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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5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시공사

아사쿠사의 건어물 가게에서 소비세 12엔을 내려 하지 않은 노인이 가게 주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사건은 쉽게 종결될 수 있으나, 노인의 범행 동기에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 요시키 형사는 수사 끝에 사건이 30여년 전에 발생한 기이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사회 고발 의식이 강하게 담긴 작품으로 범인인 나메카와 - 여태영이 일제 강점기때 강제징용된 조선인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여태영의 인생은 일본때문에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될정도로 꼬일대로 꼬여서 불행의 극을 달리기에 굉장히 처절한 느낌을 전해줄 뿐 아니라 작중에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것이다" 라고 일갈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인데 일본인이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보니 작품 완성도와는 별개로 무척 반갑더군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것은 보너스죠.
또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 유지 혹은 치안 유지의 결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이른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의 불합리한 폭력이며 데이코쿠 은행 사건, 시마다 사건, 마루쇼 사건, 무레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누명을 썼다고 확신한다고 작중 인물인 하타노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것, 일종의 파시즘적인 광기를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회파적인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단체로 광기를 벌이지 않으면 일본인은 타인을 죽이는 전쟁을 거국적으로 행할 기력을 일으킬 수 없는 인종이라고 단정짓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상당히 그럴듯했어요.

그리고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준다는게 특이했는데 홋카이도나 센다이는 물론이고 도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감성으로 접할 수 있으니까요. 첫 사건이 벌어지는 아사쿠사라던가 요시와라, 구레시타 노인의 산책길인 세이로카 병원 - 쓰쿠타오하시 다리, 근처에 대한 묘사 등이 그러한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아사쿠사만 어렴풋이 기억날 정도라... 그러고보니 일본여행도 갔다 온지 참 오래되었군요.
아울러 거의 50여페이지에 걸쳐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흥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도 현학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점이죠. 요시키 형사가 피해자의 과거 근무처였던 요시와라를 탐문하며 요시와라와 에도시대 유곽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식인데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었거든요. <에도 일본>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상세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사회파, 여정 미스터리, 현학적 요소 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명성에서 기대했던 신본격 추리소설로의 가치는 기대 이하라 아쉽습니다.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건만 놓고보면 스케일 크고 전개도 꽤 흥미롭긴 합니다. 열차 안에서 피에로가 화장실에 틀어박혀 권총자살을 하였는데 그 직후 시체가 사라졌다던가, 투신자살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나온다던가,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가 기차가 탈선했다는 식의 상상하기 어려운 불가능 범죄가 연이어 펼쳐지거든요. 이러한 사건에 더해 여름벌레의 날갯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던가, 빨간 색으로 눈이 빛나는 거인이 보였다던가 하는 기이함도 더해져 있고요.

하지만 밝혀진 진상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피에로 사건만 해도 여태영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게 동기라는데, 여기서 여태영이 그냥 도망쳤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여태명과 아라마사의 시체가 함께 발견되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을테니까요. 아니면 여태명의 시체만 중간에 숨기고 그냥 삿쇼선을 타고 도주하면 되잖아요? 어릿광대가 여태영이라는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여튼 들인 노력에 비하면 얻은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아라마사 사건의 경우 여태영은 용의선상에 조차 오르지 않았으니 완벽한 뻘짓이었어요.
게다가 열차의 탈선은 순전히 우연이었고 거인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인 결과"라고 설명될 정도로 우연에 기인한 현상으로, 작가가 복잡성을 더하기 위해 넣은 불필요한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어차피 독자가 여태영 - 여태명 형제의 존재를 알게되면 투신 자살한 시체와 트릭에 대해 어느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기차 시간표가 등장하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고 오히려 공정한 추리를 방해한다는 것도 문제에요. 기차 시간표와 색인이 아니라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은 탓에 핵심 트릭이 뒤늦게 밝혀지거든요. 사실 그 동네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법한 트릭이라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게 외려 더 이상했습니다. 참고로, 조금 이채로왔던 것은 우시코시 형사가 요시키와 만나기 위한 편지에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어떤 기차 몇호를 타라고 지정하는 문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기차시간표 형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어요.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니 나메카와 (여태영)가 처음에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닥입니다. 소비세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하거나, 과거 사건의 복수 때문으로 밝혀지거나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아라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라면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상황은 충분히 정상참작을 받을만한 것인데... 왜 치매에 걸린 것 처럼 위장해서 입을 다물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초절정 미소녀였던 사쿠라이가 30년이 지난 뒤 폭싹 삭아버린 것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 것도 조금 의아한 점이었고요.

그리고 일본 연호로 년도를 표시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독자를 위해 모두 현대의 서력을 병기하여 주는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문체, 예를 들자면 "신호에 멈추어 섰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강이었다. 바람에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벚꽃 냄새와 비슷했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학생처럼 보이는 옆에 선 젊은이의 어깨 밑에 가려질 정도로 키가 작았다" 와 같은 묘사는 신호에 멈춘 것과 벚꽃 냄새, 노인의 체구를 두서없이 나열한 느낌이고요. 보다 깔끔하게 "신호가 빨강이라 멈추어 섰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가 느껴지는 봄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라는 식으로 정리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뭐 제가 문체를 지적할 수준의 뭐가 있는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사회고발적인 성격은 높이 평가할만 하고 특히 강제 징용 조선인에 대한 부분은 만점을 주고 싶고 시마다 소지의 또다른 면을 접한게 된 것도 기쁜 일이지만 추리적인 부분이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치고는 알맹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일본인 작가가 반성의 의미로 쓴 "강제 징용된 조선인"에 대한 텍스트로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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