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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7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9. 역립(逆立) 인형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카라쿠리의 과거 등은 제대로 번역하기 힘드네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9. 역립(逆立) 인형
카오리가 아틀리에로 사용하던 방이었다.
캔버스, 이젤은 한쪽으로 치워졌고, 책상은 수사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밝지만 장식이 적은 방이라 그림과 화구가 없으면 수사관들이 어슬렁거려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총소리를 들었을 때 어디에 있었지?"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있는 경찰관이다. 현경본부 수사 제1과의 노련한 호시자와 형사였다. 마이코가 아직 쇼조와 결혼하지 않았을 때 같은 서에서 근무했고, 마이코의 술친구였다. 너무 마음이 잘 맞은 탓에, 두 사람 모두 결혼 대상으로 서로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호시자와는 나라키 경감보다 한 살 위었다. 나라키 때문에 호시자와가 연기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말했다.
"호시자와 군이 현경에 배치된 것은 분명 나라공 때문일 거야."
마이코는 아무래도 나라키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나라키의 얼굴도 보였다. 변함없이 눈썹 사이에 깊은 세로 주름을 짓고 있었다.
토모히로와 토우이치의 연이은 사고사. 거기에 더해 카오리의 기이한 죽음. 당연히 경찰은 흥분 상태였다. 소우지의 신고로 즉시 여러 대의 경찰차가 도착했다. 나사 저택에는 수많은 수사관들이 긴급 배치되었다.
"미로 속에 있었어요."
토시오는 뒷머리에 손을 얹었다. 정자에서 쓰러졌을 때, 넘어지면서 뭔가에 부딪힌게 아닐까 생각했다.
"총소리는 어느 방향에서 났지?"
"모르겠습니다. 미로 속을 빙빙 돌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위치는 기억나지 않나요?"
"알 것 같아요. 저는 백묵으로 길을 표시하면서 가고 있었으니까요."
"그 위치에 서면 총소리가 들린 방향을 알 수 있을까요?."
"나중에 실제로 미로 안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미로를 빠져나온 후에는?"
호시자와가 질문을 이어갔다.
"연못 주변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화단으로 나왔습니다. 저택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무슨 일인지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연못 주변 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게 있다면 말해 주세요."
"아무것도요.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후로?"
"우다이 씨를 만났습니다."
호시자와는 마와리 저택의 약도를 보여주었다. 토시오는 마이코를 만났던 곳과 소우지가 서 있던 곳, 세 사람이 정자까지 달려온 경로를 표시했다. 그리고 카오리가 쓰러진 상태, 마사오가 서 있던 위치 등을 설명했다.
"당신은 카오리 씨가 쓰러진 정자에서 뭐든 떨어뜨린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 떨어뜨린 물건? 글쎄요........"
"시체를 본 게 처음인가요?"
호시자와의 말에는 가벼운 경멸이 섞여 있었다.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끔찍했다"고 말하려는 순간, 토시오는 말을 멈췄다. 여성인 마이코도 마사오도 기절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미로에서 나와서 ...... 의식을 잃을 때까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나요?"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 그림자라든가, 풀의 움직임이라든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라도 괜찮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나중에 미로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소우지의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소우지의 방을 두드리자 마이코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우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유리 선반이 여러 개 눈에 들어왔다. 선반은 수많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장난감이 아닌 것 같았다.
수많은 인형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상자 위에 앉아서 기타를 들고 있는 검은색 낡은 인형. 상자 아래에 나사가 보여서 전원을 켜면 바로 기타를 울릴 것 같았다. 아름답게 채색된 상자는 깜짝 상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다. 그 옆의 상자는 옛날 하코네 세공품일까? 회전목마에는 분명 오르골이 달려 있을 것이다. 시계를 내려놓은 인형이 그냥 그 자세를 계속하고 있을 리가 없다. 소우지의 손에 들어온 인형은 모두 생명을 얻어 보는 사람을 이차원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그 외 분라쿠(文楽)의 목, 동물, 자동차, 배, 서로 결합되어 있는 알 수 없는 톱니바퀴. 언젠가 마사오가 이야기했던 단쥬로의 숨은 병풍 ....... 새로운 것으로는 팬텀 램프, 밸런스 토이, 파이버 옵틱스 ....... 선반에서 넘쳐나는 장난감은 바닥과 책상 뿐 아니라 손 닿는 곳마다 쌓여 있었다. 그야말로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벽에도 여러가지 시계가 걸려 있는데, 모두 인형이나 오르골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 중 몇 개는 확실히 동작하는 물건이었다.
