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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1

Arsene Lupin 아르센 뤼뺑 - Jean-Paul Salome : 별점 3점

노르망디의 숙모 저택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뤼뺑은 아버지가 사실은 도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숙모 가문의 보물인 "여왕의 목걸이"를 훔쳐서 아버지에게 전해주는 첫 도둑질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뤼뺑은 어린 시절에 작별을 고한다.
세월이 흐른 뒤, 뤼뺑은 장성하여 스스로 라울 당드리지라고 자칭하며 도둑질을 일삼다가 먼 친척이자 소꼽친구인 클라리스와 다시 만나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던 중 숙부의 은밀한 밤의 집회를 훔쳐보다가 왕당파인 숙부와 그 일당이 처형하려 하는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조세핀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그녀의 마력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위해 막대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십자가를 훔친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의 진상과 더불어 자신을 지배하고 조정해서 야심을 채우려는 조세핀의 마력을 깨닫고 십자가를 빼돌린 후, 십자가를 노리는 왕당파와 조세핀에 맞서 보물을 되찾고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2004년에 새롭게 제작한 뤼뺑 영화.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해 보게 되었네요.

스토리를 간략하게 훝어보면 뤼뺑의 여러 작품을 짬뽕해서 각본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꽤 그럴듯하고 앞뒤가 잘 맞으면서도 핵심 줄거리를 놓치지 않아 상당히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모험 영화로 완성되었네요. 아르센 뤼뺑의 "모험" 도 아르센 뤼뺑과 "기암성"도 아르센 뤼뺑과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도 아닌 그야말로 당당하게 "아르센 뤼뺑"이라고만 타이틀을 달고나온 값은 하는 영화랄까요?
"기암성"에서 기본 설정과 무대를 빌려오고 있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둥 줄거리에 오리지널에 가까운 뤼뺑의 가족사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상 이야기, 마녀 백작부인 이야기라는 크게 3개의 이야기가 섞여 있는데 기둥 줄거리에 발맞춰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정리를 잘 해서 풀어나가는 각본이 상당히 뛰어나요. 모든 이야기를 정교하게 엮으면서도 나름의 반전까지 준다는 점에서 정말로 칭찬할 만 하더군요. 원작에 비해 각색은 많은 편이나 뤼뺑의 아버지에 대해 전해주는 부분도 꽤 그럴듯해서 팬으로서도 그다지 불만 없었고요. 뤼뺑의 아내와 아들에 대한 설정은 약간 의외였긴 했지만 아내와 아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 역시 팬으로서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물론 추리물이 원작인 추리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겠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추리적인 요소는 덜 했지만 상당히 기발하게 처리했다고 보여지며, 무엇보다도 십자가 3개를 이용한 지도 해독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영화인 탓에 어렵고 복잡한 암호는 등장하지 않지만 순간적 우연+논리에 의한 해독 장면은 정말 그럴듯 했거든요. 우연에 의지하며 관객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거의 없는 만큼 치밀하거나 정교한 맛은 별로 없지만 이러한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모험물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잘 끌어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매력은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고 변장의 귀재이면서도 순간적인 기지와 도둑질에 능한 바람둥이 뤼뺑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살려냈다는 점이겠죠. 이러한 뤼뺑의 모습은 팬으로서 영화내내 즐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배우가 좀 느끼하게 생겼고 뤼뺑 특유의 유머러스한 부분이 모자란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간 보아온 뤼뺑 관련 영상물 중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풍스러운 20세기 초엽의 파리의 모습과 의상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고요.

하지만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조세핀을 정말로 마녀로 설정한 점은 이유가 좀 궁금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원작의 라이벌격인 가니마르나 소년탐정 이지돌 군, 헬록 숄메보다야 드라마 구성상 더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조세핀이 너무 전능한(?) 악당이라는 점에서는 거부감이 오기도 했고 말이죠. 그냥 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해도 충분히 괜찮은 팜므파탈로 창조해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어요. 조세핀 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연기도 좋았지만 뤼뺑이나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 듯 "마성의 미모" 의 배우로는 절대 보이지 않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되고요. 아울러 호흡이 굉장히 빠르고 생략도 많아 내용적으로 약간 부실한 부분도 적잖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각종 뤼뺑관련 영상물 중에서, 그것도 각색을 한 작품 중에서 이만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은 그동안 없었다고 생각되며, 무엇보다도 "괴도신사"로서 살아 숨쉬는 뤼뺑과 실제 "기암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는 정말로 만만치 않습니다! 결말부에서 은근슬쩍 예고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속편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1/26

이상한 집 - 모리스 르블랑 / 도화진 옮김 : 별점 3.5점

이상한 집 모리스 르블랑 지음, 도화진 옮김/태동출판사

여배우 레진느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드레스를 선보이는 오페라 극장에서의 패션쇼에서 갑자기 화제가 발생하고 레진느가 납치된다.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빼앗기고 겨우 풀려나지만, 모델 아를레트가 동일 인물에게 같은 장소로 납치되었다가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모험가 장 당느리는 그 장소가 유명한 자선사업가 멜라미르 백작의 저택임을 밝혀낸다. 

장 당느리, 다이아몬드 상인 반 후벤 등과 동행했던 베슈 반장은 현장에서 백작을 검거하고 백작의 가문에 이상한 도벽의 피가 유전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사건은 거의 해결되는 듯이 보이지만 정체불명의 호남아 앙투완느 파즈로가 등장하여 관련 인물들을 소집한 뒤 백작의 무고를 주장하여 백작은 풀려나게 된다.
앙투완느 파즈로는 장 당느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를레트의 환심조차 얻어 그녀와 결혼까지 발표하게 되며 장 당느리는 질투와 사명감에 불타 파즈로의 정체와 사건의 진정한 흑막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아르센 뤼뺑 시리즈 중 한권. 원래 이 시리즈는 성귀수씨가 번역한 까치글방 책으로 모으고 있었는데 마침 자주가던 헌 책방에 이 태동출판사 책이 싼값에 나와 있어서 그냥 구입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번역 등은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책이 작고 가벼워서 마음에 들더군요.

일단 뤼뺑은 자신의 본명 대신에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모험가 장 당느리 자작이라는 인물로 등장하여 활약하는데 무려 3명의 여성을 유혹하는 바람둥이로서의 뤼뺑, 불가사의한 범죄를 풀어내는 탐정으로서의 뤼뺑, 정체가 밝혀지기까지 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볍게 탈출하는 뤼뺑, 베슈 반장을 데리고 노는 뤼뺑 등 뤼뺑의 모든 매력이 전부 등장해서 뤼뺑 팬에게는 큰 재미를 안겨다 주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또 이전에 읽었던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바리바"에서 인상적인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베슈경감이 등장해서 역시나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막강한 라이벌이자 연적으로 묘사되는 앙투완느 파즈로가 뤼뺑과 좋은 승부를 계속 펼쳐보여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뤼뺑을 묘사하는 앙투완느 파즈로의 한마디가 뤼뺑을 굉장히 잘 나타내고 있어서 인상적이네요.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바람둥이... 당신들 모두를 휘어잡으려는 교활한 돈주앙" ^^
내용도 뤼뺑 시리즈 특유의 모험담과 활극이 추리와 잘 어우러진 형태로 유머도 넘치고 평균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퀄리티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작품처럼 모험담 중심으로 추리가 곁들여져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추리적인 부분의 수준도 높아서 멜라미르 백작 가문의 굴절된 역사가 인용되는 약 4대,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수준의 역사적, 공간적 트릭은 - 이 트릭은 엘러리 퀸의 "신의 등불"의 모티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상당한 수준이에요. 놀라운 수준의 퍼즐 미스테리는 아니지만 트릭에 관련된 앞부분의 복선이나 단서가 상당히 공정하고 설득력있는 편이라 공들여 잘 짜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관계자를 전부 모아놓고 일종의 "깜짝쇼"를 펼쳐 사건을 마무리 할 때 입니다. 종반까지 강력한 적수로 묘사된 파즈로가 이 깜짝쇼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며 계속 끌려다녀 결말이 너무 시시해졌기 때문이에요. 좀 더 파즈로와의 대결 구도를 유지했으면 재미있었을텐데 말이죠. 뭐 이 정도로도 뤼뺑 상대로는 제법 오래 버틴 것이긴 하지만요. (나름대로 승기를 잡기까지 했던 뤼뺑의 몇 안되는 적수 중 한명이지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발표된 순으로 보니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와 "바리바" 사이에 위치한 작품이던데 세 작품 모두 뤼뺑-베슈반장 이야기로 매력적이면서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유쾌한 악당 뤼뺑의 매력을 느끼시기에 충분한 만큼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도 이제 후반 작품들만 읽어보면 완독할 수 있을것 같아 기쁩니다!

