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수사관 다산 정약용 - 강영수 지음/로하스 |
정약용을 탐정으로 내세운 단편 옴니버스 구성의 역사 추리물.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죽은 자도 말한다.
- 두 발로 선 꽃
- 녹두패의 비밀
- 약속
- 강물 속에 숨다
- 술 취한 새우
- 세 개의 비방
- 계책 속의 계책
- 꿈길을 찾아온 노인
- 저승에서 온 편지
- 금서
- 죽음을 부른 사랑의 시
- 죽은 여인의 몸값
- 괴이한 파자 법
- 기이한 목걸이
- 눈 위를 달리는 뱀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말 형편없더군요. 이런 책을 돈을 받고 판다는게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일단, 이야기들의 완성도가 낮아요. 기승전결이 없다시피한 뜬금없는 전개에 황당 결말로 일관한다던가, 아니면 아예 결말 자체가 없는 식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야기가 불륜이나 비전의 미약, 미향 등을 이용한 정사 등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치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만한 점도 없습니다. 양의 창자를 이용한 일종의 "콘돔"으로 아랫도리를 통해 여성을 독살시켰다는 이야기에서 콘돔에 남은 정액의 양을 증거로 들이대며 범인이 소갈증이라 정액 역시 그 양이 적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 "세원록"에 실린 '험적골친법'을 통해 해골 위에 친생자의 피를 떨어트리면 피가 뼛속으로 스며든다는 이론("저승에서 온 편지")이 핵심 증거로 등장하는 등 고증에 집착하여 설득력을 망각한 역사추리물 특유의 문제도 두드러지고요.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정약용이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정조의 은밀한 지시, 정약용의 신앙 등의 떡밥이 던져지는데 전혀 회수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그냥 역사추리물 유행에 편승한 싸구려 기획물일 뿐이지요. 솔직히 완성도만 놓고 보면 별점 한 개도 과합니다.
그러나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당시 시체 검안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갯버들 나무껍질을 상처 부위에 덮으면 흔적이 짓무르고 색깔이 검게 변해 구타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다, 화재 현장 검증을 위해 재를 쓴 뒤에 영초에 절인 종이를 깔아서 핏자국을 확인한다, 다른 상처들과 구분하기 위해 감초즙으로 시체를 닦는다, 시체 냄새를 막기 위해 진마유를 코 밑에 바른다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에 더해 몇몇 이야기의 경우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첫 번째 이야기 "죽은 자도 말한다"는 불륜으로 인한 며느리의 자살 사건인 줄 알았던 사건이 사실은 시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는 내용으로 반전이 제법 괜찮았고, "두 발로 선 꽃"에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에서 한일자가 없는 것은 '묘'자 하나 뿐이라는 암호트릭도 꽤 그럴듯했어요. 이 암호트릭은 내용과는 별 상관없이 스쳐지나갈 뿐이지만요.
"꿈길을 찾아온 노인"에서 아들이 죽은 후, 아이 하나를 낳기 위해 며느리를 겁간하려 하는 시아버지라는 막장 설정은 후손을 남기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상과 결합되어 설득력있게 다가왔고요.
그래도 이 정도로 평가를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에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만원이 넘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구입할 가치는 전무합니다. "꿈길을 찾아온 노인"은 조금만 손을 대면 아주 괜찮은 작품이 될 수도 있어 보인 등, 가능성은 확인되기는 한 만큼 앞으로 많은 작가들에 의해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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