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천재 -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책세상 |
이탈리아인이 자국의 유명 요리와 그 요리에 관련된 주변 역사까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는 요리 관련 미시사 서적.
딱딱할 내용을 재미나게 써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세집 운운하는 박찬일 셰프의 소갯글부터가 재미난데 이어지는 본문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기묘한 유머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요리 역사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엄청나게 높습니다. 피자만 해도, 피자의 역사만 오롯이 다룬 책도 읽어보았지만 오히려 이 책 쪽이 밀도가 더 높을 정도로요. 원래, 19세기 초 까지만 해도 반죽에 먼저 치즈 등 식재료를 올리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뿌렸다는데 언제 이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던가, 마르게리타 피자는 원래 있었지만 요리사 라파엘로 에스포지토가 재치 (피자의 이름을 묻는 왕비에게 왕비의 이름이라고 대답한) 를 발휘한 덕분에 역사에 길이 남았다는 이야기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실제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디테일이 가득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선 스파게티도 흔히 알고 있던,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국수를 가져온게 유래라는 설은 오류라고 합니다. 1929년 미국의 <<마카로니 저널>> 이라는 월간지에 실린 근거없는 기사가 유래라는군요. 기사를 읽어보니 베네치아 뱃사람 이름이 스파게티라는 둥 황당하기 짝이 없어서 이 기사가 사실처럼 굳어진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애초에 재료부터 다르니까요. 물론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 수마트라 지방의 파스타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과 실제 중국에서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전해주기는 합니다. 당연히 마르코 폴로보다는 훨씬 전 시대에 말이죠.
또 스파게티가 주력 국수가 되고 마카로니는 샐러드 용으로 밀려난 계기는 1927년 크래프트 사의 파마산 치즈 가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마케로니는 귀족들의 음식이었는데 안타까와요.
샐러드는 이탈리아 대표 요리의 하나랍니다. 로마에서부터 먹어왔다죠. 소개되는 로마식 샐러드 레시피를 보니 식초는 아끼되 기름은 아끼지 말고, 소금은 많이 후추는 적당히 쳐서 먹는다는데 완전 제 취향입니다.
프로슈토는 고대 로마에서도 먹었던 유서깊은 음식으로 포 강 유역의 에트루리아 문명터에서 발굴된 뒷다리가 없는 돼지의 뼈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합니다. 당시의 돼지 종류는 지금과 달랐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좋았어요. 또 놀랐던 건 당연히 생으로만 먹을 줄 알았는데 볶거나 익혀먹는 레시피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튀김까지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카르파초가 그 명성에 비하면 만들어진지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에도 놀랐네요. 실존 인물로 의사가 건강 문제로 날고기를 권했던 후작 부인 니나 모체니고를 위해 만들어진 요리라는 역사도 흥미롭고요. 이름도 화가 카르파초의 이름에서 따온 직접적인 네이밍이라는데 역시나 처음 알았습니다. 요리 창조자인 베네치아 해리스바의 주세페가 아들 아리고와 요리 이름에 대해 고민하다가 앞 벽에 화가 비토레 카르파초의 전시회 포시터를 보고 옳다쿠나 싶어 이름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화가가 즐겨 쓴 붉은 색이 요리의 색상과 유사했기 때문이라는데 무릎을 칠 만 합니다.
후반부 누텔라 이야기에서는 다시금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텔라가 어떻게 생겨났고, 그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현재와 같은 세계 정복 (?) 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경쟁 제품까지 소개하니 말 다했죠. 그나마 누텔라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던 <<오무라이스 잼잼>>에서의 내용은 그냥 겉핥기에 불과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옥수수, 모짜렐라, 와인, 티라미수 등 친숙한 음식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과감한 발상도 돋보입니다. 포크에 대해 소개하며 샤를마뉴 재위 당시 왕과 귀족들은 사냥한 동물들을 끊임없이 먹어야 했기 때문에 통풍이 직업병과 같았다는 반쯤은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도 좋은 예겠지만 대표적인건 로마 시대에 늑대는 야수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인들이 기본적으로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에 기반하며, 그들이 양을 먹지 않았기에 늑대는 경쟁자, 야수가 아니라 친구였다는거죠. 그러나 인간이 양을 먹기 시작하면서 늑대가 야수가 되었다는데, 무척이나 그럴듯하죠?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게 젖을 먹인게 늑대였던 것이 이 발상을 뒷받침합니다.
와인과 사과주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와인이 세계를 뒤덮은 이유를 기독교와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초기 기독교, 로마 교회는 포도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는데 알프스 북쪽 드루이드 교도는 사과주를 마셨다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드루이드들 천국 명칭 '아발론'은 아발의 섬, 즉 사과의 섬이라는 뜻이라는 말과 함께요. 결국 로마 교회가 승리한 뒤 사과가 지옥을 상징하며 종교 행사에서 사과주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샐러드가 식사의 시작에서 식사 도중의 곁들임 음식으로 밀려나는 과정과, 다시 식사 시작 음식으로 복귀하는 과정이 실제 역사적 사실 - 식초가 들어간 음식을 거부하는 문화와 비타민 유행 - 과 결합해 보여주는 내용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디테일이 탁월한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연회 문화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다양한 책을 읽었지만 와인을 따르던 전문가 코피에레에 대한 묘사는 처음 봤네요. 온갖 좋은 점은 한 몸에 다 갖춘 듯한 사람이더라고요. 길게 늘어뜨린 옷에 주홍색 양말,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 벨벳 신발을 신는다는 패션 센스마저 돋보입니다. 또 당시 요리들은 모두 단품이 아니라 코스였으며 당시 설탕을 많이 사용했던건 소금의 짠맛을 상쇄하기 위해서였다는 발상도 눈에 띕니다. 그리고 안 좋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료가 필요했다는 것도 사실과 멀었다는군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어야 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비싼 향료를 살 여유도 없었을 거라는게 이유인데 확실히 와 닿습니다.
캐비아는 원래 굉장히 싸구려 음식으로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영국 병사들에게 보급품으로 캐비아 캔을 나누어 줄 정도였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참치 대뱃살, 킹크랩과 같은 과정을 밟은 셈이네요,
유명한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의 손길이 닿은 에스프레소 머신과 저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모카 에스프레소 디자인 등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스러운 이야기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다빈치가 실제로 레스토랑을 경영했다는 이야기, 그곳에서의 일화도 기억에 남습니다. 음식의 양을 줄이고 플레이팅에 신경을 쓴 최첨단의 세련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손님들 모두 격분해서 경영은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과연, 플레이팅 따위보다는 가성비가 최고인거죠.
이런 내용이 재미난 글과 함께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 있습니다. 단점을 찾는게 힘들 정도로 재미있고 가치도 높은 책입니다. 2만원이라는 가격도 수긍할만 합니다. 제 별점은 5점! 요리, 특히 이탈리아 요리를 사랑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이탈리아인들은 정말로 위대한 민족이에요. 요리와 예술 측면에서는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