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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구제의 게임 - 가와이 간지 / 이규원 : 별점 1.5점

구제의 게임 - 4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작가정신

미국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 안에 자리한 ‘성스러운 나무 언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홀리파인힐’ 골프코스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는 ‘골프 신의 총애를 받는 남자’ 닉 로빈슨이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18번 홀에서 위기를 맞이한다. 첫 타를 숲에 박은 것이다. 그곳에는 기병대에 의한 원주민 학살이 이뤄졌다는 불길한 전설이 내려오는, 4,500년 수령의 거목 ‘신의 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신령한 나무는 오르면 벼락을 맞고 떨어지다가 옆의 나무기둥에 몸통이 관통되어 죽는다는 재앙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로빈슨과 캐디 토니 라이언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지만, 이튿날 로빈슨은 골프 역사에 영원히 남을 기록을 세우고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이듬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일본계 미국인 잭 아키라 그린필드와 캐디 팀 브루스는 첫 승에 도전한다. 하버드에서 진화심리학을 전공한 잭은 자신만의 골프 이론과 탁월한 기술을 겸비한 천재 골퍼다. 그러나 대회 당일 아침, 18번 홀에서 깃대에 복부가 관통된 끔찍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되는데…….<<출판사 소개에서 인용>>

<<데드맨>>의 작가 가와이 간지가 쓴 본격 추리 장편.
솔직히 작가의 전작에 대한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부분은 괜찮았지만, 전개가 영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책이에요.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기 힘들어져서, 온라인 도서관으로 읽을거리를 찾다가 소갯글을 보고 호기심이 당겼습니다.
호기심이 당긴 이유는 딱 한가지, 작품이 "골프"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크 살인>>이나 <<마구>>처럼 야구라던가, 엘러리 퀸의 단편의 소재로 등장했던 권투딕 프란시스의 모든 작품에 소재로 사용된 경마<<검은개>>와 <<사라진 테니스 스타>>의 테니스, 스키 등 여러가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골프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신선함에 더해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지만, 규칙은 잘 알고 있고 평소 관심을 두어 왔기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런 스포츠 소재 작품들 중 어떤 작품은 단순히 해당 경기의 선수가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다행히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사건의 핵심 동기가 '벌타'규정에 따라 우승을 놓치게 된 슈퍼스타 닉 로빈슨의 캐디 토니 라이언이 어쩔 수 없이 벌인 부정행위이며, 또 이 부정행위 탓에
1. 캐디의 판단보다 세 단계나 짧은 클럽을 선택했다.
2. 루틴을 무시하고 손수 클럽을 뽑아 들었다.
3. 서드 샷 전에 에이프런에서 한참 멈칫거렸다.
4. 지극히 단순한 라이에서 생크를 냈다.
5. 우승 공을 처음으로 직접 챙겼다.
6. 우승 직후 뜻밖의 은퇴 발표를 했다.
7. 은퇴 이튿날 18번 홀에서 드라이버 연습을 했다.
이라는 닉의 이상한 행동들이 결정적 단서가 되니까요.
게다가 이 부정행위 탓에 협박받게 된 캐디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장소가 US 오픈이 열리는, 요세미티에 위치한 더 홀리파인힐 리조트이며, 탐정 역할을 맡은건 US 오픈 출전권을 갓 획득한 일본계 미국인 잭 아키라 그린필드이고 왓슨 역할은 그의 캐디 팀이 수행한다는 점, 그리고 “골프는 훌륭한 스포츠야. 바람, 풀, 나무, 물, 모래, 흙, 늘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잖아.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서 실수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아.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지." 라는 잭의 후원자 맥거번 회장의 말이나, "골프는 스포츠 중에 유일하게 심판이 없는 경기다, 골퍼는 양심과 자존심을 걸고 규칠을 지키며 정직하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잭의 말 등 이야기 전반에 걸쳐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골프 추리 소설' 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작품입니다. 제목도 아주 근사하지요.

<<데드맨>>도 그랬지만, 추리적으로도 꽤 그럴싸합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닉 로빈슨의 기묘한 행동을 파고들어 해당 경기에서의 부정을 밝혀내는 부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사건을 담당하는 휴즈 형사의 접근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토니 라이언이 살해된 현장을 보고 세 가지 의문을 느낍니다. 첫 번째는 왜 전설과 일치하도록 범행했는지, 두 번째는 깃대로 어떻게 몸을 관통시켰는지, 세 번째는 왜 많은 사람이 모이는 US 오픈 현장에서 범행했는지입니다. 그러나 휴즈 형사는 앞의 두 가지는 버리고, 마지막 의문에만 집중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의문이며, 이 의문을 풀어 범인을 체포하면 앞의 두 가지는 범인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논리인데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온갖 불가능 범죄가 난무하는 고전 본격물에 도입하면 꽤 괜찮겠다 싶은 현실적인 추리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잭과 팀의 티격태격하는 대화는 만담같은 재미가 잘 살아있으며, 가끔 등장하는 골프 장면도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역시나,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토니 라이언 살인 사건의 동기가 닉 로빈슨의 마지막 경기이며, 그 중에서도 다른 공을 발견한 척 했다는건 읽다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를 밝혀내려고 하는 휴즈 형사와 잭의 추리에 대한 흥미는 상대적으로 떨어져요. 그런데 다른 피해자 앤서니 스미스가 발견되고, 그가 닉 로빈슨 마지막 경기에서 공을 발견한 당사자였다? 이렇게 되면 진범은 닉 로빈슨이거나, 최소한 닉이 강하게 연루되었으리라는건 뻔한 추리입니다. 앞서 휴즈 형사의 추리 방법론에 따르면 그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내면 되는거죠.
또 토니 라이언이 닉을 보호하기 위해 앤서니 스미스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진상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토니의 동기는 설득력이 높지만 인디언 전설에 따라 현장을 조작할 이유는 전혀 없었거든요. 토니는 자신도 살해된 것처럼 꾸며서 닉을 지키기 위한 의도였다고는 하는데, 동기가 명확하기 때문에 닉이 빠져나갈 방법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앤서니 스미스의 시체를 싣고 US 오픈 현장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차와 함께 불타버리는게 더 나은 해결 방법이었을거에요.이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실력이 아무리 봐도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아울러 끝이 뭉툭한 깃대를 몸에 관통시킨 방법은 드라이버 샤프트로 미리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는 진상 역시 그다지 새롭지 않을 뿐더러 무의미했어요. 차라리 앤서니 스미스의 몸을 관통한 나뭇가지 끝은, 사고 후 부러졌다는 추리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물들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것도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입니다. 주인공 탐정인 잭에 대한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하버드에서 진화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골프는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1년 만에 골프 스윙의 진리를 발견한 뒤 US 오픈 출전권을 획득했고 일종의 시범 게임에서 세계 1위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묘사는 해도 너무하지요. '사고기계' 반 두젠 교수도 규칙만 이해하면 충분하다며 체스를 익힌지 단 하루만에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기긴 했다지만 이건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21세기에 먹힐 수 있는 설정은 도저히 아니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골프를 소재로 한 거의 유일무이한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골프를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께 어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추리 애호가에는 그닥 인상적이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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