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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

동급생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동급생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슈분칸 고등학교 야구부 주장 니시하라 소이치는 야구부 매니저 미야마에 유키코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학기 초에 충동적으로 니시하라와 관계를 가졌었다. 니시하라는 유키코가 차도로 뛰어들은 이유는, 임신해서 산부인과에 가다가 고전 선생이자 학생 지도부 선생인 미사키 후지에에게 쫓긴 탓이었다는걸 알고 미사키 선생을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미사키 선생이 교실에서 살해된채 발견되고, 천문부 부장 미즈무라 히로코가 자살 미수 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니시하라는 야구부 친구들과 탐문 조사를 벌인 끝에, 학생 지도부장인 하이토 선생이 처음부터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극 초기작.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청춘 미스터리 장편입니다.
추리적으로는 괜찮았습니다. 범행 동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교묘하게 감춘 덕입니다. 읽는 내내 미사키 후지에를 살해할만한 사람과 동기를 떠올리기 힘들었어요. 중반 이후 하이토 선생이 진범일거라는 의혹이 불거지기는 합니다. 유키코가 죽었을 때, 미사키 후지에 말고 하이토 선생도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요. 그러나 하이토의 알리바이는 트릭을 사용할 여지없이 완벽하게 입증됩니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게 살인을 저지를만한 동기도 아니고요.
차라리 유키코의 부모님 쪽이 동기는 더 확실합니다. 미사키 후지에가 뒤쫓아 간 탓에 딸이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도 범인일 수는 없습니다. 학교에 몰래 숨어들어 미사키 후지에 선생을 불러내기도 어렵고, 압박 붕대를 이용하여 니시하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용의자들은 모두 범행을 저지를 수 없어서 독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데, 진상은 미사키 후지에가 자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도 못했지만 설득력은 높습니다.
그녀가 자살할 때 사용된 트릭도 볼거리입니다. 그녀는 목에 붕대를 감고 한쪽 끝은 가스 밸브에, 다른 한쪽 끝에 덤벨을 매단 뒤, 학생들 사물함 속 내용물을 이용하여 만든 경사를 이용하여 덤벨을 창 밖으로 굴려 내려 죽은겁니다. 무거운 덤벨은 분해하여 현장에서 조립했던 거지요. 여기에 대한 단서 제공도 본격물 수준으로 공정합니다. 미사키 후지에가 관리 담당자였던 육상부실에 압박 붕대와 덤벨이 있었다는 증언, 미사키 후지에 자살 현장에서 어떤 학생이 자기 사물함 속 내용물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 교실 내 가스 밸브와 창 틀에 생긴 자국에 대한 설명, 교실 밖 벽에 생긴 이상한 흔적 묘사 등 관련된 정보 모두가 독자에게도 남김없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목을 멘 붕대에 자살한 이유와 하이토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절절하게 써 놓았기 때문에 - 사고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나만 비난한다, 하이토 선생이 자기를 지켜줄걸로 믿었는데 여고생 제자와 불륜 관계를 가져서 나를 배신하더라 등등 - 뒤늦게 연락을 받고 나타난 하이토 선생이 현장을 수습하고 살인으로 위장했다는 것도 그럴듯했어요.

아울러 사건에 대해 주인공 니시하라가 나름대로 추리력을 선보이는 장면들도 꽤 괜찮았습니다. 신문 기사를 토대로 미사키 후지에를 죽인 흉기는 리본이 아니라 압박 붕대라고 추리하는 장면, 미사키 선생 자택에 남겨져 있던 워드프로세서 속 시험 문제인 '만장기'는 이미 지난 학기 문제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녀가 자살했다고 추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리본이 흉기라는게 언급되지 않은 이유가 신문 기사는 사실만 써야 하기 때문이라는건 근거가 빈약합니다. 흉기를 숨기는 건 범인 심문 때 써먹기 위해 경찰이 곧잘 벌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한 마디로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지요.

미조구치 형사의 추리력도 돋보입니다. 니시하라의 반응만으로 그가 유키코를 진짜 사랑하지 않았다는걸 알아냈다는건 억지스럽지만, 이를 철저한 수사로 뒷받침하고 있다는건 마음에 듭니다. 유키코에게 연하장도 보내지 않았고, 전화 한 통 없었고,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는 등 증거는 차고 넘치니까요. 그 뒤 히로코와 니시하라가 연인이었다는걸 밝혀낸 과정도 설득력있고요.
니시하라가 미사키 후지에 사건 범인이 아님을 확신한 이유도 타당합니다. 미사키 선생이 니시하라를 만나는데 꽃단장을 하고 올 이유도 없고, 니시하라가 범행에 구태여 붕대를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손으로 조르는게 당연하죠. 이렇게 전반적인 추리 관련 내용들은 모두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부분들은 문제가 많더군요. 먼저, 니시하라를 비롯한 학생들이 선생님, 경찰 등 어른들 모두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치기어린 묘사는 불편했습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적대감이 특히 지나칠 정도에요. 선생님들 거의 모두를 학교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악하는 악인으로 그려졌는데 공감하기도 힘들 뿐더러, 시대착오적인 묘사였다 생각됩니다.
니시하라의 여동생 하루미가 선천적으로 병을 가지고 태어난건, 미즈무라 히로코의 아버지가 임원으로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 폐수를 방류한 탓이라는 곁가지 이야기도 사족으로 느껴졌습니다. 사회파 흉내를 낸 걸까요? 그러나 사회 고발성 메시지는 강하지 않고, 오히려 이 때문에 주인공 니시하라가 사건의 원흉이라는게 불거질 뿐입니다. 원래 니시하라는 미즈무라 히로코와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로코의 아버지를 만나 하루미가 병을 가지게 된 폐수 방류 사건에 대해 비난한 뒤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황하다가 딱히 사랑한다는 감정도 없이 충동적으로 유키코와 관계를 가졌는데 그녀가 덜컥 임신하게 된 거지요. 한마디로 모든 사건의 원흉입니다. 유키코 부모님에게 살해당해도 할 말이 없을거에요. 이런 녀석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교사들을 폄하하며 정당함을 어필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와 닿을리가 없어요.
이런 점들 때문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청춘 미스터리 느낌도 거의 나지 않습니다. 교사, 어른들과 싸울 생각만 가득한,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라 풋풋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탓입니다. 그나마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야구 시합에서 패한 뒤, 모든 힘든 과거는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무리는 청춘물답습니다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니시하라가 과거를 떨쳐버린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죗값을 치루는게 맞아요. 청춘이라는 말로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동기, 진상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미사키 선생이 이렇게 복잡스럽게 자살 현장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그냥 교실 아무데서나 붕대로 목을 메면 끝날 일인데, 덤벨을 조립하고 굴려내리는 등의 방법을 사용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니시하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 어차피 하이토 선생이 뒷처리를 할 거라 현장의 상태는 상관이 없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 외의 부분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감점합니다. 특히 주인공 니시하라는 최악이었어요. 구태여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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