2022/08/27

수정마개 - 모리스 르블랑 / 심지원 : 별점 1점

아르센 뤼팽 전집 6 - 2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심지원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뤼뺑이 부하 보슈레의 권유로 하원의원 도브렉의 별장을 털던 중 도브렉의 하인 레오나르가 살해당했다. 부하 보슈레와 질베르가 체포되어 단두대에 오를 운명에 놓이자 둘을 구하기 위해 뤼뺑은 도브렉에 대해 조사하던 중, 자기도 감시당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감시자는 질베르의 친모인 회색 머리의 미녀 클라리스였다. 클라리스가 도브렉 대신 남편을 택한 뒤 도브렉의 복수로 그녀의 남편은 자살했고 질베르도 범죄와 방탕에 빠지고 말았다. 27명의 고위 관료를 협박할 수 있는 서류가 도브렉 힘의 원천이었다. 뤼뺑은 클라리스와 힘을 합쳐 질베르를 사면시키고, 도브렉을 몰락시키기 위해 이 서류가 감춰져 있다는 '수정 마개'를 맹렬하게 찾아 나서는데....

뤼뺑 시리즈 장편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813의 비밀"과 함께 아동용으로 접해본 뒤 기억에서 지웠던 작품입니다. 최근 읽을게 없나 찾아보다가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왜 어린 마음에도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무런 개연성도, 설득력도 찾을 수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간 듯한 엉망인 전개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뤼뺑 캐릭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작품에서 뤼뺑은 실패만 반복합니다. 도브렉 별장 털이 실패에서 시작해서, 은신처에서 수정 마개를 곧바로 도난 당하고, 도브렉 저택에 침입했을 때에는 도브렉에게 숨어있던걸 들켜 망신을 당하고, 겨우 다시 훔쳐낸 수정 마개는 또다시 도난당하고, 도브렉과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섰을 때에는 정체를 바로 간파 당하며, 납치된 도브렉을 구해주다가 칼에 맞고, 심지어 도브렉을 추적할 때는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기존의 전지전능한 뤼뺑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요. 한마디로 그냥 어설픈 실패자로만 등장합니다. 실패만 거듭하면서 클라리스에게 아들을 구해줄테니 나서지 말라며 큰손리를 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절망에 빠져 다 잊고 잠이나 자겠다며 수면제를 들이켜는 장면에서는 제가 뭘 읽고 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이런 실패의 연속은 극적인 긴장감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뤼뺑 시리즈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뤼뺑이 실패할까?' 라는걸 기대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모든 사건이 우연히, 급작스럽게 일어나거든요. 뤼뺑과 클라리스가 도브렉을 감시하는게 교차되는 과정이라던가, 전개의 특정 시점에 맞춰 딱 맞게 벌어진 도브렉 납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마지막에 도브렉이 진짜로 숨어있는 장소를 뤼뺑이 알아냈던 것도 마찬가지에요. 도브렉의 부하를 산레모 역에서 마주친 덕분이었는데, 이는 작위적인 전개의 극치라 할 수 있겠지요.

설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도브렉이 중요한 서류 - 27명의 명단이 담긴 - 를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정 마개의 존재가 대표적입니다. 서류를 수정 마개 안에 숨긴 뒤, 그 수정 마개를 어딘가에 숨긴다는 설정인데, 이럴거면 그냥 어딘가에 서류를 숨기면 되잖아요? 구태여 수정 마개를 사용하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서류를 숨기기 위한 용도로 모자를 사용했다는 억지 설정과 별로 다를게 없습니다. 오히려 눈에 띈다는 점에서는 모자보다도 못한 셈이고요.

27명의 명단도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하면 설명이 부족하고 비합리적입니다. 도브렉이 그들을 협박하려면, 명단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려고 협박범에게 굴복하는게 보통이니까요. 하지만 명단 속 인물들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걸로 묘사됩니다. 도브렉이 납치되었을 때, 뤼뺑이 약간의 단서를 토대로 "나폴레옹 덕에 귀족이 되었다가 왕정복고로 망해버린 코르시카 혈통의 후예인 명단 속 인물"이 납치범일 것이라고 추리하자, 경찰은 곧바로 그건 알뷔패스 후작이라고 말할 정도로요. 그렇다면 당연히 도브렉의 협박은 먹힐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서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했다면, 더 설득력있는 근거를 댔어야 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습니다. 뤼뺑이 하는 것이라고는 변장과 잠입, 그리고 납치가 전부인 탓입니다.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인 '수정 마개'의 위치는 도브렉이 납치당해 고문당했을 때 했던 "메리"라는 단어와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말, 도브렉이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가져갔다는걸 종합하여 위치를 알아내는데, 도브렉이 가져간 다음에 알아냈으니 제대로 된 추리라고 보기 힘듭니다. 없어진게 담배갑 뿐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하지요. 수정 마개는 담뱃갑 안에 들어있던게 당연합니다. '메리'는 도브렉이 메릴랜드 산 담배만 피워서 한 말이라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 담뱃갑이 메릴랜드 산이건, 한국 담배 인삼 공사 제품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게다가 이 담뱃갑은 종이 띠로 포장되어 있어 최초 뤼뺑의 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킹은 죽었다"처럼 부실한 조사 탓으로 생겨난 수수께끼에 불과한 셈이라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수정 마개는 일종의 미끼였고, 안에 들어있던 서류는 가짜였다는 반전은 괜찮았어요. 도브렉의 의안이 진짜 서류가 담긴 수정 마개였다는 진상,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도브렉은 항상 두꺼운 색안경을 끼곤 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구멍을 통해 침입했던건 클라리스의 아직 어린 아들이었다는 트릭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점은 미약합니다. 단점 투성이의 졸작이자 망작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2008/08/11

813의 비밀 - 모리스 르블랑 / 성귀수 : 별점 2점

813의 비밀 - 4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대부호 케셀바흐의 호텔방에 뤼뺑이 침입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케셀바흐가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한 정보였다. 뤼뺑은 케셀바흐의 비밀금고에서 관련 문서를 입수한 뒤 철수했는데, 다음날 케셀바흐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청의 르노르망은 살인은 뤼뺑이 행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추리를 펼쳐 살인범 L.M에 대한 단서를 잡지만 주요 증인들이 연이어 살해당했고, 르노르망도 범인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한편 세르닌 공작으로 자칭한 뤼뺑은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유럽의 판도를 뒤바꿀 비밀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L.M의 음모에 빠져 샹떼-팰리스에 수감되는데...

너무 더워서 책 읽기가 힘드네요. 독서도 힘든 날씨에 여러모로 지친 머리를 식히고자 고른 책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기암성 이후 4년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뤼뺑의 모험을 그린, 500여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장편이지요. 뤼뺑 시리즈 중 가장 길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거대한 스케일, 즉 유럽의 판세를 놓고 벌이는 뤼뺑과 악당 L.M의 한판 승부가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20세기 초반 당시의 유럽 현황, 실제 있었던 역사 속에서 뤼뺑은 배후의 큰손으로 흡사 진나라의 여불위를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거대 음모를 가능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황제의 편지" 역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기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 내내 뤼뺑과 박빙의 대결을 펼치는 정체불명의 악당 L.M 이 다른 라이벌인 홈즈와 가니마르와는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추리물다운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뤼뺑 시리즈는 괴도가 등장하는 범죄소설이기도 하지만 황금시대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완성도 높은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인데, 이 작품은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그러한 트릭 없이 모험물에 가까운 분위기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거든요. 813이라는 숫자와 "APOON"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일종의 암호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APOON의 경우 억지에 가까운,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수준의 간단한 장치일 뿐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의문에 가까운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성공한 것 같지 않네요. 마지막의 반전, 그리고 범인 L.M의 정체 역시 지금 읽기에는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결말이었습니다.

뤼뺑의 다양한 변장과 이중생활, 사생활(특히 딸까지 등장합니다!) 등이 디테일한 심리묘사 등을 통해 보여지는 것과 유럽을 대상으로 한 뤼뺑의 두뇌게임은 매력적이지만 길이에 비한다면 알맹이는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야기는 분명 재미있지만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모험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단지 모험물로만 본다면 괜찮기도 하지만 추리 애호가로서 평가했기에 별점이 좀 낮군요. 어쨌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2003/12/15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 모리스 르블랑 / 성귀수 : 별점 4점

바르네트 탐정사무소 - 8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뤼뺑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스스로 선정한 3대 뤼뺑시리즈 중 한편이라는 말도 들었고, 워낙 단편집을 좋아해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일단 그간 나온 뤼뺑시리즈에 비하면 좀 얇은 편이라서 부담이 덜합니다. 장정도 예쁘고, 역시 시리즈물답게 책을 잘 만든 편이네요.

작품은 뤼뺑이 바르네트라는 이름의 탐정을 자칭하며 가니마르의 후계자 베슈경감과 함께 "무보수"로 온갖 사건들을 해결해 주며 자기 주머니도 챙기는 유쾌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특히나 바르네트, 뤼뺑이 베슈를 놀려먹는 부분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왜 뤼뺑이 "괴도신사"로 불리는지 잘 알게 해주는 부분이랄까요? 마지막에 베슈경감의 전처까지 꼬셔서 밀월여행(?)까지 떠나는 부분은 정말 압권입니다.