그 한가운데 소우지는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역시 여동생의 죽음때문인지 평소의 가벼운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이코는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이코가 전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에 토시오는 살짝 놀랐다.
토시오의 뒤를 이어 수사관이 찾아와 소우지를 데리고 갔다.
"총에 대해 물어봤지?"
둘만 남았을 때 마이코가 물었다.
"총? 네, 정자에 뭐든 떨어뜨린 물건이 없었는지 물어보더군요."
"흉기를 찾지 못했어."
"흉기?"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이 방도 구석구석 다 뒤졌지. 그리고 소우지가 가지고 있던 사냥총이 압수당했어."
"소우지가, 설마?"
"수사관이 총구 냄새를 맡았지만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없는 것 같았어. 22구경 볼트액션으로 구 제국 육군이 사용하던 38식 보병총과 같은 형태야. 이 총은 원래부터 저택에 있었다고 하더군. 소우지가 손질해서 사용한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총으로 사냥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해.”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네요."
"하지만 총을 손에 발견했을 때 수사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어. 그리고 카오리의 방도 '당연히' 수색을 당했어."
"카오리 씨는 피해자잖아요"
"자살 가능성도 고려한 모양이야. 하지만 자신의 눈을 쏘는 자살자는 드물고, 현장에는 총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살인이지. 카오리 씨의 뇌에서 총알이 검출됐어."
"총알이요…."
"그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은 것 같아."
"우다이 씨도 총을 보지 못했습니까?"
"보지 못했어. 좀 더 빨리 저택에서 나왔더라면 범인을 보았을지도 몰랐는데."
"마사오 씨가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한 것 같네요."
"그래. 하지만 마사오 역시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고 했어."
"그녀는 어디 있었는데요?"
토시오는 카오리의 방 창문을 통해 미로 근처에 있던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사오는 연못 근처를 걷고 있었다고 하더군."
창밖으로 연못이 보인다. 연못 주변에는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보였다.
"연못 속을 수색하는 걸테지."
"총을?"
"맞아. 경찰은 마와리 저택 안에 있는 사람의 범행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듯 해."
".....설마......."
"이러면 토모히로와 토우이치의 죽음도 다시 한번 문제 삼을 것 같군"
"마와리 저택 안 사람이라고 해도 마사오 씨, 소우지와 테츠바. 그리고 가정부밖에 없잖아요?"
"우리도 포함이지. 물론 이 저택은 담이 무너진 곳도 있고, 정원 안쪽은 그대로 숲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범인이 외부에서 드나들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정자 주변에는 마사오와 소우지, 나와 너, 그리고 카오리, 이 다섯 명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어."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요......."
"그래. 정자 부근의 길이 부드러워졌지? 범인이 카오리에게 접근하면 당연히 발자국이 남았을 거야."
"데츠바는 우다이 씨와 함께 있었죠?"
"그랬지. 만약 카오리가 권총으로 살해당한게 맞다면, 테츠바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될거야."
"데츠바와의 대화는 잘 됐습니까?"
마이코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데츠바는 그 차에 타고 있었다는 걸 인정했어. 그리고 토모히로가 나에게 돈을 주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어. 증언은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 이런 상태니 나를 위한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나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증언해 주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지."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토시오는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카오리는 이기적이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얼굴에 범인은 무자비하게 총알을 쏜 것이다. 그것은 악마의 소행과 다름없었다.
"마와리 가문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것같군."
마이코는 천천히 방 안의 장난감들을 둘러보았다.
소우지가 방으로 돌아와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스케치북 사이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뭐야, 그게 뭐야?"
마이코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미로의 설계도입니다. 예전에 그렸던 게 생각나서요. 경찰이 이걸 원하더라고요."
누렇게 변색된 켄트지 위에 오각형 무늬가 보였다. 마이코는 눈을 반짝였다.
"소우지 씨, 저거 베껴도 될까요?"
"좋아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한 적 없으니까."
마이코는 종이를 받아 재빨리 미로 그림을 베꼈다.
"한번 해볼래?"
소우지가 나간 후 마이코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토시오는 그림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서너 군데, 손가락 끝이 막다른 골목에 빠졌지만, 그래도 중앙을 찾아갈 수 있었다.
".......52초"
마이코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손가락 끝이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실제로 안에 들어가서 본 느낌은 어땠어?"
"이 방법으로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골인 지점까지 도착하지 못했어요."
"그렇겠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이코는 서둘러 그림을 접었다.
