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구의 과학 - |
문구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문구에 대한 책은 좋아합니다. 친숙한 소재가 알고 보면 얼마나 놀라운 창조물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읽었던 "문구의 모험" 과 비교하자면, "문구의 모험" 은 14종의 문구가 어떻게 발명되고, 어떻게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역사서라면, 이 책은 수십 종의 문구에 대해 2페이지에서 4페이지 정도로 짤막한 분량을 할애하여 작동 원리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매뉴얼입니다.
그런데 길이도 짧고, 모든 문구에 대해 1 페이지의 도해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에 읽기가 아주 편합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도록 간략화하여 구조를 잘 알려주는 방식이 좋아요. 다루고 있는 문구의 종류도 쓰는 것, 지우는 것은 물론 지우고 붙이고, 자르고 묶고, 측정하고 보관하고, 마지막에 종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여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요. 몇 가지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에서 연필을 최초로 사용한건 도쿠가와 이에야스임.
- 연필 모양에 육각형이 많은 이유는 잘 굴러가지 않으며, 세 손가락으로 쥐고 쓸 때 3의 배수가 쥐기 쉽기 때문.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예네요.
- 색연필이 둥근 이유는 색연필 심이 부드럽기 때문. 육각형으로 만들면 심까지 거리가 짧아지는 지점이 생긴다(균등하지 않다). 그래서 잘 부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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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샤프심은 흑연으로 만들어서 지름이 1밀리미터가 넘었음. 흑연과 점토 성분으로는 가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샤프심은 플라스틱 수지와 흑연을 원료로 하여 가늘게 만들 수 있다는데, 신기하네요. 왜 연필은 플라스틱 수지를 쓰지 않는 걸까요? - 고성능 샤프에 있는 후레후레 기능은 가볍게 흔들면 심이 계속 나오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쓸 때 자동으로 계속 심이 나오는 건가요? 한번 써보고 싶네요. 심지어 미쓰비시 연필의 구루토가 샤프는 쓸 때마다 샤프심을 9도씩 회전시켜 항상 일정한 굵기로 쓸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샤프의 세계도 참으로 심오합니다. 샤프를 발명한 히라노 다카아키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 지워지는 볼펜의 원리는 특수 잉크임. 지우개로 문자를 지울 때의 마찰열에 반응하여 잉크가 무색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종이를 냉동고(영하 20도)에 넣어두면 다시 원래대로 글자가 돌아온다는데, 아 이건 정말 대단해요! 추리 소설에 인용해도 됨직한 멋진 이야기입니다.
- 사인펜은 수성 잉크 펠트펜에 대한 펜텔의 상표명인데 일반 명사가 된 것.
- 블루 블랙 잉크(만년필에 사용하는) 지우개는 잉크 화학 반응을 이용. 브루블랙 잉크 속 철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산소와 결합하는데, 이 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산을 사용한다.
- 셀로판 테이프의 셀로판 필름은 목재의 섬유로 만든 천연 필름임. 셀로판이라는 용어부터가 식물 섬유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와 투명하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Transparent를 합성한 명칭.
- 우표의 접착 성분인 초산비닐수지가 들어 있는 껌을 초콜릿과 함께 씹으면 껌이 녹아버리는데, 초콜릿에 함유된 유지가 초산비닐수지를 녹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임.
- 베르누이 커브를 이용한 가위날이 있는데, 자르는 동안 두 가윗날이 이루는 각이 30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
- 커터칼은 일본에서 처음 만듬. OLFA (올파) 1956년. 유리조각과 판 초콜릿에서 아이디어를 얻음.
- 커터 매트는 사실 칼날을 보호해 주는 도구임. 종이를 받치고 자르면 칼날이 쉽게 상함. 커터 매트는 말랑말랑한 층이 칼날을 보호해줌.
- 스테이플러 침의 단면 비율은 정해져 있음. 3:5
- 전자계산기와 전화기 키 배열이 다른 이유 : 계산기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2와 1을 붙여놓은 것이며 전화기는 오래전 다이얼식 전화기 숫자 배열을 응용하여 0과 1을 배치한 것.
둘의 키 배열은 아주 오래전 "어둠의 인형사 사콘" 에서 트릭으로 써먹었던 소재이지요. - 정규와 자는 다름. 정규는 선을 긋는 용도이며 자는 길이를 재는 것. 삼각정규는 삼각자.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이죠? 그런데 삼각자의 가운데 구멍은 쉽게 집어들기 위해 공기가 빠져나가라는 용도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 인감, 인주가 문구로 소개되어 있는데 일본식 정의인지 좀 궁금합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문구점에서 파니 문구라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인주는 수은과 유황을 합성한 주 (유화수은) 를 송진, 밀랍, 아주까리 기름 등과 잘 섞어서 반죽한 것이라는데, 수은은 독약이니 인주를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 조사해보고 싶어집니다.
- 지퍼는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에 있는 회사에서 1927년 자크인 이라는 이름으로 첫 생산. 여기서 자크라는 말이 유래. 자크는 일본어로 돈주머니를 뜻하는 긴차쿠에서 유래된 말. 어원이라는게 알고보면 참 허무한게 많아요. 이 역시 마찬가지.
- 모조지의 이름 유래는 의외였습니다 정말로 "모조" 해서 만든거라 모조지거든요. 다이쇼 시대, 오스트리아에서 제조한 종이를 모조한 것이 유래인데, 또 재미있는건 사실 메이지 중기 당시 대장성 인쇄국이 제조한 종이 (국지) 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것을 보고 모조지를 만든거고, 이를 다이쇼 시대에 역수입해 또 모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조된 종이를 모조한거죠. 제대로 부르려면 "모조모조지"라고 해야겠네요.
유유 출판사 책 답게 좀 과한 가격은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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