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르고 13 - 30 - ![]() 사이토 타카오 지음/아선미디어 |
전설의 만화지요. 관련 글을 읽고 포스팅합니다. 제가 읽은건 국내 출간된 전 30권 버젼입니다.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작품 내에서 선정한 베스트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소개되네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냉정하고 나쁜 놈인지는 몰랐는데 대단하더군요. 아이건, 여자건, 노인이건, 죽여야 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입니다. 피해자가 불쌍한 경우 - 예를 들어 정말로 선한 사람이지만 악당에게 노려진 상황 - 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뢰를 고르고 13이 수락하면 그냥 죽는거에요. 암살자가 피해자에게 동조해서 악당들을 처단한다는 반전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를 치료해준 의사의 아버지까지 죽여버리니 말 다했죠.
보통 이런 류의 콘텐츠에서 봤었던, 숙적이 친구가 된다던가, 목숨을 노리던 여자가 사랑에 빠져 애인이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비슷했던 게 "스파르타커스"라는 동종 업계 경쟁자와 누가 최고인지 한판 승부를 겨루고, 그 승부가 돈 많은 부자들의 유흥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죽어가는 스파르타커스의 의뢰를 받아들여 부자들을 처치한다는 것 정도? 아주 약간 스파르타커스와의 유대감이 느껴지는, 그나마 인간적인 에피소드였습니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저격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먼치킨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인간 병기에다가 못 하는 게 없는 엘리트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군대를 상대로도 이길 뿐 아니라 거의 웬만한 것(예를 들자면 등산 등)은 해당 분야의 프로를 능가할 정도의 실력자로 묘사되거든요. 특정한 에피소드에서는 과장이 심해서 이게 개그 만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실제로 개그적으로 패러디도 많이 되었죠.
이런 점에서는 "분노의 늑대" 오가미 잇토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암살 따위를 하지 않아도 먹고살기는 전혀 어렵지 않을 텐데, 왜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아울러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는데, 고르고 13의 과거를 살짝 밝히며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하는 "세리자와 일가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미놀 검사 등 기본적인 현장 검증을 망각한 경찰의 실수가 눈에 거슬리지만, 내용 자체는 실제로도 있었던 사례인 만큼 제법 설득력 있었어요.
주인공 직업에 걸맞게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디테일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자칼의 날" 같은 이 바닥 고전이 떠오를 정도에요. 예를 들어 철통같은 보안으로 이동 중인 중국인 망명자를 암살하는 에피소드의 경우, 고르고 13이 레즈비언 킬러의 정체를 알아낸 뒤 레즈비언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제압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그 외에도 널리 알려진 여러 가지 사실들 — 절대로 악수를 하지 않음, 누군가 자신의 뒤에 서면 응징함, 의뢰를 위한 방법 등 — 도 실제로 보니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장기 연재가 될 만한 작품이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고, 소문만큼이나 국제 정세를 잘 다루었냐 하면 딱히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전설의 작품을 실제로 접한 기쁨도 크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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