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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손자병법의 탄생 - 웨난 / 심규호, 유소영 : 별점 2.5점

손자병법의 탄생 - 6점
웨난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일빛

1972년 산동선 임기현 은작산 1호, 2호묘에서 발굴된 죽간과 출토물들을 가지고 풀어나간 580여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고고학, 미시사, 역사 서적. 웨난 작가의 고고학 관련 책을 워낙 좋아하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는 군단>>은 정말이지 진시황릉에 대한 바이블같은 책이죠. <<마왕퇴의 귀부인>>은 그만 못했지만 역시나 괜찮았고요. <<삼성퇴의 고대문명>>을 절판전에 구하지 못한게 한스럽습니다...

여튼, 이 책의 구성은 <<부활하는 군단>>과 같습니다. 발굴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나가고, 이후 유물에 대한 실제 역사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상황을 알려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입니다.

첫 시작인 발굴 과정부터 드라마틱합니다. 문화대혁명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전문가가 아닌 지역 담당자의 무식한 발굴이 겹쳐져 일어난 엄청난 피해, 고고학자들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한 분투가 생생하게 펼쳐지거든요. 흙탕물 속에서 죽간을 그러잡아 뜯어 올리는 식의 엄청난 발굴이 보여집니다! 이 와중에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발굴된 죽간이 <<손자병법>> 죽간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묘는 한나라 무제 때로 추정되지만 이 죽간의 필사 연대는 한나라 문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늦어도 서한 전기), 한나라 시대 죽서 <<손자병법>>은 손무가 직접 쓴 원본일 가능성이 많기에 그야말로 초기 <<손자병법>>의 생생한 상황을 알게된 것이거든요. 송나라 판각본과의 대조 결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것도 있다고 하네요. 또 <<손자병법>>, <<육도>>, <<관자>> 등의 고적이 실존하는 것이라는 것, <<손빈병법>>이 발굴되어 손무와 손빈이 각기 병법서를 세상에 전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도 큰 성과였고요.
참고로 죽간을 수장품으로 묻은 이유는 인쇄술이 시작된 당나라 이전에는 모두 손으로 필사한 것으로 서적이 굉장히 귀한 물건이라 수장품에서 서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작산 한묘의 죽간은 크게 열 묶음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수량인데 유가의 경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법가 사상이 퍼져나가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되네요. 후대의 '비림비공 (임표와 공자를 비판함)'과 크게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죠!

여기까지가 약 12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고, 이어서 360페이지에 걸쳐 발굴된 죽간을 연대별로 구분한 후 실제 해당 시기의 역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항목별 간단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육도>>
강태공이 주문공을 만나고, 주나라가 천하를 재패한 후 봉지로 제나라를 하사받는 과정까지의 이야기.
주문공과 첫 만남에서 강태공이 말한 '삼상주의'는 은작산 한묘 발굴로 알려지게 되었다니 하는데, 최순실에 농락당한 대한민국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그 능력에 관계없이 사돈에 팔촌을 엮어 관직에 앉힐 경우 그 화가 나라와 백성에게 미쳐 결국 나라를 망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거든요.
<<육도>>에 대한 설명이 뒤에 이어지는데 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네요. 하지만 화복과 길흉에 대해 인사가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 백성 사랑이 치국과 치군에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것이 분명히 지적되고 있습니다. 천하가 평화로와야 모든 것이 이롭다는 것, 인심에 순응해 천하의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 등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로 3천년도 더 전에 쓰여진 죽간 속 내용이지만 지금에도 통용될만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왕병>>
'절개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고집스럽고 답답한 서생에 불과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지금 세상은 사람 노릇을 하는 데 그리 진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 포숙이 관중을 데려오려 할 때 한 말.
주 왕조가 쇠학하여 춘추 시대로 돌입하게 되고, 제나라가 관중과 포숙을 얻어 제후국의 맹주를 차지할 때까지의 이야기. 관중이 죽은 후 그의 언설을 정리한 책이 <<관자>>입니다. 대체로 군사 사상으로 다섯가지 원칙으로 정의되는데 부국강병, 우병어농, 군정일체, 선계후전, 이인위본, 선전준비가 그것이죠. 은작산에서 출토된 <<왕병>>은 관중의 정치, 군사 사상에 대한 완전한 작품이며 후대에 전해진 <<관자>>는 불완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안자춘추>>
'귤은 회수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명언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안자는 처음 들은 이름이네요. 사마천 왈 "관중이 죽고 백여년이 지나 안자가 나왔다."고 할 정도의 인물인데 말이죠. 여튼 안자 안영과 전양저가 힘을 합쳐 제나라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이후 제나라 위왕이 양저의 군사 사상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 <<사마병법>>이라죠.
전양저의 친척이자 전씨 가문의 유력인인 전서가 공을 세워 "손"씨 성을 하사 받았으며 이후 손무, 손빈 등의 후손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손자병법>>
손무가 오나라 국경 궁륭산에 터를 잡고 혁명을 위한 군사조직을 이끌다가 오자서를 만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뒤는 <<열국지>> 등에서 본 이야기 그대로입니다.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오자서가 오나라왕 합려와 함께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오나라가 패망할 때 까지의 흥망성쇠가 그려지죠.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손무가 일종의 도적단 두목같은 포지션으로 등장해서 오자서와 밀약을 나눈다는 설정이 그것이죠. 손무가 오나라의 왕이 되고, 오자서는 초나라의 왕이 된다는 밀약인데, 작가의 창작인지 아니면 뭔가 유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울러 초나라가 정벌된 것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의견도 신선했습니다.

