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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5

에놀라 홈즈 3 기묘한 꽃다발 - 낸시 스프링어 / 김진희 : 별점 1.5점

 

기묘한 꽃다발 - 4점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북레시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 병원에 갖힌 환자 키퍼솔트는 자신은 의사 왓슨이라고 주장하지만, 수간호사는 다른 병동에 셜록 홈즈도 있다며 그의 말을 일축한다. 그러나 그는 진짜 왓슨 박사였다.
한편 밖에서는 왓슨 박사 실종에 대해 셜록 홈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에놀라 홈즈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포트 홈즈, 왓슨 박사 등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홈즈의 여동생인 에놀라 홈즈가 활약하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최근 영상화도 되었다고 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북 대여가 세 번째 작품만 가능하더라고요.

이런 류의 작품들 중 기대를 충족시킨건 별로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추리적으로는 영 아니올씨다에요. 애초에 추리라는걸 보여줄 여지가 거의 없어요. 에놀라가 마음먹은대로 신통방통하게 전개되는 탓입니다. 우선 왓슨을 구해주기로 마음 먹은 뒤, 에놀라는 왓슨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 곳에서 협박을 의미한다는 (순전히 에놀라 생각이지만) 꽃다발을 발견합니다. 꽃다발이 또 올거라고 확신한 에놀라는 왓슨 자택 맞은 편 집에 방을 구해 감시하는데, 바로 다음날! 꽃다발이 정말로 보내져 오고요.
에놀라는 꽃다발을 가져온 덜 떨어진 심부름꾼 소년으로부터 의뢰인 신사가 코가 없어서 가짜코를 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짜 코를 취급할 법한 변장 도구를 파는 상점에 찾아가 가짜 코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상점 주인인 페르텔로트 부인은 엄청난 적의를 보이며 그녀를 쫓아내지요.
당연히 그녀는 범인과 관련이 있었고, 에놀라는 곧바로 그녀 집에 잠입했다가 페르텔로트와 그녀의 동생 플로라의 대화를 엿듣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됩니다.
이렇게 에놀라 의식의 흐름대로 사건이 흘러가고, 해결되는걸 보면 탐정이 아니라 무당이라고 하는게 옳아요. 이야기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모험물에 가깝고요.

그러나 모험물이라면 극적인 서스펜스스릴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에놀라의 쓸데없는 심리 묘사와, 그리고 그녀와 어머니간 애증과 같은 불필요한 설정들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그런건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불필요한 설명이 얼마나 많은지 에놀라가 왓슨 박사의 집에 찾아가기 까지 전체 분량의 1/5 가량을 소모할 정도입니다. 전개도 답답하고요.
에놀라 홈즈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성의 능력을 억합하던 당대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내는게 의도였던 듯 한데, 작중에서는 그냥 전형적인 말괄량이 왈가닥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남자들은 단순한 얼간이들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멍청이가 된다' 는 등의 언급은 왜 등장하는지 의문이며, 코르셋에 이런저런 장비를 넣고 다닌다는 '소년 탐정단' 스러운 설정, 변장으로 미녀와 못난이 아가씨를 오간다는 설정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이런 단점들은 참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를 독선적이고 무능하며 관찰력 떨어지는 인물로 그려낸건 정말이지 유감입니다. 에놀라의 들러리, 병풍 역할에만 그려낸건 에놀라 홈즈 시리즈이니 당연하다 쳐도,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여성에 대해 논리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는 식으로 이상하게 몰고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성 대상으로는 탐정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데 이 무슨 망발인지 모르겠어요. 저자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보기나 한 걸까요? 셜록 홈즈가 에놀라가 한 번 보고 눈치 챈 수상한 꽃다발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꽃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홈즈 팬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에놀라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모리스 르블랑이 뤼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헐록 숌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멋대로 망가트렸던게 떠오르는데, 이는 코난 도일의 분노를 사고 모리스 르블랑은 욕을 먹었던 행위라는걸 잊으면 안됩니다. 원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이런 제멋대로 각색은 정당한 창작자의 행위는 아니에요.

물론 유명세답게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 대한 충실한 묘사는 좋았어요. 몇 개 등장하는 암호 트릭 중 에놀라의 어머니가 에놀라에게 보낸 메시지 암호도 괜찮았고요. 그냥 읽으면 Alone part part alone이라는, 외로움에 사무친 문구로 보이지만 거꾸로 읽으면 에놀라! 함정을 조심해! 라는 의미가 되니까요. 이름을 잘 활용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또 결정적 단서가 되는, 왓슨 부인에게 전해져 온 꽃다발은 꽃말로 볼 때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추리는 바로 직전에 읽었던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겹쳐서 조금 신기했습니다. 확실히 여성스러움이 넘쳐나는 단서라 시리즈 취지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꽃다발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스파라거스에서 A spear of Gus라는 문장을 뽑아내어 아우구수투스 (거스) 키퍼솔트라는 이름으로 연결하는 과정도 깔끔했고요.
그러나 명확한 꽃말도 아니고, 이런저런 민속적인 의미나 꽃이 피는 장소 등을 결합해서 저주의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은 플로라라서 아우구수투스의 창이라는건 딱 맞는 표현은 아니라는 단점은 있긴 합니다만.

처음에 '키퍼솔트는 코가 없어서 가짜 코를 연구하다가 변장 도구를 다루는 상점을 열게 되었고, 왓슨 박사에게 원한을 품은건 코 절단의 집도의였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것과 '키퍼솔트의 아내 페르텔로트에게 플로라라는 정신병자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 쥐에게 코를 뜯어먹힌 뒤 정신병을 갖게 되었으며, 키퍼솔트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졌지만 언니의 도움으로 돌아온 뒤 키퍼솔트를 죽이고 그로 변장해서 살아온 것' 이라는 진상도 꽤 재미있는 편이었어요.
참고로 플로라가 왓슨 박사를 정신 병원에 가둔건, 플로라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나 장점 보다는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져서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홈즈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면, 좀 더 정교한 트릭으로 승부하는 본격물이어야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 시리즈를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라면 차라리 영상화한 쪽 결과물이 훨씬 좋았으리라 확신이 드는데,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 쪽을 챙겨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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