8편밖에 수록되어있지 않아서 아쉽긴 하지만 내용적으로 충실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쾌한 단편집이었습니다.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영화화도 몇번 되었던 모양인데 상당히 보고 싶네요. 그간 너무 두꺼웠던 뤼뺑시리즈에 부담가지셨던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04/01/25

바리바 / 에메랄드 반지 - 모리스 르블랑 / 성귀수 : 별점 4점

바리바 / 에메랄드 반지 - 8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까치글방

이 책은 뤼뺑 시리즈 16번째 작품으로 중편길이의 “바리바”와 초단편 “에메랄드 반지”가 수록된 책입니다. 뤼뺑이라는 이름보다는 라울 다브낙 자작으로 활동하는 본편에서는 전작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베슈경감과 다시 컴비를 이룹니다. 덕분에 컴비의 팬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미인 자매 카트린과 베르트낭드는 할아버지로부터 “바리바”라는 지방의 영지를 상속받게 됩니다. 카트린은 어렸을 때 놀던 동산의 버드나무의 위치가 남몰래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혼란속에 카트린의 언니인 베르트낭드의 남편 무슈 게르생이 살해됩니다… 라울 다브낙 (뤼뺑)은 조사끝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몽테시외씨가 무언가 “보물”을 만드는 비법을 그 영지에 숨겨놓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뤼뺑의 사악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나름대로 살인사건과 암호트릭 등 추리적인 재미도 가득하고, 자연현상과 트릭을 이용해서 거대한 고대의 유적을 파헤치는 모험소설적인 재미까지 갖춘 작품입니다.

여러모로 “루팡 3세”라는 일본산 만화의 캐릭터와 굉장히 유사한 느낌인데, (특히나 "카리오스트로의 성") 일종의 암호문에서 뽑아낸 보물찾기라는 소재라던가 주인공의 성격묘사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물론 후발주자인 “루팡 3세”가 많은 부분을 인용한(혹은 베낀) 것이겠지만 그동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아서 이러한 뤼뺑의 매력을 모르던 차에 이번 완역으로 뤼뺑이라는 캐릭터의 진면목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괴도신사" 정도로만 알려졌었잖아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결코! 특히 남자나 적에 대해서는! 절대로! 신사가 아닙니다.

뒤에 수록된 초단편 “에메랄드 반지”는 심리적인 트릭을 다룬 단편으로 그다지 설정이나 트릭이 매력적이진 못했지만 서비스 단편으로는 꽤 그럴 듯 했어요.

결론내리자면 뤼뺑의 정수를 뽑은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는 의미도 크고요.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도 무척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는데 이 책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전 20권이나 되는 전집을 다 사 모으는 것은 힘들지만 꾸준히 진행해야 겠습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에요.^^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14/06/02

탐정사전 - 김봉석, 윤영천, 장경현 : 별점 1.5점

탐정사전 - 4점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프로파간다

제가 어렸을 적,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출판사였던 해문은 "세계의 명탐정 50인"(이후 일본 탐정을 뺀 44인으로 축약 재간)이라는 책을 출간했었습니다. 명탐정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퀴즈를 한 개 선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었죠. 이런 핵심 내용 외 일러스트, 수록된 여러가지 추리 관련 정보도 인상적이었고요. "스포일러"라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추리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추리 키드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이라는 동일 구성의 유사 도서가 연이어 출간되었던 걸로 보면 꽤 인기를 끌었던 것 같네요.

이 책 "탐정 사전"의 출간 정보를 들었을 때에는 "세계의 명탐정 50인"의 현대적인 재구성이 될 걸로 예상했습니다. 스포일러 문제 및 저작권 이슈로 추리 퀴즈 부분이 빠지더라도 그만큼 잘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출간과 거의 동시에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실망이 큽니다. 이 책이 대체 누구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는지 알 수가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 문학 초보자를 위한 책이라면 정말로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엄선하여, 그중 등장한 탐정들을 중심으로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애호가를 위한 책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탐정을 소개하거나, 기존에 소개된 탐정이라도 다양한 정보를 충실히 실었어야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뷔페에서 맛이나 코스 구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식을 얹어놓은 쟁반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일단, 어떤 기준으로 탐정들이 선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탐정을 담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선정 기준은 막연하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출판물이라면 판매 부수나 시리즈 권수, 방송물이라면 시청률이나 방영 횟수, 또는 역사적 의의 등의 기준이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솔직히 선정 기준은 그냥 저자들의 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IWGP"의 마시마 마코토, "트릭"의 야마다 나오코와 우에다 지로, 니시오 이신의 이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의 3대 탐정 중 하나인 가미즈 교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우치다 야스오의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나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경부 등을 제치고 소개될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꼭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걸작에서 활약했으며 추리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탐정들 중 소개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렌치 경감, 커크릴(콕크릴) 경감, 방코랑은 그렇다쳐도, 대체 뤼뺑은 왜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 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엔, 그 외의 황금기 명탐정은 거의 수록되어 있으니까요.

"차일드 44"의 레오 데미노프와 같은 스탠드얼론 작품의 주인공이 포함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작품이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레오 데미노프가 전통적인 ‘탐정’ 역할에 충실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소련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평가하고 싶었다면, 시리즈 캐릭터인 아르카디 렌코가 더 타당했을 것입니다. "토로스 & 토르소"의 헥터 라시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즈라고는 하나 국내에선 한 권만 소개되어 있어 스탠드얼론으로 보이고, 탐정 같지도 않은 인물인데 뤼뺑마저 빠진 명단에 포함되었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탐정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실려 있는 부분은 어이없음의 극치입니다. "지뢰진"의 이이다 쿄야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요. 굳이 추리만화에서 뽑고 싶었다면 "Nervous Breakdown"의 두 컴비나 "절대미각 식탐정"의 다카노 세이야를 꼽는 게 나았을 겁니다. 완성도를 떠나 최소한 ‘추리 만화’이긴 하니까요. 대중문화적 아이콘으로 넣고 싶었다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가 더 적절했을테고요.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절판본이나 국내 미출간작에 등장한 탐정을 소개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메이즈리크 시리즈를 소개하며 국내 절판이라 언급했는데, 이런 식이면 독자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커트 캐넌 시리즈도 한 권만 출간되었는데, 현재 절판입니다. 뒤렌마트의 베르라하(베를락) 경감 시리즈, 모돌이 탐정도요.

캐릭터별 글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사전이라면 구성 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캐릭터는 단순히 정보만 나열하는 반면, 어떤 경우는 작품 분석과 작가 소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항목도 많습니다. 반 두젠(밴 듀슨) 교수의 경우,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과 대표작 "13호 독방의 문제" 언급만으로 그치는데, 이런 내용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개 작성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주요 작품과 그 속에서의 활약상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에요. 

그 외, 탐정들의 배열도 시대순이나 장르순이 아니라 이름순이라는 점도 의아했으며 실제 캐릭터가 묘사된 일러스트조차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건질 만한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결과물 자체는 아쉬웠지만, 고전 본격물부터 하드보일드, 현대물, 대체역사 판타지, SF, 만화, 드라마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범위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게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의 스가무라 사부로 시리즈, 센도 타카시의 "폐허에 바라다"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로버의 악당들"의 빌 파믈리, 토니 힐러만의 인디언 탐정 조 리프혼과 짐 치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Q.E.D"의 토마 소같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은 탐정 소개도 반가왔던 점입니다. "Q.E.D" 소개글은 작품의 매력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괜찮았던 몇몇 항목에 비해 전체적인 만족도가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방향성이 없는 기획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정보들이 대다수인 탓이지요. 30여 년 전 읽었던 "세계의 명탐정 50인"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점도 없고요. 가격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덧붙여 눈에 띈 몇 가지 오류를 정리해봅니다. 엉클 애브너 항목에서 "나보테(나봇)의 포도원"을 "나보프의 포도밭"이라 오기한 부분, "차이나타운" 작가 소개 영역에서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표기된 점(각본가가 언급되었어야 함), 유불란의 후속작이 없다고 언급한 점 등입니다.

2010/12/10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 로버트 바 / 이은선 : 별점 3점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 - 6점
로버트 바 지음, 이은선 옮김/시공사

프랑스 총경 출신으로 영국에서 탐정으로 활약하는 외젠 발몽이 주인공인 단편집으로, 1907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예전에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 국내 출간이 반가웠고, 기대만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유쾌한 분위기입니다. 마치 마크 트웨인이 추리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할까요? 특히 프랑스인 탐정 발몽이 영국 사회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태도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그의 허영심과 자의식 과잉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요소도 재미를 더하죠. 이러한 자뻑 탐정의 전형적인 예로는 '에르퀼 포와로'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발몽은 여성에게 약하다는 점에서 포와로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살인 사건보다는 도난과 사기 사건이 중심이 되는데, 단순한 해결 과정뿐만 아니라 범죄 계획 자체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반 셜록 홈즈의 라이벌 탐정들이 활약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기존 정통 단편 추리 소설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탐정이 사건 해결에 실패하는 이야기나 '추리'보다는 '모험'에 집중한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죠.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고, 지금 읽어도 별로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추리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인 '공정한 정보 제공'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본격 추리로서의 완성도도 다소 아쉬웠습니다. 또한, 이야기마다 수준 차이가 큽니다. 마지막에 실린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특히 "셜로 콤즈의 모험"은 최초의 셜록 홈즈 패러디 단편이라는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내용 자체는 가벼운 장난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추리 단편을 좋아하시거나 유머러스한 추리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이 잘 팔려서 더 많은 고전 추리 걸작들이 출간되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500개의 다이아몬드에 얽힌 수수께끼

외젠 발몽이 프랑스 총경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

백만달러짜리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의 경매와 경매이후 벌어진 목걸이 행방을 뒤쫓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능한' 발몽이 무능한 부하와 생각못한 방해로 작전에 실패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죠.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범인의 다이아몬드 운송 계획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인'에게 주인공 명탐정이 패배하는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 등장해서 의외였습니다. 뤼뺑 시리즈 제 1작이 뤼뺑이 체포되는 이야기였던 충격과 버금가더군요.

