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프런티어 |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라는 부제로, 여러가지 대중 오락에 얽힌 역사를 풀어나가는 미시사 서적.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닌, 단순한 재미와 유희,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가 세상을 변화시킨 갖가지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재미 외에 특별한 목적이 수반된 경우는 있습니다. 자주색 염료를 만들 수 있는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아갔다는 활동은 명백히 "돈"을 위함이니까요. 이 역시 자줏빛 의상이 그것을 걸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을 주는 물건들은 가치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한다는 논리인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유희"가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 요인이며, 이를 통해 발전된 무언가가 궁극적으로 무엇에 이르렀는지를 콕 짚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단락은 상점을 무대처럼 장식하여 고객을 사로잡고, 구매 행위를 일종의 오락처럼 만드는 과정과 면직물의 유행을 통해 산업 혁명이 촉발된 후 "유행"이 "소비"를 창출하여 "백화점" 이 등장하는 과정, "쇼핑몰"이 도시 계획과 맞물린 후 미래 도시의 비젼을 제시하는 이야기입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각종 악기의 발전과 오르골 등을 거쳐 로봇 공학과 자동 방직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방직기는 프로그래밍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요. 악기의 발전은 전문적인 공학의 발전과 맞물려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이러한 음악 관련 기술의 발전이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는 과정 모두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유희, 즐거움이라면 미식이 빠질 수 없죠. 향신료 교역이 불러온 갖가지 이야기도 소개되는데, 로마 제국이 후추에 너무나 열광해서 아피키우스의 요리책 조리법의 80%가 후추를 사용한다는 이야기 같은 잡학이 가득해서 마음에 듭니다. 프랑스인 푸아브르가 네덜란드가 독점하다시피 한 정향을 빼돌려 재배에 성공한다는 일종의 산업 스파이 이야기 등이 그러하죠.
무엇보다도 향신료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사치품 지위를 유지한게 바닐라라는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토머스 제퍼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조리법을 미국에 도입했다던가, 가루받이가 어려워 퍼지기 어려웠지만 한 노예 소년의 아이디어로 양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이 노예 소년 이야기가 향신료 교역을 상징합니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멕시코에 자생하는 식물을 인도양에 있는 한 섬에서 프랑스인이 재배했고, 프랑스 노예상인들이 그 섬에 데려온 아프리카인의 후손인 한 소년이 그 꽃을 최초로 가루받이 했다" 는 이야기니까요.
다음에는 만들어진 "환영" 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영화의 전신인 특수 효과 공연과 이 중 가장 유명했던 유령 쇼 "팬태즈머고리아", 풍경을 실제처럼 느끼게 해 주는 파노라마 전시, 활동 사진과 월트 디즈니의 혁신, 이윽고 등장하게 된 "유명인들" 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도판과 함께 설명되죠. 이러한 시각 효과를 활용한 오락거리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침투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고찰이 함께 진행되는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더군요.
게임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여기 소개된 단락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인데 체스 게임은 "비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도입부부터 신선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인공 지능이 발전되는 과정,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게임이 된 보드 게임 (모노폴리) 등 모든 소개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공 놀이"가 고무라는 혁신적인 물질의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 마지막 비디오 게임의 등장과 이것이 컴퓨터를 재미로 쓸 수 있다는 혁신적인 발상의 시작이었으며, 덕분에 컴퓨터가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설명 역시 흥미로왔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다양한 놀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선술집에서 시작해서 커피 하우스, 박물관, 동물원, 공원 등의 역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즐거움, 놀라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얼마나 새로운 걸 많이 만들어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혁신을 하고자 하면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즐기는 마음가짐이 필수일 듯 합니다. "즐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옛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닌거죠. 또 단지 혁신에 대해 되새겨 보는 측면 외에도 다양한 놀거리와 즐길거리에 대한 미시사 서적으로도 탁월해서 만족스럽네요.
글의 내용이 통사적 구분이라기 보다는 주제별로 좀 널뛰는 감이 없잖아 있다는건 단점이지만 장점에 비하면 극히 사소합니다. 도판도 충실한 편이고요. 이렇게 취미에 가까운 놀거리, 즐길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최소한 엉망인 제 리뷰보다 훨씬 좋은 책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참고로 책 뒤 "감사의 말씀"을 보니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듯 싶더군요. 책보다는 방송으로 보는 게 훨씬 나은 내용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방송으로 보면 4점 이상도 가능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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