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샤일록 -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현주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토 제일 은행의 젊은 엘리트 은행원 유키 신고는 은행 섭외부로 발령받았다. 섭외부는 부실 채권을 회수하는 곳이었다. 은행의 주요 업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낙담했지만, 곧바로 그곳의 에이스 야마가의 활약을 보고 채권 회수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야마가는 살해된채 발견되었고, 유키는 도자이 은행과 합병 시 부실 채권이 많으면 데이토 제일 은행이 불리해 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야마가가 맡았던 거액의 부실 채권 회수에 나서는데...
여러 편의 본격 추리물로 잘 알려져 있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빚을 받아내는 이야기가 중심이라는 점에서는 <<우시지마>> 시리즈를 연상케 하기는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서 채권자 데이토 제일 은행은 불법은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빚을 받아내는 행위가 일종의 선행이자 일본의 경제를 살리는 초석처럼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채무자 쪽이 더 악질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우시지마>>와는 정 반대,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발생하는 대출에 대한 묘사는 상세했고, 특히 야마가의 입을 빈 자본 선순환, 그리고 은행의 잘못된 관행으로 부실 채권이 쌓여가는 이유 등 반쯤 전문적인 이론들을 이야기와 잘 결합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마가는 채무자에게 원한을 사서 죽었다고 생각되었지만, 밝혀지는 실제 동기는 꽤 괜찮았습니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부실 채권이 섭외부 부장 가시야마가 결재를 올렸다는 설정이어서 의아했는데 이를 복선처럼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부실 채권은 결재자였던 가시야마의 상사 진나이의 음모였던 것이지요. 진나이는 데이토 제일 은행에 부실 채권을 잔뜩 만들어 몇 년 뒤로 예정된 합병 시 도자이 은행이 주도권을 쥐게 만드려는 작전을 실행했고, 그 댓가로 도자이 은행 섭외부 부장으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야마가는 이를 추궁하기 위해 진나이를 만났다가 살해당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빚을 받아내는 내용은 기대만큼 정교하게 그려지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면,
첫 번째 채무자 가시와다의 경우, 그의 빚은 5백만엔밖에 안되고, 가시와다 명의의 땅이 있어서 미리 가압류만 걸어두면 즉시 회수가 가능했습니다. 이건 야마가가 딱히 뭘 했다고 보기 어려워요.
두 번째 채무자 인더스트리아 공업과 사장 쓰치야 고타로의 경우의 채무 1억 4천만엔도 회사 특허로 갚을 수 있었습니다. 파산 시키겠다고 협박하면서 쓰치야 사장을 정신적으로 넉다운시키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지만, 애초에 불필요한 협상이자 논쟁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렇게 모욕을 주지 않아도, 쓰치야 사장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으니까요.
야마가가 죽은 뒤 유키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가관입니다. 우선 세 번째 채무자 가이에다 물산의 채무 20억엔은 '차환' 거래로 가이에다 물산을 분할한다는 해결책이 등장하는데, 이는 섭외부의 일개 은행원이 아니라 최소 부장급은 나서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애초에 설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20억엔이라는 엄청난 돈에 대한 비지니스 문제잖아요? 게다가 가이에다 사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록가수 스미라기 신이치와의 마약 커넥션을 들먹인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네 번째 채무자인 종교단체 쇼도관의 채무 20억엔, 다섯 번째 채무자인 전 유력 정치인 시이나의 채무 20억엔, 여섯 번째 채무자인 야쿠자의 프런트 기업'아칼 에스테이트'의 채무 70억엔 해결은 그냥 만화같더군요. 쇼도관에는 신도 8만명에게 교주의 경이 담긴 CD를 팔아서 돈을 회수하라고 하고, 시이나의 경우는 담보물이었던 싸구려 그림의 가치를 억지로 높여 경매에서 빚을 벌어 들이고, 야쿠자에게는 빚 담보인 땅을 팔아서 돈을 갚은 뒤 그 곳에 새로운 개념의 맨션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라는 일종의 경영 컨설팅을 해주는 식인 탓입니다. 애초에 이런걸 왜 일개 은행원이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변제 계획을 세워 주는 것도 은행원의 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은행원의 변제 계획은 가진 자산에서 최대한을 뽑아내면 됩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작전과 컨설팅으로 이익을 창출하는건 아닐거에요. 작전들도 너무 무난하고 쉽게 전개되어서 극적 긴장감을 느끼기도 힘들었고요.
열혈 청년인 유키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면서부터는 너무 뻔한 전개로 흘러가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냉혈한 야마가를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 이야기로 풀어가는게 훨씬 매력적이었을 거에요. 야마가가 가시와다 집을 방문했을 때처럼 말이지요. 처음에는 단순히 독촉차 방문한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야마가는 더러워진 집안 상태와 그의 아내는 열심히 일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가시와다가 곧 이혼당해서 집을 팔게 될 거라는 걸 곧바로 추리해 내거든요. 하지만 유키에게는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앞서 동기 부분은 괜찮았다고 말했지만, '동기'만 괜찮았을 뿐 실제로 진나이가 야마가를 죽였을리는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진나이가 결재를 했던 채권들이 모두 부실화되었다 한 들 이미 퇴직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일부러 부실화되었다는걸 증명하기도 쉽지는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야쿠자 '아칼 에스테이트' 채권의 경우, 이야기 중에도 리먼 사태 등으로 운이 없었을 뿐, 대출 당시에는 충분히 말이 되는 사업이었다고 소개되고 있을 정도지요. 즉, 진나이의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제시되고 있지 못해서, 범행에 설득력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거의 없는, 흔해빠진 일본식 전문가 슈퍼맨의 만사해결 이야기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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