이 시리즈의 특징, 자뻑 외젠 발몽과 그의 떠벌임, 자의식과잉 묘사와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반전까지 모두 등장하는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2. 두 얼굴의 폭탄 테러범

발몽이 영국으로 온 이후 이중신분으로 무정부주의자 조직에서 정보를 캐 내다가 폭탄투척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것을 막으려 활약하는 모험담.

이 이야기는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첩보 - 모험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에 대한 발몽의 비판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죠.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으며 발몽의 옛 부하 아돌프 시마르가 등장하는 등 시리즈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3. 은숟가락에 담긴 단서

벤섬 기브스가 발몽을 찾아와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사건은 그와 친구들이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라진 백파운드를 찾아달라는 것.

라이오넬 데이커라는 유력한 용의자를 등장시키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독특한 소품입니다. 두명의 대화도 맛깔나고 은숟가락을 이용한 마술이라는 단서도 꽤나 유용한 등 소품이지만 풍성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라이오넬 데이커가 어떻게 빚을 갚았나?' 에 대해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4. 치젤리그 경의 사라진 재산

치젤리그 경이 숨겨둔 막대한 재산을 찾는 이야기.

이 단편집에서 가장 정통 추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단서와 치젤리그 경의 유언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그려져 있거든요. 어떻게보면 좀 단순한 발상이기는 하나 다른 곳에서 찾아보긴 힘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5. 건망증 클럽

예전 하서출판사의 <세계추리명작단편선>을 통해 접했던 단편.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두가지 사건 - 은화 위조와 사기사건 - 이 묘하게 겹쳐져서 하나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지만 발몽의 런던 경시청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활약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사기꾼에게 한방 맞는 결말도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너무나도 기발한 사기꾼의 계획이겠죠. 지금 보기에는 허술하기도 하고 약간 설득력이 처지는 부분도 있긴 하나 아이디어만큼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별점은 4점입니다.

6. 기형 발 유령

랜트림리 경의 저택에 출몰한다는 기형 발 유령의 발소리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국 경찰에 대한 발몽의 떠벌임같은 유쾌함은 잘 살아있긴 하지만 초반에 저택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내용도 지나치게 과장이 심한 듯 싶어서 여러모로 조금은 아쉬운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7. 와이오밍 에드의 석방

와이오밍 에드로 불리우는 미국 무기징역수의 탈옥을 돕는 발몽이 탈옥에 감추어진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두가지 사건, 즉 와이오밍 에드의 탈옥과 탈옥에 관련된 사기사건이 등장하는데 탈옥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도 않고 가볍게 넘어가기 때문에 '사기사건' 으로 보는게 적당하겠죠.

솔직히 탈옥도 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을까 읽으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좀 실망스럽긴 했습니다. 그러나 범인의 사기 계획이 나름 치밀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마지막 '변장쇼'는 좀 오버라 생각되지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레이디 알리시아의 에메랄드

도난당한 블레어 에메랄드를 되찾고 레이디 알리시아를 만족시키겠다는 발몽의 일념이 빛나는 이야기. 그러나 도난사건 자체가 일종의 장난같고 두 연인의 치기어린 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약한 발몽의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점은 즐거웠지만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

1. 셜로 콤즈의 모험

셜로 콤즈가 페그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이야기. 스코틀랜드에 대한 조롱과 더불어 패러디로서 즐길거리는 많으나 결국 셜로 콤즈의 추리와 수사는 치기어린 과대망상이었고 결국 운이 좋아서 단서를 찾았을 뿐이라는 결말은 추리 소설 애독자로서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하더군요.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이 더 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 두 번째 돈주머니의 모험

코난 도일에게 홈즈가 원고료를 요구하러 찾아오지만 도일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나름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내용에 알맹이도 없고, 패러디도 아닌 이상한 작품이에요. 저자 로버트 바가 코난 도일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친구에게 거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5/09/01

팡토마스 1 - 피에르 수베스트르, 마르셀 알랭 / 성귀수 : 별점 2점

팡토마스 1 - 4점 피에르 수베스트르.마르셀 알랭 지음, 성귀수 옮김/문학동네

아주 어렸을 적, 아마 초등학교 시절 "팡토마"라는 영화를 TV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프랑스 액션 영화로 시끌벅적한게 재미있었지요. 무엇보다도 “팡토마”가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 조직의 우두머리 범죄자 이름이라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죄자가 주인공인 작품이야 뤼뺑을 필두로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악당이라기보다는 안티히어로 같은 캐릭터인데 반해, 팡토마는 잔인무도한 악당이라는 점 때문이었지요. 만화 버전 루팡 3세 스타일이었달까요? 시퍼런 얼굴빛의 범죄 신사로 두 편의 시리즈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끝까지 잡히지 않고 도망친다는 결말도 기억에 남네요.

이 작품이 사실은 100년도 더 된 옛날 프랑스에서 발표된 범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영화를 감상한 한참 이후, 장르문학 애호가가 되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보만 있을 뿐 국내에서 출간된 이력이 없기에 입맛만 다셔왔습니다. 어린이용으로 발표된 절판본을 어렵사리 구하기는 했지만 번역도 문제였고, 축약이 심해서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그런데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에 보답하듯 "뤼뺑" 시리즈 완역으로 유명한 전문 번역자 성귀수 씨께서 직접 손댄, 정말로 제대로 된 원작이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출간은 어언 3년 전이긴 하지만요.

하여튼, 뒤늦게 읽은 이 작품은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절절히 소개한 대로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읽지 않은 이유는 기대가 별로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걸작으로 유명한 고전에서 뒷통수를 맞은 경험이 많아서인데, 역시나 이 작품 역시 오랜 기다림과 기대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더군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시간이 오래 흘렀기 때문입니다. 발표 당시 충격을 안겨다 주었을 여러 설정과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숱하게 써먹은 탓에 신선함이 휘발된 지 오래거든요. 예를 들어 변장에 능숙한 천재 범죄자와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탐정의 대결, "괴인 20면상" 시리즈와 다를 게 없잖아요?

소설로서의 완성도 역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창작 배경부터가 철저한 상업성이었고, 신속한 저술이 더욱 중요했다고 하니 애시당초 완성도가 높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정말 기대 이하였어요.
일단 사건이 반복되는 전개부터가 문제입니다.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 벨담경 살인사건, 에티엔 랑베르 재판 (랑그륀 후작부인 사건과 이어지는), 소냐 대공비 강도사건, 거언 체포, 돌롱 살인사건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데, 사건 하나하나는 흥미진진하지만 이어지는 방식이 영 뜬금없기 때문이에요.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 - 벨담경 살인사건 - 소냐 대공비 강도사건의 전혀 다른 세 가지 이야기가 연결된 느낌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어 놓고 썼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추리·범죄물로 보기에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애호가로서 아쉬운 점입니다. 오직 등장하는 것은 변장밖에는 없어요. 밀실 트릭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 랑그륀 후작부인 살인사건의 진상은 에티엔 랑베르로 변장한 팡토마스가 방문한 것이고, 대공비 사건에서 팡토마스가 깜쪽같이 호텔을 빠져나간 방법 역시 변장이며, 심지어 주변 인물인 샤를 랑베르조차 변장하여 은신해 있었고 쥐브 반장의 주요 수사 방법도 변장해서 탐문 수사하는 겁니다. 작가가 변장 외에는 다른 아이디어가 전무했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물론 범죄자가 주인공인 범죄물에 꼭 대단한 트릭이 등장할 필요는 없긴 합니다. 허나 팡토마스가 익히 알려진 만큼 천재적인 범죄자로 잘 그려졌느냐, 그리고 범죄가 정말 잘 짜여진 치밀한 범죄냐 하면 그 역시 아닙니다. 에티엔 랑베르가 아들 샤를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초중반 장면이 대표적이죠. 에티엔 랑베르가 무죄 방면된 것은 순전히 운일 뿐으로, 배심원 설득에 실패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라는 문제에는 답이 없어요.

