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새점 탐정 - 김재성 지음, 이영림 그림/푸른책들 |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가 청계천에서 새점을 치는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 되며 새점 치는 법을 배운 후, 새점을 빙자한 추리 (?) 쇼를 통해 여러가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의 아동용 추리 소설. 경성을 무대로 한 독특한 추리물같아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추리적으로는 분량에 비하면 제법 풍성한 편입니다. 작품 속에서 새점 탐정이 해결하는 사건은 처음에 1대째 새점 탐정인 할머니가 해결하는 주먹코 할아버지 가보 도난 사건, 주인공 소녀 강영재가 처음으로 전면에 나서는 미쓰비시 백화점 사장 아들 납치 사건, 할머니가 죽는 계기가 되는 박준성 살인사건, 그리고 마지막 떠나기 전에 해결하는 일상계스러운 청계천 아이들 동전 도난 사건까지 4개나 되거든요.
하지만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정말 몇 안되는 단서로 결론을 도출하는데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청계천 아이들 동전 도난 사건은 추리가 아니라 그냥 함정 수사에 불과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탐정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새점은 새가 무작위로 쪽지를 물어오는게 아니라 점쟁이가 점을 치려는 사람들의 표정, 눈빛, 옷차림, 걸음걸이 등을 관찰하여 새에게 해답에 맞는 쪽지를 뽑게 하는 것이라는 점쟁이 탐정 설정이 아주 좋거든요. 지역, 신문 기사 등으로 주요 사건을 파악하고 온갖 지식에 능통하며 이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추리력도 갖추고 있다는 배경 설명으로 충분한 설득력도 갖추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점쟁이 탐정'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아주 괜찮아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딱입니다. 탐정업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우리나라에 어떤 '의뢰인'이 찾아와서 돈을 주면서 특정 사건에 대해 답을 요구하는 직업으로는 이만한 게 없잖아요? 실제로 <<극비수사>> 라는 영화의 실재 사건에서도 점쟁이에게 아이의 행방을 물어보았다고 하니 탐정역으로 충분히 등장할만한 직업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잘 써먹고 싶은 설정이에요.
그 외에 새점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일종의 전통 풍습, 청계천과 수포교, 다방과 설렁탕집 등 당대 거리를 이야기에 적절히 녹여낸 점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탐정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사건이 너무 많아서 잘 정리되어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무리하게 독립군과 주인공 소녀 강영재의 이야기를 엮은 탓이 커요. 아무리 독립군이 정의의 조직이라고 해도 어린아이를 납치한 건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이며, 김필두가 강영재를 찾아와 칼을 책상에 꽂아가며 협박하는 묘사도 잘못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어린 소녀에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잘 모르겠네요. 차라리 일본 순사 기무라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는 더 좋은 인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나중에 납치범들과 김필두는 독립군이며, 할머니 죽음은 김필두가 아니라 기무라가 관련되어 있다는 식의 생뚱맞은 결말도 영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기무라가 할머니를 죽일 이유는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영재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되찾지 못하면 잃어버린 나라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인데, 말도 안됩니다. 잘못하면 청계천에서 몹쓸 짓을 당하고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발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 전개면에서는 아쉬움이 더 많았던 작품입니다. 점쟁이 탐정, 새점 탐정이라는 설정만 가져와서 성인 취향의 정통 추리물을 쓰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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