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하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한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몇 일 후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인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진실은 저 너머로 향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갯글에서 인용)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우선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니까요.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입니다.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고요.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고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아주 그럴듯하며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 말이죠. 용의자가 적을 뿐 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며, 이후 아녜는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고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며,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는 상황이니까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어요.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죠.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더군요.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쳐요.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와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는 설정이라 식상하기 짝이 없어요.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살짝 고민이 되는 수준이군요.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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