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냥 -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추지나 옮김/레드박스 |
일본작가 나가오카 히로키의 단편집. 표제작 포함 전부 4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운좋게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 전에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단 이력이 화려한데 2008년 표제작 <귀동냥>이 제 61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발표된 이 단편집이 2012년 "추천 문고 왕국 2012" (이건 무슨 상일까요?) 에서 국내 미스터리 부분 1위에 오르며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판매도 꽤 괜찮았다고 하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상을 수상할 정도의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우선 최근의 추세라 할 수 있는 연작이나 시리즈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겠죠. 각 단편이 전부 다른 주인공과 설정, 배경으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작품으로 과거 오 헨리 시대에서나 봤었던 정통 단편물이더군요. 뭐 연작, 시리즈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입장에서, 또 판매나 마케팅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는 이런 스타일로 창작했다는 것에서는 나름 작가의 신조같은 것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또 모든 단편이 제가 좋아하는 잔잔한 일상계물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하지만 이야기 측면에서는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우선 수록된 모든 단편이 사건 발생과 마지막 극적 해결이라는 오 헨리 스타일의 정석적인 단편 구성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의 발생과 전개에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거든요. 예를 들자면 충분히 구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해주지 않아 오해를 키운다던가 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억지스러운 설정이 눈에 뜨이는것도 불만이고요. (이러한 점들은 아래의 각 단편별 상세 소개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같은 일상계라 하더라도 추리쪽에 좀 더 많이 치우친 작품들 - 가노 도모코의 작품들이나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 추리물,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일상계 작품들 등- 과는 다르게 추리보다는 심리 묘사와 전개에 더 주력하는 작품 -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들과 같은 - 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뭐... 이런 류의 작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정보를 먼저 접했기에 정통 추리쪽으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 뿐이죠. 허나 작품도 충분히 추리쪽으로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아 아쉽긴 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충분히 읽는 재미는 있으며 일상계를 좋아하시고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작품집이나 추리적으로 약간 미묘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께는 다시금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아래 상세 소개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부탁드립니다.
<경로이탈>
구급대원 하스카와는 대장 무로후시의 딸 가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나는 6개월 전 외과의 마스바라의 차에 치어 휠체어에 의존하는 몸이 된 상태. 긴급한 상해사건으로 출동한 하스카와와 일행은 피해자가 가나 사건의 검사였던 구즈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는 사고를 일으킨 의사 마스바라를 기소하지 않고 풀어준 인물.
칼에 찔린 구즈이를 병원으로 호송하는 와중에 무로후시는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지 않고 사이렌을 켠채 병원 주변을 맴돌며 하스카와에게 전화기를 주며 귀에서 떼지 말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데....
무로후시가 복수때문에 구즈이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인가?가 사건의 핵심인 작품. 결국 결말은 나름 훈훈한 일상계스러운 결말로 끝나게 됩니다. 떨어진 핸드폰 + 사이렌 소리를 이용하여 위치를 알아낸다는 트릭 하나로 이만큼 이야기를 뽑아낸 것은 감탄스럽네요. 마스바라의 지병을 복선으로 배치한 것도 절묘하고요.
그러나 무로후시가 과묵하기는 하지만 상황만 설명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지는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혹 사고라도 생긴다면 아무리 대장 혼자 책임을 진다지만 다른 대원들한테 정말로 아무런 데미지가 없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아울러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구즈이에게 원한을 품은 탓도 있다면 마지막의 감동도 희석되는 느낌이 듭니다. 구즈이가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자백하는 대사를 하는 것도 사족이었고 말이죠.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귀동냥>
경찰 하즈미 게이코는 딸 나츠키와 둘이서만 살아가는 모자가정의 가장인 경찰. 그녀는 이웃에게 발생한 집털이 사건을 맡게 된 후 유력한 용의자인 네코자키 (요코자키)가 이미 체포되어 구류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된다. 네코자키는 하즈미에게 접근하여 면회를 요청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데...
제목의 "귀동냥"을 상대방이 꼭 듣고 싶은 정보를 우연히 알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라고 정의내리고 이러한 귀동냥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
네코자키가 귀동냥을 이용하여 진범을 유도하는 것, 그리고 나츠키의 엽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귀동냥의 형식을 빌어 후사노 할머니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었다는 두가지 이야기가 얽히는데 깔끔하게 전개되는 것이 인상적이며 특히 하즈미가 네코자키의 보복을 우려하는 부분에서부터 긴장을 쌓아나가다가 폭발시키는 과정이 일품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귀동냥" 설정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도 좋았고요. 일상계 왕도스러운 훈훈한 결말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도 앞선 작품과 마찬가지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네요. 일단 네코자키가 구태여 귀동냥 형식을 빌려 진범에게 내사가 진행중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릴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그냥 형사에게 이야기하는게 더 쉽지 않았을까요? 또 이렇게 정보를 들었다고 해서 사이토가 바로 자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또 나츠키가 왜 엽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냥 어머니한테 할머니를 안심시켜달라고 이야기하는게 더 나았을것 같은데 말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899>
소방대원 모로가미는 이웃에서 홀로 갓난아기 아이리를 키우며 살아가는 하쓰미에게 반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사는 주택에 화재가 발생하고 상황이 899 (긴급구조자) 마루아카 (1세 미만의 영아)라는 암호로 전달되는데...
아이를 잃은 아픈 경험을 가진 소방대원 가사마가 아이리가 학대를 받은 것을 파악하고 잠깐 동안 아이를 숨겨 엄마에게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이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아이가 학대받은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의 설득력도 떨어지지만 목적을 위해 아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잠깐 숨긴다는 발상은 애시당초 이해불가였어요. 구한 다음 바로 경찰을 부르거나 하면 되는 거잖아요? 아이가 다치려면 어쩔려고 했던건지...
아이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던가, 가사마가 장을 본 뒤 큰 비닐봉투를 재활용을 위해 따로 챙긴다던가 하는 식의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은 마음에 들고 모로가미의 애타는 심리묘사도 괜찮은 편이나 핵심 이야기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기에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고민 상자>
갱생보호시설의 원장 유코는 퇴소를 앞둔 우스이의 앞길에 왠지모를 신경이 쓰인다. 그는 만취한채 자전거로 여자아이를 치여 죽인 죄로 구속된 뒤 출소한 인물. 그는 입사한 이즈카 제작소 기숙사에 입주하는데 1주일에 걸쳐 가전제품을 보러 다니거나 선술집을 돌아다니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투신 자살을 시도하는데...
설정은 굉장히 묵직하지만 실제 내용은 아주 담담한 일상계의 왕도와도 같은 작품. 핵심 단서(?)인 유코의 NHK 대담 방송이 중요한 소재로 계속 언급되기 때문에 진상에 대해 독자가 눈치채기 쉽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유코의 심리묘사 등 디테일한 묘사가 아주 뛰어나며 우스이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도 충실하게 전해줍니다. 아울러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내용의 설득력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물건을 버리기 위한 "고민 상자"라는 모티브를 잘 엮은 것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이 작품집의 베스트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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