경찰관이 얼굴을 내밀고 토시오를 향해 미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이코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사하러 온 사람은 호시자와 형사와 젊은 수사관이었다.
토시오가 먼저 서고, 소우지, 두 명의 수사관, 마지막으로 마이코가 억지로 따라 왔다.
길에 새겨진 백묵의 흔적은 토시오가 직접 밟아서 사라질 뻔한 곳도 있었다. 그래도 표시를 따라가다 보니 토시오가 총소리를 들었던 곳에 도착했다. 선은 그 지점에서 끊어졌고, 떨어져 있던 백묵이 밟혀 산산조각이 났다. 자신이 밟은 것일까.
토시오는 일어서서 기억을 떠올렸다. 토시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호시자와는 그림과 나침반을 비교했다.
"틀림없는 것 같군. 정자의 방향과 일치한다."
그리고 소우지를 향해 말했다,
"미로의 중심부로 가고 싶은데, 안내해 주세요. 지도를 볼까요?"
소우지는 지도가 없어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소우지는 토시오를 대신해 소우지가 먼저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미로는 여전히 깊었다.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마지막 굽이굽이에서 오각형의 돌 테이블이 보였을 때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 대단한 미로네요."
호시자와는 돌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소우지를 바라보았다.
"이 미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이 저택이 지어질 때 동시에 만들어졌어요. 다이쇼 초기에 호도라는 분이 설계했어요. 제 증조부이십니다."
"무엇을 위해 정원에 미로를 만들었을까요?"
"무엇을 위해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곤란하죠."
같은 질문은 많은 카라쿠리 제작자들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인형을 움직이는 것에 몰두하느냐고 묻는다면 말이다.
토시오는 오각형의 돌 테이블을 앞에 두고 주변 울타리를 둘러보았다. 그래, 혼자 있고 싶을 때 이곳이 가장 이상에 가까울 것이다. 일곱 겹 여덟 겹의 울타리 방벽은 한 겹의 철문보다 더 견고했을 것이다. 기행가 호도는 이 미로 속에서 무엇을 사색하고 있었을까?
호시자와는 불이 꺼진 성냥개비를 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 저택 안에 우물은 없나요?"
호시자와는 소우지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물? ...... 조리실에 한 개가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우물은 말랐나요?"
"글쎄요. 우물이 왜요?"
"사실 총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정자로 달려간 사람은 마사오 씨인데, 그때 카오리 씨는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죽지 않았다고?"
소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카오리의 최후를 떠올린 것일까.
"카오리 씨는 자꾸만 입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중 한 마디만 귀에 쏙 들어왔다고 합니다. '마른 우물'이라는 말이었다고 하더군요."

미로를 빠져나오자 수사관 일행을 만났다. 덩치 큰 남자들 사이에 끼어있는 마사오의 가냘픈 어깨가 보였다.
마사오는 짙은 감청색 정장을 입고 흰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색은 입지 않았지만 인상은 거의 상복에 가까웠다. 마사오는 토시오 일행을 발견하고는 바람에 날리듯 곁으로 다가왔다.
"잠시 방으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하네요."
도움을 청하듯 말했다.
"내 방으로 오세요. 우다이 씨도 함께 있어요."
소우지가 마사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봐요, 이렇게 차가워졌어요."
"하지만 카오리 씨의 방에 있으라고 했어요."
"그건 무신경하네. 그렇지 않습니까, 우다이 씨."
마이코는 나라키 경감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경감님, 마사오 씨가 소우지 씨 방에서 쉬어도 되겠지요?"
나라키의 눈썹 사이 세로 주름이 깊어졌다.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소우지 씨는 남아서 우물 안내를 부탁합니다."
소우지는 작은 혀를 내밀며 껌을 입에 집어넣었다.
소우지의 방에 들어가자 마사오는 잠시 안도감을 느끼는 듯 했다.
"밝고, 영리한 사람이었어요."
마사오는 카오리를 회상했다.
"토모히로와 함께 신혼여행을 갔을 때가 기억나요. 숙소에 도착하니 방에 큰 꽃다발이 놓여 있었어요. 꽃다발 사이사이에 메시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카오리 씨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저녁 식사 후 두 사람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요. 우리는 저녁을 먹은 후 창문을 크게 열어놓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어요. ......"
정말 카오리답다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마이코는 가만히 마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오리 씨가 당신에게 이 저택에 살 것을 권유했다고 들었어요."
