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의 노래 3 -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문란한 어머니탓에 사랑을 불신하게 된 치카이시 쇼고는 사랑을 나누는 동물들을 죽이고 다니다가 경찰에 체포된 뒤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진다.
정신과 의사 에이키는 쇼고에게 최면을 걸고 최면에 걸린 쇼고는 "사랑을 저주한 죄로 영원한 사랑의 형벌을 받으라"는 명령을 사랑의 여신에게 받게 되는데...
데즈카 오사무의 1970년 발표작. 국내에 정발되기까지 했지만 광속으로 절판되었었죠.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주제가 "성과 사랑"이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쇼고가 최면에 걸린 뒤 가상으로 체험하는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쇼고의 실제 이야기가 병행으로 전개되는 구조도 독특한 작품입니다.
가상 체험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3개인데 나치즘 시대에 유대인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짤막한 이야기, 경비행기 조종사로 여류 사진사와 동물들이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기이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가장 긴 2030년의 미래를 무대로 합성인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이며 쇼고의 실제 이야기는 중간에 병원을 탈출한 뒤 와타세 히로미라는 여성에게서 마라토너로서 특훈을 받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어렵게 구해본 것 치고는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걸작"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이야기에서 두명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모두 급작스럽고 설득력없이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죽이려는 여자가 같이 석양을 본 뒤 키스를 나누고 사랑에 빠진다, 합성인의 여왕이 천한 인간을 데려다가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다 이런 식이거든요. 작품의 핵심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김빠진 맥주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또 주제의식이 그닥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사랑이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로 언급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비극적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만이 첨예하게 부각되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뻔한 서사가 대부분일 뿐이니까요.
덧붙이자면 마지막 결말에서 와타세 히로미의 죽음도 황당할 정도로 뜬금없더군요. 비극으로 몰고가기위한 억지스러운 상황설정이 지나쳤달까요. 비장미는 넘치지만 21세기에 볼만한 이야기는 아니였습니다.
물론 두번째 사랑 이야기에서 동물들이 서로 협조하며 살아간다는 무인도의 설정이라던가 세번째 이야기의 합성인 여왕과의 사랑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클론들의 비극적인 모습은 충분히 볼만했고 데즈카 오사무가 그리는 성인풍 극화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역할에는 충실하기는 합니다. 차라리 두번째와 세번째 이야기를 따로 따로 정리하여 하나의 단편으로 풀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점. 발표 당시에는 획기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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