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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8

허즈번드 시크릿 - 리안 모리아티 / 김소정 : 별점 2점

허즈번드 시크릿 - 4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마시멜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딸 셋, 남편 존 폴과 행복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는 성공한 주부 세실리아는 어느 날 존 폴의 비밀 편지를 다락에서 발견했다.
레이첼은 30여년전 살해당한 딸 쟈니에 대한 회한으로 평생을 보내온 할머니로 쟈니의 죽음 이후 남편, 아들과 멀어진채 살아왔는데 아들 부부가 유일한 위안인 손자 제이컵과 함께 뉴욕으로 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테스는 남편 윌, 사촌 펠리시티와 함께 광고회사를 하는, 아들 한명이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어린 시절부터 펠리시티와 떨어진 적이 없는 단짝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남편과 펠리시티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들었다.

실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신의 영역이다. - 알렉산더 포프.

최근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인 책입니다.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세실리아가 존 폴이 남긴 비밀 편지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궁금해 하는 과정까지는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 정도 부분인데,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데 성공하고 있어요. 도입부의 판도라 상자 이야기와 엮이는 아이디어도 절묘하고요.
뒷 부분도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남편 존 폴이 과거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고백하는 편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 세실리아의 심리 묘사가 아주 준수한 덕분입니다. 특히 지역 공동체에서의 삶 때문에 피해자의 어머니인 레이첼과 얽히는 과정에서 세실리아의 긴장이 극으로 치닫는 장면이 아주 대박이었어요. 딸을 허무하게 잃은 레이첼의 심리 묘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편집증과 같은 심리 상태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딸의 죽음 때문에 남편,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나버렸다는 묘사도 발군이고요. 시드니라는 낯선 공간을 무대로 했다는 점, 부활절 풍광과 핫 크로스번같은 디테일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인, '아내가 어느날 남편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된다.'는 설정이 지나칠 정도로 흔해 빠진 탓이 큽니다. 때문에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차별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범인이 아니고 범인을 숨겨주고 있었다던가("레베카"), 아니면 남편이 아직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쇄살인마라던가 (스티븐 킹의 중편 "행복한 결혼 생활") 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섹스앤시티"나 "위기의 주부들"같은 미국 막장 드라마 설정을 가져온게 전부입니다! 등장하는 아줌마들 모두 머릿 속에 섹스 생각밖에 없어요! 기승전섹스, 생각의 단계가 이거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 고부간 갈등과 불륜이라는 한국 일일 드라마 소재도 좀 섞여있는 정도고요. 제 취향과는 완전히 달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또 레이첼이 쟈니의 죽음 이후 삶이 망가졌다는걸 세실리아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세실리아의 죄책감이 별로 부각되지 못합니다. 이래서야 세실리아 혼자만의 고민일 뿐이죠. 최소한 이전부터 친했다, 또는 잘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레이첼의 붕괴된 심리를 세실리아가 공유하는 전개였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없이 남편이 거의 30여년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엄청난 문제처럼 부각시키니까 솔직히 설득력도 좀 많이 떨어집니다. 공소시효도 한참 지났을 뿐더러 범행을 저질렀을 때 까지의 삶보다 그 이후, 특히 결혼하고 함께 지낸 삶이 더 길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최소한 진심을 믿어주고 잊어버리는게 현실적일 테니까요. 존 폴은 그만큼 참회하는 인생을 살아오기도 했고요.

세실리아의 고민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이첼이 피해자 포지션으로 확실히 와 닿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특히 아들 롭은 내버려뒀으면서 손자 제이컵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며느리를 미워하는 모습은 완전 비호감이기 때문입니다. 카드로 만든 집 운운하며 가장 중요한 카드가 제이컵이라 그 카드가 빠지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손자이기는 하지만 부모가 직접 뉴욕으로 데려간다는데 뭘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니, 완전 우리나라 꼰대 시어머니 저리가라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심리묘사가 지나칠 정도죠. 이래서야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악역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쟈니의 죽음으로 인한 안쓰러움보다는 악당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지요.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지막 결말입니다. 남편의 죗값으로 내 딸이 불구가 되었다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장면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요. 저라면 레이첼에게 남편의 죄를 고백하고, 남편에게 보복하라고 했을 겁니다. 그 대신 레이첼도 목숨을 내 놓아야겠지요. 레이첼의 행동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건 존 폴이지 어리고 귀여운 폴리가 아니니까요.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결말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쟈니는 마르판 증후군이었고, 존 폴은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에필로그는 더 최악입니다. 쟈니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밀고 싶었으면 단서를 최대한 제공해 줬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테스와 윌 부부, 펠리시티 세 명의 삼각관계와 뒤이어 벌어지는 테스와 코너간의 일탈은 완전히 사족입니다. 테스가 불안증이 있고 펠리시티는 뚱뚱해서 둘만의 세계에 갖혀 살았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코너를 극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데 그런 것 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그렇잖아도 무지하게 긴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좀 잘라냈어야 합니다. 하긴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거 한개 뿐만이 아니죠. 지겹고도 지겨운 베를린 장벽 관련 잡담을 비롯해서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중반까지 독자를 몰입 시키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거보다는 우리나라의 범죄가 조금 들어간 막장 드라마들이("아내의 유혹"(?)) 더 재미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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