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북로드 |
<하기 리뷰에는 반전,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에 갇히는 악몽을 꾸고 나서 실제로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한 에바 로스바흐. 그날 그녀의 이복동생인 잉에가 관속에 갇혀 생매장당해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한편 사건을 지휘하게 된 쾰른 강력계 베른트 멩호프 경감은 본인 가정사, 그리고 자신을 싫어하는 동료들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파트너 유타 경위와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데....
독일산 심리 스릴러. 보통 유럽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동호회 하우미스터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된 책입니다. 리뷰 전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해드립니다.
그동안 유럽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어렵고 무겁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요 네스뵈가 그러한 선입견을 깨 준 대표적인 작가고요. 이 작품 역시 최근 인기작답게 유럽, 독일산이라는 느낌보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 느낌이 강한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산 채로 관에 갇히는" 상황을 그린 흥미로운 설정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맛, 빠른 전개, 무엇보다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힘든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아울러 반전도 그럴듯합니다. 브리타가 에바와 동일인물이라는 깜짝 반전에 더해 살아있는줄 알았던 마누엘마저 에바의 또다른 인격이었다는 반전인데, 에바 - 브리타 시점 변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서술트릭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관 속에 갇힌 느낌, 범행에 대한 묘사, 마지막 납치된 에바가 갇힌 곳에 대한 묘사 등 묘사도 생생해서 읽는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CSI의 <생매장> 에피소드 저리가라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심리묘사 역시 제대로고요.
그러나 아주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이 밝혀지게 되는 이유가 우연에 의한 점이 그러합니다. 베른트 경감의 수사는 마누엘 생존설로 흐르는 방향으로 향했기에 진상을 알아내려면 오래 걸렸을테죠. 그러나 마침 정신과 의사인 라이엔베르크 박사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 때문에, 그리고 대거라는 파티셰가 에바와 브리타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증언함으로써 진상을 알아내게 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우연에 불과하거든요.
또한 반전 역시 앞서 말씀드린대로 서술트릭처럼 시점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범인이 노골적으로 남자라고 지칭되며 내용에서도 의도적으로 마누엘 생존을 강하게 언급해서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는건 반칙이었다 생각됩니다. 최소한 범인의 성별은 숨겼어야 하지 않을까요? 술집에서 여자를 낚아챈 것은 피해자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네요. 참고로, 반전도 비록 저는 예상치 못했지만 영화 <아이덴티티>와 흡사해서 좀 뻔하다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 같군요.
사건의 핵심인 다중인격도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에바가 브리타라는 다른 인격으로 삶을 영위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다중인격이라고 해도 삶 자체를 다르게 사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외르크 빕킹이 흑화한 에바를 (남자로 오해했지만) 목격하고, 대거라는 파티셰가 에바 - 브리타를 모두 목격했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부유한 사업가와 재혼한 새어머니가 아이들을 학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점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새어머니의 학대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처 딸을 아동 성매매시키고, 작은 상자에 넣는 등의 학대를 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처 딸이야 그렇다쳐도 자신의 친아들마저 학대하고 죽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설명되지 않으니 원인없는 결과만 있는 꼴이잖아요? 원인은 없지만 아동 성매매는 "돈"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에 피해자 브리타를 부유한 가문의 딸인 에바와 연결하기 어렵죠. 이런 점에서 반전을 위한 반칙 수단으로 사용된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외의 소소한 디테일들도 약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에바의 아버지가 집 안에 도피처를 만들어 놓았다는 대사를 복선으로 이용한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경찰이 집 안을 수색했는데 불구하고 그것을 간과한 것, 베른트 경감을 싫어하던 우도가 급작스럽게 마음을 돌리고 화해하는 상황 등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베른트 경감의 조금 부족한 자제력에 대한 묘사도 딱히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고요.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한 스릴러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단점만 쭉 나열한 꼴인데 킬링타임용으로는 최고에요. 요 네스뵈도 그렇고, 요새 북유럽 쪽 신예 작가들 작품이 괜찮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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