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아레나 - 후카미 레이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년 연말 방송되는 인기 TV쇼 <<미스터리 아레나>>는 출제되는 문제를 맞추면 거액의 상금을 얻는 쇼였다. 대신 틀린 답을 제시한 참가자는 자신의 장기를 이식용으로 기부해야 했다.
올해 문제는 '클로즈드 서클 추리물'로,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동창생들은 매년 모임을 갖는 동창 마리코의 별장에 모였지만, 마리코는 4층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에서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될 때 마다,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가진 참가자는 벨을 눌러 범인이 누구인지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추리 뒤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앞서의 추리는 부정되며 계속 변형되어 나가는데...
후카미 레이이치로의 장편.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의 추리를 이야기한다는건 <<독 초콜릿 사건>> 등을 연상케도 하지만,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추리를 펼치는게 아니라 본편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추리를 펼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종의 배틀이라서 같은 답을 내 놓으면 먼저 답한 사람이 이기는 규칙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여러가지 변수가 발생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수많은 추리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성별 오인이라던가, 이름이나 묘사 등으로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등의 서술 트릭이 많습니다. 꽤 그럴듯한 추리도 등장합니다. "마루모가 범인이고,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왜 마루모가 여자이며, 실제로 범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를 여러가지 단서로 뒷받침하여 주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거든요.
피해자 마리코가 남자였다는 추리도 상황 - 마리코는 드레스를 입고 죽어 있었음 - 을 보면 억지스러우나, 마리코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다는 주장은 꽤 합리적이었어요. 앞서 본편 문제 이야기에 마리코의 본가가 안도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역참>에 그려져 있고, 마리코의 집은 마덮밥 체인점을 한다는 단서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도카이도 53역참> 스무 번째 역참이 마리코 역참으로 마죽 가게에서 마죽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걸 근거로 "마리코"는 성이라는 추리지요. 이를 통해 '피해자 마리코와 다른, 범인인 여성 "마리코"가 있다, 그건 '아키'였다'는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깔끔합니다.
이름을 활용한 서술 트릭은 관리인 히데가 사야카 시점일 때만 英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등 그 외에도 많습니다.
다른 추리들도 볼만한게 몇 가지 있습니다. '범행 현장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인 나선계단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통로가 2개였다', '다이잉 메시지는 S가 아니라 적분 기호로 등장인물 중 세키 분타 (세키분 - 적분)를 가리킨다' 등이 그러했습니다. 앞서 히데 씨와의 대화에서 택시비에 대한 언급을 통해, 실제 별장에 온 사람이 몇 명인지 추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단서들도 곳곳에 잘 삽입되어 있고요.
이런 점들만 보면 장르에 깊은 이해를 가진 작가가 썼다는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고 '본격 미스터리 대상' 2위에 등극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하게 본격 추리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격 추리물과 그 장르를 비틀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성격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에서도 참가자의 입을 빌려 "성별 오인 트릭 자체는 이제 낡을 대로 낡았잖아. 한때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작품에 '마유미'라는 이름이 나오면 거의 백 퍼센트 성별 오인 트릭이 사용됐다고 의심하는게 상식이었을 정도야"라는 말이 나오는 등, 본격 추리물의 작위성을 대놓고 놀립니다. 추리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보다는 이른바 "바카미스 (게임성, 오락성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의외성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큰 작품들)" 류의 추리가 더 많아요. 고양이 다마가 알고보니 사람으로 발레리나였다던가, 사부로가 바라보았던 창 밖의 "가로수"가 사실은 사람 - "나미키 (가로수)"라는 이름의 - 이었을거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정답을 조작했다", 즉 이야기의 분기를 다수 만들어서 누군가 그럴듯한 추리로 정답을 내 놓을 경우, 다른 분기로 이어지도록 조작했다는 게 '미스터리 아레나' 방송의 정체라서 애초에 공정한 추리가 이루어지는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정답이라고 내 놓는건 앞서 알멩이를 다 뽑아먹어서 억지로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황당한 결과일 수 밖에 없고요. 등장인물이자 피해자인 "다이라 사부로"와 다른, "다이라사부로"라는 이름의 인물이 별장에 있었다는 식인데 너무 억지스러워서 할 말이 없을 정도였어요.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요.
후카미 레이이치로의 장편.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의 추리를 이야기한다는건 <<독 초콜릿 사건>> 등을 연상케도 하지만,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추리를 펼치는게 아니라 본편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추리를 펼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종의 배틀이라서 같은 답을 내 놓으면 먼저 답한 사람이 이기는 규칙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여러가지 변수가 발생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수많은 추리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성별 오인이라던가, 이름이나 묘사 등으로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등의 서술 트릭이 많습니다. 꽤 그럴듯한 추리도 등장합니다. "마루모가 범인이고,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왜 마루모가 여자이며, 실제로 범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를 여러가지 단서로 뒷받침하여 주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거든요.
