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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망령의 기억 - 허지웅 : 별점 3점

망령의 기억 - 6점
허지웅 지음/한국영상자료원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표적인 한국 공포 영화들에 대해 소개하는 리뷰 모음집. 모두 1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능인으로 더 유명해진 글쟁이 허지웅씨가 작업한 책입니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세간에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들이 많습니다. <<하녀>>를 필두로 한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과 <<여곡성>>, <<월하의 공동묘지>>는 한국 공포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들이죠. <<망령의 웨딩드레스>>와 <<깊은 밤 갑자기>>도 꽤 친숙한 작품입니다. <<대괴수 용가리>>와 <<우주괴인 왕마귀>>도 반가왔고요. 리뷰 한 편은 길어봤자 15페이지 정도에 불과한데 담고 있는 내용이 부실하지는 않습니다. 소개하는 작품이 왜 높은 평가를 받는지 (혹은 왜 높은 평가가 부당한지), 그리고 그 작품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장르 영화의 변천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아보자면, <<마의 계단>>은 내용만 보아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데, '계단'을 신분 상승과 추락의 의미로 적절히 사용한 내용이 인상적이라 한 번 보고 싶어 집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은 느낌의 <<살인마>>도 궁금하기는 한데, 이 작품은 1985년의 리메이크작인 <<목없는 여살인마>>로 감상하고 싶네요.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할 때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대신 <>를 '어차피 같은 영화라면, 컬러로 보는게 낫다'라며 권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거든요.
<<월하의 공동묘지>>에 대한 의견도 기억에 남습니다. 허지웅의 결론은 그렇게까지 유명세를 떨칠 작품은 아니라는거죠. 기본적으로 공포 영화가 아니라 멜로에 가깝기 때문이라는데,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신파 정서의 악영향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이 신파 정서 때문에 달려야 할 때 제대로 달리지 못한 작품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영화에 대해 소개해주는, 전통적인 리뷰에 가까운 글 외에도 영화 외적인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는 글들도 좋았습니다. 세 편의 글로 구성된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을 다룬 글이 대표적입니다. <<화녀>>와 <<충녀>>, <<이어도>>,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로 김기영 감독 전성기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 글은 김기영 감독이 유작으로 준비했던 <<악녀>>에 대한 소개와 그의 죽음까지를 다룬 짤막한 에필로그 형식인데 여러모로 김기영 감독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다시 봐도 <<화녀>>는 정말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많습니다. 김기영 감독과 같은 감독들 소개 외에도, 김진규나 작가가 팬이라는 정세혁,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 묘한 매력을 보여주었던 이은심, 윤여정, 이화시 등 여러 배우들 소개도 풍성하거든요.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 <<괴시>>는 스페인 영화를 베낀 표절 모작물에 불과하다던가, <<깊은밤 갑자기>>의 감독 고영남의 또다른 에로틱? 성애? 스릴러 <<여자, 여자>>는 1, 2대 애마부인 안선영, 오수비가 출연했다는 등의 정보도 재미를 더해 주고요.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한 도판도 적절하며 작가 허지웅의 글 솜씨도 마음에 듭니다. 크게 튀지도 않고, 좋고 나쁨은 분명히 알려주지만 전체적으로 과거의 유산에 호감과 애정을 가지고 따뜻하게 포장한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어 지네요.

물론 심도깊은 비평, 분석으로 보기 어렵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면 한국 공포영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좋은 리뷰 모음으로는 차고 넘칩니다. 가격과 분량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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