마사오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곧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카오리 씨의 배려에 감사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카오리 씨는 저와 소우지와의 사이를 모르시거든요. 만약 이 저택에서 소우지와 함께 살게 된다면 그는 또다시 나를 농락할 거예요."
마이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렸다.
"데츠바 씨는 어떻게 지내세요? 아까 만났을 때는 안색이 좋지 않으시던데요?"
"혈압이 조금 높은 것 같아요."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렇게 권유했어요. 하지만 진정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계십니까?"
"그것만은 제대로 복용하고 있어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서 소우지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이런, 저들은 이 집을 유령의 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마른 우물 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정자까지 이어져 있는것 같다고 하면서, 방금 젊은 녀석 한 명이 뛰어들었어요."
"그래서, 구멍은 찾았나요?"
"아니요, 바닥에는 물이 있고, 옆에 구멍은 없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한 명의 진흙 인형이 만들어졌지요."
마사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소우지는 눈치를 보며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진흙 인형, 그것도 정교하게 움직이는 인형이지요."
마사오는 소우지의 과장된 말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나, 웃고 있었어."
"아니, 당신이 슬픈 표정을 짓게 해서는 안 돼죠. 카오리는 당신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오늘 계획을 세웠으니까요. 마침 우다이 씨도 왔으니, 비스크 인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소우지는 일어섰다. 발판에 올라가 유리 선반 안쪽에서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인형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화려한 패션 인형이었다. 루이 왕조풍의 의상은 다소 색이 바랬지만, 손이 가득 찬 꽃 자수에서 당시의 사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인형의 특징은 도자기로 만든 머리였다. 피부는 지금 막 가마에서 꺼낸 것 같은 선명한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반원형의 굵은 눈썹 아래에는 커다란 눈이 있었다. 푸른 홍채가 방사형으로 빛나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풍만한 뺨과 작은 입매. 전체적인 얼굴형은 확실히 마이코를 닮은 것 같았다.
"에밀 주모우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요. 게다가 이 인형은 자동 인형 - '오토마티즈크' - 입니다."
인형은 왼손에 접시를 들고 오른손에는 작은 나팔 모양의 관을 들고 있었다. 소우지는 서랍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안에 있는 액체를 접시에 부었다.
소우지는 병을 치우고 인형의 등 뒤로 손을 뻗어 태엽을 감았다. '딱딱', 작은 소리가 이어졌다.
"잘 보세요."
소우지는 인형에서 손을 뗐다.
작은 톱니바퀴 소리와 함께 인형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형의 오른손이 위로 올라가 왼손으로 들고 있는 접시 안에 관 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에 옮기더니 손아래에 있는 튜브를 입에 넣었다. 다음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형의 가슴이 크게 숨을 쉬자 튜브 끝에서 비눗방울이 튀어나온 것이다.
비눗방울은 관을 벗어나 일곱 빛깔로 빛나며 공중에 떠올랐다.
"가슴의 움직임을 보세요. 솜씨가 아주 섬세하죠?"
인형은 여러 개의 비눗방울을 뿜어냈다. 귀여운 어설픔에 약간의 섬뜩함까지 더해진 인형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소우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인형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기계를 멈춰 세웠다.
"움직이는 인형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겠죠?"
마이코는 인형이 움직이지 않자 소우지에게 물었다.
"기원전 2천 년 전의 인형이 이집트에서 출토된 적이 있어요."
"기원전 2천 년 전이라니......."
"인간은 도구를 만들면서 동시에 인형도 만들기 시작했나 봐요. 게다가 자동 인형도요. 이집트 인형은 몸통과 팔다리를 따로따로 만들어 조립한 것으로, 허리에 있는 끈을 당기면 손이 위아래로 움직여 빵을 반죽하는 동작을 하지요. 일본의 고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형이 출토되었어요."
"인간이 장난감에 쏟아 부은 에너지는 엄청났군요."
"쇼소인에 남아 있는 물건들도 투호, 탄환궁, 바둑, 스고쿠 등 사치와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놀이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요. 그 중의 하나가 카라쿠리 바둑판입니다. 양쪽에 바둑돌을 넣는 서랍이 만들어져 있는데, 한쪽을 당기면 다른 쪽도 나오도록 되어 있지요. 엑스레이를 통해 내부의 장치가 알려졌는데, 매우 정교한 장치가 돋보입니다. 문헌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건 고사기 속 기록입니다. 고야쿠 친왕이 카라쿠리 인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요."
언젠가부터 소우지의 표정에서 어둠이 사라졌다. 좋아하는 카라쿠리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았다.
