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클락 -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
조지 스트라우드는 거대 출판업체 재노스 엔터프라이즈 산하의 잡지 <<크라임웨이>>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하다가, 한 파티에서 재노스의 연인 폴린 델로스를 만나 알게된 후 그녀와 불륜에 빠진다.
그러나 스트라우드와의 밀회 직후 그녀는 재노스를 게이라고 비난하다가 살해당하고, 재노스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고 희생양으로 내세우기 위해 그녀가 살해당하기 직전 만나고 있던 남자를 찾아나선다. 그를 찾기 위해서 출판사에서 선택한 인재는 바로 조지 스트라우드였다.
케네스 피어링이 1946년에 발표한 고전 범죄 소설.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잘 알지 못하는 작품입니다만, <<블러디 머더>>에서 줄리언 시먼스가 추천했기 때문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국내 출간본에서는<<커다란 시계>>라고 언급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줄리언 시먼스의 말 그대로, 조지 스트라우드가 사주의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자기라는 딜레마,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조사를 흐리지만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와 잘 알고 있으며 유력한 용의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는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었던 <<아웃 오브 타임>>이 떠오릅니다. 아마 이 작품은 이런 류의 이야기의 원조일 거라 생각됩니다. 특이한건 <<아웃 오브 타임>>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이 조금 지루하다는 점입니다. 출판, 잡지업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조지 스트라우드와 폴린 델로스가 불륜에 빠지는 과정이 장황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폴린과 함께 한 일종의 데이트 코스에 대한 디테일은 뭘 이런것까지 설명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 데이트 과정이 용의자를 찾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핵심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또 여러가지 디테일들의 독특함도 볼거리입니다. 손님이 원하는 그 어떤 물건도 보여준다는 골동, 고물상과 바가 합쳐져 있는 '길의 바'에서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무명화가 루이즈 패터슨과 그녀의 작품 때문에 빚어지는 서스펜스가 압권이에요. 조지 스트라우드가 '유다'라고 부르는 그녀의 작품을 골동품상에서 구입하는데, 구입을 경쟁했던 여자 손님이 루이즈 패터슨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스트라우드가 그녀의 팬이라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놓기까지 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정도 재미있고,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기 위해 출판사는 루이즈 패터슨과 접촉하고, 결국 둘의 상봉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그를 본 순간 고함을 치려 했지만, 숨을 쉴 수 없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데, 정말 기가 막혔어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묘하게 '유다'라는 그림을 없앨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조지 스트라우드의 협박도 일품이고요.
이 그림은 마지막까지 등장합니다. 결국 '승리자'가 된 조지 스트라우드의 전리품으로요. 50달러주고 구입했지만 여러모로 화제가되어 최고 1만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니, 나름 해피엔딩이기도 합니다. 조지가 얻은건 돈이 아니라 나름의 교훈이지만요.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닥친 위기 탓에 서스펜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해결하려는 노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스스로 조사를 훼방놓는다고는 하지만, 그런 작전이 그닥 정교하게 드러나지 않거든요. 순전히 우연으로 (출판사에서 일종의 현상금을 걸자 조지를 찾아나선 관계자가 미행해서 출판사 건물을 찾아냄) 점차 포위망이 좁혀지고, 결국 회사 건물 안에 범인이 있다!는 결론으로 직접 대면 수사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는 앞서 설명한 루이즈 패터슨과의 대면 시의 협박 외에는 별로 하는게 없어요.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빠져나가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위기 탈출은 출판사가 얼 재너스에게 닥친 문제 (수사 대상) 등으로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어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는 노력이 바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맥이 빠질 정도로 시시합니다. 운, 우연 등이 겹친 결과일 뿐 조지 스트라우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지요. 또 이 인수합병으로 모든게 마무리된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지 스트라우드는 재너스가 진범이 아니라는게 밝혀지기 이전에는 진범일 가능성이 있으며, 진범이 아니더라도 주요 참고인이라는건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출판사에서의 조사가 끝났다고 모든게 해결된다?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경찰마저 나서서 찾고 있다는 설정이 있는 한 이렇게 대충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재너스의 투신 자살로 사건이 해결되는 듯한 결말도 마찬가지로 납득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울러 작가가 시인 출신이라는 경력 때문에 그런지, 지나치게 멋을 많이 부린 느낌도 많이 듭니다. 제목이기도 한 "빅 클락"이 대표적이에요. 시간은 뭘 해도 흐르고, 사람들은 모두 시계 속 부품일 뿐이라는 논리를 풀어내는 등으로 꽤나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있어보이게끔 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흥미로운 범죄 스릴러로 쑥쑥 읽히는 맛은 좋고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원조격이라는 역사적 가치는 크지만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노 웨이 아웃>>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모래톱의 수수께끼>>도 <<블러디 머더>> 추천으로 읽었지만 별로였었는데, 이런 류의 추천에도 그만 좀 낚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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