무엇보다도 거언(팡토마스)이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탈옥하기까지는 어이없음의 정점을 찍습니다. 돌롱 집사를 살해하기 위해 잠깐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형 집행 전날 자신을 닮은 연극배우를 끌어들여 대신 죽게 만드는 결말까지 전부가 설득력이 전무하더군요. 팡토마스가 그 시점에 정부인 벨담 부인을 찾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돌롱 집사를 살해하기 위해 쉽게 빠져나갔음에도 다시 돌아와 사형 전날까지 목숨을 걸고 운에 의지한 채 버틴다? 이게 말이 될 리가 있습니까. 그냥 돌롱 집사를 죽이고 도망가면 그만이지... 연극배우 발그랑 포섭에 실패했다면 어찌 되었을지에 대한 답도 없고 말이죠. 돈으로 몇 시간 빠져나오는 게 가능하다면 도주는 더 쉬웠을 텐데 일만 크게 벌인 꼴 아닌가 싶어요. 한마디로 변장과 행동력은 있지만 명성만큼의 전설적인 범죄자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추리력만 따지자면 오히려 라이벌 쥐브 반장의 캐릭터가 더 낫더군요. 초반 살인사건에서 외부에서 범인이 침입했음을 설명하는 장면 등에서 제대로 추리력을 선보이거든요. 직접 발로 뛰면서 증거를 모아 범인이 어떻게 기차를 타고 내렸으며 어디서 뛰어내렸는지 등을 확인한 증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은 동시기의 셜록 홈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싶긴 하지만 추리애호가로서 충분히 만족할 만했습니다.

그런데 쥐브 반장의 추리가 샤를 랑베르를 범인으로 만드는 저주받은 유전자 논리와 엮이는 부분은 좀 특이했습니다. 근대와 중세적 사고관의 충돌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거든요. 작중 시대가 증기기관차와 자전거, 마차가 공존하는 근대화 초입기라 그러한 것 같은데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베르티용 측정법이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도 좋은 점은 너무 적네요. 전설임에는 분명하기에 역사적 가치까지 평가한 별점은 2점입니다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퇴색해버린, 낡아버린 이야기일 뿐입니다. . 소개가 너무 늦은 것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권은 아무래도 읽게 될 것 같지 않군요.

2004/01/19

13의 비밀 - 조르주 시므농 / 이가형 : 별점 3점

13의 비밀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국내에 간만에 번역되어 나온 시므농의 작품집입니다. 앞 부분에는 “조셉 르보르뉴의 13가지 사건파일”이라는 단편 시리즈가, 뒷 부분에는 유명한 메그레 경감 시리즈 중편인 “제 1호 수문” 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조셉 르보르뉴(애꾸눈)이라는 별명의 중년 남자가 신문 등에 실리는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13편의 단편 시리즈가 개인적으로 무척 신선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르블랑 같다고나 할까요.. 그동안 조금은 문학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라 생각해왔던 시므농의 다른 작품들과는 아주 달랐거든요. 순수한 추리 퀴즈 같은 트릭이 넘쳐나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기발한 사기극의 일종인 “3장의 렘브란트 그림” 과 범인 찾기 놀이인 “아스토리아 호텔의 폭탄”, 르보르뉴의 과거가 밝혀지며 반전의 묘미가 뛰어난 “황금 담뱃갑” 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뭐.. 트릭적으로 그다지 기발하거나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독특한 묘미들이 느껴져서 좋았고요.

그리고 중편 “제 1호 수문”은 뤼뺑과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의 명탐정 “메그레 경감” 시리즈입니다.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어두운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노선장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진다. 살려달라는 울부짖음, 노선장을 구해낸 사람들은 또 하나의 우윳빛 몸뚱이를 물 속에서 발견하고 기절할 듯 놀란다. 그는 다름 아닌 마을의 유력자 '에밀 듀크로'였다! '에밀 듀크로'의 살해 미수를 파헤치기 위해 투입된 은퇴를 며칠 앞둔 '메그레 경감', 그리고 그로 인해 탐욕과 야욕의 범죄 심리가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범죄가 일어나고, 그 범죄에 대한 알리바이나 트릭을 파헤친다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인간 심리를 다룬 범죄 소설에 가깝지요.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밀 듀크로라던가 갓생 영감같은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특히 탁월하고, 주인공인 메그레 경감도 단서를 가지고 추리한다기 보다는 심증을 통한 압박으로 죄를 고백하게 만드는 그러한 인물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추리소설로서의 짜임새는 조금 떨어지고 메그레 경감도 왠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벌어지는 사건들이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스토리의 짜임새라던가 탁월한 문학성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간 하드보일드 소설 같은 분위기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모파상의 작품이 떠오르더군요. 무엇보다 시므농이라는 작가의 문체나 묘사가 너무나 탁월해서 다른 단점을 다 덮어버리기도 하고요.

결론내리자면 이 책의 모든 중, 단편은 걸작은 아니지만 가작은 되는 괜찮은 소품이었습니다. 더 쉽고 대중적인, 뤼뺑을 졸업하게 된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4/08/23

어쩌다 찾은 필독 추리소설 리스트...

추리소설 초심자를 위한 필독 작품 리스트 by 화요추리클럽 in 싸이월드

개인적으로는 이런 리스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워낙 사람들마다 취향들이 다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 리스트는 초심자를 위해서 리스트를 선정하셨다고 하는 원 저자분의 노고가 엿보이는 리스트라 돋보입니다.
추리사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과 정통파-하드보일드-첩보물 등 쟝르를 골고루 섞은 노력과 꽤 최근까지 올라오는 연대 등 여러모로 알찬 리스트인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일본 작품이 좀 적다는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그래서 저만의 리스트를 몇개 적어 보았습니다.

  • 크리스티 - 포와로 수사집 / 화요일 클럽의 살인 (걸작 단편집 2권 추려보았습니다. 단편이고 유명 탐정이 등장하니 초심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케멜먼 - 9마일은 너무 멀다 (역시 단편집을....^^)
  • 엘러리 퀸 - 엘러리 퀸의 모험 / 새로운 모험 / Y의 비극 (역시 엘러리 퀸의 걸작 중단편집과 그 유명한 Y의 비극, 빼놓을 수 없겠죠)
  • 도일 - 홈즈 시리즈 전집 (단편집을 더욱 추천합니다)
  • 르블랑 - 뤼뺑 시리즈 (역시 단편집을 더욱 추천합니다)
  • 엘린 - 특별요리
  • 해미트 - 말타의 매
  • 챈들러 - 기나긴 이별
  • 에도가와 란포 - 고도의 마인 (외딴섬 악마)
  • 마츠모토 세이쵸 - 점과 선
  • 피터 러브시 - 가짜 경감 듀
  • 마지막으로...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써 놓고 보니 단편집 투성이네요. 그래도 크게 살인사건이나 엽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에도가와 란포는 가부가 좀 갈릴 것 같긴 하네요.

이것도 투표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2009/06/17

악마같은 여자 - 토마 나르스작 외 / 양원달 : 별점 3점

악마 같은 여자 - 6점
토마 나르스작 외 지음, 양원달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디아볼릭"이라는 영화로 더 유명한 소설이죠. 이쪽 바닥에서는 유명한 작품인데 프랑스 쪽 소설은 뤼뺑 시리즈말고는 그닥 취향이 아니라서 스킵하고 지나갔지만 동서 추리문고의 꾸준한 할인행사 덕분에 결국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구입하고 보니 본편이라 할 수 있는 "악마같은 여자" 보다 같이 실려있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쪽이 더 길고 비중있는 작품이라 황당했습니다. 제목이 바뀌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어쨌건, 일단 "악마같은 여자" 이야기부터 하자면, 이 작품은 낚시 전문 샐러리맨 라비넬이 정부 뤼세느와 공모하여 아내를 살해하고 거액의 보험금을 받으려고 하는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라비넬은 결국 시체 유기까지 성공하는데 문제는 그 다음, 죽은 아내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라비넬은 폭주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유명한 작품이긴 한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감이 큽니다.

제일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영화 때문에 사건의 진상을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이겠죠. 중반 이후부터는 결과가 빤히 보여서 도저히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 어차피 "제목" 이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이기도 한 탓에 영화에 대한 내용을 몰랐다 하더라도 결국 눈치챘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또한 결국 범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될까라는 것에 대한 설득력이 좀 약하더군요. 라비넬이 소설과 같은 의도된 결말로 폭주할 것일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물론 라비넬의 1인칭 심리묘사를 통해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심리 상태를 설명해 주고 있기는 합니다.그러나 독자는 알지만 범인은 모를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1인칭 시점의 이야기라서 썩 와닿지 않았으며 (중간에 뤼세느가 잠깐 라비넬을 만나긴 하는데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심리묘사 역시 너무 지나쳐서 읽는데 좀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참고로, 이러한 프랑스 소설 특유의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한 묘사는 제가 프랑스 추리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납니다. 너무 장황해요. 도대체 라비넬의 "파리낚시" 이야기는 왜 나오는건지도 모르겠다니까요... 그리고 라비넬 심리묘사와 반대로 팜므 파탈에 대한 묘사가 애매하고 부족한 것 역시 감점 요소였고요.

