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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초창기 단편집. 1990년에 발표되었던 <<성>>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1981년부터 1985년 사이에 발표되었기에, 초창기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BS 망가 야화에서 소개되었을 정도니까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방주가 오던 날
  2. 난파선
  3. 진수의 숲
  4.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5. 늪의 아이
  6. 유사(流砂)
  7. 쿠로이시지마(黑石島) 살인사건
  8. 성(城)
  9. 파란 무리
  10. 그림자의 거리
이 중 앞의 두 편은 아주 짤막한 가벼운 개그물로 언급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크리쳐 호러(?)물 <<진수의 숲>>, <<늪의 아이들>>은 <<자선단편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이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리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 작품들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자신이 외계인이며 UFO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고 말하는 동급생 후리오와 어울리다가, 약간의 차원 뒤틀림(?)을 경험한다는 내용.
작가의 말에 따르면, 폴 사이먼의 노래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에서 제목을 따 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가사를 잠깐 찾아보니 '훌리오와 내가 교정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는데 엄마가 뭔가 법에 위배되는걸 봤고, 그래서 나와 훌리오를 잡으면 구치소에 집어 넣는다'는 내용이더라고요. 정확한 의미는 영 알 수가 없는데 (폴 사이먼 본인도 엄마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변했답니다.), 이런 노래의 모호함이 만화의 결말과 일치한다는게 재미있습니다. 후리오가 UFO를 타고 갔는지, 그냥 버스를 타고 평범하게 떠났는지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여운을 남기니까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일상 속에서 약간의 뒤틀림을 보여주는 일상계 SF물, 아니면 평범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성장기로 볼 수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SF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폴 사이먼, 그리고 모로호시 다이지로 스타일에 가까우니까요. 흥겨운 노래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기껏 상상력을 발휘했는데 그냥 버스타고 이사간거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유사>>
주인공과 친구들은 사막과 엄청난 유사 폭포 탓에 감옥과 다름없는, 미래가 없는 별 볼일없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해서 그들을 막아서는데....

SF의 탈을 쓰고 있기는 하나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위기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젊은 청춘의 뒷다리만 잡는 기성 세대를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도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라 그릴 수 있었겠지요? 사력을 다하는 청춘을 기성 세대가 뒤쫓는 결말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는 낡은 소재와 전개라는건 단점입니다. 불합리한 현실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청춘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면? <<총몽 (알리타)>>이 되는거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쿠로이시지마 살인사건>>
외딴 섬에서 젊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어 형사가 파견되었고, 섬 사람 누군가의 딸로 여겨져 장례식이 열렸다. 그런데 장례식 와중에, 그 딸이 살아있다는게 밝혀진다.
다른 사람이 피해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살아있었고, 바닷물의 영향으로 사체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형사에게 없었던 일로 하자며 반 쯤은 협박하듯이 부탁하는데....


우리나라 모 섬에서 일어났던 범죄가 떠오르는 작품.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흔합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모로호시 다이지로 그림체인데다가, 전개 방식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호러물스타일이라서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그 콘서트 꽁트를 정극 배우들이 제대로 연기하는 느낌이랄까요? <<유사>>처럼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성 세대에 대한 풍자로 볼 수도 있을테고요.
흔한 이야기인데 여러모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성>>
대기업에 서류 하나를 전해주러 왔던 사원의 출장은 서류에 관계된 회사간의 복잡한 정리, 대기업의 인사 이동 등으로 장기화되고 말았다. 팩스로 지시를 기다리는 자택 대기 명령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이 흘러 그가 죽었을 때 지시가 전달되었다. 일반 사원들은 1층 이상 올라가보는게 꿈이라는 본사 건물 15층으로 오라는 지시였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 지금 읽기에는 다소 뻔했습니다. 결말도 다소 뜬금없었고요. 왜 마지막에 15층으로 부른 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파란 무리>>
장기 매매가 일반화된 미래. 하층민은 장기를 팔고 인공 장기로 교체하여 삶을 이어나간다. 판매된 장기는 하나로 모아져 부자 노인의 뇌를 이식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장기를 팔아 인공 장기로 교체하는건 단순한 빈민 대책으로 무의미한 시술이었고, 이 모든건 권력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80년대 유행했던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SF물.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이야기였습니다. 기묘한 세포 덩어리로 피해자들을 변질시킨다는 결말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 특유의 이형 생태 결합을 선보이기는 하는데, 장기 매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하더군요.  <<소일런트 그린>>정도의 충격적인 반전도 아니었고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언급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자의 도시>>
한 초등학생이 모르는 아이에게 이끌려 낯선 골목길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과 건물을 잡아먹었다. 꿈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잡아먹혔던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잡아먹힌 학원도 불에 타 버렸다.
괴물이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걸 깨달은 아이는 괴물에게 모델건을 쏘고 기절했다. 그리고 정신이 든 뒤, 싫은 일이 생길 때 마다 모르는 골목길로 항하게 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주었다는걸로 유명한 작품. 아래의 장면 덕분일겁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뻔했습니다. 이세계에서 경험한 일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앨리스 죽이기>>가 떠오르네요. 때문에 지금 읽기에는 진부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화로는 작품의 분위기를 잘 시각화하지 못하고 있고요.

하지만 초등학생이 주인공이고 진짜 악당 - 싫어하는걸 없애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으니 - 이라는 점은 특이했습니다. 이 점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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