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7/10/01

미저리 - 스티븐 킹 / 조재형 : 별점 3점

미저리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황금가지

격조했습니다. 바쁜 일이 생기는 바람에 통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연휴도 되었으니 이 다시 달려 봐야죠.

이 책은 최근 개봉한 <>의 대흥행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스티븐 킹의 대장편입니다. 한창 원숙한 필력을 뽐내던 1980년대 중반 (1987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스티븐 킹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1990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영화화되었는데, 주인공 캐시 베이츠의 명연기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죠. 영화를 오래전에 감상한 덕에 그간 읽어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는데, 연휴를 맞아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전형적인 스티븐 킹의 그것입니다. 작가의 특기 중 특기인 궁지에 몰리고, 위기에 처하게 되는 주인공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전편에 걸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가공할만한 악의 덩어리 애니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찾아봄직한 크리쳐들, 그리고 싸이코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고요. 아울러 폴과 경찰 등에게 벌어지는 잔혹한 폭력을 상세하게 그려낸 고어 묘사로 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것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긴장감을 자아내는 솜씨가 일품이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집 한 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전부라 스케일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상황과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감을 자아내는 전개가 아주 빼어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애니의 집에 젊은 경찰이 찾아왔을 때 폴의 심리 묘사 ("아프리카!!!!")는 정말 최고로 치고 싶어요. 말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딜레마의 순간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은 달리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과연 거장은 거장이에요.

또 전형적이라고 하였지만, 확실한 차별화 요소들도 재미를 더합니다. 미친 광팬 애니에게 사로잡혀 그녀만을 위한 새로운 소설을 써야 하는 신세가 된 소설가 폴에 대한 설정부터가 아주 독특해요. 광팬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지금에는 딱히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분명 아주 참신한 이야기였음이 분명합니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 <<더 팬>>이 발표된 것이 1997년이니까요.
게다가 애니가 단순히 세헤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듣는 왕이 아니라, <<미저리>>의 광팬으로 상세한 내용을 꿰뚫고 있다는 것도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폴이 대충 쓴 도입부만 가지고 '이야기가 불공정하다'고 지적하여 폴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일종의 편집자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생각되네요. 이를 애니가 이야기하는 '로켓맨이 비행기 좌석 밑 낙하산을 발견하는 것'을 폴이 철지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생각하여 비웃다가 결국 '공정하다'는 말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전개로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아주 그럴듯했고요. 애니와 폴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끄집어낸 명장면이라 생각됩니다.
탄탄한 캐릭터 설정으로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작가적인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폴의 심리묘사는 그 중에서도 아주 돋보였어요. 애니가 그냥 미친게 아니라 나름의 루틴, 철학과 삶이 있다는 것으로 보다 공포심을 이끌어내는 묘사도 훌륭했고요.

또 몇가지 장치를 통해, 폴이 애니에게 휘둘리는 것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도 괜찮았어요. 첫번째는 자동차 사고로 폴의 두 다리가 박살나다시피 한것, 두번째는 이 상처 때문에 애니가 공급해주는 진통제 노브릴에 폴이 중독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여기에 애니가 지닌 흉폭한 과거와 때때로 엿보이는 잔인한 행동 묘사가 더해져, 폴은 완벽한 애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킹의 최고작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에요. 폴이 애니를 죽이기 위해 식칼을 하나 숨겨놓은 것이 들통나는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날 들통난다는게 쉽게 와 닿지는 않았어요. 애니가 저지른 과거의 범죄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는 상황이 아니었고요.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애니를 제압하는 장면 묘사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돌아온 미저리>> 원고를 태우는 것으로 충격을 준 뒤 습격한다는 내용이긴 한데... 우연이 결합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결판이 날 것이라면 앞서 있었던 생고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타자기로 근력을 조금 붙인 뒤 습격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어차피 뭘 해도 죽을거, 고생이라도 좀 덜 하는게 낫지 싶은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애니의 환영에 시달리며, 소설가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결말은 완전 사족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대표작 중 한편이라고 칭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읽는게 전혀 힘들지 않는 몰입감을 선사해 주는, 재미 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킹의 쫄깃한 심리 묘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