한마디로 소심남이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대형 사고를 쳤다가 파멸하는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보다 유머스럽게 블랙코미디로 갔더라면 더 제 취향이었을 것 같은데, 뭐 시대가 너무 흐른 탓도 크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두번째 작품인 노엘 칼레프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역시 영화로 더욱 유명한 작품이죠. 사실 아주 오래전에 "하서 출판사" 판본으로 이미 읽은 작품이긴 합니다만 다시 읽어도 재미있더군요.

줄거리는 반쯤은 사기꾼인 주인공 줄리앙 크르트와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완전범죄를 꾸며 고리대금업자 볼그리를 살해하는데 성공하지만, 깜빡한 마지막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무실로 되돌아가다가 엘리베이터에 갖히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사건은 여기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죠. 일단 줄리앙의 아내와 가족의 분란에서 시작해서 줄리앙의 차를 훔쳐탄 한 연인의 범죄행각 등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거든요.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가 소란스럽고 유쾌하다는 점, 그리고 전혀 다른 인물들이 얽히고 섥히는 관계 속에서 하나의 결말로 흘러간다는 점이 굉장히 현대적이고 영화적이라서 인상적입니다. 정말 "영화" 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또한 사람들의 심리묘사 등이 프랑스 소설이지만 어느정도 수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품에 딱 어울리는 수준이었어요. 단, 중간에 등장하는 두 연인 -프레드와 테레즈- 의 묘사가 "셸부르의 우산"류의 신파 멜로물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좀 별로였습니다. 두 연인의 존재가 작품의 결말에 필요 불가결했던 부분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겠지만요...

"악마같은 여자"와 비교하자면, 수렁에 빠진 남자의 원맨쇼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훨씬 제 취향이었달까요. 뭔가 타란티노 영화가 연상되는 것이 시대가 흘렀지만 현대적인 느낌도 전해주며, 지옥행 급행(정말이지 초특급!) 열차를 타는 줄리앙의 모습이 통쾌하기도 해서 여러모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두 작품 평균한 이 책 전체의 별점은 3점으로, 점수가 높은 편은 아니며 두 작품 모두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범죄, 스릴러 물에 가깝긴 하지만 이 책 한권이면 1950년대 프랑스 추리소설의 진수이자 장, 단점을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되네요.

2010/04/05

검은별 - 존스턴 매컬리 / 원은주 : 아쉽지만 별점 2점

검은 별 - 4점
존스턴 매컬리 지음, 원은주 옮김/페이퍼하우스

부유한 사교계의 유명인사 버벡은 우연한 기회에 유명 괴도 검은별의 조직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뒤, 검은별을 사로잡고 충실한 하인 머그스와 함께 검은별 조직 소탕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나 검은별은 탈옥하여 버벡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이후 버벡과 검은별은 서로에게 치명타를 주기 위한 작전을 선보이게 되는데...

어렸을 적 "모여라 꿈동산"에 소개되었던 검은별의 원작 소설입니다. 1916년에 처음 발표되었다는데 읽어보니 과연! 괴도들이 등장하는 범죄물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직한 설정들이 가득하더군요. "예고장"은 괴도 뤼뺑 시리즈에도 등장하니 오리지널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범행 장소에 검은별 스티커를 붙여놓는다던가, 살인을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독창적이에요.
무엇보다도 "검은별"이라는 괴도이자 비밀범죄조직에 대한 설정은 지금 보아도 탁월합니다. 우두머리와 조직원 모두가 검은 망토와 가면을 착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상은 단지 폼을 위해서가 아니라 체포되었을 때 서로의 얼굴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디테일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검은별이 조직원을 포섭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법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요. 덕분에 범죄 조직 소설류의 시조라 평가해도 충분할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설의 전체적인 재미와 완성도는 기대 이하입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너무 아동용이기 때문이죠.
일단 사건의 발단부터 신출귀몰하다는 괴도 검은별이 버벡에게 잠입한 첫날 잡힌다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버벡과 검은별의 계속된 대결도 별다른 복선이나 치밀함없이 원사이드하게 흘러가는데 독자가 한치뿐 아니라 두치, 세치앞까지 모조리 예상할 수 있는 전개라 긴장감도 전무하고, 서로의 승패도 잔재미없이 원펀치 한방으로 결정되는 단순한 구도라 짜임새있다는 생각보다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또한 번역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묘사 역시 깊이가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예를 들어 버벡과 검은별의 두 번째 대결에서 도청 장치의 라인을 쫓아나가는 부분은 유쾌하기도 하고 재치도 있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심심한 묘사 때문에 효과가 반감되어 안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괴인 20면상"이 더 제 취향인 것 같네요. 뭐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은 탓도 있겠습니다만...

덧붙이자면 책의 가치와는 별개로 장르문학을 표방하는 출판사 판타스틱에서 이 작품을 출간하여 마이너 작품들도 번역되어 나올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추리 애호가들에게 심어준 건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판타스틱과 출판사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2006/12/04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원래 제가 중학교때까지 가끔 눈에 띄면 모으던 문고 시리즈였습니다만, 최근 우연찮게 3번 구입하게 되고 책 뒤의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정말 눈이 뒤집히네요.

뭐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나친 반 다인 취향과 뜬금없이 끼어 있는 어슐러 K 르귄의 "암흑의 왼손"을 제외하고는 정말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 명작을 거진 다 소화하고 있어서 나무랄데 없는 선정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티 여사님 책이 한권도 없긴 하지만 여사님 책은 당시부터도 해문 빨간책 시리즈로 전권이 나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뺀 것이 아닌가 싶네요. 현명한 판단인 것이 사실 저는 여러 추리 문고 시리즈에 여사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불만이거든요. 해문 빨간책이 여사님 책 시장은 평정하다시피 했으니 다른 시리즈로 구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에 차라리 그 책을 내 놓을 바에야 다른 멋진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이 분명 나은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당연히 일어 중역본인 듯 하지만 번역도 의외로 매끄럽고 좋은 편입니다. 교정을 여러본 보았는지 오탈자도 거의 없고 문체도 좋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최근 출간되었던 정식판보다 이쪽이 외려 번역이 좋았습니다. 정식판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지루하게 번역했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다시금 목록을 보니 어렸을 적에 많이 구입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그 당시 용돈을 쪼개서 사던 즐거움 중 하나가 추리소설을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사지는 못했더라고요. 돈이 좀 없더라도 몇권 더 사는건데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를때 지르지 않으면 훗날 후회가 오나 봅니다)

제가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은 시리즈 26 "눈먼 탐정 캐러더스", 27 "포튠을 불러라", 28 "이와 손톱", 그리고 50번째인 "주정꾼 탐정" 입니다. 헌책방 순례도 어언 10여년 짼데 아직도 발견 못했습니다.

고가 매입...은 힘들겠지만 도움주실 분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꼭 읽고 싶습니다!

1~2 :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넌 도일
3 : 뤼뺑의 고백 - 모르스 르블랑
4 : 브라운 신부의 지혜 - 체스터튼
5 : 팔점종 - 모리스 르블랑
7 : 벤슨 살인사건 - 반 다인
11 : 딱정벌레 살인사건 - 반 다인
14 ~ 15 : 클로이든발 12시 30분 - 크로포츠
18 : 새벽의 데드라인 - 윌리엄 아이리쉬

19 : 미궁과 사건부 - 로이 비커즈
20 : 어두운 거울 속에 - 엘런 매클로이 (헬렌 맥클로이)
21 : 즐거운 살인 - 크리스핀
22 : 강철도시 - 아시모프
23 : 움직이는 타깃 - 로스 맥도널드
24 ~ 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28 : 이와 손톱 - 윌리엄 벨린저
29 ~ 30 : 위험한 여로 - 브랜드
31 : 작은 독약병 - 샬럿 암스트롱
32 : 제 8지옥 - 스텐리 엘린
33 : 케닐 살인사건 - 반 다인
34 : 법정 밖 재판 - 헨리 세실
35 ~ 36 :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37 : 싸이코 - 로버트 블록
38 : 흑거미 클럽 - 아시모프
39 ~ 40 : 여자 살인 이야기 - 아일즈
41 : 살인급행 침대열차 - 자프리조
42 : 암흑의 왼손 - 어슐러 르귄
43 ~ 44 : 검은 탑 - P.D 제임스
45 : 가든 살인 사건 - 반 다인
46 : 스카이 잭 - 토니 켄릭
47 : 사람의 덫 - 로저 사이먼
48 : 사라진 시간 - 윌리엄 벨린저
49 : 르윈터 망명 - 로버트 리델
50 :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자유추리문고 소장중 / 다른 판본으로 소장중 / 못구함, 혹은 안구함...
* 2021.01.02. 리뷰가 있는 작품은 링크 추가합니다. 전부 자유 추리 문고는 아니지만요.