<<손빈병법>>
오나라를 떠난 손무가 제나라에 정착한 후 증손자 손빈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열국지>>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방연과의 인연, 귀곡자 문하에서의 생활, 위나라에서 방연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의 처참한 생존 과정과 탈출, 그리고 복수가 차례대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미친 척을 해서 방연의 눈을 피하는 것은 그럴듯한데 제나라 묵적의 제자 금활리라고 자신을 밝힌 인물에게 너무 쉽게 속 마음을 드러내는 전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아마 수차례 연극을 더 했겠지만...

이 뒤 나머지 200여페이지에서는 현재 도출된 각종 의문과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항은 방연이 죽은 마릉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후대에 수차례 대두되었던 손무 허구인물설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은작산 손자병법에 의해 밝혀진 진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점 - 춘추 말기 낙후된 생산력과 경제력 탓에 손자병법은 속전속결을 주장하며 공성전을 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손빈병법이 쓰여진 전국 시대에는 쇠뇌, 투석기와 같은 선진 무기의 도입과 기병전의 증가, 전쟁 규모의 확대 및 도시의 발전으로 공성전을 적극 주장하는 등 전략, 전술, 진법이 크게 변하였음 - 등입니다.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한 지역과 학계간 암투 -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고향 소유권 쟁탈' - 도 소개되고 있고요.

손무 허구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는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마릉의 위치나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중국 내에서야 관심사일 뿐 저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역 경제 부흥을 중요시 여기는 듯한 저자의 글도 와닿지 않았고요. 그나마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료가 소개, 인용되는데 그 중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는 항목이 몇가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자 곽말약, 여공아의 주장 중 '춘추'와 '전국'을 나누지 않고 한데 묶어 '춘추 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대목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당연히 '춘추 전국 시대'로 알고 있었는데 중국 내에서 '두 시기는 사실상 연결되어 있고 그 간격은 약 28년에 불과하여 분명하게 차이가 나기 어렵기 때문에 묶어야 한다!'는 이 주장이 의외로 소수파라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지금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손무 무덤 발굴에 관련된 이야기 중 합려의 무덤인 검지 발굴을 위해 물을 뽑았었지만 검지 붕괴 위험과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지역 관광산업 발전, 경제 효과를 높이는데 유리하여 발굴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어장검 등 각종 보검이 궁금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하네요.
그리고 손빈의 후예라는 손노가 손씨 가족을 연구할 때 '일부 당성이 탁월하고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고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 좌담회를 가졌다는 중국 공산당식 마인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여기서 '문화대혁명' 때 손씨 가문 족보를 태우겠다고 소란을 피웠으며 손씨 가문의 어른인 손지일이 홍위병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었지만 족보는 잘 숨겨놓아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또 손씨 가문 내력을 조사하여 손빈의 무덤 위치와 말년을 알아내는 과정은 조상과 제사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국 내 사학계에서 손씨 족보의 발견이 굉장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라니 족보라는게 참으로 중요하구나 싶더라고요.

이어서 1996년에 벌어진 손자병법 82편의 영인본을 발견했다는 사기극이 등장합니다. 역시나 홍위병이 등장하여 고대 죽간을 태워버리는 바람에 일부만 건졌고 필사한 사본만 남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되는데 고대 죽간을 손에 넣었다는 조부 장서기의 일대기를 분석하여 사기꾼의 주장을 반박하고, 장서기의 진짜 직계 후손이 등장하여 이름 돌림자를 가지고 사기꾼들을 박살내는 전개는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하여 재미있었습니다. 가짜임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인 분석 결과와 사기에 가담했던 국방대학교 강사 방립중이 벌인 민사 소송으로 벌어진 재판 과정도 법정 추리물 느낌이라 아주 흥미로왔고요. 솔직히 너무 유치하고 어설픈 사기극이라 이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된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마지막 에필로그는 죽간과 다른 출토물들의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죽간은 그나마 신경써서 보존되었지만 성 박물관도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직원들이 밭을 경작하느라 관리가 소홀해진 탓에 훼손이 심해졌다니 문화대혁명이 정말 문화와 역사에 몹쓸 짓을 한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초 발견자들과 관계자들 후일담도 소개됩니다. 첫 발견자인 '당나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아내의 외도를 보고 자살했으며, 한묘도 지금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버리고 이후 죽간 소유권을 놓고 벌인 추잡한 암투가 벌어진 것을 보면 이것도 무슨 저주 비스무레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발굴이라고 해 봤자 멀쩡한 묘를 대놓고 터는 것이니 좋은 결과일리 없겠지만요.

이렇게 방대한 분량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는 군단>>이나 <<마왕퇴의 귀부인>>에 비하면 유물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도판이 극도로 부족, 부실하고 잘 알고 있는 열국지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별 관심없는 중국 지방 행정부의 관광 수익을 노린 이권다툼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좀 아쉬웠던 점입니다. 다른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역사편과 쓸데없는 지방 행정부 이야기를 덜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핵심인 은작산 출토 <<손자병법>>의 발굴 과정과 이로 인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중심으로만 소개하는 식으로요. 물론 저자의 허락없는 제멋대로의 편집은 안될 말이겠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손자병법>>과 춘추 전국 시대 (중에서도 춘추 시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볼만합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많은 편이고요. 가격도 상당한 만큼 구입하실 것이라면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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