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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8

마구의 역사 - 최정식 : 별점 2.5점

마구의 역사 - 6점
최정식 지음/브레인스토어

스포츠 서울 체육 기자 출신 저자가 쓴 프로 야구 투수들이 던지는 변화구에 대한 서적. 미국의 프로 야구 초창기부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책에서 '마구'로 소개된 공들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19세기
언더핸드 체인지업 : 짐 크레이턴
커브 : 캔디 커밍스
20세기
라디오볼 (소리는 들려도 보이지 않는 패스트볼) : 월터 존슨 외
스핏볼 : 잭 체스브로, 에드 월시 외
에머리볼 : 러셀 포드 외
샤인볼 : 에디 시코트 외
스크루볼 : 칼 허벨 외
너클볼 : 호이트 윌헬름 외
이퍼스 : 트루엣 슈얼
슬라이더 : 스티브 칼턴 외
스플리터 : 마이크 스콧 외
컷 패스트볼 : 마리아노 리베라

이 중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공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스크루볼의 정체는 커브와 반대 방향으로 변화되는 변화구입니다. 우투수가 우타자에게 던지면 우타자 몸 쪽으로, 좌투수가 우타자에게 던지면 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식으로요. 그렇게 기묘한 변화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칼 허벨이 이 공으로 선풍을 일으킨 1930년대에는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았고, 허벨이 정통 커브도 잘 던져서 효과가 컸다고 합니다. 다저스의 영구 결번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역시 스크루볼을 배우기 전에는 커브가 주 무기였다고 하네요.
또 스크루볼이 팔을 망가뜨린다는 이야기는 칼 허벨의 말년 등으로 (팔이 비틀어졌다죠) 널리 알려져 왔지만, 이 책에 따르면 현재 의학적 연구 결과로는 스크루볼이 투수 팔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없답니다. 스크루볼이 사라진건 부상 우려가 아니라, 다양한 오프스피드 피치가 개발되었으며, 장타를 억제하는게 주요 목표가 된 탓이라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두산의 유희관 선수때문에 유명해진 초저속 고각도 변화구인 '이퍼스'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무려 1946년 올스타 전에서도 등장했을 정도로 유서깊은 공이며, 이름의 뜻이 히브리어 '에페스', 즉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 등은 모두 몰랐던 이야기였거든요.

슬라이더가 보다 빠른 변화구를 추구하는 흐름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지금은 슬라이더보다도 빠른 컷 패스트볼 (커터)이 많아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겠죠.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점점 빨라지니, 변화구도 마찬가지로 점점 빨라지는 모양새인데 앞으로 얼마나 빠른 변화구가 등장할지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요소일거 같아요.

또 스플리터의 원형인 포크볼이 무려 1905년에 처음 등장했다는 데에도 놀랐습니다. 항상 궁금했던, 포크볼과 스플리터의 차이도 설명해 주고 있는데, 결국은 같은 구질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스플리터는 스피드, 포크볼은 낙폭이 더 중요하다네요. 그렇다면 쿠니미 히로의 '고속 포크볼'은 진정한 마구인 셈이겠죠.

아울러 등장하는 구질 모두 당연히 야구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개발되었으며, 따라서 대표하는 투수들도 모두 메이저리거입니다. 그러나 각 구질 소개 뒤에 일본과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 구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브를 던진 투수는 1912년 '마구'를 던졌다는 유용탁이라고 설명합니다. 커브는 놀라운 공일 수 밖에 없어서 '마구'라 불렸을 거라는 해석인데, 실제로 일본에서 한때 커브를 마구라고 불렀다고 하니 꽤 그럴싸합니다.

패스트볼은 사와무라 상으로 유명한 사와무라와 한국의 김양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와무라의 무용담이야 익히 알려져있지만, 1958년 메이저리그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른 김양중이 명예의 전당 타자인 스탠 뮤지얼을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았네요. 김성근 전 감독의 말에 따르면 김양중 선수의 구속은 140Km 초반이었을거라고 하는데, 좌투수인데다가 무브먼트가 좋았다니 당시에는 충분히 먹힐만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우리나라 초창기 야구 역사와 영웅들을 소개해주니 좋긴 좋네요.

마지막으로 스크루볼은 저도 잘 알고 있는 김일융 선수가 삼성이 전, 후기 리그를 석권한 1985년 던졌는데, 이를 1984년 다저스 캠프가 있는 베로비치에서 동계 훈련을 하면서 배웠다니 재미있습니다. 이 공은 이후 김일융 선수가 일본 복귀해서 재기하는데도 기여했다는데, 더 재미있는건 삼성이 베로비치 다저타운을 찾은건 이후 1992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1984년 삼성이 동계 훈련을 해외에서 진행하지 않았다면, 삼성의 전, 후기 통합 우승도 없지 않았을까라는 가정도 해 봄직 합니다.

이렇게 야구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를 가질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고, 유명 선수의 일화와 명승부도 소개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가 뒤로 갈 수록 설명이 부실해진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야구 초창기인 앞 부분, 커브와 패스트볼, 스핏볼 등은 15~20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설명하며 일본과 한국에서의 역사도 덧붙인 반면, 이퍼스 이후는 각 구질마다 1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의 소개에 그칩니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역사는 소개되지도 않고요. 또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 야구 레전드와 그들의 변화구도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최동원 선수의 커브, 선동렬 선수의 슬라이더처럼요.
아울러 프로야구 초창기와 데드볼 시대에는 제구력이 중요했지만 라이브볼 시대로 넘어가면서 투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변화구를 연마하는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구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알려주기는 하는데, 우연히 만들어졌거나 초기 발명 자체는 굉장히 오래된 구질이 많아서 전체적인 경향이나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점점 구속이 증가하면서 바뀌는 구질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당연하겠지만 각 구질별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책에서의 설명보다 많은걸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책의 가치를 떨어트립니다. 인터넷에는 동영상도 많으니 자료로는 훨씬 좋지요. 이 책은 도판도 아예 없다시피한데, 책의 특성 상 공을 잡는 그립 정도는 최소한 소개해주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앞서 말씀드린대로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창기 한국 야구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료적인 가치도 충분해 보이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야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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