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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4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로버트 템플 / 과학세대 : 별점 3점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6점
로버트 템플 지음, 조지프 니덤 서문, 과학세대 옮김/까치글방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저본으로 하여 중국이 3,000년 동안 “세계 최초”로 이룩한 놀라운 발명과 발견을 200여 점의 도판과 농업, 공학, 수학, 의학, 음악, 물리학, 수송, 전쟁기술 분야의 100가지 항목으로 편집하여 소개하는 책. (책 소개 인용)

중국 고대 발명품과 발견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 이런 류의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은 제가 굉장히 좋아라하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기본적인 재미는 물론이고 설득력을 높여주는 다양한 도판이 한가득 실려있어 더욱 매력적이었어요. 무려 100여가지 항목이 수록된 만큼 양도 굉장히 풍부하고요.
워낙에 많은 내용이 수록된 탓에 내용 요약은 어렵고... 제가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복동식 피스톤 풀무 :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계같은 느낌의 이름인데 피스톤을 밀고 당길때 모두 바람이 나오게 하는 것이 전부인 일종의 자동 밸브. 그러나 이 단순한 발명품이 기원전 4~5세기 (!)에 등장한 덕분에 중국의 모든 산업 (특히 제철과 같은 야금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니 허투루 볼건 아닙니다.
크랭크 핸들 :
지금도 이런 저런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레바퀴 측면에 막대기를 끼워 손잡이로 삼아 돌리게 만든 발명품. 비슷한 것을 서양에서 생각해 내기까지는 무려 1,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단순한 것인데... 의외였어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을까요?
천연 가스 채굴 :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천연 가스를 채굴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순전히 인력으로 평균 900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팠다는 것 (주로 소금 채굴을 위해), 여기서 나오는 가스를 잘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고안 역시 대단했습니다. 잘만 활용했더라면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스팀 펑크 스타일 SF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대나무에 저장한 천연가스를 활용한 동력원!
칠 :
옻칠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재인데 일종의 니스로 플라스틱과 같다고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태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특유의 보존력, 강도, 내구성을 볼 때 그렇구나 싶기도 했어요.
성냥 :
여태 서양의 누군가 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초는 북제 왕조의 여관들이 유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성 호르몬 추출 :
소변에서 성 호르몬을 추출했다는 것이 기원전 125년전의 회남왕의 서적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불을 이용한 승화, 강제 증발 이외에도 증류수를 넣은 뒤 태양열로 자연 증발시켜 얻었다고 하네요. 아울러 남녀 소변을 구별하여 제조하고 싶은 호르몬 종류에 따라 소변 혼합 비율을 바꾸었기 때문에 결과물인 "추석"은 어느 경우는 안드로겐 (남성 호르몬)이 많았고 어느 경우는 에스트로겐 (여성 호르몬)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지리 식물학 :
'특정 광물질이 많아 다른 식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토양에서도 번성하는 식물들을 가지고 탐광하는 것'으로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부터 처음 안 사실입니다.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근거이며, 이후 1421년의 <경신옥책>에서는 금은 순무에, 은은 수양버들에, 동은 인도산 괭이밥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학문으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광물의 미량원소가 실제로 특정 식물에 존재하며 거기서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참고로 예전에 전파과학사 문고 <과학사의 뒷얘기>에 실려있던, 토마스 챌러너 경이 요크셔에서 명반석 광상을 발견한 것이 유럽 최초의 지리식물학적 탐광 사례라고 합니다. 1600년 경의 일이죠.
지진계 :
<갤러리 페이크>에도 나왔던, 용 입의 구슬이 두꺼비로 떨어지는 기계로 도판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실제 어떻게 동작했는지까지 알려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지진"과 "단순 진동"을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지진계 옆에서 아이가 뛰어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쇄 :
중국에서 인쇄는 대단히 활발했다고 하는데 10세기 어느 불교도 문집은 지금도 40만부 이상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얼마나 찍었을지 상상도 안되네요. 40만부 이상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인쇄에 관련된 상세한 설명 - 인쇄에는 유실수를 사용한다. 침엽수에 포함된 수지는 먹이 균일하게 칠해지는데 방해 작용을 하기 때문 등 - 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으로 "대나무"가 서양에서는 나지 않아서 중국의 획기적인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시각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속이 비어있어서 가벼운 재료가 없었기 때문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선박의 "활대"를 들고 있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은 재미없는 부분은 너무 재미없다는 것, 그리고 조지프 니덤의 원저를 베이스로 새롭게 추가하고 엮은 내용이라고 하는데 억측이 상당히 많아서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해당 기술이나 발견의 시기를 단어나 문장 몇마디 가지고 굉장히 오래전 것으로 정의한다던가, 유럽에서의 발견도 중국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추측하는 식입니다. 대표적인 것인 사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가 중국인이 먼저 개발했던 석궁을 보고 도시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중국에서 "대진"이라고 불리운 시리아와 교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대는 정도인데 이 정도는 증거도 뭐도 아니죠.
지리 식물학 이야기에서처럼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근거치고는 많이 약해요. 실제 혜당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말이죠. 이건 그렇다 쳐도 <문자>에 쓰여진 "옥이 묻힌 곳에는 나뭇가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글이 단순 지리 식물학이 아니라 식물의 생리적 상태까지 간파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억측은 우리에게는 동북공정과 같이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이네요. 이 책에 따르면 불국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중국에서는 자기들 유물이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니 더욱 그러해요.
아울러 내용에서 단순 년도만 표기하지 말고 해당 시기 중국의 왕조는 무엇이었을지 정도만이라도 함께 써주는 배려가 없는 것도 아쉬웠으며, 번역도 괜찮은 편이지만 장기 이야기에서 "포"를 "로켓 소년"이라고 번역한 것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국어로 재 번역할 때 당연히 걸러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을까요? 중국 장기는 뭐가 조금 다른건지...

그래도 관련된 사료도 충실하고 도판도 만족스러운 수준일 뿐더러 첫 발견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기에 아주 폄하하기는 어렵군요.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50% 할인 가격에 구입했기에 더 만족감이 크기도 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책보다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보는게 더 낫지 싶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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