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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웬디 워커 / 김선형 : 별점 2점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4점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북로그컴퍼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하게 강간당한 제니를 위해 부모는 망각 요법으로 당시의 기억을 없앤다. 그러나 오히려 제니는 자살을 기도하고, 새로 제니를 맡게 된 정신과 의사 앨런은 제니의 기억을 복구하여 치료하려 한다.
하지만 제니의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특히 제니가 표백제 냄새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자 앨런은 자신의 수영 선수 아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표백제와 강간범은 몸에 털이 없었으며 빨간 새가 그려진 파란색 후드티를 입었다는 증언 모두 제이슨에게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앨런은 제니의 아버지 톰에게 들은, 톰의 직장 상사 밥이 딸 뻘인 비서 라일라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말을 이용하여 밥을 범인으로 조작하려 결심한다. 약간의 조작을 통해 밥은 수사 선상에 오르고, 알리바이도 없으며 과거 성범죄 경력이 있었다는게 밝혀져 궁지에 몰린다. 밥은 어쩔 수 없이 제니 강간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친구의 딸 라일라와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누명을 벗지만 분노한 라일라의 아빠에 의해 살해당한다.

권능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거러면 자아가 아주 강인해야 한다.
우리가 낳은 자식을 보호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담한 불행이다.


심리 범죄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결론은 망각 요법과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안내서같은 느낌의 작품. 제니와 앨런, 숀, 톰, 샬럿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강박증을 이겨내는게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물의 분위기를 풍기는건 아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한 앨런이 제니의 기억을 조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물론 설득력은 높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다운 디테일아 살아있거든요. 샬럿에게 들은 밥과의 성관계 묘사와 TV 광고, 경찰과의 통화를 활용하여 제니의 마음 속에 밥이 범인이라는 생각을 심어놓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밥이 왜 알리바이를 대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하며, 알리바이를 밝힌 후 처단받는다는 결말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조금 꼬아놓기는 했지만 초반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마약 판매상 더마코와 제이슨, 그리고 진범 셸비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도 합리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습니다. 일단 범죄 스릴러, 추리물이 아닌 탓이 큽니다. 범죄물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제니를 강간한 범인이 누구인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무엇보다도 진범의 정체가 뜬금없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소개된, 앨런이 구하지 못한 유일한 환자라는 셸비가 진범인데 그 전 까지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다가 결말에서 급작스럽게 정체가 밝혀지는 식이라 영 와닿지 않아요. 셸비가 앨런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 제이슨을 스토킹하여 강간하려고 했다는 목적 정도만 납득이 가는 수준입니다. 이럴거면 범인은 누구라도 괜찮았던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충 마무리한 느낌이 들 정도에요.
셸비가 오래전 앨런도 강간한 적이 있었다는 설정도 황당합니다. 앨런도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이며, 제니의 치료와 함께 스스로도 치유되었다는 결말을 위한 억지 설정인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또 셸비가 진범이라는걸 진작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제이슨에게 혐의가 가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던 앞부분 모습과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이를 경찰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극에 달한 앨런 1인칭 시점의 묘사 역시 그닥입니다. 주변 묘사 없이 앨런의 심리 묘사와 등장 인물간의 대화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데 소설이 아니라 그냥 작가의 말이나 인터뷰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몰입하기 힘들었고요. 또 어느새 톰과 샬럿의 과거와 현재 비밀까지 공유하며 그들을 치료하게 되는 전개도 이상합니다. 분명 제니의 치료, 기억 복원이 목적인데 왜 부부의 심리 치료까지 하는건지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이를 위해 등장인물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심지어 샬럿은 과거 의붓아버지와의 성관계를 숨겼을 뿐 아니라 남편 톰의 직장 상사 밥과 불륜 관계라는 설정인데 이건 너무 지나치죠. 이런 설정은 또한 성폭행 피해자인 제니가 아닌 샬럿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게 만드는데 이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샬럿은 밥과의 관계를 깨고, 자신이 잃었던 것이 무엇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톰 역시 그런 샬럿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다시 사랑하게 되고요. 그런데 제니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고통을 떠올린 후 치유가 되었다는게 전부입니다. 샬럿과 톰이 뭘 어떻게 하건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냥 막장 드라마와 같은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등장 인물들과의 대사로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져 숀같은 인물의 비중이 기묘하게 높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숀은 제니의 심리를 전달해주기 위해 투입되어 비중도 커진 도구에 불과해 보이거든요. 제니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등장하지 않아도 무방한데 말이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졌다면 더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도 없고 묘사도 지루하며 장황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스릴러가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로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인터넷 상의 그럴듯한 소개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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