2009/12/07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해외편 - 본격물 목차 소개

이전에 읽었던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 일본편" 에 이은 해외편입니다. 형이 구입했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죠^^ (땡쓰~)

무려 100편이나 되는 작품이 총 7편의 큰 주제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본격물, 두번째가 하드보일드, 세번째가 경찰소설, 네번째가 법정 미스터리, 다섯번째가 서스펜스 스릴러, 여섯번째가 모험 & 스파이물, 일곱번째가 괴기환상 & 패러디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리뷰 전에 이 중 본격물부터 먼저 간략하게 정리해서 목차만이라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읽은 것은 적색 (그중 리뷰가 있는 것은 링크), 번역 자체가 안된 것은 녹색, 번역되었지만 땡기지 않거나 절판 등의 이유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파란색입니다. 총 30편 중 6편이 번역되지 않았고, 남은 24편 중 4편을 읽지 않았으니 84% 독파니까 나름 선방한 편이군요. 나머지도 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미스터리라고 한다면 본격물! 저릿저릿한 무서움을 만끽해라!
1.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에드가 알란 포우 - 모르그가의 살인
2. 영국 미스터리의 기념비적 대작 - 월장석

3.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홈즈 시리즈, 그 중 최고봉은 "바스커빌가의 개"
4. 준비된 의외의 비장의 카드! 실속이 빛나는 "구석의 노인"
5. "심리적 밀실" 스타일을 창출한 불후의 명저 "노란방의 비밀"
6. 소년의 꿈. 괴도 뤼뺑의 진면목이 떠오르는 "813"
7.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의 동심"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가짜다!
8.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킨 추리소설중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9. 크리스티와 인기를 양분했던 도로시 세이어스의 "나인 테일러스"
10. 일본의 여정 미스터리 붐에 불을 당긴 F.W 크로포츠의 "통"
11. 미국 미스터리 중흥의 시조. 회심의 역작 "그린 살인사건"

12. 30년간 베스트 원의 자리를 독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13. "세개의 관"으로 불가능범죄를 풀어나가는 놀라운 쾌감을!
14. 개성파탐정의 필두는 "독사"로 데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15. 변호사물의 원조 "기막힌 살인사건"은 최고의 유머 미스터리.
16. "본격단편"에 반드시 꼽히는 실력파 "9마일은 너무 멀다"
17. 안락의자 탐정의 고독한 자리를 지키는 브롱크스의 "엄마는 뭐든지 알고 있다"
18. 현재의 쥴리안 소렐이 더욱 숙달시킨 완전범죄.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
19. 전통과 참신한 모험소설의 융합이 호평받은 "사이먼은 누구?"
20. 사상 최저의 무능한 탐정이 책 속으로! "도버 4 / 절단"
21. 순도높은 영국 본격파의 맛. 레지널드 힐의 "뼈와 침묵"
22. 중후하고 고귀한 향기. P.D 제임스 "욕망과 음모"
23. 수많은 상을 모두 획득! 루스 랜들 "장미의 살의"
24. SF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펼쳐놓는 고도의 수수께끼 "흑거미 클럽 1"
25. 아 이런 방법이 아직 있었다니! 본격 팬들이 감탄한 "호그 연속살인"
26. "숲을 지나가는 길"은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듯이 읽는 것으로도 충분
27. 희대의 명 요리장이 팔을 걷어올리고 만든 일품요리 "초대받지않은 손님들의 뷰페"
28. MWA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백골의 판타지. 엘킨즈의 "오래된 뼈"

29.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궁극의 역사 미스터리 "장미의 이름"
30. 수도사를 탐정으로! 성인들의 역사 미스터리 "수도사 캐드펠"

2012/12/09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최애순 : 별점 4점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8점
최애순 지음/소명출판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탐정소설에 대한 8편의 논문을 모은 한국문학사 서적.

8편의 논문은 각각 '탐정'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론, 소파 방정환의 소년 모험소설, 채만식의 탐정소설 "염마", 김내성의 "백가면", 주요 번역 작품 소개, 번역 작품 중 독보적인 인기였던 모리스 르블랑과 루팡(뤼뺑) 시리즈의 번역 역사, 최서해의 번안 탐정소설 "사랑의 원수"(원작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김내성 "마인"의 관계 연구,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범죄와 팜므파탈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한데,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 외로 꽤나 인기 있었던 근대 조선의 '탐정' 소설들과 왜 정통 본격물이 유행하지 않고 통속적인 연애 소설과 결합되어 진화하였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쓰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이때 조선에 본격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더라면 제가 좋아하는 고전 본격물이 다수 소개되었을 테고, 국내 추리 창작 환경도 많이 변했을 텐데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또 저자가 실제 확인한 자료를 통해 소개하는 다양한 창작 및 번역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에 대한 소개는 마치 작품을 직접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아울러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존재했음에도, 현재 우리가 직접 읽을 수 있는 작품이 한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라는 현실도 아프게 다가왔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파 방정환과 김내성의 아동 모험물을 다양한 텍스트와 비교 분석한 내용,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마인"을 비교하여 "마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 그리고 한국형 팜므파탈을 당시 빈번했던 본부 살인 사건과 연계하여 소개하는 연구 등이 추리 애호가로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연구야말로 한국 추리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겠죠.

아무래도 모든 분께 추천드리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이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분께는 자료적인 의미에서라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의 하나로서 별점은 4점입니다. 꼭 창작이나 자료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6.25 전후 한국 추리소설사를 조망하는 후속권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2020/09/25

에놀라 홈즈 3 기묘한 꽃다발 - 낸시 스프링어 / 김진희 : 별점 1.5점

기묘한 꽃다발 - 4점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북레시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 병원에 갖힌 환자 키퍼솔트는 자신은 의사 왓슨이라고 주장하지만, 수간호사는 다른 병동에 셜록 홈즈도 있다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왓슨 박사였다. 한편 밖에서는 왓슨 박사 실종에 대해 셜록 홈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에놀라 홈즈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포트 홈즈, 왓슨 박사 등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홈즈의 여동생인 에놀라 홈즈가 활약하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최근 영상화도 되었다고 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북 대여가 세 번째 작품만 가능하더라고요.

이런 류의 작품들 중 기대를 충족시킨건 별로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추리적으로는 영 아닙니다. 애초에 추리라는걸 보여줄 여지가 거의 없어요. 에놀라가 마음먹은대로 신통방통하게 전개되는 탓입니다.
우선 왓슨을 구해주기로 마음 먹은 뒤, 에놀라는 왓슨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 곳에서 협박을 의미한다는 (순전히 에놀라 생각이지만) 꽃다발을 발견합니다. 꽃다발이 또 올거라고 확신한 에놀라는 왓슨 자택 맞은 편 집에 방을 구해 감시하는데, 바로 다음날! 꽃다발이 정말로 보내져 오지요. 에놀라는 꽃다발을 가져온 덜 떨어진 심부름꾼 소년으로부터 의뢰인 신사가 코가 없어서 가짜코를 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짜 코를 취급할 법한 변장 도구를 파는 상점에 찾아가 가짜 코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상점 주인인 페르텔로트 부인은 엄청난 적의를 보이며 그녀를 쫓아내지요. 당연히 그녀는 범인과 관련이 있었고, 에놀라는 곧바로 그녀 집에 잠입했다가 페르텔로트와 그녀의 동생 플로라의 대화를 엿듣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됩니다.
이렇게 에놀라 의식의 흐름대로 사건이 흘러가고, 해결되는걸 보면 탐정이 아니라 무당이라고 하는게 옳아요. 이야기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모험물에 가깝고요.

그러나 모험물이라면 극적인 서스펜스, 스릴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에놀라의 쓸데없는 심리 묘사와, 그리고 그녀와 어머니간 애증과 같은 불필요한 설정들에 대한 설명이 많은 탓에 그런건 느끼기 힘듭니다. 이런 불필요한 설명은 에놀라가 왓슨 박사의 집에 찾아갈 때 까지의 전체 분량 중 1/5 가량을 소모할 정도입니다. 전개도 답답하고요. 

에놀라 홈즈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성의 능력을 억합하던 당대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내는게 의도였던 듯 한데, 작중에서는 그냥 전형적인 말괄량이 왈가닥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남자들은 단순한 얼간이들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멍청이가 된다' 는 등의 언급은 왜 등장하는지 의문이며, 코르셋에 이런저런 장비를 넣고 다닌다는 '소년 탐정단' 스러운 설정, 변장으로 미녀와 못난이 아가씨를 오간다는 설정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그래도 이런 단점들은 참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를 독선적이고 무능하며 관찰력 떨어지는 인물로 그려낸건 정말이지 유감입니다. 에놀라의 들러리, 병풍 역할에만 그려낸건 에놀라 홈즈 시리즈이니 당연하다 쳐도,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여성에 대해 논리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는 식으로 이상하게 몰고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성 대상으로는 탐정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데 이 무슨 망발인지 모르겠어요. 저자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보기나 한 걸까요?
셜록 홈즈가 에놀라는 한 번 보고 눈치 챈 수상한 꽃다발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꽃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홈즈 팬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에놀라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모리스 르블랑뤼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헐록 숌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멋대로 망가트렸던게 떠오르네요. 이는 코난 도일의 분노를 샀고, 모리스 르블랑은 욕을 먹었던 행위였습니다. 원전에 기댄 주제에 원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이런 제멋대로 각색은 정당한 창작자의 행위는 아니에요.

