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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Beck 1~34 해롤드 사쿠이시 : 별점 3.5점

벡 Beck 34 - 8점
사쿠이시 해럴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해롤드 사쿠이시의 장편 록 밴드 이야기. 요사이 답답한 일상이 이어지던 차에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굉장히 단순합니다. 무명의 인디 밴드가 No.1이 되는 이야기를 주인공 유키오의 성장과 함께 그리고 있는데 '음악'을 정말 멋지게 그려내면서도 열혈 배틀물의 전개를 띄게 만든게 이 작품을 당대의 인기작으로 만든 요인입니다. 최강자에게 짓밟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차분히 힘과 실력을 키우고, 타고난 재능이 뒷받침되어 결국 최고의 정점에 우뚝 선다는 전형적인 흙수저 성장기이기도 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밴드 멤버들의 개성은 물론 경쟁 밴드의 캐릭터성도 확실히 구축되어 보는 재미를 더해 주며, 음악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유키오와 유우지의 모습 역시 언제 보아도 흐뭇하고 훈훈해서 마음에 듭니다.

물론 장기 연재작답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우선 유키오와 마호의 관계가 수시로 엇나가는 걸 들 수 있는데 그나마 이 정도는 허용 범위고... 밴드에 닥치는 위기들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읽다보면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거의 모두 류스케가 가져온, 자초한 것이라는 것도 짜증의 요인 중 하나고요. 일본 굴지의 프로듀서 란의 눈밖에 난 이유는 사소한 것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레온 사익스의 개와 기타를 훔친 것은 명백한 범죄로 변명의 여지는 없으니까요. 술 문제로 공연에 지장을 초래한 일탈도 마찬가지라서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Beck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원래는 류스케의 원맨 밴드에 가까왔지만 숨겨진 리더로 베이스 타이라가 급부상했고, 이후는 류스케보다 유키오의 천재성과 스타성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니 자존심 강한 류스케가 계속 버텼을지 의문이거든요. 즉 타이라가 리더인 유키오와 유우지의 3인 체제로 재편된 후 치바는 록 밴드에서 MC로서의 제약을 체감하고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했을 것 같네요. 류스케는...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처럼 마약, 알콜 중독으로 경력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급사해 버렸을 테고요. 이렇게 되면 아집을 벗어던지고 Beck은 사이가 좋아진 란과 벨 암과 손잡고 앨범을 내었을 수도 있겠죠. 여러모로 아쉽군요.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며 쓰고 있는데 OST는 영 별로네요. Toy도 그랬고, 코우카 윤의 <<어시안>> OVA에서도 그랬지만, 음악을 다룬 만화 작품의 OST가 실제로 좋았던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 만화에서 표현하는 전율의 보컬이나 노래는 없네요. 게다가 가사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에피소드들에 부합하는 곡들, 'Out of Hall'이라던가, 작 중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Devil's way'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애니메이션 OST는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다룬 만화 중에서는 All time best 중 한편으로 꼽아도 무방할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읽다보니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어 재미있었습니다. 기타, 밴드, 록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물이 사뭇 다르기 때문인데 우선 주인공부터 비교해 볼까요? <<고독한 기타맨>>의 이강토는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봄을 사랑한다는, 병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천재이고 유키오는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충분한 음악 소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키오 쪽이 설득력이 높죠. 
이강토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 증오를 바탕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80년대~90년대 초반 한국 극화 주인공들과 똑같아요. 사랑을 위해 지면 안되는 경기를 고의로 망치고 실명한거나, 링에서 죽어 버리는 등 모두 다 마찬가지인 그 시절의 초상인데 유행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와 닿지 않습니다.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 해도 고등학생이 아폴네르의 시를 읆으며 누군가에게 목숨을 건다는 건 정신병이라고 봐야죠. 유키오처럼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높은건 당연합니다. <<고독한 기타맨>>에서 유일하게 사실적인건 봄이 강토를 거부하는 것 뿐이에요.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무능력한 고아보다야 음반 회사 사장 아들로 장래가 보장된 푸른땅에게 마음이 가는게 뭐가 이상합니까? 심지어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한다면 감동보다는 부담을 먼저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 테고요. 그런데 푸른땅을 악당처럼 묘사한 내용은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어요.

게다가 두명 다 천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강토는 거의 지옥훈련과 같은 훈련을 받으며 기타를 익히지만 유키오는 꾸준한 연습, 라이브를 통해 실력을 키우죠. 이 역시 어느 쪽이 더 설득력 높은지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타가 지옥훈련으로 실력이 는다는 것도 웃기는 발상이고요.
전미 최고의 밴드 다잉 브리드의 보컬 맷이 유키오의 보컬을 인정하는 것, 밥 딜런이 이강토의 기타 실력을 인정하고 앨범 제작을 돕는다는 설정도 어찌보면 같지만 밥 딜런이 너무 전능하게 그려지고 앨범 제작이 일사천리라 이 역시 Beck 쪽의 설득력이 훨씬 높습니다.

그나마 강타가 성장하여 세속을 초월한 음악의 신이 된다는 결말만큼은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봄에 대한 사랑도 모두 잊어버리고 음악에 모든 걸 바친 후 승천한다는 결말 외에 몇 달 같이 지냈을 뿐인 장애우 소녀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사족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야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고독한 기타맨>>은 지금 읽기에는 시대 착오적인 코미디입니다. Beck은 아직 유통기한이 살아있는 생생한 작품이고요. 두 작품의 발표시기는 20년 차이가 나지 않는데, 앞으로 이 차이는 계속 벌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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