"......카라쿠리가 성행한 것은 에도 시대였을 거에요. 그 당시에는 시계도 카라쿠리 중 하나였는데, 간분(寛文) 4년에 시조가와라(四条河原)에서 시계 놀이가 유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고 해요. 원래 시계와 카라쿠리의 관계는 깊습니다. 간분 2년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카라쿠리 연극의 기치를 올린 다케다 오오미는 원래 시계 장인이었다고 전해지며, 실제로 에이세이 시계라는 백과사전만한 대형 시계를 나무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가에이(嘉永) 연간에 다나카 히사시게가 만년시계를 만들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건 알고 계신가요?"
"언젠가 국립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카라쿠리 하면 히다다카야마(飛騨高山)의 카라쿠리 수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답니다."
"그렇네요. 아이치, 기후의 축제를 위해서 정교한 카라쿠리가 만들어졌죠. 바닷가에서는 가메자키의 조수제, 산에서는 다카야마의 산왕제.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다카야마의 호테이다이(布袋台)일 것입니다. 우다이 씨, 알고 계시나요?"
마이코도 소우지의 말에 이끌려 장난감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그래, 생각나요. 본 기억이 있어요. 무대에 내밀어진 팔 위에서 천으로 된 칠복신이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리고 두 명의 가라코 (唐子 *중국풍의 옷을 입은 아이)가 여러 개의 가라코를 넘나들며 곡예를 했어요. 마지막에는 두 사람 모두 칠복신의 어깨와 팔에 올라타게 되고요. 칠복신이 손을 흔들면 긴 깃발이 흘러나왔습니다. …….인형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동작들이었어요."
"가라코 인형은 그네를 타고 날아갈 수 있거든요. 이른바 자유분방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분세이 5년에 우에노산 아래, 화재 대피용 공터에서 행해진 축포세공 웃음 주머니는 더 대단합니다."
"웃음 주머니?"
"원래 제목은 '나니와가타하나노 스가타미(なにわがたはなのすがたみ)'. 오사카의 오오에 우베에(大江宇兵衛)라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카라쿠리는 눈알을 움직이면서 여유롭게 화살촉을 닦는 화살촉의 고로(矢の根の五郎), 옷깃에 꽂힌 바람개비에 손을 들며 기뻐하는 아이. 흙다리를 건너는 미인 등 십여 종이었습니다. 춤추는 모습과 말투, 문지기까지 모두 카라쿠리 인형이며, 마지막에 웃음 주머니를 팔았습니다. 칠복신과 가라코들의 놀이에서는 다카야마의 호테이다이와의 연관성도 느낄 수 있지요. 마지막에 이 축포세공 칠복신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크게 웃을 때는 얼굴 표정이나 몸놀림은 말할 것도 없고 배꼽까지 흔들렸다고 하니, 에도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앞 다투어 산 아래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나라도 그렇겠네요."
마이코가 말했다. 마사오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소우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소우지는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덴포 4년, 에도 후카가와 하치만(深川八幡)에서 수호전이 상연되었습니다. 이는 하세가와 칸베에(長谷川勘兵衛)의 작품이며, 수호전의 호걸들이 대거 등장해서 활약하죠. 무대도 간도라케, 세리아케, 텐지라케 등이 많이 사용되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 외에도 오오후네 사계절의 순풍, 요코덴, 기야만선의 카라쿠리 등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케일이 컸던 것은 아사히나(朝日奈)의 대작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금화로도 남아있는데, 머리의 크기가 한 뼘이 넘고, 담뱃갑이 두 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그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인형도 움직였나요?"
마이코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사히나가 들고 있는 연통 위에 인형의 다이묘 행렬이 지나가고, 케누키 위에서 처녀가 춤을 추고, 연통에 달린 네츠케에서 입이 나오는 등 여러 가지 장치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개막 직전에 이 인형은 사사(寺社)봉행관으로부터 흥행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너무 커서?"
"그래요. 당시에는 대형 인형극 금지령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걸렸다고 하네요. 그런데 금지령이 내려진 분세이, 덴포 시대에는 큰 구경거리가 즐비했다고 하네요."
"그런 장난의 유행은 계속 이어져 왔던 건가요?"
마이코가 물었다.