피해자 마리코가 남자였다는 추리도 상황 - 마리코는 드레스를 입고 죽어 있었음 - 을 보면 억지스러우나, 마리코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다는 주장은 꽤 합리적이었어요. 앞서 본편 문제 이야기에 마리코의 본가가 안도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역참>에 그려져 있고, 마리코의 집은 마덮밥 체인점을 한다는 단서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도카이도 53역참> 스무 번째 역참이 마리코 역참으로 마죽 가게에서 마죽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걸 근거로 "마리코"는 성이라는 추리지요. 이를 통해 '피해자 마리코와 다른, 범인인 여성 "마리코"가 있다, 그건 '아키'였다'는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깔끔합니다.
이름을 활용한 서술 트릭은 관리인 히데가 사야카 시점일 때만 英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등 그 외에도 많습니다.
다른 추리들도 볼만한게 몇 가지 있습니다. '범행 현장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인 나선계단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통로가 2개였다', '다이잉 메시지는 S가 아니라 적분 기호로 등장인물 중 세키 분타 (세키분 - 적분)를 가리킨다' 등이 그러했습니다. 앞서 히데 씨와의 대화에서 택시비에 대한 언급을 통해, 실제 별장에 온 사람이 몇 명인지 추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단서들도 곳곳에 잘 삽입되어 있고요.
이런 점들만 보면 장르에 깊은 이해를 가진 작가가 썼다는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고 '본격 미스터리 대상' 2위에 등극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하게 본격 추리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격 추리물과 그 장르를 비틀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성격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에서도 참가자의 입을 빌려 "성별 오인 트릭 자체는 이제 낡을 대로 낡았잖아. 한때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작품에 '마유미'라는 이름이 나오면 거의 백 퍼센트 성별 오인 트릭이 사용됐다고 의심하는게 상식이었을 정도야"라는 말이 나오는 등, 본격 추리물의 작위성을 대놓고 놀립니다. 추리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보다는 이른바 "바카미스 (게임성, 오락성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의외성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큰 작품들)" 류의 추리가 더 많아요. 고양이 다마가 알고보니 사람으로 발레리나였다던가, 사부로가 바라보았던 창 밖의 "가로수"가 사실은 사람 - "나미키 (가로수)"라는 이름의 - 이었을거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정답을 조작했다", 즉 이야기의 분기를 다수 만들어서 누군가 그럴듯한 추리로 정답을 내 놓을 경우, 다른 분기로 이어지도록 조작했다는 게 '미스터리 아레나' 방송의 정체라서 애초에 공정한 추리가 이루어지는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정답이라고 내 놓는건 앞서 알멩이를 다 뽑아먹어서 억지로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황당한 결과일 수 밖에 없고요. 등장인물이자 피해자인 "다이라 사부로"와 다른, "다이라사부로"라는 이름의 인물이 별장에 있었다는 식인데 너무 억지스러워서 할 말이 없을 정도였어요.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요.
설정도 만화적이고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알고보니 <<미스터리 아레나>> 참가자들은 모두 특수 요원으로 방송이 거짓이라는걸 폭로하기 위해 투입되어 관계자들을 일망타진한다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전개도 마찬가지라 본편 문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퀴즈쇼 진행 부분은 과장되고 만화적인 묘사가 넘쳐나 읽기 불편했습니다. 풍자와 조롱을 위해 일부러 더욱 과장되게 쓴 듯 하지만, 보다 진지한 분위기로 추리 애호가들의 문답이 이루어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오답자는 장기 이식 운운하며 생명을 건 추리 배틀을 벌인다는 TV 쇼 설정보다는 말이죠. 아니면 아예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처럼 가볍게 접근하던가요. 지금의 결과물은 진지한건지, 말도 안되는 농담인건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으나, '소설'보다는 '장난'에 가깝습니다. 여러모로 과했어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비슷한 소재라도 히가시고 게이고의 덴카이치 탐정 시리즈 (<<명탐정의 규칙>>, <<명탐정의 저주>>)가 훨씬 괜찮습니다.
덧붙이자면, 작가 이력을 보니 게이오 대학교 문학부 졸업에 파리 부르고뉴 대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사람이더군요. 1963년 생으로 이 작품을 발표한 2016년에는 50대 중반이었고요. 그런 사람이 이런 만화같은 작품을 발표했다는게 의외인데, 한 편으로는 일본식 문화의 저변이 정말 넓고 깊구나 싶은 생각이,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정도 나이와 위치니 이런 본격 추리물을 조롱하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겠구나 싶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