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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그것 1~3 - 스티븐 킹 / 정진영 : 별점 2점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메인 주 데리 시에는 수십년 주기로 대형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다. 정체모를 '그것'에게 동생 조지가 희생당한 소년 빌 덴브로는 절친 '악동 클럽' 멤버들과 함께 '그것'을 퇴치하지만 그 대신 그것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십여년이 지난 후, '그것' 이 돌아오고 악동 클럽 멤버는 이전의 약속대로 다시 모여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데...


스티븐 킹의 장편 호러 모험 소설. 얼마전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롭게 셋트 버젼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길어요... 초반 빌 덴브로의 동생 조지의 죽음 이후, 데리에 다시 광대 귀신이 나타났다는 전개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 38살 성인이 된 빌 덴브로와 어린 시절 왕따 클럽 친구들 모두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전개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길어요. 재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묘사가 많은 탓이 큽니다. 캐릭터부터가 비슷해요. 빌 덴브로와 벤, 에디와 리처드는 서로 캐릭터가 많이 겹치니까요. 분량 정리를 위해서라도 캐릭터는 좀 줄였어야 했습니다. 스탠리가 공포에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설정은 공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던 만큼 스탠리는 등장시키더라도 리더 (인간 기사) 빌 덴브로, 떠벌이 (음유시인, 힐러) 리처드, 행동파이자 과묵한 덩치 (몸빵 탱커이자 장인) 벤 한스컴, 홍일점이자 명사수인 (원거리 딜러) 비벌리 마시의 4인 파티면 충분했을겁니다.
'그것' 페니와이즈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충분한데 11살 때 왕따 클럽이 모이고 뭉치게 된 계기인 헨리 바워스 패거리와의 충돌에 관련된 묘사가 너무 길고 많은 것도 마찬가지의 단점이에요. 이와 비슷한 시골 마을에 만연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왕따, 인종 차별 등의 묘사도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했고요. 이런 걸 읽으려면 <<시체 (스탠 바이 미)>> 로 충분합니다. <<시체 (스탠 바이 미)>>의 등장 인물들을 가지고 공포 소설을 써 보려고 한 시도라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는 페니와이즈라는 초월적 존재인 절대악이 가진 능력에 비하면 하는 행동이 유치한 탓도 커요. 사람을 뜯어버리는 괴력에 자연 현상을 거스르고, 변신 자재에 공간 이동까지 할 수 있으며 데리라는 중형 도시를 지배하여 희생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가 하는 짓이라곤 주로 약한 어린 아이를 환각에 빠트리고, 꾀어 내 죽이는 정도라니 뭔가 밸런스가 안 맞잖아요. 살짝 언급되는 대로 초기 데리 마을 정착자 480 여명을 한 번에 휩쓸어 사라지게 만든 정도의 위력은 보여 줬어야 합니다. 이러한 페니와이즈보다는 차라리 바워스나 헨리와 같은 개막장 정신병자 인간들이 더 무서웠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불변의 진리죠.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까지 섞여 쓸데없이 길어진건 역시나 문제입니다.
게다가 최후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꽤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광대 모습 대신에 흔해 빠지고 식상한 (지금 시점이기는 하지만요) '거미' 형태를 취한 것 부터 시작해서 리처드에게 휘둘려 패배하고 마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이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망스럽더라고요.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으로 없앨 수 있다는 주제야 나쁘지 않지만 고작 리처드 한 명에게 휘둘려 무너질 정도라면 성인이 된 악동 클럽을 다시 불러 대결을 벌일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헨리 바워스 한 명 보다도 떨어지는 전투력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페니와이즈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현란한 환각에 대한 묘사는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쓰여진지 이제 삽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무리였습니다. 워낙에 자극적인 컨텐츠에 단련된 탓이죠. 페니와이즈 자체가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묘사라면 모를까, 동상이 움직이고 개수대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은 화려하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딱히 받기 어려웠어요. 또 이러한 묘사를 위해 불필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왕따 클럽이 다시 모인 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이유로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개인 행동을 하면서 각자 무서운 환각을 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친구와 함께 했을겁니다.

전개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갑니다. 모든 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것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의 정점은 인터넷 상에서도 논란거리인 베벌리와 왕따클럽 멤버들 간의 성관계죠. 이야기 전개와는 큰 상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이유도 베벌리가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을 뿐이니까요. 생각한걸 실천하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물론 30년이 지난 후 다시 영화화가 될 정도로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성장기스러운 부분은 나름 가치가 있고, 어린 시절 왕따 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여 페니와이즈를 상대한다는 전형적인 모험물 서사도 재미는 있으니까요.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고향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점의 교차 전개도 절묘한 부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은 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상한 현상을 삶 속에 잘 받아 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신경망이 마비되고 결국에는 미치거나 죽는다는 것인데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아이들 때에는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을 용감하게 준비했지만 능력있고 부자가 된 어른 시점에서는 그를 두려워 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이겠죠. 그 뒤 다시 하나로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린 후에나 다시 맞서 싸울 결심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낡았으며 별로 무섭지 않아 감점합니다. 무엇보다 큰 감점 요소는 페니와이스의 허무한 결말이에요. 등장인물을 쳐내서 한 권 분량으로 줄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텐데 말이죠.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혹 궁금하시더라도 영화만 보셔도 충분할 듯 싶네요.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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