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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4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박연선 : 별점 2.5점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6점
박연선 지음/놀(다산북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수생 강무순은 얼마전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 감시 (?)차 시골 마을 두당리에 유배(?)된다. 아흔이 넘어도 건강한 할머니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시골 생활을 보내던 중, 그녀는 우연히 15년 전 마을 소녀 4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실종 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 게다가 15년전 할머니 집에 와 있던 강무순이 어떤 식으로든 실종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강무순은 마을의 유력자인 경산 유씨 종가댁 후계자 "꽃미남"과 함께 당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게 되는데....

유명 드라마 작가라는 박연선의 작품. 이쪽 바닥(?)에서의 입소문이 제법이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고 처음 든 생각은 입소문이 날 만 하다는 것입니다. 재미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더라고요. 특히 장면장면의 대사가 아주 찰지고 현란합니다. 주인공 강무순이 억지스러운 시골 유폐 생활을 한탄하는 독백은 개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좀 지루해질만 하면 중요한 변곡점이 등장하는 식의 전개라던가, 사연이 있으면서도 개성적인 캐릭터들에서도 드라마 작가로 다져온 솜씨를 발휘해서 독자를 사로잡고요.
한국적인 묘사들도 좋습니다. 두당리라는 시골 마을이 배경인데 세세한 소품, 그리고 설정들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 디테일은 가히 압권입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경산 유씨 종가집과 마을 사람들, 농사와 식사 등 모두가 충실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묘사를 묘사로 끝내지 않고 전개에 슬쩍 끼워 넣는 솜씨도 탁월해요. 명아주라던가 바랭이 풀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에 녹아들어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전개, 묘사에 더해 이야기의 핵심 미스터리도 흥미롭습니다. 15년 전 마을 소녀 4명의 실종 사건이 중심인데, 이것을 강무순이 당시 묻었던 보물 상자와 결합시켜 전개함으로써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거든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수수께끼가 하나씩 드러나는 것도 앞서 말씀드린 주요 변곡점과 합쳐져 독자의 관심을 계속 잡아 끌고요. 이는 보물 지도 속 "다임개술"이라는 기묘한 말과 보물 상자 속 소품들이 무엇인지가 이 소녀들 실종 사건과 연결되는 덕분으로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4명의 소녀가 실종된 것은 모두 개별적 사건이라는 진상도 엄지 척입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그 중에서도 황부영 실종에 대한 진상은 정말이지 최고에요. 지극히 한국적인 비극적 가족 관계를 이야기에 잘 녹여낸 아주아주 괜찮은 이야기였거든요. 이것만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한 편 꾸며도 충분히 좋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좋은 추리 소설, 장르문학이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강무순이 종가댁 꽃미남과 벌이는 조사는 모두 진상과는 무관한 헛된 노력일 뿐이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별다른 추리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녀들 실종 사건은 모두 우연에 의해 해결되니까요. 우선 유미숙을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미행의 결과에 불과합니다. 목사댁 조예은의 사체가 발견된 것도 우연이고요. 황부영 사건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억지스러운 작위적인 설정 - 강무순이 우연히 만난 황부영을 기억하고, 또 우연히 당시 사진을 찍어 조사가 가능했다는 두번의 우연이 겹친 것 - 에 의해 해결되기에 더욱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솔직히 우연히 만난 여성의 엄지손가락을 기억하여 그 여자가 황부영이 아닐까?를 떠올린다는 것 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죠. 
유선희 실종 사건의 진상도 별로이며, 황부영을 통해 알아낸 정보가 도화선이 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게다가 진상은 모두 당사자 (황부영, 종가댁) 입을 통해 직접 듣는다는건 부실한 추리 구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유선희를 임신시킨 진짜 악당이 안체부였다는 진상입니다. 아무런 복선도, 단서도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뜬금없기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최소한 안체부와 꽃돌이가 닮았다는 정도의 단서라도 제공해 주던가...

그 외, 강무순이 타임 캡슐로 묻은 뱃지와 목각인형을 얻은 경로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설명이 부실한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21세기를 무대로 한 작품이 30년 전 <<전원일기>>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시골 마을과 캐릭터 설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는 잘 되지 않았고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을 덮을만큼 압도적인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라면 미스터리 쪽으로도 나름 즐길 만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저는 본격물 애호가라 감점 했습니다만... 한국 추리 소설, 장르 문학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꼭 권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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