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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

대지를 보라 - 아카마 기후 / 서호철 : 별점 4점

대지를 보라 - 8점
아카마 기후 지음, 서호철 옮김/아모르문디

1924년에 발표된 르포르타쥬. 당시 38세였던 기자 아카마 기후가 한겨울에 경성 이곳저곳을 탐문하여 쓴 기사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정말 '발로 쓴' 기사들입니다. 직접 변장하고 청소부가 되어보기도 하고, 넝마주이 소굴을 탐방한 내용을 쓴다던가, 선인숙이라 불리우는 싸구려 여관의 손님들을 관찰한 기사를 쓰는 식입니다. 똥 푸는 인부에서 시작하여 영등포 형무소에서 갓 출소한 사람들이나 거지, 신기료 장수, 풍각쟁이, 창부 등 다양한 직업의 하층민들과 진행한 상세한 인터뷰도 가득합니다. 손에 잡힐듯 써내려간 필력도 좋으며 번역 출간 시 덧붙인 각종 주석, 자료도 최고 수준이고요.

다 재미있고 볼만한 기사들인데 몇가지 꼽아보면, 거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당시 좋은 '목'은 경성역 앞, 조선은행 앞, 신마치 유곽 입구와 안쪽이고 일요일과 제일에는 창경원 앞 등이었다는 식의 실용적인 정보를 비롯하여 여러 거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상당한 부자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송이라고 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그러한데 170여원의 예금을 모아 땅을 샀다고 하네요. 또 조선은행 앞의 유명한 거지 노파는 과거 미모와 예능으로 한성의 한량을 뇌쇄시켰던 명기 산월이의 영락한 모습이라는 이야기는 씁쓸하고요.
저자가 변장을 하고 밀창부를 찾는 이야기에서 설명되는 다양한 화류계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굉장한 미녀의 뒤를 쫓아 매음 현장을 알아내는 이야기는 탐정의 활약과 비슷하다 생각 되더군요. 사회부 기자 (책에서 '3면 기자'라고 불리우는)의 노련한 솜씨가 잘 드러난 재미있는 기사였어요.
또 풍각쟁이 편에 등장한 일본인 모녀라던가, 황금정 식당에서 몸을 파는 일본인 여자의 예처럼 하층 일본인이 제법 많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가난을 못 이겨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곳이 만주였다면,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이 그러한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형무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나 술집에서 벌어졌던 활극에 대한 기사 등 책 취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기사가 몇 개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요. 좀 두서없이 써내려간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별점은 4점. 약간의 단점은 전혀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좋은 책이에요. 그동안 식민지 경성을 알려주는 다양한 미시사 서적을 읽어왔지만 1920년대 경성의 풍경, 특히 그곳에서 살았던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낸 책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성을 무대로 한 창작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경성의 하층민은 정말로 끔찍한 삶을 살았구나 싶어요. 단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람사는 정을 거의 느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8살 거지아이 '조노마' 인터뷰가 대표적으로 8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짐덩어리 취급하는, 인간적인 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팍팍함이 참으로 고단하게 다가왔습니다. 뭐 어느 시대건 마찬가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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