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
이사카 고타로의 단편집. 그다지 많이 읽어 본 작가는 아닌데, e-book 대여가 가능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편집인데 구성이 특이합니다. 수록작 모두 화자도 다르고, 시점도 다르고, 주요 등장인물들도 모두 다르지만, 돈만 주면 뭐든 하는 해결사 미조구치-오카다 컴비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연작 단편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성만 특이한게 아니라, 독특한 발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백수가 된 오카다가 이제 인생의 남은 날은 모두 휴가, 바캉스다라는 의미의 제목부터가 그러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 보다 훨씬 와 닿는 멋진 제목이라 할 수 있어요. 작품 속에서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이라는 영화 속 대사라고 하는데 참 적절하게 잘 써 먹었다 싶더군요.
물론 수록작 중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불길한 횡재>>는 그 자체만으로 완성된 작품은 아닙니다. 설정에 대한 소개, 수록작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 뿐이지요.
그래도 나름의 재미도 분명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 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아빠의 불륜으로 이혼하게 된 가족의 마지막 날, 아빠에게 친구가 되자는 전화 메시지가 날아오고, 가족은 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한다. 메시지를 보낸건 해결사 오카다였다. 상사 미조구치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면 전화 메시지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가족의 고교생 딸 사키로, 미조구치와 오카다 및 주요 설정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격 작품.
문제는 사키 가족과 드라이브와 식사를 즐긴 오카다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미조구치 씨 일당에게 끌려간 뒤, 세 가족만 차에 남는 결말이라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는 거지요. 사실 여기서 다른 사건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사키 등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아서 당황스럽더라고요.
가족이 친구가 되는 과정, 오카다의 여러모로 독특한 시각 등은 볼거리이지만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유다이라는 가정 폭력 피해 아동을 알게 된다.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유다이를 구해주기 위해 오카다는 기묘한 작전을 구상하는데...
오카다가 자신이 협박하던 불륜남 곤도와 함께 유다이의 아빠 사카모토가 폭력에서 손 떼도록 만드는 귀여운 작전이 펼쳐지는 일상계 추리, 범죄, 사기극.
사실 오카다의 작전은 유치합니다. 성인이 된 유다이가 미래에서 사카모토를 찾아와, 유다이 폭행을 그만두지 않으면 성인이 된 유다이 때문에 지옥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연극이 전부거든요.
그러나 이 연극을 위해 터미네이터, 타키온 입자 등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사카모토에게 주입시키는 과정, 그리고 문 닫은 슈퍼마켓을 엉망으로 만드는 다른 의뢰를 활용하고 유다이와 이미지가 비슷한 곤도에게 연기를 시키는 등의 디테일은 빼어납니다. 혹시라도 사카모토가 유다이를 죽일 수 있어서 미리 그에 대해서도 확실히 선을 긋는 등 계획도 나름 정교하고요.
덕분에 뻔하고 유치하더라도 설득력은 있는 편이에요. 유치하지만 맘 먹고 이렇게 속이겠다고 덤비면 저라도 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한 횡재>>
'나'는 미조구치와 오타라는 남자들에게 납치된다. 그들이 훔친 차로 이동하던 중, 다나카 중의원이 칼에 찔린 탓에 시작된 검문에 걸리고 미조구치는 훔친 차의 번호를 외워 말하는 노하우로 검문을 빠져 나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트렁크에는 거액이 있었고, 차 번호도 잘못 외웠었다. 경찰은 왜 미조구치 일당을 놓아준걸까?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이에 대해 미조구치 등은 검문하던 경찰이 차에 돈을 숨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아주고 몰래 숨겨둔 휴대폰 GPS로 위치를 추적하여 돈을 회수할 생각이었다고 추리하지요.
그러나 사실로 밝혀지는건 없습니다. 고작해야 돈이 든 가방 속 휴대폰 정도만이 근거가 될 뿐이고요.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완성된 이야기로 볼 수는 없어요.
결말도 석연치 않습니다. 미조구치와 오타가 GPS 추격을 피해 거액을 나누어 달아나는건 그렇다쳐도, '나'도 놓아준다는건 말이 안되거든요. 의뢰인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거라는 (죽었을테니) 그녀의 말만 듣고 놓아준다는건 프로로서는 있을 수 없을 일이잖아요. 최소한 보스인 부스지마의 허락은 받았어야 합니다.
또 그녀의 납치는 다나카 중의원의 의뢰였고, 이유는 그녀가 불륜녀였기 때문. 그리고 그녀가 다나카 중의원 암살 계획의 일부로, 흉기를 은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어요. 실제 습격한 사람, 흉기를 숨기는 사람 등 여러 명이 역할 분담을 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아이디어만큼은 나쁘지 않았지만, 예전 <<소년탐정 김전일>> 등 다른 작품에서 접했던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연작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용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초등학교 4학년 생인 '나'는 해외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 중인 아빠와 통화 중에 아빠가 유미코 짱이 위험하다, 학교에 페인트 낙서가 되어 있지 않냐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아빠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미코 짱이 담임인 유미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나'는 페인트 낙서를 한 오카다에게 이러한 내용을 물어보고, 오카다는 유미코 선생님이 정말로 위험하다고 말해주는데...
오카다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던 사건을 그린 나름 본격 추리물. 화자는 오카다의 친구 '나'입니다.