"아니, 카라쿠리라는 것은 공예의 천재가 나타나면 번성하다가, 그 천재가 없어지면 금방 사라지는 것 같아요. 독창적인 천재성과 정교한 기술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거죠. 따라서 평범한 인형사는 인형을 어떻게 움직이느냐보다 어떻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에 제작의 노력을 쏟게됩니다. 그들은 인형의 표정에 움직임을 더하고, 자세에 쓸데없는 고심을 거듭하지만, 정작 인형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죠."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예술 아닐까요? 소우지 씨의 말을 들어보면 예술적 표현보다 기발한 장치가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사람에게는 다양한 입장이 있어요."
소우지는 안경 너머로 웃었다.
"예술가들이 보기에 카라쿠리 인형사들은 얼마나 엉성해 보일까요. 아무리 훌륭한 인형극이라도 그들은 절대 예술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요. 반대로 과학자들이 보기에 카라쿠리 인형사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일 겁니다. 실제로 에디슨은 보캔슨에게 "어린아이 속임수 기계”라고 말했죠."
"카라쿠리 인형은 두 세계 모두에서 어린아이 장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거군요"
"하지만 사기꾼의 눈에는 예술도 과학도 모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의미, 아시겠나요?"
"주모우의 인형을 보니까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 하여튼, 이런 카라쿠리 인기도 초대가 죽은 후 기껏해야 3대 정도까지만 이어질 뿐이었지만, 후대의 연극에는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를 들어, 분라쿠의 '카시라(かしら)'가 그렇죠."
소우지는 일어서서 다른 선반에서 한 개의 인형 목을 꺼냈다.
인형은 둥근 상투머리로 묶여 있다. 부분적으로 칠이 벗겨졌지만, 고운 눈썹과 통통한 뺨에서 기품 있는 유부녀의 색기가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목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속임수가 숨겨져 있어요."
소우지는 목 아래쪽에서 튀어나온 나무 돌기를 눌렀다. '쿵'하고 많은 단단한 나무가 한꺼번에 결합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인형의 이마에서 커다란 뿔이 두 개가 튀어나왔다. 눈이 위로 치솟고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평온한 유부녀가 순식간에 귀녀로 변해버렸다.
토시오는 깜짝 놀랐다. 귀신의 인상이 마사오의 가방 속에 있던 ‘마도죠’의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마이코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귀신을 보면서,
"소우지 씨, 나에게 토모히로 씨가 마도죠라는 인형을 보여 준 적이 있어요. 그 인형은 이 목에서 힌트를 얻은 거였나요?"
"토모 씨가 마도죠를?"
소우지는 목을 다시 돌려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네. 그 인형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 뭐, 이 목이 힌트가 되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겁니다. 이 목은 인형의 한 표정이 그대로 바뀌는데, 마도죠는 한 목에 두 개의 얼굴이 있어 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 취향은 아니라서 나는 제작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뭐, 바보짓이였죠. 토모 씨도 시제품을 한두개 만들다가 결국 내 의견에 동의한 것 같습니다. 판매할 생각도 없던 것 같고요."
소우지의 말 속에는 토모히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느껴졌다. 마이코는 마사오의 얼굴을 옆에서 바라보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 분라쿠의 목도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장난이잖아요?"
"이런,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소우지는 다시 한 번 풍자극 세계의 얼굴이 되었다.
"이집트의 빵 반죽 인형은 당연히 손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이에요. 우다이 씨가 본 다카야마의 호테이타이에서 무대에 튀어나온 팔은 '카라쿠리도이(からくりどい)'라고 합니다. 인형을 조종하는 줄은 여러 개의 기관통을 통해 줄잡이의 손에 전달되는데, 복잡한 줄타기를 하려면 40조에 가까운 줄을 8명의 줄꾼이 협력하여 조종해야 합니다. 당연히 줄을 다루는 장인의 명인에 가까운 기술이 필요한거라 완벽한 카라쿠리라고 할 수는 없어요. 아까 이야기한 웃음 주머니도 마찬가지에요. 천가방 옆에 희미하게 어두워진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는 촛불이 놓여져 있어 살짝 비춰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거기에 장치가 있을 거라고 간파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블랙매직과 같은 원리죠. 당시의 속임수는 모두 똑같았어요.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인형을 조종했던 거죠. 즉, 멜첼의 자동 체스 기사와 같은 발상이었어요."
"즉, 속임수라고요?"
"네, 트릭입니다. 사람이 인형을 움직이는 거죠.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실을 사용하는 방법. 천으로 된 자루대를 사용하는 방법. 멜첼의 자동 체스기사와 같이 사람이 인형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 웃음보처럼 교묘하게 조명의 공조로 인형을 움직이는 인간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법 ......"
"정말 많네요."
