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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1

브랫 패러의 비밀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2.5점

브랫 패러의 비밀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 명문가 애시비가의 맏아들 패트릭이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지 8년 후, 그의 쌍둥이 동생 '사이먼'의 성년식을 앞둔 어느날 패트릭이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패트릭이 아니라 우연히 애시비가의 지인을 만난 뒤 패트릭으로 행세하여 유산을 상속받는 사기에 뛰어든 고아 출신의 브랫 패러였다.
사이먼과 꼭 닮은 외모에 더해 완벽한 교육으로 주변 모든 인물들에게 패트릭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하나 단 한명, 사이먼만 그가 패트릭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는데.....

  <진리는 시간의 딸>,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등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발표한 조세핀 테이 여사가 1949년 발표한 장편 소설.

그러나 예상 외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특기할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제일 중요한 패트릭 죽음의 진상은 처음 보자마자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비슷한 작품을 많이 읽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패트릭이 8년만에 나타난 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진짜 패트릭이라고 인정하나 사이먼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자마자 (가짜임을 알면서도) 안도했다는 것의 진상은 무엇이겠어요? 당연히 사이먼이 패트릭을 죽였다는 것 밖에는 없죠.
사이먼의 범죄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에요, 수색하는 척 하고 유언장을 가져다 놓은 것이 전부라면 좀 허무하죠. 형과 쌍동이였다는 설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했었어야 할텐데 그다지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아울러 설정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에요. 8년전 사건 발생 당시 수색이 부실했다는 것이 대표적으로, 지역 유지의 귀한 아들이 사라진 것에 비하면 수색이 너무 대충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찾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는 브랫 패러가 모든 것을 눈치챈 후, 단박에 수색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찾아낸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물론 패트릭의 유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작중 언급되듯이 유서 자체가 자살을 "암시"할 뿐 자살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조금 더 철저한 수색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도 작품이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줄거리 요약대로 누군가와 닮은 사기꾼이 상속 재산을 노린다는, 흔하게 접하는 내용을 가지고 이만큼의 재미를 뽑아낸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워요. <뉴요커>지의 평이 '"진짜인 척하는 가자",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 중에서는 단연 최고이다.' 였다는데 충분히 수긍할만했습니다.
또 거장답구나 싶은 부분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묘사가 특히나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자면 브랫 패러의 시점으로 사이먼이라는 인물의 심정 변화를 알려주는 디테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페기 게이츠의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명마를 사 준 뒤에 보이는 사이먼의 심리 묘사 같은 것 말이죠. 이렇게 사소한 것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인물의 됨됨이를 쉽게 이해시키는 재주는 아무나 부릴 수 있는게 아니라 생각되네요. 전형적인 영국풍 묘사, 영국 작가의 시각이 담뿍 묻어나는 유머러스한 표현들도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영국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를 미국 영화에서 얻은 것처럼 대령이라는 종족에 대한 이미지는 영국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는데, 잘못된 것은 둘 다 매한가지였다.' 같은 부분이겠죠. 이렇게 영국에 대해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아울러 애거서 여사님의 모험물스러운 -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부머랭 살인사건> -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결국 사랑도 이루고, 자신의 뿌리까지 찾는다는 고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다. 앞부분에 등장한 복선을 활용해 사이먼과 브랫 패러가 왜 닮았는지 설명해주는 꼼꼼함도 제법이고요.

결론내리자면 거장의 범작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아쉬운 탓이 큰데, 브랫 패러가 패트릭인 척 하는 사기를 치고 있어서 사이먼의 범행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가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점만큼은 정말 돋보이는 점이 있었는데 마지막 몇페이지 정도에서만 효과적으로 사용될 뿐이라 좀 아까왔거든요.
비록 별점은 평범하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빠지는 작품이 아니고 이래저래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만큼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야기 중반에 굉장히 화제가 되는 사건인 "트렁크 토막 사체 사건"이 몇번이나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전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이것도 무슨 거장의 장치가 아닌가 싶어 읽는 내내 신경이 쓰였거든요. 저와 같은 독자를 낚고,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라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기는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나의 큰 줄기로 우직하게 몰고가는 느낌이 희석되어 외려 작품에는 감점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덧 2 : 몇번 영상화되었다고 하는데 80년대 TV 시리즈는 데일리모션에 전편이 올라와 있네요. 제 기대와는 캐스팅이 사뭇 다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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