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강도 -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
여성을 노린 연쇄 노상강도 범인이 범행 후 정중한 자기 소개 — "클리퍼드가 감사를 전합니다. 마담" — 로 유명해졌다. 87분서는 검거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한편 순찰경관 버트 클링은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벨의 부탁으로 그의 처제 지니 페이지를 도와주려 하나 실패했고, 그 뒤 지니는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노상강도 사건과의 연관성이 의심되어 총력 수사가 진행되는데...
"경관혐오" 바로 다음에 발표된 87분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작중에서는 내내 신혼여행 중으로 묘사됩니다. 때문에 주역으로는 순찰경관 버트 클링이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경관혐오"에서 총에 맞아 입원했었지요. 내용은 줄거리 요약에 있는 대로 노상강도 사건을 축으로, 지니 페이지 살인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이 중 노상강도 사건은 윌리스 등 형사들의 수사과정이 꽤나 자세하게 묘사되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끄나풀이 등장하고, 불법 도박장에 잠입하고, 심지어 여성 경관을 이용한 함정 수사까지 펼치는 등 수사 방법도 다양하게 선보입니다. 결국 범인을 잡게 된 단서가 함정수사를 통해 입수한 종이 성냥이었다는 식으로 체포까지의 과정도 아주 깔끔한 편이고요. 한 마디로, '발로 뛰는 수사로 확보한 단서를 토대로 한 범인 체포'라는 수사물의 왕도격 전개를 보여줍니다. 범인이 가명이 아니라 정말로 "클리퍼드"라는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경찰 수사가 너무 미진한 게 아니었나 싶기는 하지만요.
유도 고수 윌리스나 폭력 형사 하빌랜드와 같은 형사들의 독특한 캐릭터도 돋보이고, 마이어 마이어가 끝까지 미는 농담 — 고양이 절도 사건과 그 진상인 Instant pussy — 까지 깨알같은 재미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이야기인 지니 페이지 살인 사건은 영...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에드 멕베인의 또다른 필명인 에반 헌터 명의의 주정꾼 탐정 커트 캐넌 시리즈 중 한 편인 "프레디는 그곳에 (Now Die in It)"와 완벽하게 똑같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을 제외하면 친구가 처제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의뢰하고, 처제가 살해당하고, 처제의 남자를 찾아나서고, 결정적 단서는 받았던 메모였다는 전개와 내용 모두 동일합니다. 시기상으로도 이 "노상강도"가 3년 뒤 발표된 것이니 표절, 혹은 확대 재생산된 작품이 맞는 것이죠. 심지어는 왜 탐정–경찰에게 처제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의뢰하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단점까지 같아요.
물론 자신의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 사례가 다른 거장들에게 없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님 등 유사한 전례는 제법 되니까요. 어차피 본인의 작품을 본인이 표절한 것이니만큼 비난하기도 뭐하고요. 허나 최소한 책 소개에서는 언급해주었어야 합니다. 읽다보니 완벽하게 똑같은데, 이래서야 돈을 주고 구입한 독자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뒷통수 맞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만, 버트 클링 순경의 재담과 클레어 타운센드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 그리고 시적인 몇몇 묘사는 좋습니다. 초기작다운 순수한 하드보일드 스타일 전개도 인상적이고요. "주정꾼 탐정"을 먼저 읽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고득점이었을 겁니다. "주정꾼 탐정"을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버트 클링이 이 사건 이후 특진되어 87분서에 형사로 배속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후 작품에 등장하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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