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의 우울 - 곤도 후미에 지음, 박재현 옮김/현대문학 |
아이가 없는 부부 고스케와 마스미가 외로움을 달래려 경찰견 출신의 반려견 샤를로트를 키우기 시작한 후, 그녀와 함께 여러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간다는 곤도 후미에의 담담한 일상계 추리 연작집.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삼색털 고양이 홈즈처럼 단서를 턱하니 주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식으로 반려견이 무언가 추리를 하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반려견과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에 수수께끼가 개입하고, 이를 고스케나 마스미가 밝혀낼 뿐이에요. 이렇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반려견과 애견인, 애묘인 등 애완동물에 관련된 묘사와 함께 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이 쯤 되면 본격 애견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등장하는 반려견들 모두 착하고 귀엽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져 작가의 깊은 애정 또한 강하게 느껴지고요. 또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일본만의 애견인 문화, 사고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 부부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면서 대형견을 키운다는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죠.
아울러 이러한 설정 덕분에 샤를로트가 우리나라에 흔한 푸들 등의 소형견이 아닌 대형견 셰퍼드로 등장하여 여러가지 매력을 선보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경찰견 출신이지만 지금은 느긋하고 노는걸 좋아하는 백수 아가씨라는 캐릭터가 아주 이채로왔거든요.
그러나 아쉬운 점은 추리적으로 수록작 모두의 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편차가 심하거든요. 마음에 든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영 아닌 작품도 많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정도? 그래도 좋은 작품도 포함되어 있고, 독특한 일상계라는 특징은 분명한만큼, 후속작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계속 읽어볼 생각, 있습니다!
이야기별로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샤를로트의 우울>>
표제작. 샤를로트를 키우게 된 과정이 등장하는 연작의 도입부로 부부의 집에 강도가 침입했지만 샤를로트가 짖지 않은 이유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개가 짖지 않은 이유" 는 셜록 홈즈도 일찌기 주목한 단서죠. 그러나 침입한 강도가 전직 경찰견 조련사 출신이라, 그것을 눈치챈 샤를로트가 지금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나름 힘들었던 경찰서로 가기 싫었기 때문에 숨어있었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억지스러웠습니다. 이웃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에는 열심이 짖어서 알렸음에도, 정작 자기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도 짖지 않는다는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렵죠. 이건 똑똑한게 아니라 직무 유기에 가까우니 해고되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란걸 샤를로트는 알까요? 여튼, 표제작 치고는 영 시원치 않았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샤를로트의 친구>>
공격성 넘치는 자신의 치와와를 일부러 대형견에게 다가가게 하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작품.
추리적으로는 별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치와와 미리는 샤를로트를 물고, 그 책임을 물어 할머니의 이혼한 며느리 집으로 보내지는데, 누가 보아도 할머니의 의도가 명백해서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개를 키우기 귀찮아서 사고를 일으키게 만든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할머니의 손녀 사와짱이 샤를로트를 문다는 해프닝으로 전모가 밝혀진다는 전개는 순진하고 귀여워서 괜찮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이긴 하지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샤를로트의 남자 친구>>
마스미 부부는 우연히 사사키 씨라는 애견인을 만나 그가 키우는 시바견 하나코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사키 하나코"라는 이름표를 단 길 잃은 개를 발견하고 당연히 사사키 씨의 개라고 생각하여 연락하지만, 하나코는 사사키 씨 부인이 잘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게 되지요. 결국 이 하나코는 사사키 씨가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전 남편이 제대로 이혼 수속을 밟지 않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위해 수작을 부리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의 "샤를로트의 남자 친구"는 해리스라는 다른 개인데, 이 개가 사사키 씨 남편이 데려온 하나코를 향해 사납게 짖어서 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진짜 애견인을 위한 작품이구나 싶었습니다. 해리스는 남자애한테만 짖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일종의 사기 범죄를 다룬 이야기라 조금은 무거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애견인과 애완견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더군요.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하고도 아주 잘 어울렸고요.
딱 한가지 문제는 사사키 씨의 남편이 왜 개를 한 마리 더 구입해서 하나코로 위장한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 잃어버린 것이겠지만 석연치는 않더군요. 또 사사키 씨가 애견인이 아니라 단순히 사기를 치기 위해 개를 구입했으니, 또다른 남자아이 가짜 하나코는 앞으로 별로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 조금 가슴이 아팠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를로트와 고양이 집회>>
불면증 때문에 새벽 산책을 나선 마스미가 한 골목길에서 십여마리의 고양이가 모여있는 "고양이 집회"를 목격하고, 그 곳에서 다친 새끼 고양이 "꼬맹이"를 주워온다는 이야기.
누가 고양이 집회의 원인이 되는 먹이와 캣닙을 뿌렸는지가 수수께끼인데 딱히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라 몰입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 수수께끼보다는 마스미의 불면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애묘인 가미야 씨의 입을 빈 "고양이를 위한 것" 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냥저냥 쉬어가는 이야기 정도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샤를로트와 사나운 개>>
도사견 "고나쓰"의 존재를 안 마스미는 우연히 고나쓰에게 치마를 물려 주인 집에 신세를 지게 된 덕분에 그 가정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알게 되죠. 그리고 우연히 산책 중 버려진 고나쓰의 장난감이 어린 아이와 똑같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무서운 의도를 간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에 있는 갓난아이를 견딜 수가 없어 일종의 원격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는 내용으로, 비록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실제 법적으로는 살인 미수라는 중죄가 등장하는 작품. 이 정도면 일상계로 보기 힘들겠죠.
물론 개의 습성을 잘 활용한 트릭이 등장하고, 이를 밝혀내는 과정이 공정하고 설득력있기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당연히 실패하고 만 결말 역시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마음 한켠이 무겁지만 추리 단편으로 완성도는 높습니다. 별점은 3점. <<샤를로트의 남자친구>>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양대 베스트 작품이에요.
<<샤를로트의 집 지키기>>
부부의 집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발견되어 부부는 샤를로트를 마당에서 키우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입이 이어지는 와중에, 우연히 진상을 알게된다는 이야기.
수수께끼는 흥미롭지만 진상은 <<고양이 집회>> 수준으로 시시했던 작품. 한 소년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를로트를 껴안으려고 했다는게 전부거든요. 동기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초에 CCTV 만 설치했어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 사건성도 없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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