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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4

프리즌 트릭 - 엔도 다케후미 / 김소영 : 별점 1.5점

프리즌 트릭 - 4점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수형자 미야자키가 사라지고, 창고에서 약품으로 얼굴과 손가락이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건 초기에는 미야자키가 수형자 이시즈카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벽에 붙은 메모 등의 단서 탓이었다. 그러나 다케다 관리관을 비롯한 여러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미야자키였고, 도주한 이시즈카는 다른 누군가가 신원을 도용한 가짜였다는게 밝혀졌다.
그 뒤 교도관 노다, 아즈미노 시장이 차례로 살해되고 나서야 가짜 이시즈카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미야자키가 음주운전으로 죽게 했던 료코의 남편 무라카미 고스케였다. 무라카미는 독자적인 수사를 이어가던 보험회사 직원 시게노가 경찰의 실수로 총상을 입은 사건 뒤, 수기를 보내 사건의 진상을 공개했다. 그는 복수를 위해 미야자키를 죽였고, 여기에는 친구 도다 가즈요시의 도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가장 큰 특징은 현대의 교도소라는 폐쇄 공간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그려냈다는 겁니다. '수형자 (죄수) 중 한 명이 살해당한채 발견되고, 한 명이 사라졌다. 사라진 수형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라진 수형자가 빠져나간 통로는 있는데, 살해된 수형자가 범행 현장까지 오는 통로는 막혀있었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상황에 비한다면, 트릭은 그닥입니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트릭의 핵심은 '바꿔치기'입니다. 도다 가즈요시가 교도소에 잠입한 후 무라카미와 미야자키에게 창고에서 잡무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고위 교도관으로 변장해서요. 그리고 둘은 창고에서 미야자키를 살해했습니다. 일단 시체를 숨긴 뒤, 도다는 미야자키로 변장해서 점검에 임했습니다. 미야자키가 방을 옮기는 '전방일' 이라서 다른 수형자들은 미야자키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걸 몰랐기에 저녁 점검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요. 그 뒤 도다와 무라카미는 각자 자력으로 탈옥했습니다. 이 때 무라카미가 미야자키가 탈옥할 때 빠져나왔을만한 통로를 뚫어 놓았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해서 앞서의 불가능 범죄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외부에서의 침입과 탈옥이 쉬운 공간이라는게 핵심입니다. 곧 있으면 풀려날 경범죄자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정이죠. 하지만 이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교도소를 이런 장소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교도소'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는, 독특한 장소가 무대였기에 가능했던 트릭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습니다.
범행이 범인 무라카미 1인칭으로 묘사된 것도 공정하지 못합니다. 무라카미는 미야자키를 교도관으로 변장한 도다와 함께 살해했습니다. 도다가 미야자키와 변장했고요. 그런데 그런 설명없이 무라카미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함께 작업을 끝내고 나온 것으로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피해자가 방을 이동하는 전방일을 범행의 D-Day로 잡았다는건 꽤 비중있게 설명되고,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작업 후 토할것 같았다는 묘사 -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 - 는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아울러 검시에 따른 사망 추정 시간 폭이 넓었던 것도 불가능 범죄로 보이는데 일조했는데 (명확하게 저녁 점검 전 살해당한게 드러났더라면 트릭은 더 빨리 간파되었을테니), 바로 발견된 사체의 검시 결과가 이렇게 편차가 심할 수 있을까요? 별다른 외부 요인 (예를 들어 불에 태운다던가)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과학 수사를 너무 얕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교도소에서 범행을 저지른 이유부터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작 중에서도 '미야자키가 몇 년 씩이나 교도소에서 썩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교도소에서 죽일 이유는 없다'고 언급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이유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무라카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완전범죄롤 노릴 수도 없었습니다. 피해자 미야자키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수감된 수형자였으니, 상식적으로 피해자의 친인척, 지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잖아요? 도주한 수형자 - 가짜 이시즈카 - 가 범인일텐데, 그 수형자는 누군가가 신분을 도용한 가짜였으니 수형자 얼굴을 미야자키가 일으켰던 사고 피해자 주변인물과 대조해보면 됩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던 무라카미가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트릭을 사용할 이유도 많이 부족해집니다. 저녁 점검을 넘긴 뒤 밤에 몰래 탈옥하기 위한 목적 정도? 그런데 묘사된걸 보면 탈옥은 너무나 쉽습니다. 이럴바에야 밤에 몰래 미야자키를 죽이고 달아나는 것과 다를게 없어요. 구태여 도다가 참여할 이유도 없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목적? 도망친 수형자가 범인인게 뻔한데 알리바이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면서 범행을 기다린 필요도 없었습니다. 백주대낮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으니까요.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행을 결심한 무라카미의 조력자 도다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는 마지막 반전도 뜬금없습니다. 완벽한걸 부수는데 쾌감을 느끼는 정신병자라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 무라카미의 아내를 죽였다는 설정은 뭐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도다는 왜 무라카미의 범행 - 복수 - 을 도왔을까요? 범인이 자기라는걸 모르는건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무라카미를 그대로 놔 두면 이 사실이 어떻게든 폭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를 죽이는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입니다. 이런 복잡한 범행을 저질러가며 본인 스스로도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이유는 없어요. 범행에 사용했던 독물 브론 화합물로 무라카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도 쉬웠을겁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트릭이 사용되었으니 나름 점수를 줄 수는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전개입니다. 일단, 시점 변화와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잘 정리하지 못하고 이야기에 녹여내지도 못합니다. 대부분 쓸데없는 에피소드로 느껴집니다. 전직 기자였던 도이 화재 직원 시게노 다카유키가 신문기자 아사이 유리를 만난 뒤 미야자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한다던가, 시게노가 과거 기자시절 다카하시 의원의 비리를 폭로해서 다카하시 의원의 큰 딸이 자살했다던가, 다케다 관리관의 아이가 PTSD를 앓고 있다던가 등등은 모두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화룡점정은 음주운전으로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던 수형자 나카지마 이야기입니다. 정말 아무런! 쓸모도! 관계도! 없었던 이야기거든요. 음주운전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어 사회파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 의도였던 것 같은데 너무 과했습니다. 없으니만 못했어요.
시게노가 다카하시 의원 비리를 폭로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아즈미 토마토 팜 취재는 무라카미 료코 사건과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이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건 전혀 없습니다. 시게노가 사건과 얽힌것도 우연이고요. 게다가 시게노가 시장 살인 사건의 누명을 뒤집어 쓴 뒤, 홀로 조사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는다는건 너무 억지라서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작가도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란포상 수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졸작입니다.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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