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조작의 비밀 -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황선종 옮김/어크로스 |
사이비 (책 속에서는 컬트 교단이라고 칭함) 종교나 각종 강매 행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심리 조작을 일으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지를 상세하게 파헤치는 책.
심리 조작, 세뇌, 최면 등이 소개되는데 설득력이 높습니다. '심리학'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고 실제로 심리 조작과 세뇌, 최면을 거는 방법 및 실제 사례들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항상 궁금해왔던 질문에 대한 답도 많고요. 예를 들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유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를 의심하면, 자기 자신마저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더 강한 믿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소규모 집단, 배타적인 작은 팀에서 외부 정보가 차단되면 공동 생활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는 테러리스트 훈련 과정은 왜 시골 마을이 배타적이고 자신들만의 룰을 강요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에 딱 들어맞고요.
또 애착불안이 강한 의존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탱해갈 수 없기에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게 되기 쉽다는군요. 즉, 눈앞에 그 사람이 있을 때는 헤어지는 일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눈앞에서 사라지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아주 간단하게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리는거지요. 남자 친구가 군대 간 사이, 여자 친구가 복학생 오빠와 사귀는건 애착불안이 강한 의존성 인격장애일 수 있다는 겁니다!
더블 바인드라는 기법도 눈길을 끕니다. 상대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으로,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됩니다. 자동차를 살까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식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다음 선택 사항으로 고객의 관심이 향하게 하는 거지요. 이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을 때 “국어와 수학 중 어느 쪽부터 할까?”, “숙제를 엄마와 함께 할래? 아니면 혼자서 할래?" 라고 공부를 하는걸 전제로 묻는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강하게 저항하리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숙제를 간식 먹기 전에 할래? 아니면 먹고 나서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한 발 물러난 제안을 하여 하나를 선택하게 하거나, 반대로 “숙제를 할래? 목욕탕 청소를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께 넣어서 선택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네요.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반항심이 생기지만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합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놀고 있을 때 공부하라는 독촉은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가롭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하는게 훨씬 효과가 좋다는 뜻이지요.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비난도 명령도 아니기에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어려우니까요. 그럴싸 합니다. 꼭 한 번 써 먹어 봐야겠습니다.
조언은 항상 긍정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실제 사례로 설명해 주어서 와 닿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에릭슨 박사의 이야기로, 어느 날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 10대 소년에게 에릭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너의 행동이 얼마나 변할지 상상조차 못하겠는데." 이 말은 소년이 변하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단정 짓지도 않지요. 또 이 말을 들은 소년은 안도감과 함께 자신의 행동이 전문가가 예측조차 못할 정도라고 바뀐다는 것에 자극받아서 실제로 소년의 행동은 변했다고 합니다.
상대가 예스라고 대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방법으로 신뢰성을 높여 최종적인 질문에도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이끄는 예스 세트도 같은 원리입니다. "노!" 대신 상대가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유도하면, 상대의 저항을 없애고 본심에 다가서거나 결단을 좌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군요. 예를 들면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죠?”라고 묻는 식입니다. 또는 “그와 헤어지고 싶나요? 아니 그럴 리가 없죠.”와 같이 자신이 한 말을 부정하거나요. 이렇게 하면 “아뇨.”라고 부정하고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건 심리 상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표현된 말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문제와 마주 서서 의식화된 경우에 한하거든요. 문제와 마주 서기를 피하고 핑계만 생각할 때는 직접적으로 지적당하면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부정하게 되는거죠.
생활과 행동을 유형별로 분류해놓고, 다음 행동이나 생각으로 전환시킬 때 신호가 되는 자극을 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정해놓은 음악을 틀거나 벨을 울리는 행위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뇌에 대한 굉장히 상세한 이론과 실제 예가 소개되는 부분도 눈길을 끌고요. 이 부분은 내용이 워낙 많아서 제가 요약해서 설명드리기는 거의 불가능한데, 정말 그럴듯해서 와 닿더라고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반복이 많고, 목차가 조금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오옴 진리교' 사건 직후 발표된 책인지 오옴 진리교 이야기도 지나치게 많고요. 읽다보면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요.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한 좋은 책이었습니다. 심리 조작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거든요. 제가 소개해드린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니만큼, 이런 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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