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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7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럭저럭 좋아합니다. 작품들의 편차가 커서 선뜻 읽게 되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이 단편집은 스스로가 선정한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오랜 만화가 경력 기간 중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뽑았다면 전부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목차는 크게 3장, <<제 1장 신이 된 인간, 혹은 귀신이 된 인간>> 과 <<제 2장 기괴한 사건이 일어나다>>, <<제 3장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다>>로 나뉘며 제목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각각 1장에 3편, 2장에 2편, 3장에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대표 시리즈들이 적절히 선정되어 있으며, 작가의 평상시 작풍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기대에 값했다고 할 수 있죠.

국내에 기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이는 '자선 단편집' 특성 상 어쩔 수 없었을겁니다. 이 정도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팬에게는 충분히 어필할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도원기>>
도연명이 원량, 잠과 함께 복숭아 나무에 숨겨진 마을에서 불로장생을 꿈꾸지만,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출세작인 중국 호러 판타지 중 한 편입니다. 속세의 모든 것을 내려두고 불로 장생을 꿈꾸는, 즉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신이 되고 싶었지만 신이 되지 못한' 인간들의 종말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연명이 그들과 함께 하려다 헛된 꿈을 꾸고 만다는 내용이지요.

내용 자체는 굉장히 평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로장생 마을은 요상한 요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요물이 사라지자 모두 백골로 화했다는 전개는 뻔하디 뻔하니까요. 그러나 마을의 비밀을 더듬어 나가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치며, 도연명의 본명이 도잠, 자는 연명 또는 원량으로 일행이었던 원량과 잠도 그 자신이었다는 반전은 독특합니다. 1980년 발표 작품인데, 작가 자신의 스타일이 충실히 구현된 좋은 작품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진수의 숲>>
오랫만에 마을로 돌아온 '나'는 산책 중 신사 근처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다가 기묘한 시대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누군가에게 잡혀 왼쪽 눈이 뽑혀 나간 뒤 신사에 감금된다. 1년에 한 번, 인신 공양에 이용되는 '두옥'이라는 신령의 권속인 산 제물로 선정된 까닭이었다. '나'는 신사를 탈출하여 숲에 숨어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버티다가, 스스로 '귀신'이 되었다는걸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현대'로 이동한다.

'귀신이 된 인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작품. 일본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인신공양의 대상으로 신령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귀신,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요괴 헌터>> 느낌이랄까요? '한쪽 눈이 빠진' 상태와 도깨비를 연결시킨 아이디어도 좋아요.

그러나 아쉬운건 결말이 다소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된 뒤 다시 타임 슬립하여 현대로 돌아온다는건 안이한 발상이 아닌가 싶거든요. 딱히 반전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복수 클럽>>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통해 맞이하는 갖가지 불행들이 사실은 '복수 클럽' 때문이라는 내용의 작품. 불특정 다수가 회원이라서 상관없는 사람의 복수를 대행시킨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귀신이나 이세계 이야기, 설화나 SF적인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현대 사회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회 풍자극이자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런 작품은 정말이지 처음 보네요.
그러나 반대로, 왜 이런 작품을 많이 그리지 않았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작화라던가 전개 방식이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후지코 후지오의 <<웃는 세일즈맨>> 같은 형식에 더 적합한 아이디어라 생각이 되더라고요. 더 웃기거나, 더 극적인 반전이 있는 쪽으로 가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3.5점.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모가지괴>>
<<이계록>>에 수록되었던 중국 설화 이야기. 안정적인 작화와 전개 모두 괜찮은 수작입니다. 별다른 반전이야 없지만 원전이 되는 이야기가 그러한 탓이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왜 <<이계록>>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살아있는 목 사건>>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이죠. 기괴하면서도 일상에 맞닿아 있고, 또 은근히 웃기기까지 한 좋은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대충 손가는대로 그린 듯한 작화도 이야기의 멋을 잘 살려줍니다. 누가 뭐래도 작가의 최고 대표작 중 한 편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연못의 아이>>
남아메리카 오지의 차크타 호수에서 동물처럼 지내는 두 남녀가 발견된 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아이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애매하며, 여자 쪽은 헐리우드의 총아가 되지만 남자는 목동으로 살다가 자살한다는 결말도 뜬금없습니다. 딱히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며 흥미롭지도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이의 놀이>>
어린이들이 몰래 키우던 무언가가 그 아이를 대체한다는 내용. 단순한 일상계 호러가 아니라, 사춘기나 '철 든다'는 특정 시기의 변화를 이러한 존재의 대체로 설명하려 한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러나 주인공이 이런 변화를 너무 쉽게 수긍하는건 좀 석연치 않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걸 더 극적으로 그려내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또다른 <<바디 스내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역립 원인>>
직립 원인의 미싱 링크로 역립 원인이 있었을 거라는 황당한 아이디어의 꽁트. 별점을 주기 애매한 쉬어가는 소품입니다.

<<꿈꾸는 기계>>
사람들은 모두 꿈만 꾸고, 일상 생활은 기계로 대체된 사회를 그린 SF. 1974년 발표된 작품인데 <<매트릭스>>와 너무나 똑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 요소를 빼고, 액션만 넣는다면 <<매트릭스>>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시대를 20년이상 앞서간 작품이에요.

그러나 작화가 이야기와 영 어울리지 않다는 문제와 함께, 전개가 약간 아쉽습니다. 도시가 정지해버리는 결말도 너무 안이하고요. 한 발자욱을 더 못 나간 느낌이랄까요? 오토모 가즈히로가 그려내었더라면 영원히 이름이 남을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거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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