"이런 트릭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이 쿄오호오(享保)년도에 출간되었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죠? '기공훈몽감초(機工訓蒙鑑草)'라는 책인데, 방금 이야기한 트릭이 모두 설명되어 있습니다. 물론 자동 체스 기사의 트릭의 원리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케다의 속임수인데, 인형극에서 배우까지도 5촌 상자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죠. 사람이 5촌짜리 상자에 들어갈 수 있을리가 없으니 당연히 속임수고요. 의상만 남기고 배우는 무대 위 구멍을 통해 바닥으로 도망쳐 버리는 거였죠."
"그럼 주모우처럼 완벽한 카라쿠리는 없었나요?"
"그게 바로 ......."
소우지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있어요. 많이 있어요. ‘기공훈몽감초’가 출간된 지 66년 후에 출간된 ‘기공도휘《카라쿠리즈이》’는 완전한 카라쿠리만을 모아놓은 해설서입니다. 실이나 현기증을 유발하는 트릭은 일절 없어요. 기본은 태엽 장치이기 때문에, 첫머리에 시계의 도해가 제대로 붙어 있고요. 각 인형에는 치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고, 작은 부품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이런 책이 한 권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소우지의 눈빛이 빛났다.
"가장 유명한 카라쿠리는 차를 나르는 인형이에요. 주인이 인형의 양손에 들고 있는 쟁반 위에 찻잔을 올려놓으면 인형이 고개를 흔들며 걸어갑니다. 손님이 찻잔을 가져가면 인형은 걸음을 멈추고요. 손님이 차를 다 마시고 찻잔을 다시 놓으면 인형은 다시 걷기 시작해 좌석을 돌아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하라 사이카쿠도 이 인형을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몇 개는 지금도 소중히 보존되어 있지요."
"그것도 고래의 수염으로 만든 태엽 장치를 사용한 것인가요?"
"초기 것은 그렇습니다. 막부 말기에는 금속제 기어와 태엽을 이용한 인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또 수은을 사용한 카라쿠리 인형도 만들어졌고요."
"수은이 인형에?"
"오단반지나 연리반지라는 인형에 수은으로 만든 카라쿠리 인형이 사용되었어요. 이 인형은 손에 들고 봐도 장치가 보이지 않아요. 인형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수은의 이동에 의한 것이지, 태엽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 인형을 맨 윗 단에 올려놓으면, 어느새 양손을 들어 올리고, 몸을 뒤틀고, 돌고 돌기를 반복하며 5단의 단을 이동해 나갑니다. 그 밖에도 잉어가 폭포를 타고 올라가 용으로 변하는 용문폭포, 아이가 북을 치면서 피리를 부는 고테키지도(鼓笛児童), 앞에 놓인 물건이 됫박을 내려놓을 때마다 네 가지로 변하는 물건 인형, 소년이 말의 목을 타고 노는 하루고마(春駒) 인형.... ..."
"정말 많네요."
에도 시대 중기에 이미 대규모 카라쿠리 연극이 상연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토시오에게 있어서는 처음 알게 된 놀라움이었다. 게다가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완전 자동화된 여러 가지 카라쿠리를 듣고 있자니, 그 기술을 이용하여 소정에서 카오리를 쏘아 죽이고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인형을 만드는건 아주 쉬운 공작처럼 느껴졌다.
"너무 수다스러운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네요. 이런 이야기만 들어서는 재미없을 것 같네요. 이제부터 실물을 보여드릴까요?"
소우지는 마사오를 바라보았다.
"마사오 씨, 역립(逆立)인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습니까?"
"역립 인형... 들어본 적 있어요."
마사오는 바로 대답했다.
"언젠가 토모히로가 흥분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소우지 씨가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창고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토모 씨와 둘이서 고쳐서 움직이게 만든 자동 인형이에요."
소우지는 일어서서 책상 위에서 네모난 포장지를 꺼내 세 사람 앞에 놓았다.
낡고 오래된 회색 면 봉투였다. 펼치자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오동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오동나무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위에 '역립인형(逆立人形)'이라고 적힌 필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목화솜으로 감싼 물건이 들어 있었다. 소우지는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에치고 사자 의상을 입은 어린아이 인형이었다. 인형은 사자 목을 달고 만자(万字)의 문양이 새겨진 배꼽티를 입고 있었다. 소우지는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기공도휘'의 목록에도 없는 희귀한 카라쿠리입니다. 태엽 장치에 수은까지 내장되어 있지요.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않았어요.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니까 수은이 증발해서 수은의 양이 줄어들었더라고요. 수은을 보충해 주었더니 신기하게도 작동이 되더라고요. 작가도 분명합니다. 오노 벤키치(大野弁吉), 가에이 2년의 작품입니다."
