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 - 엘리자베스 아치볼드 지음, 서민아 옮김/스윙밴드 |
제목만 보면 실용 서적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정체는 역사학자가 중세 시대의 고문헌을 뒤적거려 뽑아낸 대단해 보이는 (?) 조언, 금언들을 당대 삽화와 함께 배치한 어른들을 위한 '우스개' 서적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뜬금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영주 부인 거절하는 법'이 있습니다. 1,200년 경 베클스의 다니엘이 쓴 <<교양인 대장전>>에서 뽑아낸 말인데 영주 부인이 자꾸 유혹하면 아픈 척하라는 조언이죠. 과연 교양인! 답네요.
물 속에서 발톱 깎는 법도 있습니다. 1789년 멜키세덱 테브노의 <<수영의 기술>> 에 나온 비법으로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발을 들어 오른쪽 무릎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걸 책으로 쓴 이유가 사뭇 궁금해집니다. 글을 쓴 멜키세덱 조차도 별다른 쓸모나 장점은 없지만 시간 관리 방법으로 추천할 만 하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도 알맹이 없는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요.
그 외에도 등을 대고 똑바로 눕는건 자살행위라는 1474년 바르톨로메오 플라티나의 말, 주위 사람에게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달라고 해서 땅에서 씨앗 등 자라나는 걸 줍는다면 4시, 7시, 10시이며 돌 등 자라지 않는 걸 주우면 2시, 5시, 8시, 11시 경이다는 1658년 존 화이트의 '언제든지 시간을 알 수 있는 비법', 일곱살 이전 아동에게는 연령과 와인의 도수에 따라 적절한 양의 물에 희석한 와인을 먹이라는 미켈레 사보나롤라의 의학 지침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또 당대의 어처구니없는 각종 레시피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1세기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라는 어마무시한 이름의 저자가 쓴 <<성생활을 위한 책>>에 수록된 발기 불능 치료약이 눈길을 끄는데 흰 양파 씨, 금불초, 참새 뇌, 야자 숫나무의 꽃, 백향목을 같은 양으로 준비해 따뜻한 물에 개어 병아리 콩만하게 만든 후 아침에 와인과 함께 일곱 알을 먹으라고 하네요. 참새 뇌를 대관절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샐러드 오일을 한 모금 죽 들이켜고, 와인을 마신 후 마신 와인의 세 배의 우유를 마시는 1653년 휴 플랫의 술 취하지 않는 법은 왠지 모르게 시도해보고 싶어지네요.
물론 1280년 경 아마뉴 드 세스카스의 <<신사를 위한 자기계발서>>에서 소개된 알뜰하게 멋 부리는 법처럼 지금 읽어도 와 닿는 조언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몸매부터 관리해야 하며, 옷을 살 돈이 없다면 좋은 악세서리를 챙기고 추레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라는 조언인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추레한 차림은 볼품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며, 진정한 멋쟁이는 평범한 것을 세련되고 품위 있게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이 역시 맞는 말이고요.
그리고 따뜻한 맥주는 차가운 맥주처럼 갈증을 충분히 해소하지도, 더위를 식히지도,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도 않아서 별로라는 토비아스 베네르의 글은 특정 종류의 맥주는 상온에서 마시는게 좋다는 일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암요, 맥주는 시원하게 마셔야죠.
하지만 유용한 조언은 한 줌 정도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피식하고 넘어갈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빵빵 터지는 이야기가 많지도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뜬금없는 내용과 한 쌍을 이루는 당대의 도판들이 꽤나 적절하고 책의 만듦새도 괜찮긴 하지만 아무리 가점을 한다 해도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분들께 권해드릴 책은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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