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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2

시시리바의 집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시리바의 집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 유다이의 전근으로 도쿄로 이사왔지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워하던 가호는 고향친구 도시아키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집에서 만난 도시아키의 아내 아즈사는 공포에 질려있였다. 집에 원령이 출몰하기 때문이었다. 도시아키 불륜 상대의 저주 탓이라는 걸 알고 난 후, 결국 문제는 해결되었다. 문제는 두 부부가 집 안 가득한 모래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호는 도시아키 집이 이상하다고 확신했지만 잃어버린 결혼 반지를 찾으려 그 집에 방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도시아키가 모시고 사는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놀라 달아나려 했지만, 도시아키 부부의 공격으로 남편 유다이는 살해당했다. 가호는 도주와 격투 끝에 아즈사를 죽이는데 성공하나, 집 안에 있는 '무언가'가 모래로 변해 가호를 덮쳐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과거 버려졌던 도시아키 집을 탐험하다가 머리에 이상이 생겨버린 데쓰야는, 같이 탐험했다가 퇴마사로 각성해버린 히가와 함께 도시아키 집에 있는 '무언가'인 '시시리바'를 제령하기 위해 찾아오는데....


<<보기왕이 온다>>로 데뷰했던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최신작 호러 장편 소설. 집에 깃든 지박령(?) 탓에 벌어지는 공포와 그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인 일본식 퇴마물입니다. 퇴마사 히가 자매가 주인공인 일련의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보이는데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이 작품만 읽어도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작품에서 핵심은 평범한 가정주부 가호 시점에서 그려지는 도시아키 가(家)의 괴이 현상입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깜짝쇼를 통해 섬찟함을 가중시키는 솜씨가 돋보였는데, 맨 첫 번째 에피소드의 깜짝쇼는 바로 '모래'입니다. 에피소드 내내 괴현상은 도시아키의 불륜 상대가 저주한 탓에 벌어졌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가장 눈에 보이는 괴현상인 '모래'는 없어지지 않았고 도시아키와 그 아내 아즈사 모두 모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상당히 섬찟했어요.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도시아키가 모시고 살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친할머니가 아니었다는 반전으로 놀라움을 안겨주고요. 여기서 등장하는 도시아키의 “필요 없어? 그럼 죽일 거야? 이제 마리는 필요 없다고? 그렇구나..."라는 대사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또다른 화자인 '나', 이가라시 데쓰야 시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지금 도시아키가 살고 있기 전, 하시구치 가족이 살고 있을 때 놀라갔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프롤로그는 짧지만 꽤 놀라왔습니다. 마지막에 엉망인 글로 채워버리는 센스 덕분에요. 하시구치가 이사간 뒤 폐가 탐험을 하다가 '시시리바'라는 무언가를 만나 모두가 망가져버리고 만다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탐험 에피소드도 뻔하지만 재미있었고요. 스멀스멀하게 불쾌한 느낌이 차오르게 만드는데 확실히 재주가 있는 작가에요.

원래는 영적(靈的)인 가정 보안시스템, 즉 수호신으로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안전한 집안, 원만한 가정, 번창하는 가족을 지키는 존재였는데, 2차 대전 때 폭탄을 맞고 이상이 생겨 폭주하고 말았다는 '시시리바'에 대한 설정도 그럴 듯 했습니다. 폭주한 나머지 죽은 할머니 대신 도시아키가 동네 다른 할머니를 모시며 살게 만들었고, 임신했던 아즈사가 죽자 가호를 임신시켜 도시아키 집에 살게 만드는 식으로 지킬 집을 설정대로 만드는데 집착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결국 제령에 성공해서 가호와 도시아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가호가 아이를 죽게 만든다는 에필로그는 가장 섬찟했던 부분 중 하나였고요.
그동안 다른 괴담물에서 보지 못했던, '모래'를 주요 도구로 삼는 능력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상화하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누가 봐도 이상하고 괴기한 집에, 심지어 남편이 증거를 찾아서 알려주며 가지 말라고 하는데 구태여 방문해서 화를 자초하는 가호의 몰상식적인 행동은 답답함을 자아내기는 합니다.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 뒤, 도시아키 집에서 시시리바를 제령하는 데쓰야와 히가의 활약이 펼쳐지는 결말 부분도 진부했고요. 시시리바가 모래를 조종하여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집에 있는 사람들을 조종하여 공격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앞 에피소드에서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히가의 능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 생각됩니다. 고작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정도로 수백년 이어온 지박령을 이길 수 있을거라고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시시리바가 '개'를 무서워 한다는걸 알아낸 뒤 데쓰야의 애견 긴의 활약으로 제령에 성공하는 마무리는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히가와 데쓰야가 도시아키 집을 찾은 건 가호가 도시아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집에 살게된 몇 개월 후로 묘사됩니다. 가호의 배가 제법 나왔다고 설명되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전에 경찰이 이 집을 찾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살해당한 가호의 남편 유다이는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 유다이가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게 말이 될까요? 심지어 유다이는 도시아키 집에 대해 근처에 사는 동료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경찰에 신고했다면 분명 바로 조사가 들어왔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류의 퇴마물이 경찰력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네요.

그래도 전체적인 설정과 구성이 꽤 잘 갖추어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섬찟함 만큼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어서 호러, 공포물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는게 마음에 드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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