물론 유명세답게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 대한 충실한 묘사는 좋았어요. 몇 개 등장하는 암호 트릭 중 에놀라의 어머니가 에놀라에게 보낸 메시지 암호도 괜찮았고요. 그냥 읽으면 Alone part part alone이라는, 외로움에 사무친 문구로 보이지만 거꾸로 읽으면 에놀라! 함정을 조심해! 라는 의미가 되니까요. 이름을 잘 활용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또 결정적 단서가 되는, 왓슨 부인에게 전해져 온 꽃다발은 꽃말로 볼 때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추리는 바로 직전에 읽었던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겹쳐서 조금 신기했습니다. 확실히 여성스러움이 넘쳐나는 단서라 시리즈 취지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꽃다발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스파라거스에서 A spear of Gus라는 문장을 뽑아내어 아우구수투스 (거스) 키퍼솔트라는 이름으로 연결하는 과정도 깔끔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꽃말도 아니고, 이런저런 민속적인 의미나 꽃이 피는 장소 등을 결합해서 저주의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은 플로라라서 아우구수투스의 창이라는건 딱 맞는 표현은 아니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처음에 '키퍼솔트는 코가 없어서 가짜 코를 연구하다가 변장 도구를 다루는 상점을 열게 되었고, 왓슨 박사에게 원한을 품은건 코 절단의 집도의였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것과 '키퍼솔트의 아내 페르텔로트에게 플로라라는 정신병자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 쥐에게 코를 뜯어먹힌 뒤 정신병을 갖게 되었으며, 키퍼솔트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졌지만 언니의 도움으로 돌아온 뒤 키퍼솔트를 죽이고 그로 변장해서 살아온 것' 이라는 진상도 꽤 재미있는 편이었어요. 참고로 플로라가 왓슨 박사를 정신 병원에 가둔건, 플로라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나 장점 보다는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져서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홈즈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면, 좀 더 정교한 트릭으로 승부하는 본격물이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홈즈를 존중이라도 하던가요. 두 번 다시 이 시리즈를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책 보다는 차라리 영상화한 쪽 결과물이 훨씬 좋으리라 확신이 드는데,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 쪽을 챙겨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5/02/12

능숙한 솜씨 - 피에르 르메트르 / 서준환 : 별점 2.5점

능숙한 솜씨 - 6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다산책방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매춘부가 엽기적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베르호벤 반장은 두 사건이 2년 전에 있었던 다른 사건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공통점은 현장과 시신에 가짜 손가락 지문이 남겨져 있었던 것, 그리고 어떠한 이유도 찾아낼 수 없는 범행 과정상의 디테일들이었다. 우연히 이 디테일들이 모두 유명한 추리소설을 모방했다는걸 알아낸 베르호벤은 탐정문학 전문지 광고로 범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데....

간만에 읽은 최신 프랑스 추리 소설입니다. 그동안 프랑스 추리소설들은 모리스 르블랑의 뤼뺑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외에는 딱히 취향이 아니어서 별로 손대지 않았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과 표지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블로그 이웃과 커뮤니티의 호평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읽을 일이 없었을겁니다.

여러 면에서 프랑스 소설이라는걸 여실히 드러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그리고 그 안에서도 많은 부분을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에 할애한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이건 제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그리고 싫어했던 프랑스 소설들의 단점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꽤 재미있었습니다. 등장하는 범행들이 워낙에 자극적인데다가, 유명 작품들의 범행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설정이 흥미로운 덕분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설정이기도 하고요. 뭔가를 따라 한 연쇄 살인은 흔한 설정이지만, 추리소설을 따라 했다는 작품은 처음 봅니다. 그런데 명작, 고전 취급을 받는 작품들을 모방했다는데 제가 읽은 작품은 달랑 한 작품밖에는 없네요. 이런 명작, 고전 선정은 작 중에 나오듯이 자의적인 판단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조금은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제 취향이 수사물, 하드보일드보다는 고전 본격물 쪽인 탓도 크겠지만요. 참고로, 작중 명작, 고전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브랫 이스턴 앨리스 "아메리칸 싸이코" : 작품 도입부에 소개된 두 명의 여성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범죄의 원전.
  • 제임스 옐로이 "블랙 다알리아" : 이전 여성 토막 살인사건의 원전
  • 마이 셰발 / 페르 발뢰 "로제안나" : 역시나 기이했던, 이전에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원전
  • 윌리엄 매킬바니 "레들로" : 범인이 현장에 서명을 남긴 첫 번째 사건의 원전
  • 에밀 가보리오 "오르시발의 범죄" : 범인이 소설을 따라 벌인 첫 번째 살인

참고로, 제가 읽은 "블랙 다알리아" 말고 번역된 작품은 "아메리칸 싸이코"밖에 없군요. 못 읽은 게 당연하네요...

하여튼, 애호가를 자극하는 설정 외에도 놀라운 반전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1부 분량)이 사실은 범인이 쓴 소설이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자 액자 소설 같은 구성이 드러나는 반전인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현대물에서도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이 계속 나온다는게 놀라울 뿐입니다. 베르호벤이 말발을 대하는 태도 등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과 실존 인물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디테일도 아주 절묘했어요.

그러나 설정과 이러한 놀라운 반전 서술 트릭을 제외하고는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추리"라는 것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결국 범인이 기자 필리프 뷔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니까요. 발랑제르 교수와 통화하다가 우연히 얻은 정보가 없었다면 영원히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소한 아내가 죽을 때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까지 예상해서 범인이 모든 것을 안배한 것처럼 전개되고 있다는 건 전혀 합리적이지가 않죠. 범인이 무슨 신도 아니고....

이러한 우연, 그리고 범인의 안배를 제외하고는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한 베르호벤과 동료들의 수사는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 정말 명수사관이 맞는지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범인이 유명한 추리소설들을 모방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정도 재미는 있고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충분하지만, 이러한 범행을 통해서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설명되지 않고요. 아니 설명되기는 하는데 작중 정신과 의사인 크레스트 박사의 말 - 사실은 미친 게 아니다 -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범인의 편지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 - 제대로 미친 놈이다 -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더군요.

작중 등장했던 괜찮았던 착안점, 즉 왜 "레들로" 사건은 실제로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는데 다른 사건들은 프랑스에서 재현했는지? 에 대해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등 떡밥 회수가 부실한 것도 문제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소설다운 장황한 묘사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갓 태어난 아기까지 참살한 필요 이상의 잔인한 묘사, 유명 화가인 어머니의 임신 중 흡연으로 키가 145cm에 불과하다는 베르호벤의 설정과 그에 따른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베르호벤 설정은 과합니다. 키가 작다고 해서 대단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작품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는 부분도 없거든요. 그나마 덜 기형적인 툴르즈 로트렉의 창백한 복사판 운운하는 묘사처럼 독특한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그냥 얄팍한 캐릭터 만들기에 불과한거지요. 장님이지만 작품에서는 특징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던 맥스 캐러도스가 연상되었습니다. 부하인 루이가 부유하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캐릭터들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 주는 것은 좋지만, 이러한 만화 같은 설정이 과연 작품에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를 위한 설정에 더해 읽는 재미도 괜찮고, 독특한 반전의 가치는 높습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는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베르호벤 시리즈는 이어지고 이 작품과도 연계성이 있다고 하니 후속작도 읽어는 봐야겠네요.

2010/07/17

셜록 홈즈 (2009) - 가이 리치 : 별점 3점


2009년 연말에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그 동안의 "홈즈"라는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깨는 파격적인 설정이 독특했습니다. 진지남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홈즈라기 보다는 뤼뺑이 연상되더군요. 원작팬에게는 반갑지 않을 수 있는 변화일 수도 있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잘 삐지고 속좁은 옹졸남으로 나오는 왓슨, 팜므파탈 범죄자로 흡사 "루팡3세"의 후지코를 연상시키는 아이린 애들러 등의 변주도 새로왔어요.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시 반가운 인물이었고요.

이러한 새로운 캐릭터의 구현 이외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정통 셜록 홈즈 시리즈 전통에 충실한 편입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추리를 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거든요. 여러가지 단서들을 추리하는 장면에서 단서의 결과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연출도 좋았고 말이죠. 한마디로 "추리 영화"라는 장르물로 본다면 완벽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약간 있습니다. 일단은 홈즈와 왓슨의 같잖은 사랑싸움(?)에 할애한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 가장 거슬렸어요. 쓰잘데 없는 묘사로 게이스러운 분위기만 잔뜩 자아내고 말이죠... 그리고 악당 블랙우드의 계획이 그닥 설득력이 없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구태여 목숨까지 걸면서 죽은척 했다가 다시 살아날 이유도 모르겠고 "청산가스" 배출 작전이 그렇게까지 거창한 장치가 필요했을지도 의문이거든요.

그래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새로운 홈즈 시리즈의 출발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조금 압축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 정도면 후속작이 기대되는 수준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