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전통의 시리즈도 40권 째를 향해 가네요. 이번 권에는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 두 편에 묵직한 이야기 두 편이라는 구성 역시 언제나와 비슷합니다. 특이한건 외전 형식의 근미래 SF가 한 편 있다는 점이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려 전체 별점은 평균하여 2점인데, 앞의 두 편이 심하게 망작인 탓입니다. 뒤의 두 편은 좋았어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크로스로드>>
악우惡友 요코야리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학교 무대 일상계 소품. 미국 뮤지션인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에서 악마와 계약하여 음악 재능을 손에 넣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핵심 소재입니다. 미술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미묘하게 바뀐 분위기, 열쇠로 열리지 않는 미술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기름 냄새, 조명이 꺼졌다 켜지지 걸려있던 그림이 모두 바뀐 현상... 이 모든게 미술부원 미치바타의 급작스러운 실력 향상과 엮여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는 이야기거든요.
미술실 괴담의 진상은, 미치바타가 실수해서 물감이 많이 튄 탓에 몰래 문을 잠가놓고 청소하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바닥에 튄 물감은 마법진을 그려 감추고, 벽에 튄 물감은 그림과 조각상을 옮겨 가린 것입니다. 악마 그림은 액자 앞 그림이 쉽게 떨어지도록 장치한 뒤, 불이 꺼졌을 때 벽을 울려서 떨어트린 것이고요.
그러나 동기가 무엇일까요? 미치바타가 이렇게까지 해서 괴담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청소하는게 이런 수고로운 작업보다도 훨씬 빨랐을거라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낮고요.
그림 실력이 좋아진건 엄연한 사실인데, 단지 '아름답다고 생각한 무언가 (여기서는 신라의 암모나이트 화석)'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결말도 허무했습니다. 그림 실력이 이런 급작스러운 계기로 엄청나게 좋아진다는건 솔직히 말도 안됩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의 '십자로' 메타포를 가져온 건 나쁘지 않습니다만, 동기와 트릭, 진상 모두 마음에 들지 않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종려나무 동전>>
마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신라와 타츠키를 만난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에서 몇 번이나 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마을의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고대 그리스 동전의 비밀을 풀어주는걸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종려나무가 그려진 동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신라는 그 마을로 향하고, 그 곳 성당에 새겨진 시계 조각을 통해 진상을 깨닫는다.
'발칸 반도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C.M.B 다운 현학적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소재로는 지나치게 무거웠습니다. 비밀의 해답이 "용서해라" 라는 메시지였다는 결말도 많이 허무했고요. 이를 알아내는 방법도 너무 뻔했습니다. 성당 시계 조각의 시간과 분을 시계 문자반 성인 이름에 대입한 '마태 복음 18장 22절, 누가 복음 23장 34절'이라는 건데, 암호 트릭이라고 보기에는 함량 미달입니다. 의외성이라고는 전무하니까요.
현학적으로 얻을 내용이 많지 않고, 결말도 의외성 없고 트릭도 수준 이하라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최근 마우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모두 이 모양인데, 안 나오는게 낫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광구 A-11>>
아무도 없는 소혹성 광구 A-11의 유일한 작업원이 총에 맞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항공우주감사관 나나세는 우주공학박사 신라와 함께 진상 조사를 위해 소혹성으로 향한다.
2075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추리극.
로봇 외 작업원은 1명 뿐이라는 가혹한 상황에, 가족의 죽음까지 겹쳐 자살한 것이라는 동기도 설득력 높으며,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과 소혹성의 특이한 상황을 이용한 과학적인 트릭도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트릭이 특히 돋보이는데, 그냥 우주 공간에 대고 총을 쏜 겁니다. 그러면 탄은 궤도 비행을 하게 되는데, 근처에 있는 달 때문에 가속이 붙어 위력이 더욱 커져서 살상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총알이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려면 소혹성을 한 바퀴 돌아야 하니, 그 동안 매그너스는 총을 쏜 뒤 그걸 다시 정리해서 창고에 가져다 놓아서 일종의 완전범죄를 만들었고요. 이렇게 모든게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
로봇 3원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에 있던 로봇 팔이 매그너스는 왜 죽었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총을 마지막에 창고에 가져다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답할 수 없다는 식으로 진상을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이유도 그럴싸합니다. 매그너스가 자살했기 때문이에요. 자살은 허락되지 않는 행동이라, 그의 생명 뿐 아니라 '존엄'까지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는 거지요. 조금 카톨릭적 발상인데, 뭐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타츠키와 신라의 미래 모습도 재미있었고, 외전으로서 여러모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트릭만으로도 별점 3점은 너끈해요.
<<고양이 꼬리>>
일본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 특이한건 그곳 출신의 유명화가 이토우 류우카에 관련된 소문으로, 그는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어 마을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 유일한 단서는 "고양이 꼬리 앞에 있다"는 그의 말 뿐이었다.
초등학생 후루타는 이 소문을 알게 된 후 친구들과 마을의 '네코다 신사'로 향한다. 절벽 위 신사 뒷쪽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꼬리'라는 말, 절벽 위에 덩그러니 위치한 신사, 보통 육지와 이어져있는 땅을 뜻하는 '에가시라'라는 이름을 가진 신사 앞바다의 섬이라는 단서로 화가가 말한 의미를 밝혀내는 일상계 작품입니다.
신사와 에가시라 섬은 원래 이어져있었는데 지진으로 이어진 지형이 붕괴하여 신사는 올라갈 수 없는 절벽 위에 놓였고, 에가시라는 섬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전 지형으로 생각해야 답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즉, 예전 마을은 멀리서 보면 고양이 모양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네코다 신사의 이름도 고양이 모양의 머리에 위치했던 거에서 유래된거지요. 황금은 화가가 이 말을 한 가을 저녁때에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어요. 곡식과 나뭇잎이 황색으로 물들고, 석양이 강에 반사되어 황금색 고양이가 출현하는걸 의미한 겁니다. 고양이 꼬리 앞은 모두 황금색! 이렇게 민속학적 테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응용해 봄직한 이야기가 충분히 있을듯합니다. 제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선바위역의 원래 있었던 선바위 위치를 토대로 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초등학생마저도 화가의 말을 들었을 때 "보물은 신사 뒤"라고 생각했지만 보물이 그곳에 없다는게 전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살짝 옥의 티입니다. 신사 뒤 동굴은 너무 위험하여 이 곳에 들어갔던 사람은 모두 죽어버린 탓이라는건데, 섬뜩하면서도 기발하기는 합니다만 이게 현대까지 이어진다는건 조금 설득력이 약하지요.
또 화가의 말은 이어져 왔으면서도, 정작 마을이 고양이 모양이었다는 것 역시 구전되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그래도 일상계로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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