒤에서 손을 뻗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이 정도 트릭이면, 아니 트릭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단순한 상황을 앨린 경감 등이 기묘한 불가능 범죄처럼 언급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수사가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도 없습니다. 또 무대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가 추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공정함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고요. 앞부분에 펜처치 지역 지도를 실어놓지 말고, 무대에 대한 그림을 실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양파나 상자와 같은 요소에 집착하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디테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나 이들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기 명탐정 흉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에 더해 이야기가 너무 길다는 문제도 큽니다. 특히 초반부, 사건이 벌어지기 전 100여 페이지는 짜증나는 노처녀들의 심리를 장황하게 그려서 도저히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어요. 노처녀들에 대한 '살의'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는 잘 된 묘사일 수는 있겠지만... 독자가 살의를 품어서 뭘 하겠습니까? 

그래서 별점은 2점. 몰랐던 작가의 몰랐던 탐정을 접했다는 역사적 가치 말고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왜 지금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네요. 당시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읽기에는 한없이 지루했습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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