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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아름다운 흉기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1.5점

아름다운 흉기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스포츠 의학계에서 유명한 센도 고레노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던 와중에, 누군가 경찰을 살해한 후 총기를 훔쳐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녀는 바로 센도가 양성하던 궁극의 운동선수 '타란툴라'. 그녀는 센도를 살해한 과거 유명 스포츠 선수 4인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쿄로 향하고, 그들을 한 명 씩 차례로 참혹하게 살해해 나가는데...


긴 연휴를 버티기 위한 목적으로 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얼마전에 읽었던 단편집은 별로였지만 장편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 역시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유는 많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추리 소설이 아닌 탓입니다. 타란툴라가 은퇴한 스포츠 선수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전부이며, 복수는 그녀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기대고 있을 뿐이라 별다른 두뇌 게임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찰 수사라도 치밀해야 할텐데 이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타란툴라가 복수 과정에서 본인을 숨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묘사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녀가 복수를 거의 성공할 때 까지 찾아내지 못하거든요. 무려 키가 190 가까이 되는 외국인 여성이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복수를 행하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인지 경찰 여러 명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데도 캐릭터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뭐 하는게 있어야 기억에 남죠....

추리적으로 별게 없다면 전개에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타란툴라의 신체 능력이 너무나 압도적이며, 복수도 너무 쉽게 이루어지기에 긴장감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임산부를 보고 갑자기 감성적으로 돌변하여 자멸한다는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 없고요.
아울러 독자로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복수 대상인 도핑 4인방은 어쨌건 과거 도핑 경력에 더해 센도를 죽인 일당이니 벌을 받아도 싸고, 타란툴라 역시 복수라는 명분은 있지만 아무 죄도 없는 경찰을 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니 선역이라고 볼 수 없어요. 결국 악당들끼리 서로 죽이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이래서야 관심이 갈 리가 없잖아요.

사실 이렇게 특수 능력을 갖춘 킬러가 복수를 진행하고, 경찰이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작품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습니다. <<신주쿠 상어>> 시리즈 두번째인 <<독 원숭이>>가 대표적이죠. 그러나 단순히 비교해 보아도 <<독 원숭이>>에서 복수 대상은 사악한 야쿠자이고, 독 원숭이가 복수를 행하는 이유도 충분히 공감할만해서 독자는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습니다. 독 원숭이를 쫓는 사메지마의 활약도 충분히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단 한 개도 갖추지 못해서 여러모로 실망스럽습니다. <<독 원숭이>>가 그닥 훌륭한 작품이 아닌데도 말이죠.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4인방 중 한명인 사쿠라 쇼코가 진정한 흑막이라는 진상, 반전이 대표적입니다. 그녀가 센도를 살해한 총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그 총을 사용하여 타란툴라에게 한 방 먹이고, 히우라 유스케를 살해하여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다는 계획은 꽤 그럴 듯 하거든요. <<아름다운 흉기>>라는 제목이 타란툴라가 아니라 쇼코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무릎을 치게 만들어요. 아울러 경찰이 진상, 진범을 눈치채게 된 이유가 히우라 유스케에게 총을 쏜 인물의 신장이 160 이하일 것이라는 검시 보고서 때문이라는 전개 역시 합리적입니다.

이과계열 작가다운 독특한 도핑 이론도 눈길을 끕니다. 특별한 스테로이드를 여성에게 장기 투약하여 조기 유산하는 체질로 만들어, 여자를 항상 임신 상태에 있게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임신 상태는 근육이 생기기 쉬운 등 여러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여러모로 실현은 불가능하겠지만 뭐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했어요. 이 덕분에 타란툴라가 복수하는 이유 (아이의 아버지?)도 나름 부각되고요.

그래도 장점에 비하면 단점이 더 눈에 뜨이며,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도 너무나 시시한 이야기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무리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차라리 SF 스릴러로 보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추리적으로 별 내용이 없고, 강화인간의 복수 과정이 중심이 된 이야기니까요. <<블레이드 러너>>나 <<사일런트 뫼비우스>>처럼 말이죠. 타란툴라가 스포츠 의학, 도핑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강화인간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은 <<윈터 솔져>>하고도 좀 비슷해 보입니다. 내용이나 설정을 놓고 본다면, 영화나 만화로 발표되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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