아빠가 '나'를 몰래 감시하는 것과, 유미코 선생님 스토커 이야기의 조합이 절묘하며, 이야기 앞 뒤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에요. 오카다가 페인트 낙서를 한 이유는 유미코 선생님의 욕이 적혀 있었기 때문, 아빠가 이 사실을 알았던 건 그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던 등산이 취소되었기 때문인 등 앞선 기묘한 행동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빠는 불륜으로 이혼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스파이라고 꾸몄던 겁니다. '나'를 보기 위해 쌍안경으로 몰래 관찰했고, 그래서 유미코 선생님 욕'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가 오면 그걸로 끝장이야 이 쓰여져 있는걸 알게 되었던거지요. '나'를 관찰하던 아빠를 오카다와 '나'는 스토커로 착각한거고요.
아빠가 주변 사물을 무기로 이용한다고 스파이인척을 할 때 했던 말을, 나중에 오카다를 잡고 칼로 위협하던 스토커를 향해 거울로 햇볕을 반사시켜 눈을 부시게 만들어 오카다가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등 복선 활용도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작 단편집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게 문제네요. 자체만으로도 완벽할 뿐더러 오카다 외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미조구치의 부하 오타가 영화감독이 된 '나'를 찾아가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는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추가된건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이 단편집 속 베스트로 꼽습니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오타 후임으로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된 다카다는, 뒷 차를 고의적으로 부딛히게 만들었다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미조구치 문병을 간다. 미조구치가 뒷 차를 협박하다가 뒷 트렁크에서 권총을 발견했고, 피해자가 달아나다가 여파로 다른 차에 치였던 것.
조직의 보스 부스지마 빌라에 총격이 가해지고, 뒷 차 운전수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게 된 조직은 미조구치와 다카다에게 용의자 색출을 지시하는데...
전 편이 본격 추리물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본격물의 한 갈래인 암살물입니다. 화자는 미조구치의 새 파트너 다카다로, 부스지마를 암살하려고 하는건 미조구치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독립하려던 오카다가 처단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지요.
부스지마는 병원 별실에서 휴양 차 입원 중인데, 음식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부하가 받아 시식 후 전달하며, 방문자는 2~3명의 경호원으로 부터 몸 수색을 받는 철통의 보안에 놓여 있습니다. 미조구치가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부스지마를 습격하기 위한 작전이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어설프지만, 한 번 정도는 먹힐 만한 작전이 상당히 볼거리입니다. 작전은 이전 뒷차 추돌 사고 때 부터 시작되었었습니다. 빌라 총격을 사주하여, 미조구치가 범인을 알고 있다고 조직이 생각하게 만든 뒤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미조구치와 친한 입원환자 '선생님'이 암살범이라고 생각하도록 함정을 팝니다. 협박장에 붙어있는 파슬리 스티커의 의미를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다카다의 조사로 파슬리의 꽃말 중 하나가 '죽음의 전조'라는게 밝혀지며, 이를 통해 협박과 꽃말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선생님' 병상에서 의사로 변장하기 위한 가운을 발견하며, 동기로 선생님'의 아들 부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우연찮게 들려오고요. 그래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암살범으로 오해한다는 건데, 읽으면서는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었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싸 했을 것 같습니다. 앞 뒤가 척척 잘 맞아 떨어지니까요.
이를 통해 다른 경호원들이 '선생님'을 잡으러 떠난 사이, 부스지마 병실에 남아있게 된 미조구치는 음식 전용 엘리베이터로 권총을 반입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마지막 작품 답게, 앞서의 이야기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음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좋았어요. 미조구치가 오카다를 찾아다녔던 것, 단 것을 좋아하는 미조구치가 자주 찾는 맛집 블로그, 부스지마 암살 계획에 여러명이 관련되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 등이 모두 앞서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내용들이지요. 미조구치의 작전에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범인으로 착각하게 만든 수법 중 하나는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에서 오카다가 쓴 방법과 같고요.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무심결에 듣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2년 전 처음 만나기 전 부터 미조구치와 오카다가 알고 있었다는 설정은, 미조구치가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에 등장했던 애드벌룬 감시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고보니 "조만간 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 거라고 하지만 그런건 꿈이지 현실감이 없다. 전화를 가지고 다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할 바에야 직접 만나러 가는게 낫다. 꿈을 꾸기보다 주위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애드벌룬 감시인의 장광설은 그 파격적인 발상과 강한 자기 주장이 미조구치와 꼭 닮아있기는 하지요.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죽기 직전 부스지마는 오카다가 살아있다며, 맛집 블로그인 '사키의 블로그' 운영자가 오카다라고 알려 주거든요.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블로그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한 뒤, 3분 내 답이 오지 않으면 총으로 부스지마를 쏴 죽이겠다고 하는데 3분 뒤 다카다의 폰이 울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오카다일까요? 아니면 계속 날라오던 스펨 메일일까요? 열린 결말인데,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미조구치가 8분과 10분에 대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던가 하는 독특한 발상과 묘사도 많은데, '단지 나는게 걷는거보다 낫다'가 아니라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남자가 하늘을 날아와서 '네가 좋아!'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다니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만 합니다.
마무리로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오카다 - 오타 - 다카다로 바뀌는데 일부러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채용한건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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