소지는 상자 뚜껑을 뒤집었다. 표지와 같은 필체로 '嘉永二年三月 大野弁吉 |拵 之《これをこしらう》'라고 적혀 있었다.
"오노 벤키치…… 사기꾼인가요?"
마이코가 흥미롭게 물었다.
“'사기꾼’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보다 폭넓은 학문을 익힌 과학 기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 카라쿠리 기에몬(からくり儀右衛門)의 다나카 히나시(田中久重) 등 카라쿠리를 만든 사람은 모두 걷는 사자를 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찬가지로 학식과 기예가 여러 방면에 이르렀습니다. 오노 벤키치는 가나자와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나가사키에서 난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가나자와의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内)라고도 불리며, 시조류(四条流)의 그림과 조각을 잘했고, 목조각, 죽세공, 금세공, 도자기, 유리공예, 마키에(蒔絵) 등의 작품이 남아있지요. 학식은 의학, 이화학을 비롯해 약학, 천문학, 역학, 항해술에도 능통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그의 천재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소우지는 테이블을 옆에 두고 카펫 위에 공간을 만들어 인형을 꺼내 들었다.
"태엽을 감아볼래요?"
그 말에 마사오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태엽이 어디에 있죠?"
"허리 옆쪽. 하카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됩니다."
"안 돼요. 떨어뜨리면 안 돼잖아요."
"그렇군요. 그럼 제가 감아 드릴게요."
소우지는 세 사람의 곁을 떠나 바닥에 앉았다.
"이 시대가 되면 태엽도, 기어도 모두 금속으로 만들게 되죠. 그래서 보존도 잘 되어 있습니다."
소우지는 즐거워하는 듯이 태엽을 감았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한 번 감았을 때였다.
"아, 아퍼!"
소우지는 갑자기 오른손을 인형에서 떼어냈다.
소우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엄지손가락 밑부분에서 엷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엽이 끊어진건 아니야. 이상하네. 하지만 괜찮을 거야."
소우지는 조심스럽게 인형을 세 사람을 향해 세우게 했다.
인형은 가벼운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걷기 시작했다. 목에 달린 사자 관이 좌우로 흔들렸다. 양손이 움직여 허리춤에 달린 북을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 쿵 하는 북소리와 톱니바퀴 소리가 삐걱거리는 인공의 생명을 움직이고 있었다.
에치고 사자 소년은 세 사람 앞에 이르자 멈춰 서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손님을 바라보았다.
"잘 보세요 ......"
소우지의, 괴로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토시오는 그 목소리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인형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인형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형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뒤로 젖혀졌다. 두 발이 땅을 딛고 인형은 거꾸로 서게 되었다. 두 손 사이로 하얀 얼굴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인형은 주인에게로 걸어갔다.
소우지 앞에서 인형은 멈춰 서서 천천히 두 발을 다시 땅으로 내려놓았다. 인형은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걸음걸이가 다소 어정쩡하게 소우지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멈추지 않아요 ...... 이상하네요 ......"
소우지가 신음하듯 말했다.
토시오는 처음으로 소우지의 얼굴을 보았다. 소우지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얼굴색이 심상치 않았다.
“소우지 씨! 무슨 일입니까?"
마사오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소우지는 걸어가는 인형에게 손을 뻗으려 했다. 순간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서 소우지는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괜찮아!"
마이코가 달려와 소우지를 일으켜 세웠다. 소우지는 열심히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 하지만, 훌륭하군, 그렇지......."
격렬한 고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소우지는 마이코를 튕겨내고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마사오가 무언가 외쳤다.
"의사를 불러!"
마이코가 소우지를 내려다보았다. 토시오도 일어섰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기어 소리가 들렸다. 에치고 사자 인형이 구석에 쌓여 있는 장난감 상자에 부딪혀 옆으로 쓰러져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토시오는 무의식적으로 인형에 손을 뻗으려 했다.
"만지지 마!"
매서운 마이코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수사관들이 달려왔다. 한 수사관은 소우지의 상태를 보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의사가 도착해 맥박을 쟀을 때, 소우지의 숨은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방 전체가 기어 소리로 가득 찼다. 여러 개의 시계가 시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르골이 울려 퍼지고, 시계 인형이 움직였다. 또 다른 시계의 창문이 열리고 기괴한 짐승이 얼굴을 내밀고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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