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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2

샴 쌍둥이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점

샴 쌍둥이 미스터리 - 2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가 중 산불에 습격당한 퀸 부자는 탈주 끝에 산 정상에 있는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저택의 주인은 저명한 외과의사 사비에르 박사였다. 박사의 저택에는 머무르던 가족과 손님들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음 날, 사비에르 박사는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 손에 남겨져 있던 찢겨진 카드 조각 뿐이었다. 이를 통해 퀸 경감은 사비에르 박사의 부인 새러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지만, 엘러리는 고심 끝에 카드는 조작된 증거이며, 조작한 건 사비에르 박사의 동생 마크였다는걸 밝혀내었다. 그러나 도주하다가 퀸 경감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마크마저도 살해되고 말았다. 현장에는 또다른 카드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엘러리 퀸국명 시리즈 일곱번째 작품. 2012년 시공사의 엘러리 퀸 컬렉션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작품입니다. 국명 시리즈는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심했었지만, 주말에 도무지 읽을 책이 없어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도 없던 기대 수준에도 전혀 미치지 못한 졸작이었습니다. 억지스러운 설정들, 도무지 설득력없는 범행, 어처구니없는 진상이 결합된 환장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이 중 억지스러운 설정이 가장 거슬렸습니다. 휴가 중에 산불을 만나 산 정상 저택으로 도피했던 퀸 부자가 그곳에서 유명한 외과의사 사비에르 박사 가족과 손님을 만나게 되는 도입부부터 억지스러웠어요. 급작스러운 산불도 그렇지만, 유명한 외과의사가 은퇴 후에 첩첩산중 꼭대기에 기묘한 저택을 지어서 은신한다는건 대관절 무슨 설정일까요... 사비에르 박사가 샴 쌍둥이 동물들의 분리 실험을 했다는 설명과 작중 묘사를 통해 <<닥터 모로의 섬>>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같은 느낌을 전해주려고 애쓰지만 유치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정통 본격물은 어느 정도, 아니 꽤 많이 허구와 상상이 결합되어 있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죠.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근거지를 찾은 퀸 부자가 악을 물리친다!는 아동용 모험물이었다면 모를까, 정통 본격물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이 정도 설정이라면 사비에르 박사가 괴물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았어야 하는데, 나오자마자 죽어버리니 그것도 허무했고요.
산을 덮친 산불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저택에 갖혀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완벽한 '클로즈드 서클' 상황이기는 한데, 이 정도 되는 첩첩산중 저택이라면 구태여 이런 억지를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형편없었습니다. 사비에르 박사 살인 사건은 저택 평면도까지 삽입해가며 뭔가 대단한 트릭이 있는 것 처럼 꾸며 놓았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현장 조작을 통한 아주 약간의 암호(?) 트릭 정도만 등장할 뿐이지요.
엘러리가 마크의 현장 조작을 알아챈건, 단지 마크 혼자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유치합니다. 요새는 아동용 추리 퀴즈에도 써먹기 힘든, 그런 추리에요. 설득력이 별로 높지 않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카드를 찢고 남은 조각을 왼손에 쥔다는 근거로 마크가 범인이라고 우기기는 힘드니까요. 총에 맞아 곧 죽을 피해자가 급한대로 반대 손에 카드 조각을 남겼을 수도 있는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의 샴 쌍둥이도 알고보니 "찢어진 다이아몬드 잭 카드" 라는 단서에 끼어 맞추기 위해서 등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쌍둥이의 성 "카로"는 영어의 다이아몬드고, 잭 카드에는 젊은 쌍둥이가 그려져있는데 이를 반 찢었다는건 그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뜻이라면서요. 하지만 이렇게 갖다 붙인다면, 범인이 아닐 사람이 있을까요? 젊은 청년, 즉 엘러리가 범인일 수도 있잖아요? 이보다는 차라리 퀸 경감의 S.I.X 추리가 훨씬 설득력 높았습니다.
책 뒤에서 국명 시리즈 중 유일하게 '독자에의 도전'이 없는 이유를 스토리에 빠져들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완벽한 트릭이나 추리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에 삽입하지 못한 것에 불과해요. 유일한 증거는 '범인은 반지를 훔치는 도벽이 있다' 밖에 없거든요. 엘러리도 하는 일이라곤 모든 사람들 앞에 반지를 꺼내어 놓고 그걸 훔치는걸 참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는걸 기다렸을 뿐입니다. 이건 추리도 뭐도 아니지요.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게다가 새러가 사비에르 박사를 살해한 범행도 어처구니 없어요. 아무리 질투에 눈이 멀었다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들까지 방문했고 산불로 사람들이 오가는게 불가능한 바로 그날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 상황에서 카드를 이용하여 다이잉 메시지를 조작했다는 것도 억지입니다. 엘러리 퀸의 말대로 퀸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별다른 의미없이 넘어갔을 단서였으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 범행인 마크 사비에르 살해 역시 설득력이 전혀 없어요. 마크가 범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려 해서 그를 살해했다는데, 마크는 새러가 범인인 것 처럼 현장을 조작한게 들통나 도주하다가 총에 맞은 주요 피의자입니다. 그의 고백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질리 없습니다. 당연히 증거가 될 수도 없고요.

엘러리 퀸의 대부분의 다른 국명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첫 번째로 일종의 깜짝 쇼를 벌여야 했던 샴 쌍둥이의 등장은 시시합니다. 카로 부인이 아들 샴 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부탁하고자 저택에 아들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사비에르 박사와 손님들이 품고있던 핵심 비밀이었지만, 퀸 경감이 거대한 '게'와 사교계의 유명인사 마리 카로 부인을 목격했던 것, 그리고 사비에르 박사의 직업과 제목을 통해 초반부에 이미 드러나 버리고 맙니다.
또 퀸 경감이 사비에르 박사가 손에 쥐고 있었던 카드인 스페이드 6로 새러 사비에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새러 이제르 사비에르 : S.I.X), 뒤이어 엘러리 퀸이 유일한 왼손잡이였던 마크 사비에르가 범인이라고 밝히고, 도주하다 잡힌 마크 사비에르가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려다 살해당하고, 또다시 엘러리가 마크의 다이잉 메시지인 다이아몬드 잭 카드를 통해 쌍둥이가 범인이다!라고 주장하는걸 과정 역시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남은 사람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범인이라고 우기는 꼴이잖아요. 이 친구가 과연 명탐정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화재로 갇힌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재난물로서의 가치가 더 높지 않나 싶네요. 엘러리 퀸의 절대적인 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똑같이 샴 쌍둥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가 있는데, 이 작품과 비교하면 노벨 문학상 수상작 급이니 차라리 이 작품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살짝 등장하는 샴 쌍둥이 중 한 명이 범인일 때 어떻게 형벌을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딜레마가 더 재미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로 끌고나가는게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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